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1)
021 범의 아가리
“3억이라……. 정확한 금액은 설계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그 정도 한다는 말씀이시죠?”
난 건축사의 무덤덤한 표정 속에 교묘하게 숨은 신 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잡으면 넉넉하게 뽑아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로군. 내 주둥이가 호구로 보였단 말이지?
“그렇지요. 단순 공장이라 이 정도지, 주택이었으면 더 비싸게 들어갑니다. 3억이면 엄청 비싼 것 같죠? 설계하고 감리하고 나면 우리도 남는 것이 없어요.”
남는 것 없다라. 남는 것도 없는데 봉사하겠다는 소리야 뭐야? 회사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친다와 함께 사장이라면 필히 하는 소리를 꺼냈다.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들으면 저렇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군요. 그런데 3억은 너무 비싼 것 같은데요?”
“그거야 대략 따져 봐서 그 정도라는 것이지, 저야 법에 따라 정해진 요율대로 받는 것입니다. 비싸고 말고 할 것이 없어요.”
“요율이란 것이 딱 여기 넘기면 안 된다는 뜻 아닌가요? 그리고 건축비 60억 얘기하셨는데, 비용이 낮아지면 요율에 따라 내려가죠?”
내가 자꾸 따지고 들어가자, 표정이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딱 보건대, 얼마 정도 깎아 줘야 하나 짱구 굴리고 있구만. 굳이 시간 끌지 말자.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지.
“뭐 조금은 내려가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뭐 설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딱 보면 나오잖아요?”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의뢰는요? 에이, 사장님. 왜 그러실까? 좋다. 이렇게 합시다. 제가 그래도 손해는 보면 안 되니까 10프로 빼 드릴게요.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아까는 남는 것 없다더니 10프로를 빼 준다고?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몇천만 원이 말 몇 마디에 왔다 갔다 해? 더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호구 잡았다고 가슴이 부풀었다면 터지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나!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지요.”
“허허. 사장님. 저희가 준비 다 해 놨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안 되지요. 이 돈 아끼면 설계가 제대로 안 나와요. 아낄 것을 아껴야죠.”
“저는 드릴 말씀 다 드린 것 같은데요.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뵙겠습니다.”
“나 참. 젊은 사장님 사업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건축사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채로 서류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갔다. 무척 불쾌했다는 투를 만방에 과시하면서 말이다.
꼭 저렇게 한두 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인간적으로 화 안 내고 곱게 보내 줬으면 고맙다는 소리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람을 호구 취급해도 유분수지.
“사장님! 왜 그래? 왜 그냥 보내?”
키보드가 부서져라 타이핑하며 뭔가 몰두하던 덕준이가 건축사의 패기 어린 퇴장질에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저놈이 3억을 부르더라고. 그러더니 엄청 베풀어 주는 척 10프로 깎아 준다대? 사람 가지고 장난하나 진짜.”
“3억? 미친놈이네. 얼마를 해 먹을라고! 아주 눈 떴는데도 코 베어 갈 놈이네?”
“저런 놈은 상대해 봐야 시간만 아깝지. 나가랬더니 저러고 나간다야. 나보고 사업 그렇게 하지 말래. 참 나, 고양이가 어물전 걱정해 주고 있네.”
“근데 설계가 하루 이틀 만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더 늦어지면 빠듯할 텐데 괜찮겠습니까요?”
“설계하는 놈이 저놈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쉬울 것이 뭐 있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니까 걱정 말자구. 나가자, 담배나 하나 피우자.”
서울 가면 눈 뜨고 코 베인다고 하더니, 사방이 돈 뜯어먹을 승냥이 떼로 가득하다. 어수룩하게 있다가는 호구 잡히기 딱이겠다. 하긴, 처음 나주 갈 때도 택시 기사한테 호구 잡혔으니 뭐 말 다 했지. 내가 호구 잡히기 좋게 생겼나?
“어. 너 딱 봐도 ‘나는 호구입니다’라고 쓰여 있어.”
“개새끼야.”
“있는 그대로 얘기해도 뭐라 그러네.”
