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86
185
“……뭐라고?!”
크게 당황한 세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자신이 날치기당하듯 납치당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할지. 자신을 납치한 상대가 요정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저 진이라는 요정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뀨우우. 그녀가 흥분하자 곁에 꼭 붙은 까망이가 슬금슬금 품속을 파고들었다.
진정하라는 듯 매끈한 비늘을 쓰다듬어 주면서, 세라는 요정이 어떻게, 왜 이런 짓을 벌이게 되었는지 가늠하려 애를 썼다.
그 순간 요정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너희는 항상 그걸 궁금해하더라. 어떻게? 왜? 정작 알아야 할 일들은 그냥 지나쳐 버리면서 말이야.”
진은 세라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질문에 알아서 대답해 주었다. 망할 지혜. 세라는 남의 머릿속을 아무렇지 않게 꿰뚫어 보는 상대를 신경질적으로 흘겨보았다.
그조차 기꺼운 낯으로 받아넘긴 요정이 성공적인 납치가 자랑스러운 양 재잘재잘 그녀가 잠든 사이 일어난 일들을 늘어놓았다.
“널 여기까지 데려오는 데, 그렇게 큰 힘이 들지는 않았어.”
***
세라와 헤어진 직후, 에녹은 노크도 없이 진이 머무는 방에 들이닥쳤다.
“야, 일어나.”
쾅! 배려 없이 문을 열어젖힌 에녹이 들어서자, 창문 곁에 선 새하얀 인영이 그를 돌아봤다. 서로를 확인한 두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자고 있었어?”
“왜 네가 와?”
동시에 교차하는 물음에는 짜증스러운 기색이 뚜렷하게 묻어났다. 에녹은 안 잘 거면서 굳이 자신을 이리로 불러들인 진에게, 진은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굳이 본인이 직접 온 에녹에게 성질을 부렸다.
진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에녹은 개뿔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비웃었다.
“그 애는 앞으로도 볼 일 없을 테니까 꿈 깨.”
“‘앞으로도?’”
진은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거슬리는 표현으로부터 영구적인 의미를 읽어 낸 요정이 눈썹을 까딱이며 의문을 표했다.
“숲으로 함께 가지 않는 모양이지? 왜?”
제 옆에서 그 지랄을 떨어 놓고서 왜 떼어 놓느냐는 의미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은 다 속였어도, 에녹의 바로 곁에 있던 요정만큼은 그가 세라에게 얼마나 열심히 치근덕댔는지 모조리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
에녹은 답하지 않았다. 몰라서 묻느냐는 얼굴이다.
“고작 내가 관심 좀 보였다고 이렇게까지 해?”
물론 요정은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다만 황당할 뿐이다. 자신이 그 여자와 말이라도 한번 섞어 본 것도 아니었고, 딱히 위협하려는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다.
‘저 사람, 네 애인인가 보지? 이따가 소개시켜 줘.’
그저 길드 환영식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한 번, 애인 소개나 시켜 달라고 했을 뿐이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네가 관심을 보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지. 요정은 이유 없이 흥미를 보이지 않잖아?”
하지만 에녹은 그런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분명히 귀찮고, 위험하고, 네 힘으로는 해결 못 할 어려운 일을 떠넘기려고 밑밥 까는 거겠지.”
요정들이 여태 그래 왔듯이 말이야.
경계심 서린 눈빛이 직설적으로 진에게 꽂혀 들었다.
에녹은 눈앞의 요정이 제 애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위해를 가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그게 꼭 진의 눈에는 애인이 아니라 갓 태어난 새끼를 품은 짐승처럼 보였다.
에휴, 한숨을 내쉰 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넌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어.”
“누구 때문인데.”
네 예상 따위 틀렸다는 소리였는데도 에녹은 쉬이 경계를 거두지 않았다. 진은 어련하시겠냐며 빈정거렸다.
“그래서, 내가 네 애인 어떻게 할까 봐 어디 꼭꼭 숨겨 두기라도 했니?”
“…….”
“했구나.”
한심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진이 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투명한 노을빛 눈동자에 신비로운 빛무리가 고였다.
“이 음침한 새끼.”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빛무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몹시 떫은 표정을 한 요정만이 남아 있었다. 당사자에게 묻지 않고도 진실을 알아 낸 진은 가감 없이 에녹을 비난했다.
“너 이러는 거 그 여자는 알아?”
“이제 알겠지. 우리 애가 제법 똑똑하거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벌여 놓은 주제에, 에녹은 뻔뻔하게도 당당한 태도를 고수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태도이다.
“그러니까 그 애한테 관심 가지지 마. 쳐다도 보지 마.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든 다 해 줄 테니까. 내일 얌전히 떠나기나 해.”
그는 요정의 얕은수 따윈 진작에 꿰뚫고 있다는 듯 단호한 얼굴로 제 애인을 끌어들이지 말 것을 못 박았다. 끝까지 진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정말이지 지독한 놈이라며 혀를 내두른 요정이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요정은 더 이상 에녹에게 볼일이 없는지 그를 지나쳐 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 가?”
