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33
132
문이 열렸다.
비틀거리며 복도로 나온 세라는 얼마 가지 못해 벽을 짚고 섰다.
전력 질주한 사람처럼 거친 숨을 헐떡이는 그녀는 혼이 쏙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살아 있다고……?’
방금 전해 들은 말을 곱씹던 그녀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서, 묘지까지 갖춰 놓은 제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었다.
누구보다 살아 있는 동생을 만나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막상 정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선뜻 믿기가 어려웠다.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는데……?’
불안하게 비틀리는 걸음마다 그럴 리 없다는 의문이 그녀를 뒤따랐다.
‘마법사라고 했잖아. 에스텔라에게서 마법을 배웠다고-.’
왜냐하면, 이 모든 상황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에스텔라의 이야기에 따르면, 에델은 그를 만나기 전에는 마법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어떠한 마력도 느끼지 못하는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였다고. 그런 에델을 가르쳐 마법사로 만든 건 그였다.
모든 마법사는 소원을 원동력으로 살아간다.
인간이 가진 강렬한 열망에 마력이 반응하여 그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다.
그건 세라건, 에스텔라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차이점이라곤 영혼에 새겨진 마력 회로를 누구로부터 받느냐 하는 거였다.
인간의 손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흑마법과는 달리, 진짜 마법사들의 회로는 신에 의해 새겨진다.
세상을 이롭게 할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신이 잠시 기적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법사는, 신에게마저 욕망을 허락받은 대단한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에델은 그런 대단한 마법사였다.
축복받은 존재, 제대로 된 마법사, 진짜.
세라와는 정반대의 존재.
그래서 처음 에델이 마법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미움받은 자신과는 달리, 신이 에델의 선함을 알아보고 축복을 내려 주었다고.
비록 자신은 또다시 죽어 지옥에 떨어질 테지만, 그 아이만큼은 신의 보살핌 아래 편히 쉬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없던 신앙심이 솟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성마르게 입술을 물어뜯은 세라가 목적지에 다다라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이 새벽에 쫓기듯이 찾아온 곳은 에스텔라가 공격당했던 방이었다. 치우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말을 충실히 지켜 준 길드원들 덕분에, 방 안은 아직도 엉망이었다.
쓰러지고 흐트러진 가구들, 바닥에 말라붙은 에스텔라의 피.
문가에 선 세라는 뭔가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몇 번이고 방 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입술을 물어뜯는 얼굴이 제발, 자신이 놓친 뭔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해 보였다.
“왜 네가…….”
그 초조함이 절망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뭐라도, 다른 힘이 개입한 흔적이라도 찾아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방 안에 남아 있는 건 명백한 흑마법의 기운이었다.
에스텔라를 공격한 사람은 흑마법사였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떻게 네가…….”
망연자실한 세라의 시야에 입구 근처에 말라붙은 새카만 얼룩이 들어왔다.
아까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자국이었다.
“……?”
낯선 흔적을 발견한 세라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핏자국이라기엔 새카맣기만 한 얼룩이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신경을 잡아끌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자리에 주저앉은 세라의 손끝이 흔적을 건드렸다.
버석하게 메마른 얼룩에 닿자, 별의 조각이 쩌적,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의식이 바닥 아래로 뚝 떨어졌다.
시야가 온통 새카맣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어둠 속에 빨려 들어 어딘가로 깊이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방향감만은 확실했다. 땅속을 파고든 그녀는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얼룩과 이어진 길을 내달렸다. 한참을 달려 나가던 의식이 어느 순간 다시 지면을 향해 솟구쳤다. 그녀가 있던 곳은 새벽이었는데, 그곳은 해가 뜬 낮이었다. 갑자기 빛을 맞은 시야가 하얗게 명멸했다.
설원처럼 새하얀 세계에 색이 나타난 건 그다음이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큰 키, 발목까지 내려오는 군청색의 머리카락, 느긋한 걸음걸이.
처음 보는 남자였다.
한 번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던 남자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반쯤 돌려 뒤쪽의 기척을 살핀다. 마치 세라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언뜻 보이는 옆모습이 반듯했다.
