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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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287화>287 상견례
어른들과 식사를 할 때는 ‘잘 먹어서 좋네’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
그런 점에서 준희 누나 부모님과 식사 장소를 한정식집으로 잡지 않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 멀리 있는 잡채라도 먹겠다고 손을 뻗는 순간 잡채 접시가 내 앞으로 순간이동한다. 손대는 음식마다 내 앞으로 오는 기현상. 상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역시 중화요리집만 한 곳이 없다. 앉아 있으면 종업원이 앞접시에 배분해서 나눠 주니 아주 좋다. 주는 만큼만 먹으면 그만이다.
폭식의 공포에서 벗어났으니 부모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집중하자고. 한마디도 놓쳐서는 안 된다.
“얘가 나이만 먹고 결혼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어. 일만 하는 줄 알았더니, 할 건 다 했네? 호호.”
대화는 누나 어머니가 포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됐다.
외동딸에 대한 걱정과 조바심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자식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 친구들이 손주 사진 보여 줄 때마다 다급해진다더니, 여지없네.
“우리 엄마가 하루가 멀다고 들들 볶았어. 전화만 하면 잠이 안 온다고 그러고.”
“어휴. 너 나이가 몇이냐. 남들은 애들 학교 보낼 나이야.”
누나가 나를 보며 얘기했지만, 말을 이어받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모녀의 티격태격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겠다. 그래도 누나가 궁지에 몰리고 있으니 가서 구해 줘야지.
“어머니, 요새는 결혼 늦게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하하.”
“정도껏 늦어야지. 쟤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근데 자네는 우리 준희랑 결혼 생각이 있나 봐? 그래, 얘가 요리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내가 엄마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참 착해.”
인사하겠다고 모신 자리를 능숙하게 상견례 자리로 바꿔 버리는 저분, 고수가 확실하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한테도 합격점을 받은 것인가?
“정수 씨 불편하게 왜 그래.”
“서로 좋으면 바로 결혼하는 거지 뭐. 나는 니 아빠랑 선보고 한 달 만에 결혼했어야.”
“뭐 입만 열면 아빠 만나서 고생했다고 하면서, 아주 첫눈에 반하셨나 봐? 하하.”
예식장 예약하러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묵묵히 음식을 들던 아버지가 참전했다.
“니 엄마가 바…… 지 끄댕이 잡…… 고 어찌나 매…… 달렸는지. 허허.”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아휴, 니 아빠는 꼭 저런다니까.”
모녀간 티격태격이 부부의 진실공방으로 번져 갔다.
보기 좋다. 화목한 가족의 모습 말이다.
내게 없었던 것이라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사람 좋아 보이는 아버지, 유쾌한 어머니, 장점만 잘 물려받은 것 같은 누나. 나도 저 가족의 일원이 된다면 화목한 기운을 나눠 받을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대화는 미래지향적인 주제로 이뤄졌다. 누나가 미리 언질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성장 과정이나 가정환경에 대한 얘기는 일절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길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다지 부끄럽지 않지만,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좋은 자리에서는 좋은 얘기만 하고 싶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 따뜻하니 좋다.
“그래, 지 사장은 우리 준희가 어디가 그리 맘에 들었어?”
어정쩡한 호칭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자네에서 지 사장으로까지 왔다. 머지않아 지 서방으로 바뀌는 건가 싶네.
“하하. 뭐, 그냥 다 좋았습니다. 현명하고, 배려심 깊고, 열정적이기도 하고, 사장으로서 능력도 뛰어나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갖다 붙일 수 있는 좋은 말은 다 꺼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누나의 팔짱이 임팩트가 컸다는 말만 꺼내지 않았다. 우리 공장 준공식 때 찾아와서 선사했던 그 팔짱.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말만 꺼낸 효과가 확실히 좋군.
“호호. 아주 맘에 들었나 봐? 준희보다 연하랬지?”
“네, 고작 3살 차이밖에 안 납니다.”
“고작이래. 호호. 준희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괜찮을 거야. 요즘은 연상연하가 유행이라잖아.”
“네, 맞습니다. 평균수명이 여자가 더 높아서 연상연하가 딱입니다. 하하.”
이거 뭐 상견례 확정이네. 나도 모르게 노후에 한날한시 임종하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원.
마지막으로 나온 코코아 디저트를 말끔히 비우는 것으로 첫 인사에 상견례가 돼 버린 식사가 끝났다. 긴장감은 애저녁에 사라졌고, 양껏 먹으며 맘 편히 대화했다.
