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36
136 임전태세(臨戰態勢)
꽤나 시끌벅적했던 가족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금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미뤄뒀던 글쓰기에 매진하며 동시 연재하던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에 집중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 벌써 완결이라니!?
– 더 없이 깔끔하기는 한데···.
– 외전! 외전이라도 제발 써주세요!
독자들의 애원과도 같은 댓글이 달렸지만, 아쉽게도 당분간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차일피일 미뤄뒀던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
“이번에 니시오 씨가 보내온 자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지에서 출판된 네 두 작품 전부 애니화가 결정됐어.”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축하한다. 인마.”
“감사합니다!”
나는 큰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며, 회의실에 있는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 작품이 만화를 넘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다니. 이건 모든 웹소설 작가들이 바라 마지않는 꿈 같은 이야기였다.
웹툰화까지는 몰라도, 애니메이션은 내수 시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지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설마 두 작품 모두 성공할 줄이야···.’
그 주인공은 이전에도 언급되었던 과 였다.
먼저 일본에서 명성을 날린 의 애니메이션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낙수 효과를 받은 덕이겠지.
이유야 어쨌건 나에게는 무척이나 가슴 벅찬 이야기였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희귀한 사례였던지라 인지도 역시 크게 올랐고.
[김하늘, 새로운 하늘을 열다.] [국내 웹소설, 일본 시장으로 활력 되찾나?] [점점 커져가는 웹소설 시장, 아직도 블루오션!?]눈치 빠른 기자들이 찌라시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고, 나의 이미지 메이킹을 전담하는 강별 역시 활발하게 움직였다.
–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김서방, 내가 책임지고 너를 한국의 ‘토리야마 아키라(드래곤볼 작가)’로 만들어주마!
니시오와 최진철이 일을 잘한 건지, 아니면 강별이 물밑에서 도운 덕분인지. 제작사와 성우진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빵빵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힐링물의 특성상 초대박까지는 어렵겠으나, 애니메이션 시장에 발을 뻗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니까.
“추가로 네가 이번에 완결 낸 작품들도 전부 번역에 들어갔다. 애니 성적만 무난하게 나오면 그것들도 충분히 가능성 있어.”
“즐거운 소식밖에 없으니까 괜히 불안하네요.”
“···인마, 부정 탈 만한 소리는 꺼내지도 마라. 우리 큰손께서도 굉장히 기대하고 계시니까. 이번에도 그분 인맥 덕에 수준 높은 번역자를 빠르게 구할 수 있었어.”
“이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대체 그 후원자라는 분은 어떤 사람이에요? 저도 나름 이 회사의 개국 공신인데 얼굴 한 번 못 봤네.”
“내 대답이 뭔지는 말 안 해도 알지?”
“비밀이라고요?”
“그래.”
최진철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전에도 몇 번인가 물어보기는 했는데, 그가 죽어도 말 못 한다며 입을 꾹 다물었다.
심지어 최측근인 박도진에게조차 말하지 않는다는 걸 보니 아주 높은 분이신 것 같은데.
“계약서 내용 중 1번이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해달라는 거야. 심지어 사장인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태고.”
“예? 직접 보신 거 아니었어요?”
“그쪽 변호사 하고 통화 몇 번하고 계약서에 사인한 게 전부야. 술김에 말해주고 싶어도 그분의 이름이나 성별조차 모른다.”
“···위험한 거 아니에요?”
최진철의 말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세상에 그런 형편 좋은 조건이 어디 있단 말인가. 허나 그는 되려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이 바닥에서 구른 짬밥이 몇 년인데. 계약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독소조항은 하나도 없었어. 다만.”
“음?”
“후원자가 네 광팬이래.”
“···그것참 훌륭한 핑계네요.”
당시 내 작품은 양산형 공장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런 나의 광팬이라는 이유로 다 무너져가는 출판사를 일으킬 만한 거액을 지원한다고?
그 정도로 돈 많고 미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분명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돈세탁하는 거 아니에요?”
“야, 넌 너무 의심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비트코인을 이용했겠지. 당시 우리 상황을 생각하면 원금 회수도 장담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말이나 되냐?”
“스읍···. 그래도 뭔가 냄새가 나는데.”
“좋은 게 좋은 거지. 덕분에 우리도 집안에서 어깨 쫙 펴고 다니잖냐. 도진이는 이번 인센티브로 부모님한테 안마의자까지 사드렸댄다.”
“그래요?”
스윽-
자연스럽게 옆으로 눈을 돌렸더니, 회의실 한쪽에 앉아있던 박도진이 살짝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김구름 때문에 회사에서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밖에서는 서로 그냥 형 동생이나 다름없는 관계.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최진철의 입에서 박도진에 대한 칭찬이 나오는 걸 보면,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항상 미안하다. 매제.’
우리 집안의 미친년과 결혼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동생. 허나 그가 아니면 김구름의 성격을 감당할 만한 인재가 없겠지.
그렇기에 나는 박도진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동시에, 필설로는 형용하지 못할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내가 최대한 챙겨주마.’
마음속으로나마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화끈한 쇼핑이나 한번 시켜줘야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최진철이 의문 섞인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벌써 가려고?”
“중요한 이야기는 전부 끝났으니까요. 나머지는 우리 대표님과 여기 계신 직원분들에게 믿고 맡기겠습니다.”
“누가 작가 아니랄까 봐 말은 그냥···.”
