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23
023 네 남친이라고 다를 것 같니?
“예쁘네.”
“예쁘군요.”
“매일 새로워.”
연구소 MT를 가는 날.
버스 앞에 모인 남자들이 강바다를 곁눈질하며 입을 모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녀의 사복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도 반쯤 여신 같은 존재였지만, 항상 와이셔츠에 가운을 걸친 모습만 보다가, 산뜻한 사복을 보니 이게 또 새로웠다.
“저쪽도 좋네요.”
“음. 아주 훌륭해.”
“바다 씨랑은 반대되는 느낌이죠.”
강바다가 고풍스러운 귀족 집안 자제 같은 느낌이라면, 고소미 쪽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귀여운 소녀 같은 이미지다.
원래는 강바다 원톱 체재였지만, 고소미가 들어오면서 구도가 미묘하게 변했다.
사적인 자리에 잘 참여하지 않는 강바다에 비해, 고소미는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좋았으니까. 술자리에서도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무래도 바다 씨는 접근하기가 어렵지. 외모도 그렇지만, 항상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데도 뭔가 벽이 느껴진달까.”
“고백했다가 까여서 그만둔 선배들도 많고.”
“너희들도 조심해라. 더 나가면 힘들다.”
“남친 생겼다잖아요.”
“그러니까 더 조심하라고.”
그때부터 남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강바다는 누가 봐도 연예인급이다. 그런 그녀와 사귀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재벌 3세?”
“그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야지.”
“연예인 아닐까요?”
“그랬다면 이런 자리는 안 나오지 않을까? 스캔들 때문에라도 소속사가 반대할 텐데.”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질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오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출발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기는 했지만, 그림자도 안 보이는 걸 보니. 그다지 여유로운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보다 전 커피가 땡기네요. 원래 이 시간이면 랩에서 두 잔은 마셨을 텐데.”
“챙겨온 사람 없나?”
“믹스는 가져왔는데, 당장 주변에 물 끓일 곳이 없어서요. 학관 다녀올까요?”
“아냐, 시원한 거로 먹고 싶다. 가는 길에 잠깐 커피숍에 들러서···. 음?”
우우웅-!
어디선가 들려오는 배기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올 사람은 이미 다 왔으니, 남은 건 강바다의 남자친구뿐. 모두의 눈빛에 호기심이 어렸다.
“···거봐요. 재벌 3세는 기본이라니까.”
“뭔지는 몰라도 일단 비싸 보이네.”
“포르쉐 911. 2억쯤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 전세보다 비싼 걸 굴리고 다니는군.”
차가 멈추고.
김하늘이 문을 열고 내렸다.
그 순간 옆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분이 바다 씨 남친!?”
“대박, 스타일 뭐야. 모델이야?”
“이러니까 소개팅도 전부 거절하지!”
차가 등장할 때부터 이미 반쯤 넘어갔던 여자 연구원들은, 김하늘을 확인하는 순간 텐션이 극도로 상승했다.
MT라는 상황에 걸맞게 캐쥬얼하면서도 깔끔한 복장. 무엇보다 강바다와 비슷하게 톤을 맞춘 ‘시밀러룩’이라서 더 눈에 띄었다.
“···최악이네요.”
“더러운 세상 같으니.”
“분명 꼬추는 작을 거야.”
“그래, 그게 밸런스지.”
차에서 내린 김하늘은 강바다의 옆에서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고, 자연스레 시선이 남자들에게까지 닿았다.
눈이 마주친 그는 가볍게 목례를 건네더니, 별안간 조수석 문을 열고 다량의 커피를 꺼냈다.
“센스도 있네요.”
“저도 커피···.”
“야! 넘어가면 안 돼!”
“넘어가긴 뭘 넘어가요. 애초에 적도 아닌데 왜 날을 세우고 있습니까. 어린애들도 아니고.”
“그래도, 인마! 어!?”
그때 문득 김하늘이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직후 양손에 커피를 가득 들고 남자들을 향해 다가오는 김하늘.
“처음 뵙겠습니다. 김하늘입니다. 진철 씨하고 준환 씨, 그리고 주헌 씨 맞으시죠?”
“엥, 저희 이름은 어떻게···?”
“사진으로만 뵙다가 이제야 말을 나누네요. 바다 씨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항상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라고.”
“커허흠-! 그랬습니까?”
김하늘이 연구원의 이름과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 있자, 다들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이때를 노렸다는 듯 김하늘이 커피를 내밀었다.
“주문은 미리 넣어놨는데, 오전에는 사장님 혼자 하시는 모양이더라고요. 덕분에 생각보다 늦어졌네요. 죄송합니다.”
깔끔한 사과와 함께 커피를 나눠주는 김하늘. 얼떨결에 커피를 나눠 받은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빨대에 입을 댔다.
