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63
162
“…….”
세라가 이번에야말로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확 그냥 집에 가 버릴까. 딱 그렇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계속 다리 저린 것보다 너도 좀 쉬는 게 낫지 않겠어?”
위기를 감지한 에녹이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결코 개수작이 아니다. 너무 피곤해서 그렇다. 피로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각성 상태가 되어서 막상 잠이 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말로 네가 불편할까 봐 권하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다. 구구절절 늘어지는 말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임을 알아달라는 호소였으나 그 배려가 오로지 사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건 에녹도 알고 세라도 알았다.
“……딱, 십 분이다.”
알면서도 세라는 그마저 눈감아 주었다.
스르륵, 벌려 둔 공간 사이로 세라가 들어왔다.
그를 등진 채 멀찍이 떨어진 그녀가 에녹이 내팽개친 베개를 끌어다 제 머리를 툭, 올려 두었다.
“……특별히 오늘만 봐준다. 진짜.”
에녹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투덜대던 세라는 곧 조용해졌다.
“…….”
에녹은 신기한 눈으로 세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그녀는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유하게 굴어 주었다.
그는 제게 일어난 이 기적 같은 행운이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세라.”
슬쩍 거리를 좁혀 다가간 에녹이 콕콕, 고요하게 오르내리는 등을 건드렸다.
“…….”
“세라. 자?”
좀 더 거리를 좁힌 에녹이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살거렸다.
세라의 목 아래로 파고든 팔이 은근슬쩍 베개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무의식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세라가 치우라고 했다면 얼른 치웠을 것이다.
“십 분 지나서도 안 자면 그냥 갈 거야.”
하지만 세라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에 얼른 잠들지 않으면 네 손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감히 예상컨대, 제한 시간이 있으니 그때까지는 너그러이 봐줄 생각인 것 같았다.
에녹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고, 말을 걸고, 함께하는 것을 시한부일지언정 그녀가 허락해 주었다고 생각하니 뼈 마디마디가 뻐근해질 정도로 설레었다.
“십 분 안에 잘게.”
자신감을 얻은 에녹이 좀 더 가까이 세라에게 다가갔다.
세라의 등과 에녹의 가슴이 가볍게 맞닿았다.
그녀가 괸 두꺼운 팔이 그대로 쭉 뻗어 나가 가느다란 팔과 나란히 자리 잡았다.
그대로 힘주어 끌어안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에녹이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였다.
탐스러운 머리칼에 코끝을 살포시 묻은 그가 일단 눈을 감았다가.
“오늘은, 왜 특별한대?”
채 일 분도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대로 곯아떨어지기엔 제게 허락된 일말의 너그러움이 아쉬웠다.
“응? 세라-.”
세라의 뒷머리에 이마를 비빈 에녹이 대답을 졸랐다.
그는 오늘만 특별하지 않고 매일매일 특별하고 싶었다.
매일, 매 순간, 세라와 가장 가까운 곳에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하고 싶었다.
“왜 특별해? 오늘 무슨 날이야?”
에녹은 갓 세상에 나온 아이가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왜? 왜?’ 하고 물었다.
물음표로 살인이라도 할 것처럼 그놈의 ‘왜?’ 소리가 끝이 없었다.
“그놈의 ‘왜’ 좀 그만해! 안 잘 거야? 그럼 그냥 지금 가고.”
결국 참다못한 세라가 팔꿈치로 에녹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불쌍한 호구는 이제 막 자려던 참이야.”
더 까불었다간 정말로 가 버릴 기세였기에 에녹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행여 달아날세라 놀고 있는 팔로 세라의 허리를 꼬옥 붙든 그가 향기로운 머리칼에 얼굴을 완전히 묻으며 쿨쿨 숨을 내쉬었다.
“…….”
그의 말을 들은 세라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에녹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충실히 그녀의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눈을 감자 세라가 더 다양하게 스며들었다.
그녀는 향기로운 숨이었다가, 심장을 데우는 따뜻한 온기였다가, 그를 울리는 고동이 되기도 했다. 에녹은 제게로 밀려드는 세라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만끽했다.
흥분하여 얼마간 헐떡이던 숨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에녹의 숨이 느른하게 늘어졌다.
제 품 안에 세라 로젠바움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에녹의 의식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세라가 밀려들었다.
그 숨을 타고 가슴 터질 듯 차오르던 설렘과 아래를 뻐근하게 하던 정욕이 빠져나갔다. 영혼까지 충만해지는 안온함이 그를 채웠다.
며칠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풀어졌다.
