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33
최상희 감독이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더니, 검은 뿔테안경을 추켜세우며 되물었다.
“ 해외에도 걸릴만한 퀄이라니요? 지금 이 애니메이션을 해외에도 돌리겠다는 말씀입니까? ”
어쩌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능력 있는 최상희 감독이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현실을.
다만, 앞에 앉은 사람은 강주혁이었다.
이제 막 주혁을 만난 최상희 감독이 알 리가 없었다. 강주혁에게는 척박한 현실 따위 의미가 없다는 것을.
“ 네. 맞습니다. ”
이어 답한 강주혁이 이미 한번 놀란 최상희 감독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 저도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을 잘 압니다. 안 팔리죠.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가 애니메이션 기술이 부족해서 안 팔리는 겁니까? ”
“ ······아닙니다. ”
“ 그 방면에서 선수시니까, 저보다야 훨씬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참 대단하죠.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어느 분야든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최고가 나온단 말이죠. 당장 제 앞에 앉아계신 최상희 감독님만 봐도 그렇죠. ”
주혁이 비행기를 태우자, 최상희 감독이 헛기침을 뱉었고, 주혁이 미소지었다.
“ 그렇다면 어째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이렇게 됐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감독님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해요. ”
“ 자금. ”
“ 맞습니다. 시장에 돈이 안 돌아요. 돈이 안도니까, 인재들이 국내를 떠나 해외로 나가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취급이 그저 그러니까. ”
-다락.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는지 어쨌는지, 최상희 감독이 의자를 당겨 앉았고, 얼굴이 짐짓 진지하게 변화했다.
“ 계속 부탁드립니다. ”
“ 그렇다고 제가 무슨 그 영역에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죠. ”
“ 그···회사가 작다고 하면 진짜 스타트업 회사는 울겠군요. ”
“ 제가 말한 건 규모를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회사가 다루는 영역을 말씀드리는 거죠. 제겐 원대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 만난 게 애니메이션이고, 전 아깝습니다. 그 수많은 인재들이 국내를 떠나, 해외로 나가는 것이. 죄다 뺏기는 꼴이니까. ”
“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은. ”
말을 정리하려던 최상희 감독보다 주혁의 말이 빨랐다.
“ 개척자가 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
개척자.
순간, 최상희 감독은 어째선지 가슴이 뛰었다. 개척자라는 짧은 단어 덕분이었다. 더불어 그 단어를 뱉은 인물이 최근 국내 엔터계를 휘어잡고 있는 강주혁.
절대 말을 허투루 뱉을 리가 없었다.
“ ······ ”
강주혁의 말을 끝으로 룸에 정적이 흘렀다. 최상희 감독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앞에 놓인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공상에 빠졌다.
‘ 누구나 계획은 그럴 듯하게 던질 순 있어. 문제는 현실을 간단하게 뒤집을 순 없다는 거야. ’
최상희 감독은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애니메이션 바닥을 잘 알고 있고, 지금 강주혁이 뱉은 개척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긍정보단 부정이 뒤따랐다.
그 부정이 방금 흘러내린 뿔테안경을 추겨올 린 최상희 감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사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드릴 도움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제 인생이 포함된 어떤 모험에 가깝군요. 결정이 쉽진 않습니다. ”
“ 이해합니다. ”
“ 어떠한 시장의 개척자가 되는 건 돈만 바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잘 아시죠? 여러 가지가 따라야 하죠. 작품, 운, 니즈, 유행, 등등. ”
“ 그렇죠. 그건 어느 시장이나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요. 감독님. 생각해보세요. ”
-스윽.
잠시 말을 멈춘 주혁이 몸을 최상희 감독 쪽으로 당겼다.
“ 현재 애니메이션 바닥은 황폐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누구도 그 땅에 발을 들이지 않죠. ”
“ 그래서요? ”
“ 개척자가 되기엔 딱 좋은 환경 아닙니까? 발상의 전환. 즉, 황폐한 땅을 얼마든지 기회의 땅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그 스타트를 감독님이 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작품으로. ”
주혁이 탁자에 놓인 ‘폭풍전야’ 시나리오를 더욱 최상희 감독 앞으로 밀었다.
