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50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주혁이 박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빠르게 끊겼다.
“ 살아있네? ”
전화를 받은 박기자의 첫마디는 매우 심플했다. 뭐, 강주혁과 박기자의 사이는 딱 이 정도였다. 서로 필요한 경우에만 만나는 사이.
“ 죽었으면 니가 가장 먼저 나타났겠지. 내 시체에다 마이크 들이대면서. ”
“ 크크크. 고대로네. 고대로야. ”
“ 뭐. 작업 중인가? ”
“ 대충. 방금 끝났지. 그래서 무슨 떡밥을 뿌리려고 문자까지 보냈어. ”
박기자는 강주혁의 과거를 대충 알고 있는 인물이었고, 더불어 은둔했던 주혁의 삶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기자들이야 강주혁이 다시 나타났다면 기사를 줄줄줄 써재끼겠지만, 박기자는 가벼운 가십거리 따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내였다.
주혁은 사무실의 경비를 작동시키면서 대답을 던졌다.
“ 전화로 하긴 뭐하고. 얼굴 좀 봅시다. ”
“ 에헤이~ 괜히 긴장되네. 니가 얼굴보자그럼 떨려. 나 기대해도 되나? ”
“ 기대 이상일 거야. ”
“ 당장 만나시죠. 제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
-띠딕
박기자가 돌연 태도를 달리하며 군침을 흘릴 때, 주혁은 차에다 대고 스마트키를 눌렀다.
“ 아니.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안 되고, 내일 점심 어때? ”
“ 내일 점심. 오케이. 입력 완료. 시간, 장소는? ”
“ 정해서 문자로 보내줄게. 내일 봅시다. ”
“ 내일 뵙겠습니다. ”
-뚝!
“ 하여간에 이 인간. ”
속으로 박기자 이 인간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차 문을 여는 강주혁이었다.
다음 날 아침과 점심 사이, 경북 상주 주변.
다큐 독립영화 내 어머니 박점례팀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팀이라고 하기에는 진행 인원이 류성원, 최철수 감독이 전부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촬영 시간표를 짜두고 움직였다.
그들이 묵고 있는 숙소는 할머니 집과 가까운 모텔.
강주혁이 주변 괜찮은 펜션으로 잡으라 했지만, 최철수가 간편한 모텔로 잡겠다는 의견을 내어 결정된 숙소였다.
최철수가 준비를 마치고 모텔 로비로 발길을 돌렸다. 로비에는 류성원 감독이 이미 나와 있었다.
“ 철수야. 늦었다. 빨리 가자. ”
“ 어어. 아 맞아. 형 하영씨 다음 촬영이 언제지? ”
“ 다음 주 정도 될걸? 왜? ”
“ 아니. 할머님이 자꾸 물어보셔서. 그새 정이 들었는지, 자꾸 찾으시네. ”
고개를 끄덕이는 류성원 감독이 모텔 주차장에 서 있는 차에 올라타며 말을 이었다.
“ 그 하영씨는 우리가 부른다고 이제 막 못 와. 강주혁 사장님이 밀고 있는 거 같더라. 그 누구지? 저번에는 매니저랑 같이 왔잖아. ”
“ 홍혜수 팀장님. 매니저도 하긴 하는데, 팀장이라고 했어. 하영씨가 말해주더라. 형. 팀장님 앞에서 매니저라고 말하지 마. 큰일 난다 진짜. ”
“ 아, 진짜? 후- 안되지. ”
-부웅
대충 촬영 계획표를 보던 류성원 감독이 이내 운전을 시작했고, 최철수 감독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오늘 일정을 확인한다.
그때 운전하던 류성원 감독이 말을 이었다.
“ 오늘 할머니 뭐하시는 날이야? ”
“ 시장 갔다가 노인정 가셔서 좀 치는 날이야. ”
“ 화투? ”
“ 어어. 그보다 강주혁 사장님 연락 없어? ”
“ 없어. 왜? ”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으며 스읍 입맛을 다시던 최철수 감독이 팔짱을 끼면서 답했다.