미뤄 뒀던 피로가 수마와 함께 에녹을 찾아들었다. 의식이 멀어지면서 깜빡, 깜빡 끊어지기 시작하던 그때.
“야.”
세라가 그를 불렀다.
반쯤 수마에 잠긴 에녹이 반사적으로 즉시 반응했다.
“응?”
“너 그거 아니야.”
“……?”
뭐가 아니야?
에녹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반쯤 눈을 떴다.
세라는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단어를 던지듯이 툭, 말했다.
“호구.”
아니라고.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왜. 불쌍한 호구라서 챙겨 준다며.”
잠들기 직전이라서 그런가. 에녹의 목소리가 자꾸만 늘어졌다.
웃음기가 서린 말에는 비난이 묻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호구 취급받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에녹은 무슨 이유에서든 세라가 자신에게 마음을 써 줄 계기만 되어 준다면 불쌍한 호구 새끼든, 상종 못 할 변태 새끼든 기꺼이 될 수 있었다.
“아니. 그건 그냥 네가 답답해서 홧김에 한 말이고…….”
툭, 툭. 그녀에게 내어준 손끝을 무언가가 건드렸다.
에녹은 처음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그러다, 이 침실에서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세라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순간.
“……!”
수면 아래로 거의 가라앉았던 의식이 활어처럼 튀어 올라 현실로 돌아왔다.
단숨에 그의 몸을 가득 채웠던 아늑함이 사라지고 팽팽한 긴장이 치고 올라왔다.
느려지던 심장의 박동이 다시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세라가 먼저 자신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뱃속이 깃털로 가득 찬 것처럼 간지러웠다.
그 순간이 꼭 제힘으로는 절대 붙잡을 수 없던 새가 마침내 제 손 위에 얌전히 내려앉은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고개를 털어 잠을 쫓아낸 에녹이 대화의 끈을 놓칠세라 적극적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홧김에 한 말이고, 그다음은?”
어깨를 동그랗게 움츠린 세라가 솔직한 속마음을 퉁명스럽게 털어놓았다.
“진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
툭, 툭. 손끝을 쥐어뜯는 힘이 점점 강해졌다. 에녹의 손을 괜히 못살게 군 그녀가 큼, 큼, 민망한 듯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는 놈들이 이상한 거야.”
점점 또렷해지는 시야에 밤하늘을 닮은 머리카락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동그란 귓바퀴가 눈에 들어왔다.
“…….”
그곳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귀 끝이 붉어진 세라가 에녹의 손가락을 꾹꾹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그런 개 같은 말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원래 뭘 모르는 놈들이나 혀를 함부로 놀리는 거라고.
“세라. 그거 꼭-.”
에녹의 입에서 어눌한 감탄사가 샜다.
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남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든, 스스로는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고 있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편 들어주는 것 같네?”
세라가 제 편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토록 기쁜 것을 보면 말이다.
확신하지 못하고 또 물음표를 붙이는 그 반응이 답답했는지, 팩, 쥐고 있던 손을 떨쳐 낸 세라가 빼액 소리쳤다.
“같은 게 아니라 들어준 거거든?!”
오늘만! 특별히! 불쌍하니까!
다그치는 말투가 뾰족했지만, 에녹은 그 안에 숨겨진 민망함을 잘 알았다.
“응. 그래그래. 알았어.”
눈을 깔고 모른 척 넘어가 줘야 한다는 걸 알았으나, 헤벌쭉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몰랐다.
에녹을 노려보는 세라의 눈매가 점점 사나워졌지만, 그는 이대로 뺨을 후려 맞는다 해도 웃음을 그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팔다리를 허공에 마구 흔들어 대고 싶은 충동이 온몸에 뻗쳐 나갔다.
차마 세라의 앞에서 그런 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꾹 참으니 이번에는 가슴께가 간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터져 나오는 감정을 참지 못한 에녹이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우, 떨어져! 뒤로 좀 가! 너, 너무 들러붙는 거 아니야?”
꾸엑, 숨 막힌 소리를 낸 세라가 에녹의 가슴을 거칠게 밀어냈다.
“내가?”
에녹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름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이렇게 지적받을 정도로 들러붙었던가 싶어서.
그러다 뒤에서 세라의 몸을 덮듯이 들러붙은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헛숨을 내쉬었다.
분명 중앙에 누워 있던 에녹의 몸이 세라를 쫓아 커다란 침대의 귀퉁이까지 치우쳐져 있었다. 가슴부터 틈 없이 밀착한 두 몸은 하체까지 이어져 다리마저 한데 얽혀 있었다. 꼭 에녹이라는 커다란 밧줄로 세라를 꽁꽁 묶어 놓은 듯한 형국이었다.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지?