“ 물론, 전 이 작품에도 자신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만 걸어도 충분히 가능성이 차고 넘치는 작품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지원은 제가 책임집니다. 해외서 작업하는 모양새 그대로 할 수 있다고 장담하죠. ”
“ ······ ”
“ 625 전쟁. 우리의 아픈 역사를 해외에 제대로 알려줄 기회이기도 할 겁니다. ”
어째서 이리도 자신감이 어마어마한 것일까? 최상희 감독은 의문이 들었다. 이건 자신감을 넘어, 자만에 가까울 정도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미래를 아는. 오직 강주혁이기에 가능한 형태.
-스윽.
그런 강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시나리오 읽어보세요. 이미 콘티 작업까진 마쳤습니다. 보시고, 판단하세요. 이 작품이 해외서 팔릴지 말지. 전 디즈니처럼 애니메이션 개봉 후, 영화로 실사화하는 것을 생각 중입니다. ”
“ 허- ”
“ 결정되면 연락해주세요. ”
-스윽.
말을 마친 주혁이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이어 잠시 몸을 돌려 잊었던 한 가지를 덧붙였고.
“ 참. 애니를 영화로 실사화할 영화감독님은 김삼봉 감독님입니다. 잘 아시죠? ”
대뜸 던져진,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참여한 거장의 이름에 최상희 감독의 눈이 커졌다.
“ 기, 김삼봉 감독님이요?! ”
다음 날, 6월 23일 화요일 아침.
정혜인의 한눈에 봐도 넓고, 럭셔리한 집 안. 그녀의 집은 온통 흰색 범벅이었다. 벽지부터 바닥에 깔린 러그, 가구 등등. 모든 것이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
그녀의 취향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집.
-타닥, 타다닥, 타닥.
그런 화이트가 범벅된 집 안, 정혜인이 연신 키보드를 치고 있다. 시트콤만이 아닌, 막장 아침드라마까지. 투자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어제 MBS 이동남 국장에게 들었기 때문.
덕분에 그녀는 불타올랐다.
정신없이 타자를 치는 정혜인은 언뜻 봐선 미친 여자 같았다.
“ 글이 나온다! 계속 나와! ”
화장기는 없지만 새햐얀 피부에 긴 생머리를 돌돌 말아 올려 머리 밴드로 고정시켰고, 립밤을 바른 탓인지 입술이 새빨갛다.
거기다 눈 밑에 찍힌 눈물점까지.
메이크업 없이도 색기가 도는 모습인 정혜인은 어째선지 전체 몸매가 부각되는 요가복을 입고 있었다.
바로 그때.
-띵동!!
난데없이 누군가 정혜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 이 씨! ”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정혜인은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마자, 치던 타자를 멈추고 재빨리 노트북을 덮었다.
-팍!
이어 옆에 준비해 둔 요가 메트를 집어 재빨리 거실에 펼쳤다.
그리곤 인터폰을 눌렀다.
“ 어- 오빠? 뭔데! 아침부터! ”
“ 임마! 아침부터 내 얼굴 보기 싫으면 전화를 받던가! 문이나 열어!! ”
아침부터 정혜인의 초인종을 누른 인물은 그녀의 전담 매니저 겸 소속사 매니지 팀장을 맡고 있는 서수필 팀장이었고.
-스윽.
상대를 확인한 정혜인이 짧게 혀를 차며 문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재빨리 펼쳐둔 요가 매트에 몸을 던져 요가 자세를 취했다.
때마침 서수필 팀장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 어후- 아침부터 요가 질이냐? 그래도 전화는 좀 받자. ”
“ 내가 요가 할 때마다 오빠가 전화하는 거거든? 뭔데? 아침부터. ”
“ 요가 할 때 아니어도 잘 받지도 않으면서. 하여간에. ”
-달캉!
서수필 팀장은 구시렁거리며 냉장고를 열어 물통을 꺼냈고, 허리를 쭉 펴곤 천장을 바라보는 요가 자세를 취하던 정혜인 앞에 대본 하나를 툭 던졌다.
