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09)
209 격동의 현대사
전 국민이 서울에서 전해지는 뉴스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저녁 뉴스로 어떤 것이 나올지 궁금해 미칠 정도로 이 나라가 뒤집히고 있다.
정치 이슈는 옳고 그름을 떠나 지지 성향에 따라 편이 갈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는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회사에서도 정치 얘기가 일상의 대화처럼 흘러나왔다. 대통령이 큰 잘못을 했고, 그래서 탄핵이 될 것이라는 이 이슈에는 모두가 일치단결한 것 같다.
원색적인 욕도 거침없이 터져 나오고, 11월이 되면서 광주 도청 앞 분수대로 가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사장님. 내일 뭐 해? 같이 광주나 올라갔다 오자고.”
제일 흥분한 사람이 공장장이다. 같이 갈 직원들 위해서 전세 버스까지 사비로 대절했다며, 아주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날씨도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는 직원들 불편해할 수 있으니까 따로 갈게요.”
“내가 말이야. 대학생들 화염병 던지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어른들은 대학생이 공부 안 하고 데모만 한다고 손가락질했어도, 난 그게 부러웠어. 나도 대학 다녔으면 저랬을 건데 하고 말이야. 나이 육십이 넘었어도 대학생 된 기분으로 으쌰으쌰 좀 해야지 않겠어? 하하.”
“공장장님이 이렇게 열혈 시민일지 몰랐습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놨는데 가만있으면 되나! 지 부모가 그렇게 돼서 안쓰럽게 생각했더니 나라를 아주 개판으로 만들어 놨어.”
10월 마지막 주에 시작된 촛불집회가 한 주 한 주 지날수록 규모가 커지더니, 전국으로 확산됐다. 모여서 촛불 들고 소리 한 번씩 지르고 오는 것이 토요일 필수 코스가 된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란 놀라움은 매일 쏟아지는 뉴스로 경신되고 있다. 어제 뉴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뉴스 과잉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은 그냥 뉴스 그 자체가 흥미로운 시기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을 지경이다.
같이 가자는 공장장에게 직원들 김밥이라도 사 주라며 손에 잡히는 대로 돈만 쥐여 주고 말았다.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사장이라도 옆에 앉아 있으면 불편하겠지. 젊은 사장의 고충이다. 몸과 마음은 30대인데, 사장이라는 자리를 생각해야 하는 신세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호수공원으로 뛰어나갔다.
박준희 사장과 런닝 시작한 지 한 달이 족히 넘었다. 그냥 같이 달리고 숨 헐떡이다 바이바이.
그저 함께 달리는 것뿐인데도 정서적인 교감이 확대되는 느낌이다. 박 사장이 내품는 거친 숨과 함께 실려 오는 향수 냄새가 가끔 본능을 자극하지만, 잘 이겨 내고 있다. 어쩔 때는 의도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 자극하지만, 그럴수록 애틋한 마음이 커져 간다.
“헉헉. 한 바퀴 더 돌까요?”
“콜. 전 아직 쌩쌩합니다.”
“젊어서 좋겠어요, 쳇. 참, 정수 씨 내일 뭐 해요?”
박 사장이 내일을 물어본다. 혹시?
서로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간혹 정치에 대한 토픽도 나누긴 했지만, 불편해질까 봐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종교도 그렇지만 정치적 성향도 꽤 중요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번 기회에 알고 싶다.
“내일 왜요? 저 집돌이인 것 알면서 물어보십니까?”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뭐라고 하던데요? 하하. 혹시 내일 약속 없으면 저랑 같이 광주 다녀올래요?”
“광주요? 촛불 들게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말이에요. 한 명이라도 힘을 보태 줘야 할 것 같은 기분.”
덕준이, 오윤경 기자 커플과 함께 가기로 했으면서도 마음은 찝찝했다. 바퀴벌레들의 향연을 봐야 하는 불쾌함이 뇌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박 사장이 나를 구제해 주다니! 당장 덕준이 놈한테 전화 걸어야겠군.
“저야 좋죠. 친구랑 가려고 했는데, 누나가 같이 가자고 하니까 누나 구제해 주죠 뭐.”
“이거 뭐 되게 시혜받는 느낌이네요?”
“하하. 서로 돕고 사는 거죠. 근데 누나네 회사에서는 같이 안 가요? 우리 회사는 버스 대절해서 올라간다고 난리였는데요.”
박 사장이 주위를 살짝 둘러보더니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넨다. 이럴 때마다 내가 욕정이 불타오른다고!
“우리 회사는 나이 든 사람 많잖아요. 대사모도 꽤 있어요.”