“네가 봐도 좀 심하지?”
그러니까 떨어져라.
에녹은 응.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바위처럼 굳건한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라와 떨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보다 더 깊이, 더 오래 붙어 있고 싶었다.
이대로 녹아내려 그녀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안 된다면 일부라도 갖고 싶었다.
에녹이 뜨거운 숨을 끙끙 앓았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는 마침내 적절한 합의점에 이르렀다.
“……세라-.”
에녹이 신음하듯 세라의 이름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내팽개쳐진 손을 움직여 세라를 찾아 쥔 후, 작은 손이 깨어질세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왜.”
“넌, 변태의 범주가 어디까지라고 생각해?”
“……?”
갑자기?
대화의 맥락을 한참이나 빗나가 버린 질문이었다.
의아해진 세라가 침대에 드러누운 이후 처음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능글맞게 웃고 있으리라 생각한 에녹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세라는 제 손가락 사이를 야릇하게 파고드는 손길을 저격하며 대답했다.
“자기 좋자고 남 주물럭대는 놈들은 다 변태지.”
“아, 그렇구나.”
그러자 에녹이 앓던 이가 빠진 사람처럼 개운한 미소를 지었다.
새하얀 이를 자랑하며 웃던 그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다음 질문을 해 왔다.
“그럼, 다른 사람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
사실은 호구라고 말할 뻔했지만, 애써서 좋게 표현해 줬다.
에녹은 이번에도 ‘아, 그렇구나.’ 하면서 그녀와 이마를 맞대어 왔다. 팔락, 팔락, 유난히 긴 속눈썹이 세라의 것과 맞닿아 그녀를 간지럽혔다.
세라의 눈앞이 온통 노을이 진 초목의 색으로 물들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에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귀여운 척이었다.
“착한 사람 좋아해?”
“……싫어하지는 않, 잠깐. 야. 밀지 마. 나 이러다 떨어질 것-.”
그것을 피해 뒤로 고개를 빼던 세라가 끄트머리에 다다른 몸이 기울어져 다급히 에녹의 팔에 매달렸을 때였다.
“세라-.”
에녹이 팔을 구부리는 것으로 손쉽게 그녀를 구해 냈다. 발개진 귓가에 입술을 묻은 그가 새근대는 숨을 내뿜으며 속살거렸다.
“입 맞춰도 돼?”
너에게 입 맞추고 싶다고.
“……어?!”
자꾸만 예상하지 못하는 곳으로 튀어 나가는 흐름에 세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쓸데없이 귀여운 척한다고 생각했던 눈동자에는 그녀 모르게 피어난 정염이 득실대고 있었다. 흉흉한 안광을 빛내고 있는 눈가가 관능으로 촉촉하게 젖었다.
말 그대로 얌전히 재워 주고 갈 생각이었던 세라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때, 세라의 아랫배에 단단한 에녹의 몸 중에서도 특히나 단단한 부분이 와 닿았다.
옷에 감싸여 있어도 존재감을 잃지 않은 그것이 세라의 배꼽 위쪽에 묵직한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 뜨겁고 단단한 것이 그곳에 닿았을 때, 어떤 쾌락을 주는지 기억하는 배 속이 와락 조여들었다.
헉, 급한 숨을 들이켠 세라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뺐다.
하지만 그 시도는 그녀의 허리를 완강하게 감싸 안은 에녹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잠시 떨어졌던 육체가 강한 힘으로 철썩, 맞붙었다.
그의 모양대로 배가 눌릴 정도로 바짝 맞붙으니, 세라의 얼굴에 확, 하고 열기가 몰렸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말없이 얽혔다.
장난하지 말라는 듯 인상을 쓴 세라와는 달리 에녹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내가, 기분 좋게 해 줄게.”
그러니까, 허락해 달라고 매달리는 목소리는 일견 간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세라의 목에 얼굴을 묻은 그가 안타까운 숨을 푹, 푹, 내쉬었다.
아직 허락받지 못해 입술 대신 코끝만 여린 살갗에 비벼대던 그가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세라의 위로 올라탔다.
다리 사이로 파고든 그가 무게를 실어 제 하초를 깊이 뭉갰다.
두 팔로 지지해 상체를 들어 올린 에녹은 세라의 목선을 타고 올라 그녀의 턱 끝에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가져다 댄 채 물었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