남자의 눈에는 새하얀 천이 둘러져 있었다.
까아악…….
불길한 새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한 마리가 내려앉자 다른 새가 내려온다.
다른 새가 내려오자 또 다른 새가, 그리고 또 다른 새가…….
어느새 구름처럼 몰려온 새가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새하얀 세상을 물들이는 유일한 암흑이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제게 밀려드는 불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남자의 모습은 세상 모든 어둠의 주인처럼 보였다.
남자가 다시 걸어간다.
거대한 어둠이 그의 뒤를 따른다.
분명 처음 보는 남자였다.
하지만 느긋한 걸음걸이가 어딘가 눈에 익었다.
……그가 세라를 두고 멀어졌을 때, 누군가 등 뒤에서 그녀를 잡아당겼다.
다시 암흑으로 내던져진 그녀는 끌려왔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쫓겼다.
그리하여 다시 눈을 떴을 때.
“…….”
그녀는 다시 에스텔라의 방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헉, 헉. 눈을 뜬 그녀는 오랫동안 물속을 헤엄치다 나온 사람처럼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잠깐 사이에 온몸이 땀에 젖어 척척했다. 눈이 과열된 것처럼 뜨거웠다.
눈가를 더듬은 세라가 아직도 벌벌 떨리는 동공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선명하게 찍혀 있던 검은 자국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세라는 별의 조각이 보여 준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가늠하려 애썼다.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별의 조각이 네가 가야 할 길을 더 정확히 알려 줄 것이다.’
세라의 귓가에 얼마 전 들었던 신의 목소리가 스쳤다.
그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그녀는 신의 말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았다.
별의 조각이 왜 이곳에 있지도 않은 남자를 비췄는지도.
어쩌면 그 남자의 정체까지도.
“가야 할 길…….”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한 세라가 낮게 읊조렸다.
혼란스럽게 뒤섞이던 머리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정리를 끝냈다.
생각에 잠긴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라는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에스텔라가 쓰러졌던 자리까지 다가간 그녀는, 그것보다 조금 더 뒤. 어스름히 들어오는 달빛으로 생긴 새카만 그늘을 향해 말을 걸었다.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나와.”
“…….”
그녀의 부름에 방의 구석진 어둠 속에 구겨져 있던 인영이 순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묘하게 기운이 없어 보이는 에녹은 아까 오후에 헤어졌을 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세라가 의아한 낯으로 물었다.
“여태 여기 있었어?”
“……갈 곳도 없고.”
쭈뼛대며 다가온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어딘가 불만이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라와 가까이 선 채 곁눈질로 힐끔힐끔 눈길을 줬다.
“마법사는, 이제 괜찮아?”
조금의 염려도 깃들어 있지 않은 물음이었다.
실제로 에녹은 에스텔라의 안위 따위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세라와 말이라도 한 번 더 섞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적절한 주제를 선택했을 뿐. 그리고 아마 세라도 그걸 알 것이다.
“……주인님.”
세라가 돌연 진지하게 그를 불렀다.
에녹을 부르는 호칭이 ‘야, 너, 까망아’에서 어느새 주인님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태 그와 했던 재미있는 연극이 끝났다는 걸 이런 식으로 알린 것이다.
“왜?”
심상치 않은 비장함에 에녹이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살폈다.
“돈 좋아하죠?”
심각한 이야기를 할 법한 분위기였는데, 세라는 뜬금없이 돈 좋아하지 않냐 물어 왔다.
“돈……?”
한층 더 미궁에 빠진 에녹이 눈썹을 까딱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돈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평생 돈 없어서 고생해 본 적도 없었고, 금전 감각도 마비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에게 돈이란 언제든 원하면 손에 쥘 수 있는 시시한 것 중 하나였다.
“아닐……걸?”
고개를 갸웃거린 에녹이 조심스럽게 잘못 알려진 제 기호를 고쳐 보려 시도했다가.
“맞을걸?”
“맞아. 난 돈 좋아해.”
얼른 했던 말을 주워 담았다.