연구원들의 기름과도 같은 커피이기에. 자연스레 맛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커피든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
“이거 설마 ‘아트21’인가요?”
“역시 바로 알아보시네요.”
“···이런 세상에.”
가장 먼저 입을 댄 커피 중독자가 기함을 토하자, 사람들이 의문 섞인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그게 뭔데?”
“유명한 핸드드립 커피점입니다.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데, 그때그때 들어오는 고급 종 원두를 사용해서···.”
“간단하게.”
“한 잔에 24,000원입니다.”
“···이런 세상에.”
간단명료한 설명에 너도나도 빨대를 입에 물었고, 이후 입안을 감도는 특유의 감칠맛에 다들 표정이 풀렸다.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날수도 있구나.”
“이렇게 비싼걸···.”
“어떻게든 여러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준비했는데,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김하늘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적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결국 남자들도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한편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고소미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썼다.
‘뭐야, 진짜였잖아?’
고소미는 평소에 강바다의 행실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경계’한다고 하는 편이 맞으리라.
말을 걸면 항상 웃으면서 대답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거리감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자기는 얼마나 잘났다고 도도하게 구는 건지.
그런데 최근 강바다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온종일 연구만 하던 사람이 휴대폰을 보는 일이 잦아졌고, 종종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사람들을 상대할 때 짓는 접대용 미소와는 명백히 다른 진짜 웃음. 도도한 강바다를 미소 짓게 만든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평범하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드라마 주인공도 아닌데, 등장할 때부터 시뻘건 스포츠카를 끌고 나타날 줄이야.
외모도 준수하고, 스타일은 흠잡을 곳이 없다. 심지어 언변도 나쁘지 않아서, 커피 한잔으로 금세 연구소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소미 씨는 커피 안 마셔?”
“제가 속이 좀 안 좋아서···.”
“아, 그러고 보니 소미 씨는 나랑 주기가 비슷했지. 생리대는 넉넉하게 챙겨왔어?”
“네, 괜찮아요!”
눈치 없이 말을 걸어오는 연구소 직원을 뒤로한 채 고소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선 끝에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강바다와 김하늘이 보였다.
“두 사람 잘 어울리지?”
“···그러네요.”
“바다 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하고 사귈지 궁금했는데. 보는 순간 딱 이런 사람이구나 느낌이 왔다니까. 너무 부럽다.”
“······.”
제 맘대로 떠들어대는 입을 당장이라도 꿰매고 싶었으나, 그래서야 기껏 비위 맞춰가며 쌓아 올린 이미지가 무너진다.
살짝 혀를 깨문 고소미는 애써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가는 수밖에.
‘그래 봐야 남자들은 다 똑같거든.’
고소미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넘어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상대가 훈남이든, 재벌이든 아무런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약간의 노력과 타이밍을 재는 안목뿐. 하물며 고소미는 두 가지 모두를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네 남친이라고 다를 것 같니?’
고소미의 시야가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으로 가득 채워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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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드디어 도착했다!”
“오, 대박. 생각보다 깔끔한데?”
“일단 다 같이 짐부터 내리겠습니다!”
단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로 차를 타고 이동한 강바다와 김하늘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음식은 안쪽으로.”
“그 박스는 여기가 좋겠네요.”
“하늘 씨, 이건요?”
“음. 오후 일정이 체육대회니까 금방 쓸 것 같은데요? 이리 주세요. 제가 한 번에 옮길게요.”
그중에서도 김하늘은 단연 돋보였다. 마치 자신이 MT를 계획하기라도 한 것처럼 능숙하게 사람들을 지휘했다.
“왜 이렇게 능숙해요?”
“대학생 때 과대를 했었거든요.”
“의외네요.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요?”
“장학금 받으려면 교수님께 점수를 따야 하니까요. 접점을 늘리기에 과대만 한 게 없죠.”
“···정말 하늘 씨답네요.”
강바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짐을 옮겼다. 김하늘의 능숙한 지휘로 짐 정리는 순식간에 끝나버렸고, 기세를 몰아 점심 식사까지 이어졌다.
“하늘 씨가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방에서 손바닥만 한 나방이 나왔을 때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걸 표정 하나도 안 변하고 그냥, 팍! 처리해버리는데. 남의 남자친구지만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그런 면에 바다 씨가 반한 건가?”
단 몇 시간 만에 해결사로 자리 잡은 김하늘. 그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자 강바다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근데 두 사람은 어디서 만났어요?”
“응?”
“그렇잖아요. 온종일 연구실에서만 살던 언니가 저런 분을 어디서 만나신 건지 궁금해서요. 아, 혹시 SNS?”