“대사모요?”
“대통령을 사모하는 모임요. 아무래도 좀 불편해서 회사 내에서는 그런 얘기 일절 안 해요. 프라임일렉트릭은 젊은 직원들이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다르네요.”
“우리 회사는 나이 젤 많은 공장장이 주도합니다. 버스도 사비로 대절했어요.”
박 사장이 마냥 부러운 눈빛이다.
일손뿐만 아니라, 업무 외적으로도 손발이 잘 맞는 회사는 누구나 바랄 것이다. 그 수준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회사는 직원들끼리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회사가 됐다. 덩기덕 쿵덕.
“정수 씨네 공장장님 되게 탐나는 분이에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도 되게 좋고, 거들먹거리지도 않잖아요.”
“그래도 현장에선 아주 엄한 분이에요. 직원들 흐트러진다 싶으면 가만 안 둬요. 가끔은 저래도 되나 싶은데, 뭐 그 덕분인지 안전사고가 없으니 다행이랄까요.”
“저도 오랫동안 공장장님 지켜봤잖아요? 그런 분 없어요. 대우 잘해 주세요.”
이미 억대 연봉자라는 말이 송곳니 앞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내년엔 더 파격적으로 올려 줄 것이니까.
그렇게 산책로 한 바퀴를 더 돌고 나니 몸이 좀 뜨거워졌다. 여기서 더 무리했다가는 흘린 땀이 식어 추위에 벌벌 떨 것이다. 운동은 몸땡이가 감당할 만큼만 하자고.
“참, 정수 씨. 김 사장님한테 연락 안 왔죠?”
마무리 운동으로 스트레칭하던 박 사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김 사장 운운했다.
“김 사장님요? 주변에 김 사장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누군지…….”
“김미애 사장님요! 에이전트 케이!”
“아! 아뇨. 최근엔 통화한 적 없어요.”
“아직 연락 안 했나 보구나. 우리 다음 달에 중국 가야 해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 중국 갔을 때 연말 즈음에 내년 연간 계약 체결한다고 했었다. 납품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그동안 수출품 납기 딱딱 맞춰 가며 잘 납품했고, 그러다 보니 벌써 연말이 다가왔군.
“연간 계약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난징변압기랑 전장특수변압기 둘 다 연간 계약 체결하자고 했대요. 우리 일 처리가 아주 맘에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래저래 올 연말은 뜨거울 것이 분명하다. 수출 연간 계약 맺으면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다. 불확실성을 없애 주는 것처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나!
“하하. 좋네요. 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옵시다. 그나저나 연간 계약하면 대한전력처럼 하는 것은 아니죠?”
“그쪽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계약액이나 납품 수량이 정해지니까 계획 세우기 편해지죠. 이왕이면 용량하고 납품 수량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되면 좋겠죠. 물량 많은데 품목만 잔뜩이면 일하기만 힘들어지잖아요.”
“그것보다는 삼상변압기 많이 받도록 해야지요. 솔직히 누나는 재미 많이 못 봤잖아요. 그동안 저만 재미 보는 것 같아서 좀 그랬어요.”
반년 정도 진행된 수출에서 금성전기가 양보를 꽤 했다. 물량을 감당 못해 우리 회사한테 넘긴 것이지만, 양보는 양보다. 이것도 일종의 동업인데, 재미도 공평하게 봐야지.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인데, 박 사장은 감동하는 표정이다. 숲의 요정 페어리루가 포와와와 함께 꽃밭에 서 있는 듯한 저 표정. 아우, 귀여워. 그러고 보니 리프 페어리루가 빅 휴머루 지연우 여친이었지? 나도 지씨인데…….
“아휴, 고마워요. 삼상이 생각보다 너무 안 나와서 좀 속상했어요. 이번에 중국 가면 삼상 많이 나오게 해 달라고 정수 씨가 힘 좀 써 주세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하. 중국 가서 맛있는 거나 많이 사 주세요. 근데 누나, 리루리루 페어리루 알아요?”
“네? 페어리루요? 그게 뭐예요?”
“아니에요. 운동 다 했으니 가시죠. 내일 7시쯤 보면 되겠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저 모습도 페어리루 같다. 오늘따라 되게 귀여워 보이네. 이렇게 내 마음속 지분을 꽤 차지하셨군. 박준희 사장은 그렇게 준희 누나가 돼 버렸다.
토요일이 찾아왔다. 정치권에서 탄핵을 하니 마니 시끄럽게 굴다 보니 분노가 더 거세진 것 같다. 일주일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주최 측은 서울에서만 백만 인파가 몰렸고, 전국적으로는 2백만이 몰렸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진짜 고생들 많다.
