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03)
203 글램핑
캠핑하기 딱 좋은 날씨. 숯불에 반항하며 참기 어려운 향을 뿜어내는 고기와 소시지들. 레트로 감성이라며 틀어 놓은 2000년대 히트곡들.
나 같은 집돌이는 캠핑 하면서 왜 사서 고생하냐고 생각하겠지만, 다 갖춰진 글램핑장은 좋지 않을 수가 없다. 바퀴벌레처럼 붙어 있는 덕준이와 오윤경 기자를 바라보는 것은 별로였지만.
오 기자는 이 지역에서 나름 거물로 성장해 버린 나에게 질문이 많았다. 여기 와서도 취재를 하겠다는 기자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사장님. 요즘 들어 혁신산단 분양이 주춤하던데, 어때요? 처음에는 기업들 많이 내려오는 듯하더니 최근엔 뜸하더라구요.”
“여기 와서까지 사장님 소리 듣고 싶지 않네요. 편하게 불러 주세요.”
덕준이가 가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끼어든다.
“그래. 내 친구랑 놀러 온 거야. 뭐 여기서까지 사장님 타령이야? 그냥 편하게 정수라고 불러. 쟨 속 좋은 놈이라 다 받아 줄 거야.”
“하여간 오빠는 짓궂어. 그러면서 회사에서 꼬박꼬박 사장님 대우하는 거 보면 참 신기해.”
어휴, 저 바퀴벌레들. 내가 여기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혁신산단 얘기나 하자.
“혁신산단이 대한전력 우선배정 때문에 처음엔 시끌시끌했는데, 어차피 나눠 먹기라 지금은 혜택이 혜택 같지 않아요. 회사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계산기 두들겨 봤는데, 본전 찾기 힘들겠다 싶으니까 머뭇거리는 거겠죠.”
“우선배정 말고도 혜택이 많던데, 그 걸로는 부족한 모양이죠?”
“아무래도 우선배정으로 물량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만큼 좋은 건 없죠. 변압기 쪽도 작년에 우리 회사 혼자 다 먹었는데, 올해는 11개 업체가 나누니까 2프로도 안 되게 가져가잖아요. 변압기 쪽은 메리트가 없어졌고, 다른 품목도 곧 그렇게 되겠죠.”
확실히 혁신산단 분양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긴 했다. 대한전력이 여러 지원책을 내놓아도 수도권 땅값 오르는 것만 못하니, 사장들이 솔깃해하지 않은 것이다.
어찌 보면 기회일 수 있다. 혁신산단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대한전력이 이 상황을 두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 기자가 걱정이 많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번에 혁신산단 특집 기사 썼었잖아요? 미래가 아주 밝은 것처럼 써 놨는데, 지금 안 그러니까 기사 잘못 쓴 것처럼 눈치가 보여서요.”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여전히 미래는 아주 밝은 겁니다.”
“아, 그래요? 뭐 있어요?”
“이건 아직 확정된 건은 아닌데, 대한전력에서 우선배정 기간 연장하고 배정 물량도 늘릴 계획입니다. 그거 발표되면 분양이 좀 활발해질 겁니다.”
오 기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아무리 경제부 기자라도 이런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없지. 기레기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얻어 버린 불명예를 씻어 주는 기사 써 주느라 고생했으니, 이 정도 기삿거리는 던져 줘야지.
“아, 진짜요? 이거 기사로 써도 되는 거예요?”
“조만간 발표하긴 할 텐데, 공식발표 전에 얘기하기는 그렇겠죠? 혁신산단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한전력이 힘을 더 써야 하는데 우선배정을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뭐 이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요?”
“오호. 그거 좋네요.”
“네가 기자 해라. 와꾸 다 짜 주고 있냐?”
덕준이의 핀잔에 오 기자가 오히려 덕준이를 타박한다.
“오빠는 뭘 몰라서 그래. 이렇게 잘 얘기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줄 알어? 정수 오빠 고마워요. 앞으로도 좋은 얘기 있으면 종종 부탁해요.”
“대한전력공과대학도 늦어도 3년 이내로 설립될 거예요. 총선 때 공약 발표해 놓고 그 뒤로 잠잠해서 빌 공자 공약이라는 얘기 많았잖아요?”
오 기자의 콧구멍이 넓어졌다. 기자의 후각이 발동됐다는 것인가? 올해 이 지역 최대 이슈였던 대한전력공과대학 설립 얘기이니 그럴 것이다.
“네, 맞아요. 공대 설립한다고 해서 혁신도시 집값 들썩였잖아요. 총선 이후로 잠잠해서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대한전력에 여러 번 찾아갔는데, 얘길 안 해 주더라고요.”
