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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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뜩한 사실을 인지한 순간.
“으윽……!”
이미 최대로 개방된 회로가 스스로를 혹사시켜 더 많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곳에서 솟아오른 마력이 금세 회로를 지나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그녀의 회로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마력을 콸콸 쏟아 냈다.
“아, 젠장…….”
그에 세라의 얼굴에 짙은 낭패감이 어렸다.
의도를 벗어난 마력이 바깥으로 줄줄 새어 나가는 지경이 되어서야, 세라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회로의 한계를 무시하고 마력을 운용한 부작용이었다.
제 수준보다 월등한 마력을 감당하던 회로가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하는 것이다.
“하하!”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입에서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이래? 미쳤나?
눈치 없이 실실대는 입술에 세라가 불쾌하게 미간을 구겼다. 이성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었으나, 들쭉날쭉한 감정이 약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웃음이나 흘려대는 입술을 대신하여 마음속으로 제 심정을 대변했다.
‘고작 이 정도에 폭주가 온다고……?!’
제가 아무리 부상으로 인해 예전만 못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광신도의 성검 덕분인지 지상에 올라온 이후로 가장 쾌적한 상태였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회로에서도 걸릴 것 없이 마력이 팽팽 잘만 돌아갔다.
상처가 완전히 아문 건 아니어도, 이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뒷일 생각하지 않고 마력을 쓰긴 했지만, 그 정도는 과거에 숨 쉬듯이 썼던 수준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 지난 300년간 이 정도의 마력을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그 회로가 그 회로잖아? 그럼 멀쩡해야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세라는 고작 이 정도에 버겁다고 폭주하는 회로에 배신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이를 사리문 그녀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녀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회로는 마력을 뽑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제 존재 이유라도 되는 양 앞만 보고 내달렸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데 점점 가속도가 붙더니 순식간에 불어난 검은 마력이 세라를 집어삼켰다.
그저 넘치기만 한 그 힘은 맥락 없이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그러다 종국에는 검은 폭풍처럼 변해 주변을 온통 뒤덮어 버릴 것처럼 휘몰아쳤다.
얼굴을 할퀴는 칼바람을 느끼며, 세라는 회로가 완전히 제 통제를 벗어났음을 실감했다. 슬슬 과열된 회로로부터 끔찍한 작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코끝에 탄내가 느껴졌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회로가 다 타서 못 쓰게 될 때까지 마력을 뽑아낼 거다. 그럼 세라는 한심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겠지….
그 결말을 막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일단은, 회로를 벗어나 날뛰는 마력을 다시 불러들여야 했다.
예민하게 일어선 감각에 주인을 잃고 날뛰는 마력이 느껴졌다. 손을 대면 베일 듯 날카로운 폭풍은 어디에 목줄을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난관을 예상한 세라가 날뛰는 마력을 제게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던 때였다.
“……?”
그저 막무가내로 날뛰는 줄로만 알았던 마력이 특정한 방향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세라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멀리, 그녀의 곁을 떠나 불타 버린 숲을 넘어, 아주 먼 곳을 갈망하듯 뻗어 나갔다. 그러더니 세라가 명령할 때는 꼼짝도 하지 않던 검은 폭풍에 서서히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세라는 그 흐름을 막을 수도, 바꿀 수도 없었다.
하늘 높이 뻗쳐 오른 마력이 세상을 가로지를 기세로 뻗어 나갔다. 그렇다고 세라를 버리고 떠나가지 않았다. 명확한 목적을 지닌 마력은 그녀에게 단단히 뿌리를 두고서 멀리, 하지만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세라는 마력이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녀를 감싼 검은 폭풍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속삭임이 강해질수록, 세라의 가슴으로 까닭 모를 감정들이 들이쳤다.
그건 온통, 어둡고 서글픈 감정뿐이었다.
세라는 폭풍이 싣고 온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속절없이 그립고, 애달프고, 슬프고, 괴롭다가, 종국에는 화가 났다.
그 일련의 흐름은 검은 방의 에녹을 마주했을 때와 아주 유사했다.
그래서 알았다. 자신이 지금 다른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때는 자신이 에녹의 내면 세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나 지금은 그저 현실이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수록, 세라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힘을 느꼈다. 검은 폭풍이 속삭이는 알아듣지 못할 목소리가 더 강해졌다. 가라고. 어서 가 버리라고.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 저곳이라 충동질해댔다.
충동과 함께 들이친 제 것이 아닌 감정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이성을 앗아 갔다. 강한 유혹을 느낀 세라는 아주 잠깐, 이대로 폭풍이 시키는 대로 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서서히 총기를 잃은 눈동자에 탁한 기운이 서렸다.