“ 아니, 물론 처음에 전부 맡긴다고 하긴 하셨는데, 너무 연락이 없으니까 오히려 불안해서. 원래 투자자들 돈 보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와서 상황 파악하잖아? ”
“ 맞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전화 주신 것도 우리 배급사 구해주신 게 다야. 무려 VIP픽쳐스를 구해주고선 감감무소식이네. 니 말 들으니까 나도 불안하네. ”
“ 하영씨가 가끔 하는 말 들어보면 엄청 바쁘시다고 그러던데, 먼저 전화하기도 뭐하고. 내 생전 투자자가 전화 안 와서, 먼저 해봐야 하나 고민하는 건 또 처음이네. ”
“ 크크크.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한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
-끼익
때마침 신호에 걸려 류성원이 운전하던 차가 멈춰섰고, 이어서 최철수가 입을 다시 열었다.
“ 뭐, 일단 닥치고 찍자. ”
“ 그래야지. 아 맞아. 야 스케쥴표 좀 봐라. 할머니 시외 외출하는 날이 언제지? 협조받을 곳 있으면 먼저 받아놔야 하는데. ”
“ 잠깐만. ”
허리를 쭉 펴며 뒤쪽에 던져둔 스케쥴표를 집어 드는 최철수 감독.
-팔락
종이를 넘기며 내용을 확인하더니 이내 답한다.
“ 다음 주. ”
“ 아 다음 주야? 오늘 할머니랑 얘기해서 장소 정해야겠네. ”
“ ······ ”
그때 느닷없이 최철수 감독이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변한다. 그 모습이 의아했는지, 류성원 감독이 최철수 감독에게 물었다.
“ 왜? 무슨 문제 있냐? ”
“ 아니. 흠······. 형. 할머니 시외외출하는 스케쥴 있잖아. ”
“ 어어. 그거 왜? ”
“ 할머니가 하영씨 너무 보고 싶어라 하거든. ”
“ 그래서? ”
손에 들고 있던 스케쥴표를 다시 뒷좌석으로 던지며 말을 이어가는 최철수 감독.
“ 우리 할머니 모시고, 서울 한번 갈까? ”
“ 서울? ”
“ 응. 어차피 할머니 나들이 나가는 거 담는 건데, 하영씨가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그런 거 담으면 좋지 않나? 할머님 아직 쌩쌩하시니까, 무리만 안 하면 괜찮지 싶은데. 겸사겸사 허락받는 김에 강주혁 사장님한테 전화하는 구실도 생기고. ”
운전에 열중하던 류성원 감독이 뜬금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철수를 쳐다본다.
“ 너······ ”
“ 왜? 안 되려나? ”
“ 천잰데? 그래. 그거 좋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할머니한테 여쭤보고 결정하자. ”
감탄했는지, 류성원 감독이 한 손으론 운전대를, 한 손으로 최철수의 어깨를 탁탁 친다. 기세를 몰아 그들이 타고 있는 차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각, 영화 척살의 세트촬영장.
척살 시나리오상 ‘회사’라는 집단의 사무실을 세트로 만들어놓은 곳이다. 언뜻 보면 일반 회사 사무실과 다른 바 없는 모습.
“ 컷! 오케이. ”
“ 오케입니다! ”
최명훈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끝나자, 쥐죽은 듯이 멈춰있던 스텝들이 다시금 바쁘게 움직인다.
그만큼 영화 척살의 촬영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애초 경험이 부족한 무명감독인 최명훈은 주변의 걱정과는 다르게 촬영장 총 통솔자로서 부족함 없는 능력을 보여, 촬영 스케쥴을 쳐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 어, 10분만 쉬었다 가자. ”
“ 옙! 자, 10분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장비 점검들 하시고, 준비할 것들 체크해주세요! ”
최명훈 감독을 포함해, 주요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힌 그림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조감독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쉬는 시간임을 크게 알렸다.
조감독이 쉬는 시간임을 알리자, 강하진이 무엇을 찾는 듯, 의자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추민재 팀장이 강하진에게 대본을 건네준다.