진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세라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그럼,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어요.”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낸 세라가 그제야 종알종알 말을 늘어놓았다.
“……응.”
에녹은 중간중간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쳤다.
겉보기엔 영락없이 세라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는 지금 세라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하고 있어…….’
그저, 살아서 움직이는 세라 로젠바움을 경이로워하는 중이었다.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는 입술이 보였다.
그 사이로 향기로운 숨이 샜다. 에녹은 흉부가 크게 부풀 정도로 그것을 한껏 들이켰다.
폐부에 가득 들어찬 누군가의 숨에 늑골이 다 찌릿찌릿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감각에 꿈을 꾸는 것 같은 비현실감이 밀려들었다.
이 와중에도 살아 있는 세라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숨을 쉬고, 움직인다. 무려 눈도 깜빡거린다.
그는 귀로 흘러드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좁은 통로에 겹치고 겹친 목소리가 메아리쳐 웅웅 거렸다. 그런 이명마저 에녹에게는 천상의 찬가처럼 느껴졌다.
두근두근,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뛰었다.
에녹의 고개가 의식도 못 하는 사이 꽃에 이끌리는 나비처럼 그녀를 향해 숙여졌다.
헉, 헉. 점점 흥분하여 호흡이 거칠어졌다.
“듣고 있어요?”
그때, 세라가 의심스럽게 되물었다.
에녹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장담했다.
“당연하지.”
“그럼, 들어줄 거예요?”
“당연하지.”
뭔지 모르겠지만 뭐든 상관없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 마당에, 살아서 돌아온 사람 소원은 왜 못 들어주지?
에녹은 세라가 세상을 멸망시켜 달라고 해도 기꺼이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답지 않은 순순한 허락에 세라의 의심이 한층 깊어졌다.
“확실하게 동의한 거예요.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지 마요.”
“응. 응. 딴소리 안 해.”
으름장을 놓는 그녀를 향해 에녹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힘을 팍 주고 노려보는 모습이 너무 생기 넘치고 보기 좋았다. 설마 겁주려고 저러는 건가? 너무 귀엽다.
어림도 없는 일을 시도하는 세라 때문에 에녹의 배 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녔다.
싱글벙글하려는 입을 죽을힘을 다해 눌러 내린 그가 평소와 다름없는 여유로운 낯으로 세라를 대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조건을 짚어 보는 게 좋겠는데-.”
다 알지만 한 번 더 확인하는 척, 자신이 놓친 그녀의 이야기를 물은 에녹이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세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가 제게 용건을 말하고 들어달라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한 번 더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요.”
에휴, 한숨을 쉰 세라가 입술을 열었다.
***
“…….”
에녹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겨울 휴가에서 돌아와 보니 그의 집 안에 못 보던 가구가 잔뜩 놓여 있었다.
불편하게 서서 결재를 받고, 회의를 하는 것을 견디다 못한 길드원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그의 응접실을 손본 것이다.
멋대로 그의 집을 바꾼 길드원들은 미운 300살인 대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바뀐 집을 본 에녹은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일하라고 들여 준 책상에 앉아 가만히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책상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찔러도,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마치 에녹 모양을 한 이끼처럼. 그저, 가만히 숨만 쉬었다.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정신은 이곳에 없는 것 같았다.
원래도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심각할 정도로 삶의 의지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대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이옌이 질린 얼굴로 마커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갓 휴가에서 돌아온 그는 선물도 전할 겸 에녹에게 인사를 하러 들른 참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대장 걱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에녹이 걱정되었다. 밥 먹듯이 우울증에 걸리던 사람이라 다들 저러다 말겠지 하는 분위기였지만, 그의 주변에만 몰려든 것 같은 먹구름을 보고 있자니 저러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먼지로 화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너, 그거 몰라?”
진심으로 걱정하는 세이옌을, 마커스가 심드렁한 어조로 아는 체를 했다.
흥, 코웃음을 치며 대장을 내려다본 그가 일말의 인류애조차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에녹의 사연을 설명해 주었다.
“휴가 갔다 혼자 돌아온 이후로 저렇게 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