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old my country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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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따분한 표정으로 세라의 일행들을 살폈다.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굴고 있지만, 그래 봤자 내세울 거라곤 몸이 다 부서진 영웅 하나와 회로가 찢겨 나간 사막의 마법사. 남의 것을 훔쳐 진리를 들여다보는 어설픈 인간이 전부였다.
그 외에 나머지는…….
“…….”
남자가 세라의 뒤쪽에 늘어서 있는 시그너스 길드원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안대 때문에 실제로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으나, 남자가 두르고 있는 형형한 기운이 충분히 위협적으로 그들을 짓눌렀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 인간들은 벌써부터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저런 하찮은 놈들로 머릿수를 채워 봤자 위협은커녕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았다.
만약 세라가 심연에서 탈출하여 그대로 도망쳤다면 남자는 굳이 쫓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게 그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것을 걷어차고 선택한 게 고작 이런 결말이라니.
아직 더 잃어 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다.
남자는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제 딸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아이가 저토록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자신을 향한 원망? 복수심? 아니면 에녹 소서에게 배운 알량한 정의감? 무엇이 되었든 남자는 저 개미 같은 존재가 마법사가 눈을 뜰 공간에 공존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가엾구나.”
그러니 모조리 이 세상에서 지워 주겠다.
명료한 해답에 도달한 남자가 시작부터 가장 강력한 저주를 쏟아 냈다. 그의 회로를 순환한 ‘목소리’가 적들을 향해 명령했다.
죽어.
공기 중을 타고 흐른 무형의 죽음이 겁도 없이 그의 제단에 기어들어 온 인간들을 향해 느리게 퍼져 나갔다.
“모두, 위치로!”
마커스의 외침에 길드원들이 넓게 산개했다. 무기를 쥐고 자세를 갖춰 보지만, 어떠한 힘도 없는 쇠붙이로는 남자의 저주를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난생처음 정면으로 마주하는 짙은 저주에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지?
남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그때, 누군가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
세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남자가 엮어 낸 죽음이 제 눈에는 보이는 것처럼.
그녀는 마법사가 된 이후에 자신의 회로를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마법사로서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도 배우지 못한 채였다. 그런 상태로 곧장 전투에 임하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세라의 시선이 죽음에 닿자 영혼에 새겨진 마력 회로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보인다.’
신기한 일이다.
남자의 ‘목소리’와 그 안에 새겨진 수식이 훤히 읽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칠흑같이 새카맣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세라가 기민한 눈으로 저주를 읽어 냈다.
읽어 내면 읽어 낼수록 그곳에 쓰인 모든 것이 명료하게 이해됐다. 저 저주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위력은 어떠한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 이후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냥 다, 알 것 같았다. 그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였다. 남자의 저주는 증오와 분노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건 자신도 불과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힘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더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세라가 저주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확신했다.
……자신은 저것을 지배할 수 있다.
세라의 회로가 전율했다.
그녀의 두 눈이 별빛으로 물들고, 회로를 순환한 마력이 마법을 완성시켰다. 마법사의 손을 떠난 마력이 부드럽게 허공을 뒤덮으며 뻗어 나갔다.
봄바람과 닮은 그 마법이 날아드는 저주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그물처럼 죽음을 낚은 세라는 그곳에 새겨진 의지를 붙잡아-.
뒤집는다.
사라져.
세라의 의지대로 뒤엉킨 죽음이 목적지에 닿기 전에 눈처럼 녹아내렸다.
“……!”
그에 남자의 얼굴에 이채가 스쳤다. 허무하게 녹아 사라지는 자신의 저주를 감지한 그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광범위하게 쏘아 보냈던 ‘목소리’의 파훼. 이런 건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현상이었다.
“서,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이런 마법을 태어나 처음 써 보는 세라도 자신의 성공에 당황하고 있었다. 본인이 쓴 주제에 당사자가 놀라는 모습이었다.
“세, 세라가 진짜로 성공했다!”
“사실 좀 의심하고 있었어!”
“살았다!”
그 반응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녀를 믿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줄 알았던 시그너스 길드원들이 십년감수했다는 얼굴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떠들썩한 군중의 틈바구니에서 에스텔라가 마력구를 꺼내 들었다.
그가 그곳에 미리 새겨 놓은 마법을 발동하자, 신비로운 빛 가루가 시그너스의 위로 내려앉았다.
“가자!”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사기가 바짝 오른 길드원들이 남자를 향해 돌격했다.
와아아아! 우렁찬 고함이 협곡을 가로질렀다. 말도 타지 않고 맨몸으로 달려드는 그 속도가 비이상적으로 빨랐다. 에스텔라의 마법이 그들을 도운 것이다.
“…….”
남자는 황당한 심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육체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축복을 받았다고는 하나, 저들이 붙들고 있는 날붙이로는 그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가 없었다. 저렇게 떼로 몰려들어 봤자 남자의 눈에는 한낱 개미 떼보다 못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서는 걸까.
주제도 모르고.
낮게 혀를 찬 남자가 검은 창을 소환했다. 허공을 수놓은 수십 개의 창날이 북풍과도 같이 협곡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무리를 겨누고는.