“ 대본 찾는 거지? ”
“ 네. 감사합니다. 아, 팀장님 실장님은요? ”
“ 황실장님? 크크. 아까 주변이 안전한지 확인한다고 나갔는데. 그 양반도 특이해. 우리 사장님이 스카웃 한 사람이라 그런가? 하여튼 우리 회사에는 왜 정상적인 사람이 없냐? ”
“ ······저는. ”
“ 너 지금 설마 너가 정상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
정곡을 찔렸는지 어쨌는지, 강하진이 입술을 살짝 내밀면서 대본으로 시선을 박았다. 그러자 추민재 팀장이 슬쩍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 연기 해본 적도 없는 애가 캐스팅돼서 지금 하정훈이랑 영화 찍고 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 하정훈이 우리 사장님 옆에서나 깨갱대지 영화판에서 보면 대단한 배우라고.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추민재 팀장이 황실장을 찾는다며 자리를 떴고, 잠시 후.
“ 어허험! ”
조용히 대본연습에 열중이던 강하진 옆으로 남자 한 명이 다가와서 헛기침을 했다.
그 바람에 강하진이 깜짝 놀라 고개를 올렸다.
“ 아, 선배님. ”
“ 어. 어떻게 할만하냐? ”
하정훈이 곁눈질로 강하진이 들고 있는 대본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
“ 아니. 그냥 전부다. 너 이거 첫 작이라매. ”
“ 네. 전부 괜찮아요. ”
더 길게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지, 하정훈이 잠시간 말없이 그녀를 쳐다본다. 하지만 더이상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온 침묵.
강하진은 그저 무표정으로 하정훈을 쳐다봤고, 하정훈은 황당함에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다 참다못한 하정훈이 침묵을 깼다.
“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뭐냐. 거. 음. ”
쉽사리 말 꺼내기가 어려운지, 머리를 벅벅 긁던 하정훈이 이내 결심한 듯 말을 뱉었다.
“ 가, 강주혁이 요즘 뭐하냐? ”
“ 사장님이요? 아, 그냥 바쁘게 지내시는데. 연락해보시면······ 두 분 친하시다고 들었어요. ”
“ 어? 아, 뭐 그런데 피차 바쁘니까. 그냥. 어. 그런 거지. 뭐 딴말은 없고? 예를 들어 요즘 기자를 만난다던가. 아니면 뭐 어디 인터뷰를 나간다던가. ”
“ 저는 잘 모르겠어요. ”
“ 아, 그러냐? ”
“ 네. ”
역시나 강하진의 대답은 짧았다. 덕분에 하정훈은 괜한 헛기침을 또 한 번 뱉으며 열심히 해라. 정도의 인사를 끝으로 몸을 돌렸고. 그 뒷모습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강하진은 다시금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때.
“ 자, 슛 들어갑니다! ”
척살의 촬영이 재개됐다.
느지막한 점심, 주혁의 사무실(보이스 프로덕션)
노트북으로 연신 무언가를 찾던 주혁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미친 박기자와 만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스윽
의자에 걸쳐놓은 정장 재킷을 한 손에 걸치고, 노트북을 덮으며 걸음을 옮기던 그때.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재킷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벨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 왔나? ”
혹시나 했다. 요즘 보이스피싱이 좀 뜸하긴 했으니까. 어떨 때는 하루걸러 걸려올 정도로 자주 오는데, 또 어떤 때는 이렇게 뜸할 때도 있다.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다.
기대감을 가지고 재킷에서 핸드폰을 꺼낸 주혁은 이내 발신자를 확인하곤 살짝 아쉬움을 터트렸다.
-다큐 최철수 감독.
내 어머니 박점례 팀의 최철수 감독이었다. 주혁은 사무실의 문을 닫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 네. 감독님. ”
“ 아!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
“ 하하. 그런가요. 무슨 일입니까? ”
“ 그······ 곧 할머님을 모시고, 시외 나들이 촬영을 하는데요. ”
“ 아- 그거요? 기획서에서도 본 거 같습니다. ”
-띵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올라타면서 주혁이 말을 이었다.