“내가 젊다고 아주 어수룩하게 보는 모양인데, 두고들 보라고 해. 인간 지정수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 줄 보여 줘야겠어.”
“정수야. 너 아무래도 이상해. 내가 알던 정수가 아니야. 사장님, 약 빠셨습니까?”
“옛날 멋모를 때나 어리바리하면서 당했지. 그 짓도 한두 번이어야지, 내가 저번에 나주 처음 갔을 때 말했잖아? 호연지기가 길러졌다고. 사장이 어수룩하고 어물쩍거리면 직원들만 고생하는 것이야. 알겠습니까, 한덕준 과장?”
“넵! 사장님. 부지런히 일하겠습니다! 우리 사장님 이래 보니 진짜 사장 같다야.”
“사장 같다가 아니라 사장이야 인마!”
건설 회사 알아볼 생각을 하니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마나 물어뜯겠다고 달려들지 생각조차 하기 싫구만.
“사장님아, 설계도 이런데 건설업자는 얼마나 물어뜯겠어?”
“보나 마나 시공비 깎아 주는 척하면서 인건비랑 자재에서 돈 엄청 남겨 먹겠지. 안 봐도 뻔하다. 주변에 건설 회사 하는 사람 없냐?”
“아이고, 아는 사람이 더해요. 가족 간에도 사기 처먹는 세상인데!”
“일단 찾아보자고. 어지간한 곳은 설계랑 건축 같이 하니까 잘만 찾으면 쓸 만한 업자 나올 거야.”
* * *
물어물어 알음알음 공장 신축 전문 회사라는 건설 회사를 찾아냈다. 설계도 안 나왔는데, 대뜸 70억을 부르네?
“사장님요. 설계야 허가 받을라고 해 놓는 것 아닙니까요? 우리가요, 공장 한두 번 짓는 것도 아니고요. 딱 보니까 와꾸가 나오네요. 설계까지 싸게 해서 짜게 잡으면요, 75억 정도 들어갈 것 같은데요. 제가 마진 퉁 치는 걸로 해서 70억에 해 드릴게요.”
“70억이면 호이스트까지 포함이죠?”
“아이고요, 사장님요. 그건 호이스트 회사에다 물어봐야지요.”
“호이스트도 없이 70억을 달라고요?”
“우리 젊으신 사장님이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요. 어디 가서 이 가격에 못 합니다요. 우리나 되니까 이렇게 해 주지요. 뭐 이것저것 잴 것도 없어요.”
‘요’ 자로 말을 끝내야 한다는 벌칙이라도 받은 것 같은 사장은 빨리 계약부터 하자고 재촉했다. ‘요자 사장’ 말대로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이 상황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냥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화낼 필요도 없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몇 군데 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사장님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요. 저희가요. 그냥 서비스한다 치지요. 인부들 인건비만 챙긴다 칠게요. 까짓것 65억에 해 드리겠습니다요. 어때요?”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말 몇 마디에 5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은 뻔하지 않나!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장님요! 얼마까지 생각하셨는데요? 사장님요! 사장님요!”
여기가 용산이냐! 건설 쪽이 워낙 복마전인 것은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 보니 말이 안 나온다. 선뜻 5억을 깎아 주는 척하더니, 이제는 더 깎아 줄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해먹으려고 그랬던 것이냐!
결국 건설 회사 알아보는 것은 뒤로 늦추기로 했다. 어딜 가나 등골 빼먹는 놈 천지였다. 젊은 나이에 힘들게 사업하겠다는데 이빨에 낀 팥 껍질까지 빼먹겠다는 심보를 감추지도 않더라.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너무 노골적이더라.
이거 어디까지 업계 관행이랍시고 이해해 줘야 하나. 70억에 계약했다면, 아마 뒤로 몇억 챙겨 주겠지? 말로만 듣던 업무상 배임 횡령이겠군.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업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건가? 씁쓸하다, 씁쓸해.
* * *
“지 사장, 요새 담배가 너무 느는 것 아니야?”
공장 마당에서 꽤 쌀쌀해진 바람 쐬면서 담배 하나 물고 있는데, 공장장이 동네 마실 나온 영감처럼 어슬렁 걸어왔다.