비처럼 쏟아졌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적들을 모조리 꿰뚫기 위해 추락하던 저주가 시간이 멈춘 듯 허공에 얼어붙었다가.
“……?”
바로 다음 순간, 반대로 뒤집혀 남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남자는 그 찰나에 새로운 저주를 불러들여 되돌아오는 공격을 막아 냈다. 허공에서 부딪힌 마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마력과 마력이 반발하여 이는 폭발로 인해 남자의 주변에는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 안에 갇힌 남자는 방금 전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이해했다.
자신의 저주가 읽히고 있다. 그냥 읽어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에 스며들어 지배하고 있었다.
성가신 능력을 손에 넣었군.
앞으로 검은 창은 물론, 저주를 빚어내 쏘아 낼 때마다 조금 전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될 거다. 지금부터 투사체는 쓰지 못한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남자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누군가 남자가 잠겨 있던 연기를 깊게 베어 냈다.
겉보기엔 허를 찌르는 기습이었으나 남자는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해 냈다.
번뜩이는 검날이 허공을 가르자 자욱하던 연기가 단숨에 갈라졌다. 깨끗해진 시야로 새파란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어느새 남자의 지척까지 다가온 스노우가 검을 바로 쥐며 소리쳤다.
“지금!”
그의 외침에 남자의 등 뒤로부터 빠르게 살기가 다가왔다. 남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림자를 세워 그것을 막아 냈다. 카앙! 단단한 벽에 부딪힌 검날이 튕겨 나가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그때까지도 전장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그치지 않았다.
“왼쪽!”
그의 신호에 맞춰 어김없이 공격이 들어왔다. 남자는 이번에도 그림자만 움직여 공격을 튕겨 냈다. 그것을 필두로 사방에서 공격이 쇄도했다. 스노우와 길드원들은 남자 하나를 두고 쉴 틈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남자가 압도적으로 불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진실은 그 반대였다.
남자는 제게 몰려드는 인간들을 보며 일말의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고, 남자가 뿜어내는 태산 같은 존재감에 언제나 위기감을 느끼는 건 그들이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고동에 남자가 눈살을 찌푸린 찰나, 스노우의 검이 찔러 들었다.
카앙!
그의 공격은 이번에도 가로막혔다. 스노우가 질린다는 눈으로 제 검을 막아 낸 남자를 바라보았다. 새카만 저주를 두른 팔이 아무렇지 않게 검을 상대하고 있었다. 힘과 힘이 맞닿아 불꽃이 튀었으나, 스노우의 검은 남자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했다.
남자가 그런 스노우를 향해 무미건조한 경고를 내뱉었다.
“네 수명으론 날 들여다볼 수 없다. 인간.”
불길한 마력이 깃든 그림자가 꿈틀거린다.
“으아악!”
“커헉……!”
넓게 영역을 펼쳐 낸 그림자로부터 사나운 쐐기가 솟아났다. 막을 새도 없이 가시에 꿰뚫린 사람들이 한순간에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이런, 미친-.”
남은 사람은 스노우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가까스로 피한 터라 얼굴에 길게 생채기가 남았다. 남자는 그가 정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곧장 다음 공격을 가했다. 스노우의 발밑까지 늘어난 그림자가 무작위로 쐐기를 쏘아댔다.
사냥꾼과 사냥감이 뒤바뀌었다.
귀찮은 벌레들을 모조리 떼어 낸 남자는 집요하게 스노우를 노렸다.
전장에 새카만 그림자와 푸른 눈이 한데 얽혀 휘몰아쳤다. 저주를 담은 쐐기가 육체를 꿰뚫어 버릴 기세로 뻗쳐 나올 때마다, 스노우는 아슬아슬하게 회피해 목숨을 이어 나갔다. 한 방에 나가떨어진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제법 끈질기게 남자를 귀찮게 했다.
“한 치 앞밖에 보지 못하는 자가.”
나지막이 읊조린 남자가 불시에 힘을 키웠다.
그림자가 폭발적으로 이글거리며 사방에서 빈틈없이 쐐기가 솟아올랐다. 스노우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으나,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공격도 있는 법이었다.
“크읏……!”
남자의 쐐기가 기어코 스노우의 옆구리를 베어 냈다. 부상을 입은 스노우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검은 창을 소환한 남자가 덫에 걸린 짐승 꼴이 된 그의 심장을 직접 꿰뚫으려 할 때였다.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사나운 바람이 남자의 뺨을 스쳤다. 섬뜩한 살기를 느낀 남자가 스노우를 향해 휘두르려던 창의 방향을 바꿔 그것을 막아 냈다.
충돌한다.
강한 힘에 부딪힌 남자는 한참이나 뒤로 밀려난 후에야 멈춰 설 수 있었다. 끼기긱. 끼긱. 무엇으로도 흠집 나지 않았던 단단한 저주에 균열이 인다. 찬란한 빛이 발밑의 그림자를 지워 내며 남자를 위협했다.
남자는 감히 자신을 물러서게 한 자를 노려보았다.
“에녹 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