직원 가족들 초대해 밥 먹을 때 느꼈던 편안함과 궤를 달리하는 편안함이었다. 아무도 없는 나에게 가족이 생긴 기분이랄까? 또 하나의 가족이 이런 것을 말하는가 싶다.
내가 부양하는 수많은 가족, 오늘 만난 또 다른 가족. 나주 내려와서 가족 참 많이 생겼다.
“어머니, 아버지. 잘 먹었습니다. 멀리서 오셨으니까 제가 대접했어야 하는데…….”
“아니야. 든든한 아들 하나 생겼는데, 밥 한 끼 못 사 줄까 봐. 호호. 다음에 준희랑 같이 인천으로 와. 집밥 제대로 차려 줄게.”
“네. 꼭 가겠습니다.”
상견례인 줄 알았는데 이산가족상봉이었나?
며느리를 딸처럼, 사위를 아들처럼 여긴다는 말. 듣기 좋은 말이면서도, 좀 거시기하다. 결혼한 직원들이 가족끼리 그러는 것 아니라고 되뇌는 것이 이 때문인가?
아버지도 악수를 청하며 오랜 침묵을 깼다.
“내가 마…… 말하는 것이 불…… 편해서 얘기를 많이 모…… 못 나눈 것이 아쉽네. 점점 좋…… 아지고 있느니, 다…… 음엔 얘기 많이 하…… 자고.”
“네, 알겠습니다. 오늘 저희 회사 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금성전기 성장을 위해서 열심히 돕겠습니다.”
누나가 장내를 정리하며 헤어짐을 알렸다.
“정수 씨, 오늘 고생 많았어. 그리고 고마워.”
“고마울 게 뭐 있나.”
“그냥 고마워.”
왜 고맙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하니 나도 고맙다. 오랜 썸 끝에 시작된 연애, 오늘을 기점으로 단계가 확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다.
“하하. 싱겁기는. 어머니, 아버지는 언제 올라가셔?”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실 거야. 알아서 올라가실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괜히 아침부터 긴장해 있지 말고.”
“그래. 오늘 총평은 다음에 하자고. 차에서 뭐 하나 가져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바쁜 와중에도 고심 끝에 준비한 선물들. 먹을 것이 좋다는 조언에 따라 지리산 특산물과 한과 세트로 묵직하게 마련했다. 나주 하면 배지만, 그건 추석에 보내는 걸로.
누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니코틴 부족 경고가 울렸다. 후하, 오늘도 참 길었던 하루다.
담배 생각과 함께 회사 일도 떠올랐다. 박정호 사장의 자문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함이 폭발했다.
드라이브도 할 겸 혹시 모르니까 회사 한번 가 볼까나.
9시가 다 돼 도착한 회사는 예상대로였다. 사무실 3층 창문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 퇴근도 잊고 설계에 빠져 있는 엔지니어들의 충혈된 눈들이 아른거렸다.
“아이고, 고생들 많으십니다. 제발 퇴근 시간 지나면 퇴근들 하세요!”
김진욱 이사와 현성중공업 설계 3인방이 치킨을 야무지게 뜯다가, 호통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집안 난장 피우다가 집사에게 걸린 고양이들 보는 것 같다.
“회장님,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이거 엄청 빡세게 일하다 잠시 쉬는 중이었습니다. 하하. 치킨 한 조각하시죠.”
“두 마리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갈 텐데, 제가 뺏어 먹으면 되겠습니까? 하하. 저녁 든든하게 먹고 왔으니 괜찮습니다. 뭐 오늘부터 당장 설계 수정 들어가는 겁니까?”
놀란 고양이 눈을 하던 이욱현 부장이 본인 말할 타이밍임을 알고 입을 열었다.
“박 사장님께서 기가 막힌 조언을 해 주셨는데, 바로 진행해야죠. 이게 설계 새로 해서 다시 제작하는 게 제일 편한데, 비용 문제도 있으니까 만들어 놓은 시제품을 수정하는 쪽으로 손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골치가 아프긴 하네요.”
“새로 제작하는 걸로 하세요. 어차피 중신만 교체하면 되니까 2억 정도야 학습 비용으로 치죠. 기존 것도 나눴다가 나중에 팔면 되니까 손해 보는 것도 아닙니다.”
이 부장이 화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반겼다.
