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5)
005 인재 영입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팔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김희철 상무가 꼭 필요하다.
하꼬방 수준이었던 태양전기를 이렇게 키운 것은 5할이 김 상무의 영업 능력 덕분이다. 나머지 5할은 공장장.
“실은 회사 하나 차릴 생각입니다.”
“뭐? 너 진짜 미쳤구나? 무슨 돈으로 회사를 차려 인마.”
“배운 게 도둑질인데 도둑질해야지 않겠습니까?”
“변압기 회사 차리겠다고? 뭐 거저먹는 거니까 괜찮긴 한데,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래?”
“자, 자. 고기 익었습니다. 좀 드시죠.”
“아나, 이 자식 뜸들이네.”
뜸이 들었으니까 냄비 뚜껑 열고 고슬고슬 잘 익은 밥을 밥그릇에 담아야 할 때이다.
“상무님, 솔직히 회사 짜증 나죠?”
“나뿐이냐. 그 부사장 따까리들 빼고 짜증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아. 그 새끼들 쥐뿔도 모르면서 부장이랍시고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시키는데, 아오 씨댕 새끼들.”
“정수야. 내가 이 회사 올해로 딱 20년째거든? 연봉 얼마나 될 것 같냐?”
“저야 모르죠. 사장이 도끼눈을 뜨고 비밀 유지 어쩌니 하면서 급여 조건 얘기하면 짤린다고 지랄하고 다니잖아요.”
“걔는 대체 왜 그런다냐? 암튼, 내가 20년찬데 이제 막 3,500이 넘었어.”
“우와! 저보다 훨씬 많은데요? 전 겨우 2천 넘는데…….”
등기 이사는 아니지만, 제아무리 중소기업이라도 상무인데 연봉 3,500? 미쳤다 미쳤어. 이 바닥이 아무리 짜다고 해도 20년 가까이 회사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에게 개사료 값만 줬다니.
“3,500. 그래 이 업계가 그렇다고 하면 인정해. 근데 존나 열 받는 게 뭔지 아냐? 그 부사장 따까리들은 4천을 받는다는 거야. 하아 씨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와, 너무했네. 아니 조강지처는 내팽개치면 안 되죠. 회사가 누구 덕에 컸는데.”
“공장장도 지금 부글부글이야. 나도 그렇고 공장장도 그 고생 했는데, 이딴 식으로 대우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적당히 맞장구쳐 줬더니 상무가 알아서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제 근로계약서 도장 찍을 일만 남은 것 같다.
“잘됐네요. 제가 상무님 영입하겠습니다. 원하는 조건 말씀해 보세요.”
“뭐? 이자식이.”
“진짜예요. 저 회사 차릴 거라니까요. 상무님하고 공장장님은 꼭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야? 진짜로 회사 차릴 거야?”
“아나, 진짜 인간 지정수를 뭘로 보고 그러십니까! 돈은 어찌어찌 구해서 차릴 테니까, 상무님이 안 망하게 영업 좀 맡아 주세요.”
“야, 일단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자.”
옳거니! 다 넘어왔다. 이 타이밍에 담배 피우자는 것은 생각을 가다듬겠다는 뜻이다. 지금 회사 나가고 싶은데, 그 대안이 내가 될지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다. 충분한 대안이 됩니다!
“정수야. 내가 인생 선배로서 얘기하면, 사업 우습게 볼 것 아니다. 나라고 왜 사업 생각 안 해 봤겠냐?”
“상무님, 저 확고합니다. 물려받은 돈도 좀 있어요. 돈 걱정은 마시고, 상무님이 안 망하게 도와주시라니깐요.”
“이놈이 난데없이 사표 냈다고 하질 않나, 사업한다고 하질 않나.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게 인생 아닙니까? 하하하. 그래서 도와줄 거예요, 말 거예요!”
“솔직히 너 일하는 것 보면 믿음이 안 가는 것은 아닌데…….”
“그럼 합류하시는 겁니다? 자, 자, 얼렁 고기 드시러 가시죠. 제가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쏘겠습니다.”
“하아, 이놈이 로또라도 맞았나?”
뜨끔했다. 영업맨의 감이란 이리 무섭다.
* * *
영업은 해결했으니, 이젠 생산을 해결할 차례다.
영업이 아무리 많이 수주해 와도 생산이 소화를 못하면 말짱 꽝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좁은 업계에서는 공장장이 더욱 중요하다. 십장 혹은 마름 같은 역할이라고 하면 될까?
업계 내에서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는 것이 일상사라, 넉넉한 경력을 가진 자는 드림팀을 꾸릴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호연 공장장은 한곳에만 머물렀지만, 이 바닥 24년차로 쓴맛 매운맛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인지라 한 번 입 열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 구구절절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는 옛날 이야기’가 해 질 녘까지 이어지는 단점이 있긴 하다. 아주 큰 단점이다.
