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91
091 엄마가 아니어도 돼
“별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응? 뭐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바다.
수영복 입고 다 같이 목욕하자고 말한 것 때문에 따로 부른 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짚은 모양이다.
“왜 따로 부르신 거예요?”
“···하늘 씨는 눈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강바다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하영 씨 때문에 그래요?”
“뭐야, 역시 알고 있었으면서. 이번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 예나랑 하영 씨한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했잖아요.”
“뭐, 그렇죠.”
지난밤 김하영은 강바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늦어도 다음 주면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아마도 이게 마지막이겠지.’
안타깝지만 김하영은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 물론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하겠지만 생존확률은 절망적이다.
이건 김하영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겠지. 다만 예나에게 유전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남은 인생을 희생하는 셈.
이에 우리는 그녀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예나와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죠가 아니라! 뭔가 준비해야죠. 이대로 가면 그냥 평범한 여행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급하게 온 터라 자세한 계획은 세우지 못했다. 일단 전경 좋은 숙소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을까란 느낌으로 출발했으니.
물론 목욕탕이랑 캠프파이어처럼 대략적인 맥락을 잡아놓기는 했다만. 그것만으로는 영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으세요?”
“그걸 상담하려고 부른 거예요.”
“그건 목욕하면서도 해도 괜찮지 않아요?”
“아뇨. 전혀 안 괜찮아요.”
찌릿-
순간 강바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저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로 강렬한 시선에 나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챘다.
‘역시 혼욕때문이었군.’
사실 내 기준에서는 워터파크나 혼욕탕이나 단순한 물 온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만, 어감이 영 이상한 것도 부정할 수는 없으니.
“그럼 제가 박 집사님이랑 같이 상의 좀 해볼게요. 바다 씨는 욕탕에서 분위기 좀 살펴주세요. 태리한테도 귀띔해주시고.”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됐어요. 이렇게 불러놓고 저만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같이 고민해 봐요.”
완곡히 돌려 내 제안을 거절하는 강바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의문이 생기기도 잠시, 내 뛰어난 두뇌가 정답을 찾아냈다.
‘그거였구나!’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강바다도 건강한 성인 여성이니 당연히 생리를 하겠지. 평소 표정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지금껏 따로 의식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입욕은 좀 그렇지.’
이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도 여러모로 무리다.
그렇다고 본인 입으로 생리 중이라 말하는 것도 부끄러울 테니, 여기서는 짐짓 모르는 척 장단을 맞춰줘야겠지.
“그럼 둘이서 같이 고민해 봐요. 뭔가 달달한 거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입이 심심한데.”
“응? 어···. 그래요.”
좋아, 정답이로군.
나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내 머릿속에는 수년간 인터넷을 방황하며 쌓은 각종 지식이 쌓여있다. 여자친구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일단 달콤한 간식부터 먹이라 했지.
‘배는 아까 채웠으니까 이번엔 디저트로.’
조금 전에 푸짐한 식사를 했지만, 여자들에게는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
조금 전 요리할 때 살펴본 바로는,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기에 충분한 식재료와 도구들도 준비되어 있었고.
‘콘치즈와 계란빵 정도가 괜찮겠네.’
강바다와 함께 주방으로 이동하는 동안,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과 조리까지 걸리는 시간을 얼추 계산하여 빠르게 메뉴를 추렸다.
“설마 직접 만드시려고요!?”
“네, 당연하죠.”
“···너무 본격적이지 않아요?”
“간단한 거예요. 10분만 기다려 줄래요?”
“으음. 알겠어요.”
잠깐 멈칫하던 강바다는 얌전히 주방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요리하는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다.
‘내 요리에 완전히 길들여졌군.’
후후-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본인은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했으나 오랜 시간 함께한 나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이 기대감으로 물들어있다는 것을.
그동안 강바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요리를 해줬던 터라, 이제는 조건반사처럼 그녀 자신도 모르게 반응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딱히 노린 건 아니었지만.’