말이 좋아 설계 수정이지,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 뜯어고친다고 하면 현장에서 난리난다. 변압기 해체해 기름 흠뻑 먹은 덩어리를 만지다 보면, 설계자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쌍소리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아휴, 회장님께서 그렇게 결정해 주시면 저희야 편하죠. 그럼 바로 수정 설계 뽑아서 시제품 제작 들어가겠습니다. 내일이면 나옵니다. 이번엔 진짜 확실합니다. 믿어 주십시오.”
“저는 이 부장은 태어났을 때부터 믿었습니다. 이미 나온 시제품으로도 충분한데, 아쉬움이 아주 살짝 남아서 그런 겁니다. 너무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하하. 그 말씀 자체가 엄청난 부담인데요?”
“그렇습니까? 그럼 부담 안 드리게, 이왕 하는 거 지멘스급으로 뽑아 주시죠.”
이 부장과 함께 따라온 현성 출신 설계자 2명이 조용히 듣다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 한번 한 거 가지고 과하게 반응하기는.
“저번엔 ABB라고 하시더니, 이번엔 지멘스입니까? 까짓것 해 보죠. 인생 뭐 있습니까?”
허세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만만한 외침이 맘에 들었다. 월급쟁이는 자신감이지!
기술력으로 보자면, 지멘스, 알스톰, ABB가 삼대장이다. 점유율은 ABB가 더 높지만, 기술력은 지멘스를 더 쳐준다.
그 뒤로 중국과 우리나라 업체들이 명함을 내밀고 있지만, 삼대장 벽이 워낙 높아 근접을 못하고 있다. 기술력보다는 가성비로 승부하는 실정이다.
난 기술력과 가격 다 잡을 테다. 이 설계자들에게 치킨 매일같이 먹여야겠군.
“근데, 회장님. 아까 최 상무님이 오셔서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시던데, 들으셨습니까?”
치킨으로 야근의 고단함을 달래야 할 운명인 김 이사가 새로운 주제로 운을 띄웠다.
재미있는 얘기? 최 상무야 온갖 보고서 읽어 가며 이 바닥 흐름을 꿰차고 있는 사람이니, 뭐라도 나온 모양이네.
“요새 입찰이다 뭐다 정신없어서 상무님이랑 얘기할 시간이 없었네요. 무슨 얘기를 하시던가요?”
“아, 네. 우리나라야 변압기 사용연한이 20년 정도 아닙니까? 근데 대부분 나라는 40년 정도로 잡는데, 이삼 년 뒤부터 교체시점이 찾아온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빨리 자리만 잡으면 수출로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얼마 전에 관련 보고서 읽긴 했습니다. 그래서 현성중공업이 이참에 글로벌 3위로 올라서겠다고 이 갈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도 못해도 내후년엔 전력용 변압기 수출 들어가야 합니다.”
최 상무는 역시 이상동몽이다. 전력용 변압기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배전용 변압기 수출을 확대하려는 것이 왜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알아서 부서 돌아다니며 채찍질하고 있었군.
“캄보디아 수출도 그래서 시작하신 거군요?”
“캄보디아뿐입니까? 동남아 일대 다 돌리고,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싹 가야죠. 그러니 치킨 많이 드시면서 설계 시원하게 뽑아 주세요.”
“낮엔 살 빼라고 하고, 밤엔 치킨 먹으라고 하고. 위장이 놀라겠습니다. 하하. 저는 우리 부서 직원들 굴려서 부지런히 설계할 테니까, 회장님은…… 아시죠?”
치킨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모르겠지만, 김 이사가 야시시한 눈빛으로 모호한 소리를 했다.
“뭘 말입니까?”
“이 시간에 회사 오시지 마시고, 데이트 좀 하시란 말입니다. 하하.”
“하하. 그거 좋죠.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전 그럼 치킨 값 부지런히 대 드릴 테니까, 이사님은…… 아시죠?”
“그럼요. 냉장고에 맥주도 좀 채워 넣겠습니다.”
우리 회사 온 뒤로 유독 밝아진 김 이사.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대단한 사람이다. 몸무게가 크게 성장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게 든든한 이들과 작별하고는 진짜 퇴근을 했다. 치킨 먹고 든든한 그들은 약속대로 다음 날 새로운 설계를 런칭했다.
새 설계에 맞춰 코아와 권선 제작이 새로 들어갔다. 이번에야말로 내외신이 주목하는 작품이 나올 것이다.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