촤르륵!
그러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뻗어 나온 황금빛 사슬이 그녀의 등줄기를 찰싹! 내려쳤다. 더럽게 아팠다. 화들짝 놀란 세라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아악!”
그리고 한꺼번에 밀려드는 통증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몸서리쳐지는 통증에 세라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거세게 휘몰아치는 폭풍에 흩날려 소리가 되지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세라는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온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괴로웠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특히나 폭주하는 회로가 위치한 심장께가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끓어 오른 열기에 목 안쪽이 바짝 말라붙었다. 입을 열 때마다 탄내가 올라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이성이 까무룩 꺼져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고통이 너무나 생생한 나머지 속삭임에 홀릴 일은 없다는 거였다.
이 불을 꺼야 한다.
하지만 이미 통제를 벗어난 마력과 회로를 되돌리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막다른 길목에 몰린 본능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두 눈을 크게 홉뜬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사용하려 마력을 끌어왔다.
억지로 흐름을 비틀어 멈추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그냥 앓는 걸로는 끝나지 않겠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런 간단한 계산을 할 만한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창백하게 질린 입술이 첫 숨을 내뱉은 순간.
“그러지 마.”
별안간 끼어든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등 뒤에서 세라를 끌어안은 상대가 단호하게 속삭였다.
“지금 ‘목소리’를 쓰면, 부작용이 오잖아.”
“……!”
방해받은 세라가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그녀는 제 얼굴을 반 이상 가려 버린 손을 떼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당장 이 손을 떼어 내고 ‘목소리’로 불을 꺼트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으으읍! 으읍!”
대중없이 긁어내린 손톱이 세라의 뺨은 물론 단단한 손등에 붉은 자국을 만들었다. 고개를 비틀고, 발버둥을 치고, 손으로 긁어도 봤지만 ‘목소리’를 틀어막은 손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순조롭게 폭주하고 있는 회로로 인해 고통은 가중되었다.
“……!”
세라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닫혔다. 그것을 견디다 못한 세라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쉬이-. 괜찮아.”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등 뒤의 존재는 그녀를 강하게 옭아맸다.
붙잡고 끌어당겨 기어이 제 품에 가두었다. 그러고는 아파서 몸 둘 바를 모르는 그녀의 귓가에다 대고 마저 속삭였다.
내가 고쳐 줄게. 그러니까 겁먹지 마.
다정히 속삭이는 목소리는 그러지 말라 단호하게 자를 때와는 영 딴판이었다.
고집스럽게 입가를 틀어막고 있던 무정한 손이 겁먹은 짐승을 달래듯 차갑게 식은 코끝을 살살 문질러댔다.
놀랍게도 그 장난 같은 손길을 받을수록 고통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저 내달리던 회로가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덕분에 끝 간 데 없이 차오르던 작열감이 일순 멈칫했다.
“괜찮아. 세라. 괜찮아.”
다정한 목소리가 연신 그녀를 얼렀다.
그 말엔 마력도 담겨 있지 않았으나 분명한 힘이 있었다. 듣고 있자면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로가 더 속도를 늦추었다.
온몸에 번진 불길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고통이 수그러들자 제 몸에 상처까지 내 가며 몸부림치던 세라도 얌전해졌다.
폭풍이 가라앉는다.
허락 없이 집을 나간 마력들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회로가 멈췄다.
세라를 산 채로 불태우던 끔찍한 고통도 멎었다.
“…….”
모든 것이 멈췄는데도, 그녀를 쓰다듬는 손길은 그대로였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길은 머리로 옮겨 가 있었다.
헉, 헉, 세라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손길에 뾰족하게 서 있던 경계심이 녹아내렸다.
가쁘게 올라붙었던 호흡이 늘어졌다.
세라는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몸에 힘을 빼고 자신을 감싸 안은 품속으로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옳지.”
그녀가 완전히 몸을 맡기자, 상대가 기특하다는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칭찬하듯 톡톡, 장난스럽게 뺨을 두드렸다. 어느새 입을 틀어막던 손은 사라지고 없었다.
등 뒤의 존재에게 완전히 몸을 맡긴 세라가 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에녹.”
그러자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붉은 머리통이 쏙, 하고 고개를 들이밀어 불렀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라가 눈을 깜빡였다.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툭, 떨어지며 시야가 맑아졌다.
그 너머로 비로소 말간 얼굴이 비쳤다. 물기 어린 자수정 빛 눈동자가 점층적으로 얼굴을 훑었다.
그리하여,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침내 하나로 얽혔을 때.
“안녕. 세라.”
은은한 미소를 지은 에녹이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