그때 타이밍을 재던 고소미가 슬쩍 끼어들었다. 흥미로운 주제가 등장함에 따라 주변에 있던 모두가 귀를 쫑긋거렸다.
“바다 씨도 SNS를 해?”
“그럼요. 팔로우도 백만이나 돼요!”
“우와,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많잖아?”
“저는 언니보다 훨씬 팔로우가 적은데도, 이런저런 곤란한 메시지가 많이 오거든요. 달마다 얼마씩 돈을 줄 테니까 자기랑 사귀어 달라고도 한다니까요?”
움찔-
강바다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굉장히 미세한 움직임이라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으나, 시종일관 그녀만을 주시하고 있던 고소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어라, 이거 혹시···.’
가볍게 지른 잽이었는데.
강바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목표를 포착한 고소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바다 언니는 그런 거 없어요?”
“나는 메시지를 아예 안 봐서.”
“헤에, 그렇구나. 그럼 하늘 오빠는 어디서 만나신 거예요?”
“···그건.”
강바다가 곤란하다는 듯 눈치를 살폈다. 그를 확인한 고소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동안 쌓아왔던 감각이 그녀에게 확신을 주고 있다. 강바다와 김하늘, 두 사람의 관계는 정상이 아니라고. 이제 그걸 밝혀내기만 하면···.
“보육원에서 이 사람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김하늘이 나섰다.
김하늘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강바다의 손을 붙잡으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주말마다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니거든요. 근데 어느 날 바다 씨가 정문으로 딱 들어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언니가 그럴 시간이···.”
“없는 시간도 쪼개서 온 모양이더라고요.”
“어머, 그래서요?”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눈치챈 고소미가 태클을 걸려고 했으나, 칼 같이 차단당했다.
김하늘은 은근슬쩍 붙잡은 손을 책상 위로 올려놨고, 그를 발견한 연구원들이 호들갑을 떨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보는 순간 딱 ‘이 사람이다’ 싶었죠. 근데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더라고요.”
“우리 바다 씨가 철벽같은 면이 있지. 그걸 어떻게 공략했대요?”
“그래도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던가요? 그날부터 종종 보육원에서 마주쳤고, 이 사람이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꺄아아아-! 어쩜 좋니?”
말하는 도중에도 연신 강바다에게 고정되어있는 시선. 그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꼬옥-
중간에 손을 꼼지락대며 깍지까지 끼는 모습. 그걸 본 연구원들이 좋을 때라면서 서로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이 주제는 안 되겠어.’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와버리면 더 공격해봤자 이쪽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 뻔했다.
지금은 급속도로 커져가는 연구원들의 호감도를 멈추는 것이 우선. 물론 이에 대한 대책도 모두 준비되어 있다.
“식사 다하셨으면 이만 일어날까요?”
“엥, 벌써?”
“슬슬 소화도 시킬 겸 체육대회를 진행해야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죠?”
“그래, 미뤄지면 곤란하지.”
고소미의 말을 누군가 두둔하고 나섰다. 연구소에 있는 남자 연구원 중 한 명으로, 고소미가 미리 떡밥을 뿌려놓은 ‘박승민’이었다.
183cm라는 이상적인 키에, 티셔츠 위로 드러난 탄탄한 근육. 그가 몸을 일으키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일단 기를 좀 죽여놔야지.’
이번 체육대회는 파트너 형식으로, 남녀가 짝을 이뤄 경기를 진행한다. 자신의 선물을 약속받은 박승민은 자신의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늘 씨도 괜찮으시죠?”
“그럼요.”
박승민의 시선에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하늘.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고소미가 슬쩍 박승민의 팔을 붙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 * *
식당 정리가 끝나고.
강바다와 김하늘이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나눴다.
“예상대로 나오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일종의 패턴이죠. 소설로 따지자면 클리셰고.”
푸훗-
툭하면 나오면 소설 비유법에 강바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김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리셰대로라면 우리가 이겨야겠네요?”
“당연하죠.”
“근데 박승민, 저 사람도 만만치 않아요. 전에 듣기로는 취미로 철인 3종 경기를 한다던데.”
대학교 가기 전까지는 운동부 출신이었다는 말도 간간이 들렸다. 김하늘이 부족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쉽지 않은 상대임은 분명했다.
“바다 씨. 제가 학창시절에 이런저런 사건에 잔뜩 휘말렸는데도, 신분증에 빨간 줄 하나 없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음?”
“운동부 선생님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주셨거든요. 이놈은 국가대표를 해야 한다면서.”
무슨 말이지.
잠깐 김하늘의 말을 곱씹어보던 강바다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운동에 한해서는 말이죠.”
허세라며 농담처럼 웃어넘길 만한 이야기였음에도, 강바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김하늘의 눈에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윽, 이건 치사량이야.’
강바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버린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