“어휴, 사람들 진짜 많이 모였네요.”
“누나, 길 잃어버리지 않게 저 잘 잡아요. 밧줄이라도 가져와서 서로 묶어서 연결할 걸 그랬네요.”
“우리 애기나 길 잃어 먹지 말고 이 누나 손 잘 잡아요.”
오글거리는 멘트에 전신이 다 움찔한다. 밧줄. 귀갑묶기. 응?
날은 춥지만 준희 누나와 손잡고 걸어가니 하나도 안 춥다.
많은 인파에 서로 떨어지지 말자는 이유로 손을 잡았지만, 둘 다 핑계인 것 같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30대들의 연애가 조심스럽다.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 기분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
“하야하라! 퇴진하라! 탄핵하라!”
있는 힘껏 소리 지르고 LED 촛불 흔들고. 추워질 때쯤 행진하고. 별것 없지만, 7만 명이나 모였다는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것 같다.
“좀 춥네요. 그쵸?”
멋 부린다고 경량 패딩 입고 오더니 잘하는 짓이다 아주. 광고에서 이나영이 가볍다고 자랑했지, 따뜻하다고 하진 않았다고!
어쩔 수 없음을 핑계 삼아, 두툼한 패딩을 열었다. 이걸 벗으면 나도 춥다. 상생하자고.
준희 누나를 넉넉한 패딩 안으로 몰아넣었다. 품 안에 쏙 들어온다. 따뜻하니 좋다. 나라가 개판이 되고 있는데, 난 이러고 있다.
그렇게 나라도 뜨겁고 나도 뜨거워지며, 올해 마지막 달 12월이 찾아왔다.
결국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니, 탄핵안이 부결될 것이라니, 별의별 소문이 난무하더니 이뤄 냈다.
2016년 올해같이 다사다난한 해가 또 있었나 싶다. 질 자신이 없다는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겨 버리지 않나, 호주 퀸즈랜드도 고개를 절레절레할 정도로 뜨거웠던 여름. 여름이 끝나자마자 경주를 뒤흔든 지진까지.
단연 압권은 이 겨울을 뜨겁게 만든 국정농단이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 단어를 이제 막 쪽쪽이 뗀 애기도 따라 말할 정도로 이 나라 유행어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세운 이 회사가 2,5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빵 떠 버린 것을 올해 최고의 사건으로 꼽고 싶다. 작년 302억 원이었던 매출이 무려 8배가 넘게 늘어났다. 나도 못 믿겠지만, 디스 이즈 리얼이다.
이렇게 뜨겁고 훈훈한 겨울이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그날, 대한전력은 애자류 입찰 공고를 내놨다.
총 435억 원짜리 입찰. 역시 지역 우선배정 20퍼센트가 걸려 있어서, 6.6퍼센트를 먹고 들어갔다. 애자류 업계에서 짱 먹는다는 두 회사도 혁신산단에 입성해 있어서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8억 7천만 원을 확보했으니 출발은 좋다. 거기에 폴리머부싱일 경우 가산점을 준다는 혜택까지 생겼으니 아주 좋다.
이건 백프로 이춘배 부사장의 선물이다. 내가 폴리머부싱 생산한다는 소식에 아주 기뻐하며 가산점 조항을 넌지시 얘기했으니 말이다. 승진 턱을 이렇게 내는구나!
이제 관건은 2주 뒤에 있을 입찰에서 남은 348억짜리 케이크를 얼마나 먹느냐이다. 많이 먹고 싶다.
“사장님! 입찰 자신 있죠?”
“아휴, 몰라. 입찰은 처음이라 좀 떨리긴 하네.”
태인산업 김희철 사장이 평소답지 않게 긴장이 역력하다. 최 상무에게 레슨도 받고, 내가 강호창 사장에서 전수받은 노하우도 다 전달해 줬건만, 떨기는!
“가산점 있어서 입찰가 보정을 해 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욕심내지 말고 입찰 4개 중에서 2개만 먹어 봅시다.”
“아이고야.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네. 큰사장님, 잘되겠지?”
“하하. 이거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데요?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예정가 90프로로 먹어도 절반은 남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지르세요.”
태인산업이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것은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반년치곤 놀라운 성과를 내긴 했지만, 내 성엔 전혀 차지 않는다.
문자님도 고작 100억도 안 되는 매출 올리라고 인수하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뜨거운 연말처럼 태안산업의 내년도 뜨겁게 해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