“공장장님, 어째 한가해 보이십니다?”
“나도 좀 쉬면서 하자. 김 상무 이놈이 어찌나 잘 물어 오는지 힘들다야.”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주 내려가고 사람 많이 뽑으면 그때부터는 좀 편해질 겁니다. 몸만 말이죠. 하하하.”
“그 많은 직원 관리하는 것이 진짜 일인데, 걱정이긴 하네.”
“우리 회사의 모든 걱정은 제가 하니까 맘 편히 일만 해 주시면 됩니다.”
“내가 우리 사장 고생하는 것을 아는데, 어찌 걱정을 안 하겠나. 요즘 내가 회사 걱정에 잠이 안 와.”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인데? 공장장이 어디서 ‘중소기업 사장 길라잡이’ 책이라도 읽은 것인가?
“공장장님 잠 편히 주무시도록 제가 더 분발하겠습니다. 저 믿으시잖아요? 그렇죠?”
“당연히 믿지. 믿으니까 여까지 온 것 아닌가! 그나저나 자금은 괜찮나? 내가 신경 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척하기도 뭐하더라고.”
“돈은 늘 걱정이죠. 세상에 돈 걱정 안 하는 사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 걱정은 제가 합니다! 아무 문제없게 할 것이니까 걱정 마세요.”
“행여나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하게. 나나 상무나 월급쟁이지만, 자네와 함께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사람 아닌가?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함께 상의하자고.”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자동권선기는 잘되고 있습니까?”
“에헴. 날이 꽤 춥구만. 난 일하러 가겠네.”
“에이 진짜! 어디 가요!”
돈 걱정 안 하면 어찌 제대로 된 사장이겠는가! 잘 될 것이다. 문자님이 나를 보우하시는데 걱정할 필요가 뭐 있나! 대출도 있고, 신용기금도 있고, 여차하면 통장에 남은 돈 8억도 있잖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된다.
그나저나 날이 꽤 쌀쌀해졌군. 내년 봄은 나주에서 맞이하겠어. 벚꽃이 지면 프라임일렉트릭은 활짝 필 것이다. 크으~ 문학적이군. 후훗. 뻘생각 그만하고 사무실에나 들어가자.
“사장님, 아까……. 어휴, 담배 냄새야. 담배를 얼마나 피우고 온 거예요? 진짜 건강 생각해서 좀 줄여요.”
그래, 내 건강 걱정해 주는 사람은 우리 황 여사님밖에 없구만. 상무한테는 진심을 다해서 갈구지만, 나한테는 늦둥이 동생 보듯이 걱정이 한가득이다. 부부면서 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그러면서 애 둘 낳고 사는 것을 보면 결혼은 참 신기한 것이야.
“하하. 저도 오래오래 살려면 줄여야죠. 근데 아까 뭐요?”
“맞다. 내 정신 좀 봐. 금성전기? 거기서 전화 왔어요. 박준희 사장이라고 하던데.”
“금성전기 박 사장요? 왜요?”
금성전기 박준희. 이 바닥에서 떠오르는 전설이니 모를 수가 없다. 내 롤모델이기도 한 박준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라. 살짝 설렌다.
“그냥 뭐 인사차 전화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 잠깐 밖에 나갔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고 끊더라고요. 뭐 연락처 물어보고 할 것도 없이…….”
“그러고 보니까 변압기 회사에서 연락 온 것은 처음이죠?”
“여기 들어온 뒤로는 처음이죠. 뭐 잘못한 것 있어요? 그러지 말고 전화해 봐요. 잠깐만요. 금성전기라……. 여기 번호 있네. 궁금하면 왜 전화했는지 물어봐야죠!”
“좀 모양새 빠져 보이지 않을까요?”
“하여간, 남자들은. 사업하는데 모양새가 중요해요? 혹시 알아요? 중요한 일로 전화했을지?”
그래, 전화하자. 아니면 말지만, 얘기가 잘돼서 든든한 아군이 되면 좋은 것 아닌가!
“네, 금성전기입니다.”
“저는 프라임일렉트릭 지정수라고 합니다. 박 사장님께서 전화 주셨다고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사장님요? 잠시만요. 연결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