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4)
244 청소
“지 사장! 낼모레 구정인데, 저녁이나 한 끼 하지? 할 얘기도 있고 말이야.”
안성파워 강호창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한숨 돌릴 틈이 없다. 아침부터 검찰 다녀오느라 기진맥진했는데, 저녁도 편히 쉴 수 없는 이 신세.
그래도 강 사장과 만남은 아주 중요하다.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의 근황을 알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런 강 사장을 만나러 혁신도시의 조용한 고깃집으로 차를 몰았다.
“일찍 왔네?”
먼저 와서 이 집 고기가 얼마나 맛있을지 생각하고 있으려니, 강 사장이 도착했다. 고기 사 줄 우리의 따거!
“사장님, 어서 오시죠. 제가 먼저 와서 자리 데워 놓고 있었습니다.”
“하하, 넉살은. 검찰 갔다 온 사람이 아주 여유가 넘치는구만.”
고깃집에 오면 치러야 하는 의식, 온기가 느껴지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아 내는 것으로 만찬이 시작됐다.
“그래, 오늘 검찰 조사는 어땠나?”
“무난했습니다. 제가 뭐 잘못한 일도 없고, 행여라도 처벌 받을 일도 아니고, 그저 묻는 말에 잘 대답하고 나왔습니다.”
“고생했네. 이거 두부라도 하나 사 올 걸 그랬네? 하하.”
전화로 걱정을 가득 전달해 준 것과 달리 만찬 자리에서 강 사장의 목소리는 전처럼 여유가 넘쳐 났다. 목소리 톤만으로도 느낌이 좋다.
“아까 낮에 춘배를 만났어.”
강 사장이 골프도, 익어 가는 고기도 아닌 메인타이틀로 바로 들어갔다. 할 얘기가 많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부사장님이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말도 마. 참! 자네 술은 뭘로 할 텐가?”
“차 끌고 왔는데, 오늘은 쉬어도 되겠습니까?”
“차? 대리 부르면 되지 뭘 빼고 그래? 왜? 오늘 몸이 안 좋아?”
몸은 아주 쌩쌩하지. 내 간지 폭발 붕붕이를 대리 기사에게 맡기기 싫어서 그렇지 뭐. 딱 일주일만 뿌듯해하고 말자고 다짐했건만, 추잡스럽게도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추잡해, 추잡해.
“그럼 시원하게 한 잔 말겠습니다.”
“그래그래, 오늘 같은 날은 시원하게 들이켜야지.”
맥주와 소주가 최적의 비율로 섞여 들어갔다. 맥주의 청량함과 소주의 알싸함이 위장을 말끔하게 도배한다.
“이 부사장님 만나서 무슨 얘기 하고 오셨습니까?”
폭탄주 한 잔 시원하게 원샷한 강 사장이 입을 열었다.
“춘배가 아주 백방으로 뛰어다녔어. 수사 대상자라 검찰에 연락도 못하고 아주 죽을라고 하더라고.”
“그래도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게든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하하. 이젠 자네도 도사 다 됐구만. 자, 일단 한 잔 더 하자고.”
종업원이 고기 잘라 주며 다 익었으니 드셔도 된다고 하는 틈을 타 폭탄주를 시원하게 비워 냈다. 첫 잔은 싱그러웠지만, 두 번째 잔은 빈속이라 그런지 싸하다. 고기로 위장을 달래 주자.
“건너 건너 지검장한테 연락이 갔다고 하더라고. 역시나 성호 그놈이 아주 난리를 쳤나 봐.”
“김성호 본부장이 배후인 것이 확실하군요.”
의혹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와 이춘배 부사장을 엮을 것이 고작 SPRD 비싸게 구매했다는 고발뿐이라는 것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을 꼽으라면 나와 이춘배, 둘일 것이다. 법 없으면 못 살 사람이야 아주 많지. 이 새끼들아, 기다려라. 구덩이 다 파 놨으니까 묻힐 준비나 해!
“들어 보니까 성호 때문에 수사는 하는데, 그냥 시늉만 하고 마무리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자네가 봐도 너무 급이 떨어지지 않나? 하하.”
자기 일도 아닌데, 안도해하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은 강 사장 목소리가 참 고맙게 들린다.
친밀하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경쟁자일 뿐인데도, 진심으로 걱정해 준다. 역시 나의 따거다. 부싱체결기 얼른 만들어서 납품해 줘야지.