“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 아니요.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만, 저- 혹시 하영씨가 하루 정도 할머님 서울 구경을 시켜주는 컨셉은 어떨까 합니다. ”
“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 ”
“ 네. 어차피 있던 일정이었는데, 할머님이 하영씨한테 정이 많이 들었는지 자주 찾으셔서요. 아, 하영씨가 바쁘면 당연히 힘들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
-띵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 그러니까 하영씨가 있는 서울을 할머님이 구경하는 것을 담겠다? ”
“ 네. ”
“ 꽤 이동시간이 걸릴 텐데, 할머님은 괜찮은 겁니까? ”
“ 아,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역정 내시더라고요. 하하. 자기 무시하냐면서. 얼른 추진하라고 하셔서. ”
“ 하하하. 기획 자체는 좋네요. 알겠습니다. 일정 바로잡죠. 일단 하영씨랑 얘기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그리고 촬영 진행은 전혀 문제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
최철수 감독의 진행보고가 좀 뜬금없긴 했지만, 주혁은 대수롭지 않게 알겠습니다. 정도의 대답으로 전화를 마무리하며 차에 올랐다.
한 시간 뒤, 고급 한식집.
강주혁이 잡은 장소는 이젠 단골로 생각해도 될 만큼 자주 왔었던 고급 한식집이었다. 자주 오다 보니 적응이 됐는지, 주혁은 약속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다.
-드륵
직원에 안내에 받아 주혁이 방문을 열자, 안에는 이미 식사를 하는 꾀죄죄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잔뜩 자란 까끌까끌한 수염, 턱 보기에도 활동하기 편한 옷. 미친 박기자였다.
박기자가 주혁을 보자마자 씨익 웃는다.
“ 하도 배고파서, 먼저 먹고 있었다. ”
그 웃음을 받아, 주혁은 정장 재킷을 대충 옆에 툭 하고 던지고는 자리에 앉았다.
“ 여전하네. 회사에서 식대 안 줘? 넌 볼 때마다 먹고 있는 것 같다? ”
그러거나 말거나, 박기자는 접시에 담긴 네모난 깍두기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 답했다.
“ 일단 먹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
둘은 5년 만에 재회임에도 별수롭지 않게 식사를 시작했다. 거추장스러운 안부 인사 따윈 없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몇십 분.
“ 꺼윽. 배 터지것네. ”
어느새 식사를 해치운 박기자가 배를 문지르며 널브러졌고, 식탁에는 간단한 허브차가 놓여있었다.
-후릅.
뜨끈한 허브차를 무심하게 한 모금 마시는 주혁을 보며 박기자가 자세를 바로잡는다.
“ 그래서 뭐야? 악취 나는 어마어마한 특종이. ”
바로 본론. 시시콜콜한 근황 따위는 묻지 않는, 정확하게 실리만을 위해 맺어진 관계. 이 둘의 정도는 딱 그 정도였고, 과거에도 그랬다.
주고받는 것이 확실한, 현실적인 인연.
-후릅
담담하게 허브차를 추가로 한 모금 더한 주혁이 입을 열었다.
“ 그냥은 못 주지. 먼저 말해봐. 요즘 계획하고 있는 건수가 뭔지. ”
“ 에이. 우리가 뭐, 한두 번 거래했나? 부스러기라도 떨궈줘야 맛을 보지. 어그로를 끌어봐 어그로를. ”
딱 보니, 박기자는 지금 허기진 상태처럼 보였다. 먹을 것이 아닌, 특종에. 그의 표정은 평범했지만, 내면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런 박기자를 슬쩍 미소지으며 쳐다보던 주혁이 짧게 몇 단어를 던졌다.
“ 접대, 스폰, 연습생과 불륜, 재벌 ”
키워드를 들은 박기자의 눈빛이 변했고, 주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입을 털기 시작한다. 묘하게 존댓말을 섞어가면서.
“ 지금 내가 큰 프로젝트를 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고 싶다’ 아시죠? 걔네랑 합작하나 만들고 있는데, 캐내고 있던 게 완전 허탕이라, 지금 좀 엎어지기 직전입니다만, 근데 방금 말씀하신 단어들에서 매우 달달한 향이 느껴지네? ”
츄릅. 미친 박기자가 대놓고 침을 흘리며 말한 ‘나는 알고 싶다’라는 TV프로는 사회, 연예, 미제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 탐사해서 시청자에게 고발하는 저널리즘 프로그램. 심야방송임에도 시청률이 굉장하다. 충성 시청자들도 많고.