“그게 예산 때문에 그래요. 기재부에서 말이 좀 있나 봐요. 지역 간 형평성 얘기하면서 예산 내려 보내는 걸 꺼리나 보더라고요. 그래도 대한전력 내부적으로는 TF 꾸려서 준비하고 있어요. 이미 삽은 떴으니까, 내년 대선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추진될 거예요.”
“오빠는 이런 걸 왜 얘기도 안 해 줬어?”
오 기자가 덕준이에게 화살을 돌린다. 고기 굽는 데 여념 없던 덕준 바퀴벌레가 난데없는 화살에 당황한 표정이다.
사실 나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이다. 최 상무가 알려 주는 고급 정보에 매일이 즐거울 정도다.
“나야 당연히 몰랐지!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쟤야 사장이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니까 알겠지.”
“같은 회사 다니는데, 서로 얘기도 안 해? 나한테는 정수 오빠랑 엄청 친하다고 하더니만.”
“넌 무슨 내가 회사 가서 노는 줄 아나 봐. 엄청 바뻐. 요샌 저놈이랑 담배 피울 시간도 없다니깐.”
덕준이의 푸념이 가슴 아프다. 2시간마다 쿨타임이 돌아오는 인체의 니코틴 신호. 그때마다 덕준이와 밖에 나가서 공단의 칼칼한 먼지 들이마시며 피우던 담배가 그립다.
“취재는 천천히 하고, 고기나 잡수세요들. 나름 신경 써서 좋은 고기 구해 왔단 말이야.”
덕준이의 일침에 아쉬움을 떨쳐 내고 캠핑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주 내려와서 늘 보던 별이지만, 캠핑장에서 보는 별은 더 밝게 빛나는 것 같다.
5일짜리 추석 연휴 첫날은 글램핑장에서 맞이했다.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따뜻하게 잘 잤더니 아침이 덧없이 상쾌하다.
집돌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위가 캠핑이어도, 막상 해 보면 할 만하다. 내가 나서서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누가 불러 주면 기꺼이 응할 것이다.
“아침은 간단하게 김치찌개 끓여서 먹고 갑시다. 어제 남은 고기 넣고 아주 제대로 끓여 주겠어!”
덕준이가 의기양양하게 요리사를 자처했다. 솔직히 김치찌개는 망치는 것이 더 어려운 요리 아닌가? 거기에 고기까지 넣으면 김치가 쓰레기가 아닌 이상 맛은 보장되겠지.
햇반 돌리며 아침을 준비하는데 오 기자가 결혼 적령기답게 집값을 물어본다.
“정수 오빠, 혁신도시 아파트 가격 좀 올랐죠? 덕준 오빠 얘기 들어 보니까 거의 분양가 수준으로 샀다고 하던데요.”
“공과대학 생긴다고 하면서 좀 오르긴 했는데, 뭐 팔아서 차익 실현할 것은 아니니깐요. 그리고 다 회사 돈으로 산 거라 좋을 것도 없어요.”
기혼 직원들 숙소 제공해 주겠다고 한 채 두 채 사 모으다 보니 32채나 보유하게 됐다.
한 채마다 최소한 3~4천만 원씩은 올랐으니 기분은 좋다. 스스로 투기가 아니라고 되뇌고 있지만, 자산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
“회사 다니는 동안에는 계속 살게 해 주는 거죠?”
“왜요? 덕준이랑 결혼이라도 하려구요?”
“헤헤. 모르겠어요. 덕준 오빠는 당장이라도 할 것처럼 그러는데, 직장 문제도 있고 신경 쓸 것이 많아서요. 집이 제일 문젠데, 덕준 오빠는 사택에서 살면 된다고 그래서, 괜찮나 싶어서요.”
사귄 지 반년 남짓이라 아직 결혼을 얘기하기 이른 것 같지만, 서로 좋으면 사귄 기간이 문제일쏘냐.
그래도 여자에게 결혼은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겠지? 살림과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여자가 희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우리 다음 세대들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환경에서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갖자고.
“서로 잘 맞는다 싶으면 오래 끌지 마세요. 늦어져 봐야 좋을 것 없어요. 저 보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 연애 안 하냐, 결혼 안 하냐 만날 갈굼이에요.”
“오빠, 후배 기자 중에 진짜 괜찮은 애 있는데, 소개팅해 보실래요?”
“윤경아, 괜히 용 쓰지 마. 쟨 세상 여자 다 데려와도 싫다는 놈이야. 지가 무슨 서경덕인 줄 안다니까. 밥이나 먹자.”
짜릿한 냄새를 뿜기는 냄비 하나 들고 나타난 덕준이가 구찌를 놓는다. 너무 그러지 마. 나도 할 것 다 하고 산다고.
“혁신산단 지원센터에 이쁘장한 직원 하나 있거든? 너 알지? 유아란 대리라고.”
“아, 알 것 같아. 되게 예쁘고 귀엽게 생기셨던 거 같은데.”