강 사장이 잔을 시원하게 비우고 말을 이어 갔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다. 난 평온히 폭탄 제조나 하자고.
“대한전력도 지금 난리인 모양인가 봐. 춘배랑 성호랑 완전 갈라져 버렸잖아.”
“대한전력 사장은 그냥 조용히 있는 건가요?”
“낙하산이 뭘 하겠나? 보니까 정권도 바뀔 텐데, 연임은 물 건너갔고. 조용히 앉아서 월급이나 받아 가는 거지 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람은 조용히 있고, 그 회사에서 한평생을 몸담은 이들의 치열한 자리다툼. 그 여파가 우리 회사 같은 중소기업에까지 미치는 현실이 씁쓸하다.
“성호가 겁도 없이 싸움을 걸긴 했어도 결국은 춘배가 이기는 싸움이야. 성호도 칼을 뽑았으니 죽자 살자 덤빌 거긴 하지만, 이미 결론이 난 거나 마찬가지야.”
“승진이 그 정도로 중요한가 봅니다. 저도 그렇지만, 거기 몸담았던 저희 최 상무님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그 사람이 독특한 거지. 암튼, 이 일 마무리되면 춘배도 가만 안 있는다고 하더군. 어떻게 나올지 빤하지 않나? 우리야 괜히 유탄 맞을 일 없이 준비만 잘하면 되네.”
예상대로 이 부사장도 행동에 나설 모양이다. 나야 땡큐인 상황이다.
“뭔가 한다고 하셨다면, 혹시 실사를 말하시는 겁니까?”
“실사뿐인가? 직접생산도 있고, 대한전력이 트집 잡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게 수만 가지지. 안 그래도 고발되자마자 기술혁신본부장이 이번 일에 관련된 업체와 해당 조합에 대한 중간실사 강화하겠다는 보고를 했다는 거야.”
“기술혁신본부장이면 김성호 본부장이 있었던 곳 아닙니까?”
“맞아. 성호가 해외사업본부장으로 가고 그 자리에 디지털변환처장이 승진해서 올라갔는데, 그놈이 성호 골수 라인이야. 그러니 꼭 집어서 그렇게 하자고 했겠지.”
그림이 쫘악 펼쳐졌다. 이놈들도 나름 머리를 썼다. 그러니까 고발로 이 부사장 발을 묶어 놓고, 중간실사 하겠다는 구실로 나나 우리 조합 회원사들을 밟아 버리겠다는 전략이었던 말이지?
이를 어쩌나? 그깟 고발로 발 묶일 사람도 없고, 그깟 실사 따위에 무서워할 사람도 없으니.
“그러면 기술혁신본부장이 실사 강화하겠다는 걸 이 부사장님이 변압기업체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하신 겁니까?”
“그렇지, 그렇지. 배전기기를 시작으로 전 납품업체로 확대하겠다고 한 거지. 춘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이날 평생을 FM대로만 산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실사 제대로 하자고 힘을 실어 버렸으니 어찌 되겠나? 더 재미있는 게 뭔지 아나?”
“또 뭐 있습니까?”
“실사를 어디서 맡나?”
“실사면 기술혁신본부 아닙니까? 부처로는 기술품질처죠.”
“그래! 기술품질처야. 거기 처장이 누구 편인 것 같나?”
“하하하.”
굳이 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한전력이 입찰 유자격자 실사를 FM대로 하면 살아남을 회사 몇 안 될 것이다. 화장실 더럽다고 청결 점수를 영 점 처리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야 서로 피곤하니 그 정도로 안 했을 뿐.
“중전기조합 쪽은 곡소리 좀 나겠습니다. 우리 조합 회원사한테도 미리 얘기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안 그래도 조합 이 상무가 전화 돌리겠다고 하더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준비 소홀로 걸려서 입찰자격 박탈당하면 뭐 지들 책임이지. 뭐가 됐건 이참에 이 바닥에 피바람 좀 불 테니까 긴장하고 있으라고.”
이거 설 명절 선물을 두둑하게 받은 기분이다. 그렇게 한 방 먹이고, 나대로 준비한 한 방을 또 먹이고. 중전기조합 놈들 배부를 테니 떡국 많이 먹지 말길 바랄 뿐이다.
“사장님, 저도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왕성한 식욕으로 고기 두 점씩 집어먹던 강 사장이 육즙이라도 만난 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을 기대했으리라.