쉽게 말해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박기자가 소속돼 있는 디쓰패치라는 언론사 자체도 파급력이 굉장한데, 거기다 ‘나는 알고 싶다’와 합작품이라니.
‘ 괜찮은데? ’
사실 저 두 곳이 뭉치면 깔짝 이슈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인 파장을 넘어선 엄청난 토네이도가 몰아치겠지. 다만.
‘ 확실히 해둘 건 해둬야지. ’
강주혁은 뜬금없이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 증거. 너랑 방송팀이랑 합작품 만들고 있다는, 증거 좀 보자. ”
그러자 박기자가 씨익 웃는다.
“ 그럼요. 보여드리고말고. 그럴 줄 알고 챙겨왔지. 내가 또. ”
위풍당당하게 박기자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비닐 파일 몇 개와 핸드폰을 내밀었다. 파일에는 계약서 사본 몇 장과 두 곳이 합작으로 무엇을 어떻게 파낼 것인지 기획서와 구상도가 끼워져 있다.
먼저, 기획서를 가만히 읽던 주혁이 입을 열었다.
“ 종교? ”
“ 사이비. 정치인이랑 연관된 곳. ”
“ 근데? ”
“ 꼬리가 안 잡혀. ”
대충 이해했는지, 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계약서 사본 등을 확인했다. 그럴 때 박기자가 핸드폰을 내밀면서 방송 스텝들과 디스패치팀이 나눈 대화들을 보여준다.
틀림없이 그들이 나눈 대화였다.
-스윽
핸드폰을 다시 박기자에게 건네면서 주혁이 먼저 말을 던졌다.
“ 조건이 몇 개 있다. ”
“ 뭔데? ”
“ 일단, 시간을 많이 못 준다. 어차피 증거는 확실하니까, 금방 꼬리는 잡힐 거야. 일주일 줄게. ”
“ 으아- 거참 빡빡허네. ”
“ 뭘 약한 소리 하고 자빠졌어. 결과 안 나오면 바로 딴 곳에도 넘긴다? 독점으로 털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이라는 거야. ”
주혁의 말을 들은 박기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간 생각에 빠졌지만, 그도 벼랑 끝인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빡빡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J-쥬비스의 최화진이 FNF엔터 화장실에서 자살할 날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제 1주하고 며칠.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야 했다.
“ 다른 조건은? ”
“ 그건 보면서 얘기할까? ”
-스윽
주혁도 챙겨온 사진을 꺼냈다. 전부는 아니고 몇 장만. 원본 파일은 모두 강주혁이 USB에 따로 챙겨놓은 상태였다.
-툭!
여러 장의 사진을 비어있는 식탁에 펼친 주혁이었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냅다 사진을 집어 드는 박기자.
한 장, 두 장, 세 장.
사진의 장수를 넘길 때마다, 박기자의 표정이 점점 광기가 일렁였다. 희열을 느끼는 듯한 얼굴.
“ 야. 이거 FNF 송갑. ”
한창 박기자가 말을 하는 도중에 느닷없이.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식탁 위에 올려둔 주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덕분에 박기자의 말이 끊겼다.
“ 받어받어. ”
박기자는 얼른 받으라며 부추겼고, 이어서 주혁이 핸드폰 액정을 확인했다.
-김재황 사장.
발신자는 김재황 사장이었다. 볼일이 뭔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따라서 주혁은 일단 핸드폰 옆면에 볼륨 버튼을 눌러, 벨소리를 죽였다. 당장 김재황 사장보다 이쪽이 더 급했다.
“ 지금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계속해라. ”
박기자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 송갑필이지. 이거. FNF사장. ”
“ 맞아. ”
“ 그리고 애는. ”
“ 박종주. ”
“ 태신식품 막내? 쓰레기들이 모였네. 그래서 이게 지금 무슨 상. ”
그때 박기자의 말이 또다시 끊겼다.
♬띠리리 띠리리링 띠리리 띠리리링!!!
연달아 울린 벨소리 때문. 하지만 이번에도 강주혁이 안 받을 줄 알았는지, 박기자는 말을 계속 이으려 했다.
그런데 주혁이 핸드폰 액정을 확인하자마자 손으로 그의 말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 야. 미안한데. 이건 받아야겠다. ”
끝
ⓒ 장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