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4)
004 험난한 퇴사
3개월? 예상한 바이지만, 진짜 저년은 사람이 아니다. 인두겁을 쓴 짐승이다.
있지도 않은 할머니가 아파서 병간호해야 한다는데 뭐? 최소한 석 달? 저게 진짜 사람인가. 이렇게 나올 줄 뻔히 알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이 광경을 보니까 구역질이 난다.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제가 회사 관두고 싶어서 사표 내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인데 제 사정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 것 아닙니까?”
“뭐요? 너무하다고? 야!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그동안 온화한 척, 착한 척 다 하던 사장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내가 이걸 보고 싶었다고! 그 감춰진 본모습을 말이야!
그동안 저러고 싶어서 어찌 참았나 싶다. 남들은 낙하산으로 들어온 딸내미 사장이 성질 더럽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본인만 아닌 척했다. 이제야 인두겁을 벗어 던졌구만. 이것도 은근 재미있네.
나도 참을 수 없지. 있지도 않은 할머니가 아프신데 말이야!
“새끼요? 지금 새끼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이 새끼야. 능력도 없는 새끼 뽑아서 돈 줘 가면서 키워 줬더니 뭐? 너무해? 너 뭐 하는 새끼야!”
“지금 폭언하신 겁니다. 직원에게 폭언해도 됩니까? 녹음하겠습니다.”
“뭐? 그래 고소해! 고소하라고! 내가 어! 너 얼마나 챙겨 줬는데! 매일같이 죽는소리도 다 들어 주고! 뭐? 너무해? 나가!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어!”
손으로 공들여 쓴 사직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무슨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어찌 된 것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않냐?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가련다.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야! 지 과장! 무슨 일이야?”
“사직 의사를 밝혔습니다.”
“뭐? 사직 의사? 이게 사직서야? 이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누가 이딴 식으로 하래! 회사가 장난이야? 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회사가 놀이터야!”
“사장님.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화내실 필요 없고,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사장을 잠재우고자 남편인 부사장이 나섰다.
부사장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저렇게 성질 더러운 여자랑 결혼해 살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다들 돈 때문에 결혼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 여자와 같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지 과장, 내 방으로 들어와.”
부사장 면담은 계획에 없던 일인데. 뭐 걱정할 것 없지.
“지 과장, 내가 사정은 잘 알겠어. 그런데 지 과장이 회사 생각도 해 줘야지. 당장 지 과장 없어 봐.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겠어? 이럴 때일수록 서로 타협점을 찾아보려고 해야지.”
“부모님도 안 계시고, 할머니 혼자 계시는데 입원하셔서 당장 간호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우리도 최대한 후임자 뽑아서 인수인계하게 할 테니까 며칠이라도 간병인 구하는 것은 어때? 뭐 어려운 것 아니잖아? 절충점을 찾아보자고 우리.”
부창부수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너도 똑같은 놈이야.
간병인? 누가 공짜로 와서 간병해 주나? 간병인 비용을 일부라도 보조해 주겠다면 모를까, 아무 조건도 없다. 회사가 손해 볼 수 없으니 네가 손해를 감수하라는 뜻이다.
문이 벌컥 열린다.
“너! 인수인계 최소한 한 달 이상 해야 하는 것 알아 몰라! 원한다면 법적으로 가 보자고! 대체 회사를 어떻게 생각했길래 그딴 소리가 나와! 뭐? 너무해? 고소해! 고소하라고!”
사장의 뒤끝이 재차 작렬한다. 분명 분이 안 풀려서 그럴 것이다. 저렇게 성질 더러운 사람은 본인 분이 풀릴 때까지 분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싱크로율 95퍼센트 정도인 여자랑 반년 정도 사귀어 봐서 잘 안다. 파훼법은? 딱히 없다. 분 풀릴 때까지 그냥 멍 때리고 있으면 된다.
“사장님, 이따 일정 있으시잖아요. 준비하셔야죠. 제가 잘 얘기해 놓겠습니다.”
“아휴 진짜 짜증 나. 아빠가 이 회사를 어떻게 끌고 왔는데! 저딴 놈이 감히 이 난리를 쳐!”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지요. 제가 잘 얘기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꽝!
문 부서지겠네. 꼴에 효녀였다. 이래서 가족 회사는 들어가는 것이 아니랬다.