“요 앞에 있는 한우 집에 미리 결제해뒀습니다. 넉넉하게 긁어뒀으니까 다 같이 간단한 회식이라도 하십시오.”
“와아아아-!!”
한우를 쏜다는 말에 회의실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법인 카드로도 맨날 삼겹살이나 무한 리필을 간다더니 진짜였나 보네.
“거. 직원들 좀 챙겨주시죠?”
“쟤들이 야근하는 이유 중 태반은 너 때문이거든? 이쪽은 내가 알아서 잘 챙기니까, 괜히 잔소리 늘어놓지 마라.”
“저거 거짓말이에요!”
“믿지 마세요. 작가님!”
“아니, 근데 이 자식들이···!”
꺄아아-
최진철이 짐짓 화가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직원들이 장난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얼마 전에 들어왔다는 말단 직원도 끼어있는 것을 보니, 최진철이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긴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그럼 식사 맛있게들 하십쇼.”
“왜 같이 안 가고?”
“오후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요.”
“···너한테 친구가 있었어?”
“······.”
진심이 묻어나는 듯한 말투에 나는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랬더니 헛기침을 하며 얼른 도망치는 최진철.
“커허흠! 아무튼 고기는 잘 먹으마!”
확실히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사람이다. 치고 빠질 타이밍을 정확히 안단 말이지.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가며 시끌벅적했던 회의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허나 그 안에는 아직 두 사람이 남아있었으니.
“도진아.”
“예, 형님.”
“너 이번에 휴가받았다며?”
“···그렇습니다.”
“내 동생이랑 일정이 겹치는 것 같더라?”
“······.”
꿀꺽-!
그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 귓가까지 울려 퍼졌다. 딱히 겁을 줄 의도는 아니었으나, 최진철이 알아서 자세를 바로 했다.
앞서 도진이를 최대한 잘 챙겨주겠다고 다짐한 나였으나, 순간 김구름의 영수증 목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도진아.”
“···예.”
툭툭-
박도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실시간으로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으나, 안타깝게도 여기서 말을 멈출 수는 없다.
“김구름의 오빠이기 전에 나도 남자다. 게다가 너희 모두 성인이니까, 두 사람의 합의하에 벌어지는 일에 간섭할 생각 없다.”
“···감사합니다.”
“사고만 치지 마라. 물론 아무리 조심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그래도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명심하겠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박도진의 모습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경고는 충분하겠지. 이제는 당근을 건네줄 시간이다.
“자, 이거 받아라.”
“이게 뭡니까?”
“안에 용돈 좀 넣어뒀다. 그걸로 둘이 맛있는 거 사 먹고. 즐길 수 있는 건 전부 즐기고 와. 나한테 따로 결제 내역이 날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괜히 눈치 보지 말고.”
“···형님!!”
박도진은 내게서 카드를 넘겨받으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나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으며 회의실을 나섰다.
“먼저 가보마. 고생하고.”
“조심히 들어가십쇼!”
허리를 굽히며 싹싹한 인사를 건네는 박도진의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줄기의 생각.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으음-
그동안 강산과 강태양에게 했던 행동들을 되돌아보며, 새삼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 *
“바다 씨! 여기···.”
카페에 앉아 강바다를 기다리던 나는 입구로 들어서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려던 찰나에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평소에도 넘치도록 아름다운 강바다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힘을 더 많이 준 건지, 정말 차원이 다른 여신의 포스가 느껴졌기 때문.
“···우와. 연예인인가?”
“···혼자 그림체가 다르네.”
“저 사람 강바다잖아! SNS 여신!”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페 안을 쭉 둘러보던 강바다는 나를 발견한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방금 웃는 거 봤냐?”
“어, 갑자기 인생의 현타가 오네.”
“다행이다. 나만 그런 줄 알고 억울할 뻔했어.”
주변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렸다. 여기 앉아있는 모두가 내 사람을 칭찬하고 있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미안해요. 너무 오래 기다렸죠?”
“아뇨, 정도 방금 왔어요.”
“에이, 거짓말하시기는. 한 시간이나 늦게 왔는데요? 예상했던 것보다 머리 만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정말 미안해요.”
“그런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시면 싫어도 이해할 수밖에요. 항상 그랬지만, 오늘은 정말 눈으로만 보기 아까울 정도네요.”
피식-
강바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따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으나 내 반응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
“근데 이러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뭐가요?”
“결혼식에서 신부보다 눈에 띄면 실례잖아요.”
“에이, 설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호호-
강바다가 미소를 지었다. 이에 나 역시 웃음으로 답했으나, 겉모습과는 다르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농담하는 거 아닌데.’
지난 삼자대면 이후 두 사람의 사이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후로 몇 번인가 나를 빼고 둘이서 따로 만나기도 했고. 결혼식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강권한 것도 강바다 쪽이었다.
‘···사이 좋은 거 맞겠지?’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분위기가 흐른다는 것 또한 명확했다.
그것이 오랜 라이벌 관계인, 대한 그룹과 백화 그룹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뭔가 심상치 않단 말이지.’
단순히 화장이나 옷차림뿐만 아니라,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묻어나오는 품격이 평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그러는 와중에도 예의에 어긋날 정도로 과하게 꾸미지는 않은 것이 중요 포인트랄까.
만약 소설에서 이 상황을 표현한다면 ‘임전태세(臨戰態勢)’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겠지.
‘···부디 오늘은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곧 있으면 시작될 백장미의 결혼식. 폭풍전야처럼 내 주변을 맴도는 미묘한 기운에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