그러나 노련함, 인맥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가치가 높다.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재이다. 다른 노인네와 달리 꼰대력도 덜하다. 그저 좋은 사람이다. 마냥 좋은 사람이라 회사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정도이다.
이 회사가 꼰대 냄새 진동한 곳으로 바뀐 것은 무조건 사장 때문이다.
사장은 공장장 파워를 줄이기 위해 현장 관리 업무를 줄이고 설계 업무로 내몰았다. 현장은 공정별로 부장 하나씩 임명해 관리하게 했는데, 선무당이 완장질 하는 꼴이었다. 기본적으로 탑재한 꼰대력에 완장질이 더해지니, 이를 두고 금상첨화라고 하는가.
현장 사무실 책상에 앉아 부지런히 계산기 두들기는 공장장에게 다가갔다.
캐드를 할 줄 몰라 오로지 손으로 설계를 그려 내는 공장장은 내가 다가오자 주둥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입을 풀었으니 말이 쏟아질 것이다. 얘기 잘못 이끌었다가는 꼼짝 없이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가 엄습했다.
“공장장님.”
“어, 지 과장. 그래그래.”
대화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화두만 던져 달라는 갈망의 눈빛이다.
“상무님께서 저한테 저녁이나 같이하자고 그러셨거든요.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오늘 저녁이라. 어디 보자.”
안경을 살짝 올리고는 눈을 찌푸리며 탁상 달력을 쳐다본다. 딱 봐도 아무것도 안 쓰여 있는 빈칸인데도 뭔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부분 남자가 그렇지만, 환갑이 넘으면 더욱 그렇다. 가오가 생명이다.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으면 깽 값이 무서워서 서로 ‘이크 에크’만 하며 누군가 말려 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누가 말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한 주먹감도 안 되느니, 내가 봐준다느니, 온갖 허세가 작렬한다. 가오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한 절박감이다. 그만큼 가오는 중요하다.
“오늘은 시간 괜찮네. 오늘 간만에 술자리 없어서 마누라한테 점수 좀 따나 했더니만. 허허.”
이상하네? 와이프 없이 혼자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이따 퇴근하고 같이 가시죠.”
“어, 그래그래. 이거 빨리 해야 하니까 이따 얘기하자고.”
천만다행이다. 귀에 딱지가 나앉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쁘시단다.
한숨 돌리고 현장으로 가려는데, 아니다 다를까 핸드폰에서 리히터 규모 5.0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여보세요.”
“지 과장 어디 있어! 빨리 와 빨리!”
“무슨 일인데요?”
“빨리 오라고!”
현장 아우성이 또 시작됐다. 보나 마나 뻔하지만, 알고도 속아 주는 것이 이 바닥 생리 아닌가. 아휴 저 꼰대들. 진짜 저승사자는 뭐 하나 몰라.
꼰대 아우성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사장이다. 분명 그 성질머리에 가만있지는 않을 것인데, 아직까지 잠잠하다.
뭐든 해 봐. 겁날 것 하나도 없으니까. 네가 주는 월급 받아먹으면서 난 창업 준비할 거다.
여차하면 퇴직금이니 뭐니 다 포기해도 그만이다. 로또 맞았는데 그깟 푼돈 뭐 아쉽겠나. 그것보다 내 돈 한 푼이라도 저들에게 안겨 주고 싶지 않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금이라도 받아야 할 판에 내가 미쳤다고 내 돈을 주겠나?
2주 동안 빡세게 창업 준비하자. 걸쭉한 가래침 한 번 뱉어 주고 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보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 생계를 책임져 주는 큰 가장이 되는 것이야! 돈 욕심 부리지 않고 버는 만큼 베풀 줄 아는 선한 사장이 돼 보자. 잘되겠지? 잘될 것이야!
그러고 보니 낯선 사람 한둘이 회사를 찾아왔다. 여유 있는 듯한 표정이지만, 긴장했음이 드러나는 표정. 딱 봐도 면접 보러 온 사람이다. 사무 용품 하나 사 달라고 해도 뭉그적거리던 양반들이 이리 잽싸다니. 보나 마나 경력 같은 신입을 뽑을 것이다. 수습 기간은 최소 3개월을 둘 것이다.
내가 그랬다. 경력 없다고 수습을 6개월이나 해야 했다. 연봉 2천도 어처구니없지만, 상여금 200퍼센트 빼면 한 달에 받는 실수령액은 130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수습 기간엔 70퍼센트밖에 못 받았다.
오기가 생기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도망가는 것이 맞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길어야 일주일 일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내뺀다. 나도 그랬어야 했다.
근로계약서에 사인한 첫 직장인데, 나약한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노예 체험으로 보내고 말았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좋게 생각하자. 여기서 버텼으니 변압기 회사 차려 보겠다고 이러고 있지 않겠는가.