육법전서에 있는 절대 진리가 있다. 가지 말아야 할 회사는 첫째, 중소기업, 둘째, 중소 제조업, 셋째, 가족 회사라는 말이다. 난 중소 제조업인 가족 회사에 다니고 있다.
“후우, 그래. 어떻게, 생각을 해 보겠어?”
난 부사장이 더 무섭다. 사장이 저 난리를 치고 가는데도 미동조차 없다. 내성이 생긴 것일까? 부사장의 멘탈이 무서울 지경이다. 칼로 찌르면 피는 나올까?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면서 먹어 온 십수 년의 짬밥은 역시 무시할 것이 아니다.
“간병인이 됐건, 좀 시간을 벌어 달라는 것 말이야. 솔직히 바로 퇴사는 말이 안 되잖아? 내가 사장이었다면, 사장님보다 더 화가 났을 것 같은데. 어때?”
이 사람 이거 아무렇지 않게 협박을 하네. 화가 날 수 있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들으라는 거야?
“회사에서 간병인 비용 보조해 준다면 모르겠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큽니다. 민법에도 퇴사 통보는 한 달까지 유효하다고 해서, 많이 양보해서 한 달은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원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저렇게 폭언하는 것을 보니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나를 협박한다고 내가 무서워서 꼬리라도 내릴 줄 알았냐? 이런 놈들하고 대화하면서 내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그릴 필요는 없지.
“당장 이번 주 내로 후임자 뽑을 테니까 인수인계 한 달만 하자. 어때? 그 정도는 해 줘야지. 회사도 지 과장 편의 많이 봐 줬잖아. 제대로 인수인계 안 되면 퇴직금 정산이니 손해 배상이니 골치 아픈 일이 많아. 그것까지는 내가 막아 볼 테니까 그렇게 하자. 오케이?”
이제는 대놓고 협박을 하네? 나도 한 달간 인수인계하면서 느긋하게 창업 준비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이것들은 좋게 대해 줄 필요가 없는 놈들이네.
그런데 말이야. 편의? 무슨 편의를 봐줬다고 저딴 개소리를 하냐?
“그럼 이번 달까지 2주 남았는데요, 이번 달까지만 일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부사장 방을 나서는데, 사장이 도끼눈을 하며 야린다. 레이저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눈빛이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렸으니 한바탕 더 해야 하는데 남편 눈치 보느라 야리고만 있으니, 얼마나 속이 터질꼬?
내가 알 바 없지.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미소를 띠며 유유히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 창업 준비해야지. 현장 사무실에 가자마자 영업을 책임지는 김희철 상무를 찾았다.
“상무님, 오늘 바쁘십니까?”
“나? 아니. 오늘은 나갈 데도 없어. 왜? 술 한잔 하게?”
영업맨이라 그런지 눈치가 예술이다.
“어찌 아셨을까? 오늘 일찍 끝나고 저녁이나 한 끄니 하시죠?”
“웬일이냐? 술이라면 질색하는 놈이.”
“저 오늘 사표 냈습니다.”
“뭐? 왜? 너 미쳤구나?”
“구구절절한 얘기는 이따 꼴깍하면서 하시죠. 흐흐.”
“이놈 이거 제정신이 아니네. 왜 멀쩡히 잘 다니는 직장을 때려치워?”
김 상무가 말은 저렇게 해도,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멀쩡히 잘 다니는 직장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가장 심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 *
시작은 2년 전 사장 딸의 등장부터다.
마찌꼬바였던 회사를 일으켜 세우며 연매출 150억짜리로 키운 것은 김 상무와 박호연 공장장이었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년 넘게 오로지 회사만을 생각하며 일해 왔다. 사장 차가 소나타에서 벤츠로 바뀐 것은 전적으로 두 사람 덕분이었다.
사장이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고 2년만 더 있다가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딱 내가 입사한 지 1년차가 됐던 그때였다. 공장장과 김 상무는 내심 기대를 했다고 한다. 순진한 사람들 같으니.
당연히 사장은 외동딸을 데려왔다. 의심 많아서 여동생을 재무부장에 앉힌 사람이 회사를 남의 손에 맡길 리 만무했다. 외동딸은 직장 생활이라곤 해 본 적 없는 한량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성질 더럽고 의심이 많은 데다, 손에 기름 한 번 묻힌 적 없는 사람이었다.