“광장.”
“거길 네가 왜 가는데.”
에녹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래 봤자 헛수고라고 말해 주고 싶었으나, 어차피 믿지 않을 것이기에 순순히 대답이나 해 주었다.
“재밌는 거 준비했다며. 가서 얼마나 재밌는지 구경이나 하게.”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인간들이라면 질색할 땐 언제고.”
이제는 진의 모든 행동이 다 수상한지, 에녹은 그마저도 쉽게 그렇군.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경계를 풀어 버리면 음흉한 요정이 제 애인에게 접근하여 귀찮게 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 야심 찬 음모론에게는 미안하지만, 진은 정말 순수한 의도로 광장에 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냥.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
제법 아련하게까지 들리는 발언에 에녹의 표정이 기이하기 뒤틀렸다.
“아아-. 그래서 하루 만에 올 수 있는 거리도 며칠에 걸쳐서 빙빙 돌아왔나?”
에녹은 속일 사람을 속이라며 유감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진이 타고 온 은빛 마차는 원하는 어디든 하루 안에 데려다주는 ‘지혜’의 산물이었다. 그런 것을 타고 며칠이나 지나서야 제 길드에 방문했으니, 급한 용무가 있는 에녹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배알이 뒤틀릴 만한 일이었다.
“너 여전히 쪼잔하구나.”
물론, 에녹이 얼마나 다급했을지는 진이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는 지극히 순수한 의도로 늦은 것이기에 비난 앞에 움츠러들 일도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세상을 돌아볼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좀 돌아본 거야.”
“늙은이 티 내?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웬 감상적인 말이야?”
“오래 살긴 했지. 나도. 그리고 너도.”
나이 공격을 일삼는 에녹에게 똑같이 되갚아 준 진이 너는 좀 감상적으로 바뀌어 보라며 쯧쯧 혀를 찼다. 더는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몸을 돌린 진이 마침내 문가에 다다랐다.
“근데, 그거 알아?”
그대로 먼저 방을 나서던 그는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에녹을 돌아보았다.
“네가 받은 그 문. 건너편에서 열어 줘야 사용할 수 있는 거.”
그리고 정말로 뜬금없이, 에녹의 주머니 속에 잠들어 있는 물건을 언급했다. 말해 준 적이 없었는데도, 그는 이미 에녹이 어떤 물건을 어떻게 받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을 하도 많이 당해 본 덕에, 에녹은 새삼스럽게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 알아.”
그저 다 아는 사실을 왜 귀찮게 한 번 더 언급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다행이네.”
뜬금없는 것을 물어본 진은 싱겁게도 대화를 끝맺었다. 먼저 방을 나선 요정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척척 광장을 찾아 걸어 나갔다. 머지않아 두어 걸음 뒤에 감시하듯 따라붙은 에녹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요정님! 어서 오십시오!”
“여깁니다! 여기!”
진이 광장에 나타나자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던 길드원들이 부리나케 일어나 마중을 나왔다.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긴장으로 단단해졌다. 나쁜 뜻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에 끼어든 낯선 존재로 인한 기분 좋은 설렘과 긴장이었다.
“이, 이, 이, 이쪽으로 오세요.”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나온 레니스가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에녹과 진을 안내했다. 광장에 마련된 자리 중 가장 상석에 나란히 앉았다. 자리의 주인이 도착하자, 비어 있던 자리가 금방 채워졌다.
테이블에 올라오는 요리는 철저하게 한 사람의 입맛만을 신경 썼다는 게 눈에 보였다. 온통 풀과 과일, 채소들로 가득한 테이블에 에녹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얼굴을 구겼고, 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시간이 흐르면서, 요정도 인간과 비슷하게 요리나 육식을 즐기게 되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은 전통을 지키는 몇 없는 요정 중 하나였고, 이런 속사정은 당사자가 직접 말하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운 정보였다.
“오신다고 하셔서, 조사를 좀. 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요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수줍게 얼굴을 붉힌 레니스가 은근슬쩍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인간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좋아하지 않는 진조차 그가 지닌 순수한 배려가 느껴질 정도였다.
“고맙군. 덕분에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겠어.”
“……!”
그리 힘들이지 않은 공치사에도 레니스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얼굴이 터져 나갈 것처럼 시뻘겋게 물들인 그는 연신 자신이야말로 영광이라며 울먹거렸다.
“유난은…….”
빈정이 팍 상해 버린 에녹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레니스를 두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투덜거렸다. 물론 레니스는 기분 상한 길드장 따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요정에게만 인사를 하고 쌩하니 가 버렸다.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자리에 착석한 진은 가장 먼저 술병을 들어 올렸다. 뚜껑만 열었는데도 과일 향이 물씬 풍기는 것으로 보아, 이 또한 진의 입맛에 맞춰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
“대작해 줄 거지?”