“ 이거 혹시 아는 거냐? ”
“ 어? 대뜸 뭔 소린데. 말을 똑바로 해. 뭔데 이게? ”
“ 뭐긴 뭐야. 대본이지. ”
-스윽.
대답을 들은 정혜인이 취하던 요가 자세를 풀곤 대본을 집었다.
-‘없어졌던 남자’ 1부.
-제작사: 보이스프로덕션.
“ 보이스프로덕션? ”
“ 그래 임마. 너 강주혁이랑 아는 사이잖아? 어제 대뜸 회사에 대본을 보내서, 너랑 얘기된 거 있는지 묻는 거잖아 지금. ”
“ 내가 오빠 거르고 바로 작품 고르는 거 봤어? ”
“ 그렇지? 하-나. 이 새끼들이 누굴 호구로 보나. 주연 던져줘도 먹을랑말랑 하는 판에 조연롤? ”
“ 조연? 지금 나한테 조연으로 제안을 했다고? ”
“ 그렇더라. 내가 시놉이나 대본 좀 읽어봤는데, 대놓고 조연은 아니고, 러브라인도 좀 있는 주연 같은 조연롤이긴 해. 류담희 역. ”
-팔락, 팔락.
어느새 양반다리를 한 정혜인이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서수필 팀장이 혀를 찼다.
“ 쯧! 요즘 나간다~나간다~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감히 누구한테 조연을 들이밀어? ”
“ ······어제 보냈다고? 대뜸? ”
“ 그래. 임마. 퀵으로. ”
대답을 들은 정혜인이 보던 대본을 덮으며 다시 표지에 박힌 제목을 봤다.
‘ ‘없어졌던 남자’······ ’
강주혁에게서 어제 도착한 난데없는 대본. 거기다 조연. 평소 같으면 목에 핏줄을 세우고, 토하듯 욕을 퍼부으며 까낼 작품.
‘ 하! 이 인간. ’
하지만 정혜인에게 지금 이 대본 표지에 박힌 제목 ‘없어졌던 남자’는 마치, 강주혁의 메시지처럼 보였다.
‘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하렴. ’
-스윽.
여기서 정혜인이 말없이 일어나 거실 선반에 올려진 림밥을 집어, 입술에 발랐다. 덕분에 그녀의 입술이 더욱 붉어졌고, 한층 더 색기가 넘쳤다.
그 순간에도 서수필 팀장은 욕을 뱉고 있었다.
“ 아니, 배우를 20년 가까이 한 놈이 말이야. 상도덕이 없어. 상도덕이. 잘 아는 놈이 그러니까, 더 짜증. ”
“ 한다 그래. ”
“ 그래! 그러자! 내 이놈을 당장 잡······어? 야. 혜인아 뭐라고? ”
-사락.
팀장의 되물음에 정혜인이 담담히 머리밴드를 풀며 생머리를 쓸어넘겼고.
“ 한다 그러라고. ”
서수필 팀장이 발광했다.
“ 미친!! 야! 정혜인! 지금 뭐라는 거야!! ”
같은 날 이른 오후.
내내 베일에 싸였던 홍혜숙 작가, 정작가의 시즌제 드라마 ‘없어졌던 남자’의 첫 보도자료가 돌았다.
『 정진훈, 보이스프로덕션 제작 ‘없어졌던 남자’ 출연 확정! (공식) 』
물론, 보이스프로덕션 홍보팀에서 돌린 보도자료는 확정된 것과 숨길 것은 숨기고, 기대감만을 심어주기 위한 초기 기사였다.
『[핫이슈] 스타작가 홍혜숙과 ‘28주, 궁궐’ 집필한 정소연 작가 콜라보?』
『보이스프로덕션 측 “드라마는 사전제작, 방영은 KBC에서”』
『첫 소식 전한 ‘보이스프로덕션’ 차기작 드라마, 스토리는 함구···궁금증 폭발!』
덕분인지, 기사를 접한 대중들은 해소보다는 궁금증이 더욱 증폭됐다.