“우리 지 사장이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지. 하하. 그래서 뭘 하려고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강 사장에게 이미 실행에 들어가고 있는 계획을 설명했다.
근로기준법 위반만으로도 수두룩하게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벌금형 같은 준엄한 법 집행 따위가 아니라 무상 급식 같은 국가의 따뜻한 아량이다.
“나쁘진 않네. 뭐 관행이라고 해도 불법은 불법이니까.”
강 사장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솔직히 안성파워도 헤집기 시작하면 몇 가지는 나올 것이다. 한다면 하는 내 성격을 아는 강 사장이니 혹시라도 여파가 미칠지 걱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게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무채라도 시원하게 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합 회원사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나도 조심해야겠는걸? 하하. 내 차가 말이야, 법인차란 말이지. 엄밀히 따지면 내 차인 양 타고 다니면 안 되는 거라고. 이제 법인차 놔두고 자전거라도 타고 다녀야겠어. 하하하.”
내 예상이 맞았군. 걱정 마시라. 내가 원하는 건 탈세로 추징금 조금 내는 그 수준이 아니니까.
“제가 굳이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 조합 회원사들도 보고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허허. 무슨 말인지 알겠네. 준희도 그렇지만, 역시 젊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달라. 나같이 나이 먹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나. 내 잘못도 있지.”
“아이고, 사장님처럼 사업하는 분이 몇이나 됩니까? 저는요, 솔직히 우리나라 회사들 다 그렇게 돈 빼돌려 가면서 사장 배만 불리는 줄 알았습니다. 사장님은 진짜 존경 받아 마땅합니다.”
물이 너무 맑아도 좋은 것은 아니다. 그걸 감안하면 강 사장도 기업가 정신으로 정도경영 하는 사람이다.
지킬 것 지키면서 사업해도 회사를 키울 수 있다는 믿음. 강 사장과 준희 누나를 알지 못했다면 흔들렸을 것이다.
“하하. 뭐 고기 좀 사 준다고 그리 아부를 하나. 나도 따지고 들어가면 떳떳할 것 없지. 아무래도 오늘 계산은 법인카드로 하면 안 되겠구만. 하하.”
고기 사 준다는데 아부한 김에 좀 더 해 주자.
“안성파워는 유령직원도 없지 않습니까? 자재업체들한테 백마진 안 받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존경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휴, 이거 뭐. 왜, 고기가 부족해? 하하. 내가 딴 건 몰라도 가족, 친척들 직원으로 올리는 짓은 안 하지. 월급도 많이 받는데 돈 필요하면 내 돈 쓰면 되는 것 아니야?”
“그런 당연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개인 사업자와 법인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순간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태양전기 최가네가 툭하면 ‘내 회사야!’라고 소리 질렀던 것 말이다. 태양전기 트라우마는 침 뱉고 나온 지 3년이 다 되어 가도 여전하네.
강 사장이 배가 불렀는지 고기 한 점만 입에 넣고는 내 복수로 주제를 돌렸다.
“그래.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있나? 자네가 벼르고 있는 그 업체들 뭐라도 캐내 주면 되나?”
“저야 그래 주시면 아주 고맙죠. 이거 제가 계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이, 이 사람아! 자네 요즘 툭하면 밥 사겠다고 그러네? 내가 자네보다 돈은 덜 벌어도 이깟 고기야 얼마든지 사 줄 수 있네! 하하.”
밥 잘 사 주는 우리 따거. 늘 고마운 존재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잘해 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더 고맙다. 이것도 내 인복이라고 생각하자고.
“그나저나 제가 원하는 증거들이 내밀한 것들인데 캐내는 것이 가능하시겠습니까?”
“고심을 해 봐야지. 내가 이 바닥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달란다고 줄 사람들도 아니지 않나? 나름 인맥 총동원해 볼 테니 기다려 보자고.”
“감사합니다. 제 일인데도 매번 본인 일처럼 생각해 주시니, 제가 은혜를 어찌 갚아야겠습니까?”
“하하. 그게 왜 자네 일인가! 우리 지 사장 뜻대로 돼서 업체들 문 닫으면 나도 좋은 일이지. 이참에 이 바닥 청소도 하고 말이야.”
이 바닥 청소. 좋은 말이다. 업체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구질구질한 회사가 많다는 것이 더 문제다.
대한전력이라는 든든한 쌀통에서 쌀 빼다 먹으면서 사장 일가만 배부른 더러운 짓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오죽했으면 내가 더러워서 회사를 차렸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