* * *
지글지글. 골골골골.
“지 과장, 내가 미안하다. 직원들 자주 회식도 시켜 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저 회식 별로 안 좋아하는 것 아시잖아요.”
공장장과 상무를 고깃집으로 초대했다. 상무 영입에 성공한 영입의 명소.
“공장장님, 지 과장 요새 이상하지 않아? 좀 미친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지 과장 사표 냈대.”
소주가 가득 담긴 잔을 원샷하겠다는 각오로 들던 공장장이 잔을 내려놨다. 술 좋아하는 양반이 술잔을 내려놓을 정도라니.
“아니, 멀쩡히 잘 다니는 회사를 왜 그만둬?”
“멀쩡히 잘 다니지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저 진짜 미친 듯이 일만 했잖습니까.”
“잘 알지. 일 열심히 한 거. 다들 지 과장처럼만 일해 주면 걱정할 것이 없지. 그래서 왜 사표를 냈어? 너 그만두면 회사는 어떡하라고?”
어제처럼 비밀 서약이 오가고 나서, 창업의 뜻을 전했다.
“이놈 진짠가 봐, 공장장님. 나랑 공장장님 없으면 안 된다고 어제 4절 5절까지 노래 부르더라니까.”
“공장장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섭섭한 마음 들지 않게 확실하게 대우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창업이냐?”
“지 과장 로또라도 됐나 봐. 돈 걱정은 말라대?”
이미 가상의 근로계약서 사인까지 마친 상무가 알아서 공장장 영입에 뛰어든다. 나는 뭐 고기 값이나 내면 되겠네.
“네 맞습니다. 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제가 걱정하면 되니까 부지런히 변압기만 만들어 주세요.”
공장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성공이다. 이제 예의상 나오는 거절을 두어 번 방어만 하면 된다.
“난 안 돼. 사장님을 어찌 저버리겠냐. 일자무식인 나를 데려와서 모든 것을 다 알려 줬는데 말이야.”
공장장한테는 창업주가 여전히 사장이었다. 딸이 물려받았지만 인정할 수 없다는 고집이었다.
“공장장님. 회사 돌아가는 꼬라지 잘 아시잖아요? 아주 눈에 불을 켜고 공장장님 내쫓으려고 안간힘 쓰는 것 뻔히 알면서 그러십니까.”
“여기 그만두면 은퇴하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 다른 데 가면 그건 배신이지.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냐.”
이미 내 편이 된 상무가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툭 까놓고 사장이나 딸이나 우리 제대로 대우해 줬어? 최가네 식구들이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이 얼만지 알아? 4천이 넘어 4천이. 나나 공장장님 일 년 죽어라 일해서 받는 돈을 저것들은 한 달이면 챙겨 간다고.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김 상무, 그러는 것 아니야. 그래도 삼시세끼 챙겨 먹으면서 자식들 키울 수 있는 것이 누구 덕분인데 그래.”
“아이고 공장장님요. 회사는 나나 공장장님이 다 키웠어. 부사장 따까리들이 우리보다 월급이 더 많다니까. 막말로 우리가 돈 벌자고 일하는 거지, 최가네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거야? 부사장 따까리들 온 것은 우리보고 나가란 소리야.”
부사장 따까리들 월급이 자신보다 더 많다는 소리에 공장장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가 저 위치였다면 자존심이 미친 듯이 상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고기만 굽고 있으면 됐다. 상무의 맹공으로 공장장은 이미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지 과장아. 그래, 니 말대로 니가 회사를 차렸다고 치자. 최현아랑 그 남편이 가만둘 것 같냐? 아무리 개차반이래도 이 업계 20년이면 업력 무시 못한다.”
“그 정도 어려움도 이겨 낼 자신 없이 선뜻 사업하겠다고 하겠습니까? 부딪혀야죠. 어차피 경쟁 상대인데 경쟁에서 이겨야죠.”
“조합이고 자재 업체고 들들 볶을 텐데, 쉽지 않을 것이야.”
이래서 내가 공장장을 반드시 영입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상무가 먹거리 잘 물어 오고,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인 공장장이 잘 매조지고. 그림이 너무 좋다.
“아이 진짜 공장장님. 왜 시작도 안 한 애 붙잡고 겁부터 주고 있어? 공장장님이 부지런히 만들고 내가 부지런히 팔고, 지 과장이 월급 넉넉히 주면 되는 거잖아. 내가 거래처 다 가져올 테니까 걱정 마셔.”
“그래요, 공장장님. 새로운 마음으로 해 보자고요. 전 진짜 우리 회사처럼 사람 중요한지 모르는 그런 짓은 안 해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장난치고 그딴 짓은 진짜 진절머리 납니다.”
“지 과장, 나 술잔 비었다.”
공장장도 넘어왔다. 그날 고깃집에서는 도원결의 의식이 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