『[단독] KBC에서 방영예정이라는 ‘보이스프로덕션’의 차기작 드라마, 제목은 ‘없어졌던 남자’』-디쓰패치.
[······‘보이스프로덕션’ 측에선 아직 드라마 스토리는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거론된 배우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론된 배우들이 무척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라인업이다. 일단, 남주로 ‘정진훈’은 확정. 거기에 S급 탑배우 ‘김건욱’, ‘정혜인’, ‘최류’. 다음으로 최근 몸값이 끝모르고 치솟는 ‘강하진’, ‘김재욱’······등이다. 거기다 까메오 출연으로 ‘하정훈’까지 거론 중······]-이 미친 라인업 뭐죠? 진짜 미쳤다!
-와ㄷㄷㄷㄷㄷㄷ이 드라마는 절.대.봐.야.해.
-아니, 미친ㅋㅋㅋㅋㅋ야 저 배우들이 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가능하냐?
-난독이냐? 아직 거론 중이라잖아~ 등신들아.
-정진훈은 확정이라는데, 정진훈만으로 볼 이유 충분!
-ㄴㄴ정진훈도 요즘 좀 하락세임.
-니 얼굴이 하락세임.
-뭐, 아이돌 없는 것만으로 난 만족.
-강주혁 실패 기원 1일 차.
-무슨 내용일까….ㅈㄴ궁금하네.
-의외로 이런 허울만 좋은 드라마에 알맹이는 좆만하지.
딱 하루였지만, ‘없어졌던 남자’의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
같은 시각, 화보촬영장.
촬영이 한창인 현장. 최근 안숙희 작가의 차기작에 여주로 낙점된 이민정이 의자에 앉자, 휴식 중이었다.
“ 짜증나······ 우린 언제 보도자료 돌리냐고. ”
그녀는 핸드폰으로 ‘없어졌던 남자’의 기사를 보며 구시렁거렸다. 그러다 기사 중 한 대목이 그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오~ 최류. 이 멍청한 인간이 거론 중이라고? 스읍- 전화나 한 번 해볼까? ”
한편, 티유컴퍼니.
드라마 ‘없어졌던 남자’의 악역 박대수 역할에 거의 낙점된, 30대 여성들의 남친 상으로 유명한 탑배우 최류.
그는 소속사 휴게실에서 매니저인 황수형 실장에게 투덜거리는 중이었다.
“ 아니! 확정이면 확정이지! 무슨 대본리딩 전에 리허설 리딩 보고 사인한다는 게 말이냐고! 이게 오디션이랑 다를 게 뭔데!! ”
최류가 단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언성을 높이자, 황수형 실장이 진정시켰다.
“ 자자. 진정하자. 형식상이겠지. 너만 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 배역 다 본다는 데. 그리고 뭐, 네 입으로 그랬잖아. 강주혁 존나 괴짜라고. 그 양반 회사에서 추진하는 드라만데, 평범한 게 있겠냐. ”
“ 아후! 썅. 하여간 강주혁. ”
“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남주 정진훈한테 주고, 드라마 아예 까일 뻔한 거, 악역이라도 받았잖아. 거기다 보이스프로덕션 차기작 드라만데- 어차피 너도 이미지 쇄신하고 싶다며? 들어보니까, 비중은 정진훈이랑 맞먹더라. ”
“ 그렇긴 해. ”
얼추 진정했는지, 최류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낼 때였다.
-우우우우웅, 우우웅.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미친년 이민정.
표시된 발신자를 보며 최류가 고개를 갸웃했다.
“ 이 미친년이 웬일이지? ”
이어 그가 전화를 받았다.
“ 뭐냐? 웬일이냐 네가? ”
“ 오빠~ 기사 봤어. 올- 주혁 오빠네 드라마 들어간다며? ”
이민정의 부추김에 최류의 어깨가 높아졌다.
“ 임마. 오빠야. 오빠. 나 최류야. ”
그의 어깨가 한없이 높아졌을 무렵. 이민정이 키득거리며 본론을 던졌다.
“ 그래그래. 오빤 최류지. 그래서 말인데. 오빠한테 재밌는 일을 제안하고 싶은데?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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