두 개의 술잔을 나란히 놓은 진이 유리잔 가득 술을 채우며 에녹을 눈짓했다. 어떠한 꿍꿍이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눈빛이었다.
“……작작 마셔라.”
세라에게 관심을 두느니 차라리 이게 더 낫다고 판단한 걸까.
내키지 않은 한숨을 내쉰 에녹이 마지못해 그가 따라 준 잔을 들어 올렸다.
쨍, 시원한 술이 담긴 유리잔이 서로 부딪쳤다.
“어어? 둘이서만 마시는 거야?”
“나도 요정님과 건배할래!”
그 소리를 들은 길드원들이 하나둘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진과 에녹의 주변은 금방 시끌벅적해졌고, 아직 대낮인데도 광장은 자연스럽게 술판이 되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세 잔.
한 병, 두 병, 세 병…….
일찍이 시작된 술자리는 태양이 기울고 달이 뜰 때까지도 이어졌다. 시그너스의 길드원들은 진과 한 잔이라도 술을 나눠 마시고 싶어 했고, 진은 기꺼이 그들의 요청에 응해 주었다. 참한 미모에 가려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진이 술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고, 또 술잔을 권하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그러다 보니,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처음 테이블을 찾은 이들이 만취하여 나가떨어졌다.
“하하! 요정님도 말술이구만!”
예상외로 술이 센 진의 모습에 두 번째로 테이블을 차지한 길드원들이 호탕하게도 웃었다. 주량에는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어디 한번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 보자는 목소리에는 호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조차 발치에 나뒹구는 술병이 수십 병에 다다르자 서서히 질린 표정을 했다.
“아, 아니. 무슨 요정이 이렇게 술이 세…….”
청초하고 신비로운 요정을 상상하던 이들은 예상외의 강적 앞에 하나둘 꺾여 나갔다. 그렇게 한 테이블이 전멸하고 나면 새로운 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긴가민가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이들은 얼마 안 가 얼큰하게 취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면 또 새로운 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새로운 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우욱-. 더 이상은…….”
그렇게 자리를 채운 마지막 길드원이 항복을 선언했다. 의자 아래로 미끄러진 남자가 몸 한번 뒤척이지 않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
마지막 술을 단번에 들이켠 진이 가뿐한 얼굴로 젖은 입술을 훔쳤다. 그 얼굴은 하루 종일 술만 들이부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하기만 했다.
탁, 깔끔하게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요정이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진이 움직임을 보임과 동시에, 바로 곁에 있던 에녹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어디 가-.”
시체처럼 나뒹구는 부하들과는 달리 또렷한 눈빛이었지만 말끝이 미묘하게 늘어졌다.
취했다.
진은 확신했다. 자신이 마실 때마다 부득불 에녹의 술잔을 같이 비워 내도록 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화장실. 설마 거기까지 따라올 건 아니지?”
진은 그에게 감시하기도 머쓱한 개인적인 용무를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에녹은 진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 몇 번 들썩이다 말았을 뿐이다.
당연했다.
그가 성검의 주인이라 버티고는 있지만, 진이 그에게 들이부은 술의 양은 거의 치사량에 가까웠으니까.
“저 앞쪽에 있는 건물로 가.”
결국 쫓아가길 포기한 에녹이 바로 코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진의 목적지를 정해 주었다.
“너 정말 지독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그 모습에 진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순순히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진이 그가 지정한 건물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도,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은 건재했다.
그러다, 그가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는 순간.
쾅! 한계에 다다른 에녹 소서가 비로소 테이블에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우웨에엑!”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간 진이 벽을 붙잡고 눈물 쏙 빠지도록 속을 게워 낸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침내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진 요정이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여튼,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른 새끼.
***
“그동안 술만 들이부었는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주량이 많이 늘었더라.”
이야기를 마친 진이 호로록, 차를 들이켰다. 전후 사정을 다 알고 나서 그런 걸까. 그저 예쁘게만 보였던 얼굴이 조금 핼쑥해 보였다.
“에녹이 쓰러진 다음에는 뭐, 말 안 해도 알겠지?”
연거푸 차를 들이켠 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녹은 술에 취해서 나가떨어졌고, 세라는 수면제를 먹고 기절하듯이 잠들었고.
가장 거슬리는 감시자를 털어 낸 납치범이 얼마나 콧노래를 부르며 실행에 옮겼을지는 안 봐도 뻔한 그림이었다.
계획범죄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야기에 세라의 표정이 얼핏 심각하게 굳어졌다.
“설마, 당신.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아, 하여튼 성질 하난 진짜 급하지.”
그때, 나지막이 혀를 찬 요정이 소리 내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의 등 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금빛의 선들이 서로 엉겨 붙더니 곧 어떤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은빛의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테두리와,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진 커다란 여닫이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쾅쾅쾅쾅!!!
그 너머에 있는 존재가 문을 부숴 버릴 듯이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