“맞아. 유 대리가 쟤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연결시켜 주려고 그러는데도 쟤가 마다하잖아.”
“에이 진짜. 썸 타는 교회 오빠 있다고 했잖아! 손뼉도 짝이 맞아야 치지, 그냥 막 치냐?”
예전에 내가 덕준이랑 유 대리랑 연결시켜 보겠다고 총을 난사했었던 적이 있다. 그 죗값을 지금 치르는가 보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무조건 들이밀고 보는 저놈. 친구가 확실하다.
“아니야. 내가 봤을 땐 핑계 같아. 아무리 봐도 대현자이거나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아! 정말? 에이, 눈이 높아서 그렇겠지. 정수 오빠 정도면 눈 높아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에라 이, 썩을 놈들. 밥이나 먹자.
펄펄 끓는 찌개 앞에서 잠시 조용해졌다. 흰 쌀밥과 끔직한 고기가 보이는 김치찌개 조합. 센스 있는 덕준이답게 달걀프라이도 곁들여지니 일시적으로 대화가 끊겼다.
위장이 찌개 국물로 코팅이 됐다 싶을 때 덕준이가 입을 열었다.
“정수야. 근데 최 상무님이 저번에 밥 먹자고 해서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데, ESS 얘기를 한참 하데? 앞으로 그게 잘나갈 거라고. 우리도 그걸 해야 한다는 거야.”
“ESS? 오빠, 그거 요즘 핫하잖아. 4월부터 촉진요금제 도입돼서 그거 도입하려는 업체들 늘고 있다고 하던데?”
최윤근 상무의 ESS 타령이 덕준이에게까지 흘러간 모양이다. 경제부 기자인 오 기자도 ESS가 유망하다고 인정해 주니 귀가 솔깃하긴 하다. 솔깃한들 면장도 알아야 해 먹는 것이지.
“나한테도 그 얘기 했었어. ESS가 심야전기나 양수발전 같은 거라고 하는데, 뭐 내가 아는 게 있어야 말이야.”
“우리가 변압기는 아주 잘 알아서 시작했나? 너도 고작 3년 일한 것이 전부고, 나는 일자무식이었고. 그래도 맨바닥에 헤딩하면서 해 왔잖아?”
“그래서 ESS 사업도 시작해 보자고?”
내 질문에 덕준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준이도 이제 사업가가 다 됐구나. 원래 자신감이 있긴 했지만, 우리 회사가 잘나가니 더 자신감이 붙었으리라.
“사업을 순탄하게만 하면 재미없잖아? ESS가 별건가 뭐. 쉽게 말해서 배터리 붙여다 만드는 것 아녀? 우리야 모르긴 하지만, 괜찮은 회사 하나 인수해서 할 수도 있는 거고.”
“맞아요. 요즘 여기저기서 ESS 뛰어든다는 업체가 많더라구요. 기업들이 돈 된다 싶으니까 그러는 거죠.”
오 기자까지 합세해 듀엣으로 ESS 타령을 부른다. 역시 김치찌개엔 고기가 들어가야 한다. 이 진득한 국물 맛에 집중하고 싶은데, 난데없는 ESS 타령이 자꾸 방해한다.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이라지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산업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지원정책 종료된 뒤로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인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잘 모르는 분야이고, 정책발로 크고 있다는 것이 괜히 걸린다.
“급한 건 아니니까 차차 생각해 보지 뭐. 밥 다 먹었으면 커피나 죽이게 내려 봐.”
회사가 운 좋게 2년 만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금 하는 분야를 더 깊이 들어갈 것인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며 외형을 확장해야 하는지. 벌써 이런 고민을 할 때라니. 놀라운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ESS가 됐건 뭐가 됐건, 우리도 나름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야. 지금이야 우선배정으로 등 따시게 먹고살지만, 그거 없어지면 이 덩치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 아니야? 민수야 시장이 작아서 용써 봐야 거기서 거기니깐.”
“우리 한 부장, 사업가 다 되셨네. 회사에서 얘기할 시간 없으니까 놀러 와서까지 얘기하는구만.”
“그러게 말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니깐.”
“변압기 쪽은 플랜이 다 짜여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새로운 분야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 이것저것 조사하고 공부해 볼게.”
아침밥 거하게 먹고 약간 쌀쌀한 9월 중순의 아침 바람 맞으며 커피와 함께 피우는 담배란 너무 좋다. 이 좋은 분위기에서 일 얘기를 하는 것이 안타깝다.
나와 덕준이는 20대 대학생 시절 오늘만 사는 것처럼 놀면서 보낼 수 없다.
어린 왕자이면서 피터팬이고 싶다. 스스로 성장을 거부해 버린 양철북의 오스카가 되고 싶기도 하다. 확실히 30대라는 나이가 주는 압박은 20대 때와 차원을 달리한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