사장은 그런 딸을 바로 사장 자리에 앉히며 후계자 수업에 들어갔다. 은퇴? 개뿔. 사장은 고문 자리 하나 만들어서 꿰찼다. 월급을 포기하기는 너무 아까웠겠지.
점심쯤 와서 점심 때우고 현장에서 잔소리 좀 하다가 자기 방에서 퍼팅 연습으로 시간 때우고는 퇴근했다. 골프채는 간혹 무기로 돌변하기도 했다. 현장 바닥에 50원도 안 하는 너트 하나 떨어져 있으면, 이러다 회사 망한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신임 사장 취임 후 2년간 살얼음판 걷는 긴장이 이어졌다.
공장장과 상무는 아니꼽긴 해도 사장 딸이니 받아들였다. 사장이 된 딸은 아는 것이 없으니 둘에게 생산과 영업을 맡겼지만, 공격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의심이 많아서 두 사람이 뒤로 돈을 빼돌리는 것이 아닌지 불안했겠지.
사장은 무능력 그 자체였다. 1년차는 경영 수업의 일환이라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경영 전면에 나선 2년차부터 무능력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매출이 1년 만에 120억대로 떨어지고, 직원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며 불만을 쌓았다.
온갖 선진 경업 기법이랍시고 다른 회사들이 하는 못된 짓만 족집게로 골라 와 적용했다. 복지 제도를 현행법에 맞춰 개선하겠다는 핑계로 하나씩 없애기 시작했다.
공휴일은 연차로 대체됐고, 직원들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연차촉진제도라는 미명으로 연차보상금도 없앴다. 직원들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올라갔다.
사장은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라 무시당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확실하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사무실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으니 말이다.
결국 구원 투수로 남편을 데려와 부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게 두 달 전의 일이다.
월급쟁이 짬밥이 있는 부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젊고 활기찬 회사’를 외쳤다. 말 안 듣는 노인네들 다 내칠 테니 알아서 짜지라는 뜻인지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부사장은 자기 심복들을 하나둘 데려와 요직에 심었다. 젊고 활기찬 회사가 되려면 젊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 봐야 40대였지만, 평균 연령 60대가 넘어가는 회사에서는 아주 ‘영’한 젊은이들이었다.
심복들이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노인네 퇴출 작전에 나섰다. 마찌꼬바에서 탈피해야 한다면서 대기업에 준하는 행정을 요구했다.
사장은 이제야 회사가 회사다워진다고 흡족해했다. 회사면 회의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결재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 아닌가 싶었다. 1명이 0.5명분 급여로 2~3명 몫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 실정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공장장과 상무는 생전 해 본 적 없는 각종 보고서와 일지 작성, 회의 자료 준비 등을 요구받았다. 정작 할 일은 제쳐 놓고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 두들기기에 바빴다. 부사장은 밤낮 없이 깨톡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는 대답이 없으면 불러서 호되게 야단을 쳤다. 회사 중역 두 사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 * *
난 중역 두 사람이 필요했다. 생산과 영업만 확실하다면 망할 수가 없는 시장이니, 두 베테랑이 있어야 했다. 운 좋게도 두 사람 모두 나이답지 않게 꼰대 냄새가 심하지도 않다.
“상무님, 한잔하시죠.”
“야, 궁금하다. 얼렁 얘기해 봐. 왜 사표 냈어?”
“할머니가 아프셔서 병간호해야 하거든요.”
“그래? 어디 많이 편찮으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이것이 정답이다.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알겠냐, 최 사장아?
“상무님. 이건 절대 비밀입니다. 아시겠죠?”
“얜,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할머니 병간호해야 한다는 건 최 사장 성질 돋우려고 그냥 해 본 얘기예요. 그 성질 더러운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 바른 척, 착한 척하잖아요? 본색 좀 드러내라고 도발 좀 해 봤죠. 하하.”
“아휴, 현아 걔 성질머리 아는 사람은 다 알지. 그래서 가면 벗어던지든? 아니지, 아니지. 그러니까 사표를 왜 냈냐고?”
이제 본격적인 김 상무 영입전이다. 이 사람 잡아야 한다. 이 사람은 확실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