요리를 내놓을 때마다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먹어주는 강바다의 호화로운 리액션.
나도 그 특유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요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리만의 일상이랄까.
‘그럼 일단 계란빵부터.’
먼저 둥그스름한 모닝빵의 속을 파내고 안에 계란을 넣어준다.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완성.
마무리로 파슬리까지 뿌려주면 유럽의 브런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계란빵이 만들어진다.
‘다음은 콘치즈.’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콘치즈를 만들었다. 횟집 등에서 서비스로 자주 나오는 콘치즈는 만드는 방법도 굉장히 간단하다.
옥수수 콘이 담긴 통조림에서 물기를 빼내고 살짝 볶아준 후. 마요네즈와 설탕, 소금을 적절하게 넣어준 뒤 치즈를 뿌리면 끝.
“우와-! 비주얼 진짜 대박! 하늘 씨가 요리하는 건 언제봐도 신기하다니까요. 이거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도 돼요?”
“그럼요.”
찰칵찰칵-!
강바다는 휴대폰을 꺼내서 음식을 열심히 찍었다. 최근 새롭게 생긴 그녀의 취미 생활이다.
원래는 SNS를 자주 하지 않던 강바다였으나, 요즘엔 부계정을 만들어서 내가 만든 요리들을 찍어 올리고 있다.
‘이쪽도 팔로우가 상당히 높았지.’
본인이 강바다라는 걸 철저하게 숨기면서, 요리 사진만 주구장창 올리는데도 생각보다 팔로워가 잘 붙었다.
본 계정에는 크게 관심 없던 그녀인데, 이쪽 계정은 뭔가 열심히 관리하는 듯했다. 언젠가 이유를 물어봤더니.
– 자랑하고 싶으니까요.
– 뭘요?
– 제가 남편한테 이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거?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면서 환하게 웃는 강바다의 모습에 당시에는 넋을 놓고 말았지.
그 이후로는 나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도록 비주얼에 조금 더 힘을 쏟는 중이었다.
“어떤 사진이 더 나아 보여요?”
“저는 왼쪽.”
“흐음···. 그런가?”
“일단 먹으면서 생각할까요?”
“앗, 잘 먹겠습니다!”
냠-
강바다는 먼저 콘치즈를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특유의 헤실거리는 표정으로 음식을 만끽했다.
“마시써요!”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요.”
“느에-”
대답하면서도 열심히 입안을 채우는 강바다. 나는 계란빵을 통째로 삼키느라 다람쥐처럼 볼이 빵빵해진 그녀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영 씨랑 예나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거죠?”
“우으음···.”
“고개만 끄덕여도 돼요.”
끄덕끄덕-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바다. 덕분에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는 확실히 알겠다.
다만 고민되는 것은 ‘특별한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이 번지점프라도 해야 되나.
“흐음···.”
꿀꺽-!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나 고민하고 있을 때, 음식을 모두 삼킨 강바다가 입을 열었다.
“저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 * *
“언니 오빠는 안 와?”
“으음. 일이 많으신가 봐.”
“···우웅.”
예나는 뭔가 서운한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를 보며 난감해하는 이태리와 김하영.
다 함께 샤워를 마치고 목욕탕에 입수한 지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김하늘 커플은 좀처럼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두 분이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건가?”
“태, 태리 씨!”
이태리에 말에 당황하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김하영. 이를 지켜보던 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생님. 뜨거운 시간이 뭐야?”
“···예나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에-
원했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예나는 자연스럽게 이태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녀도 슬쩍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
마음이 불편해진 예나는 입술을 삐죽였고, 김하영은 그녀를 달래주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아!”
이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감탄사를 외친 김하영이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펼쳤다.
호기심이 동한 예나의 시선을 받으며 정성스럽게 수건을 접기 시작하는 김하영. 곧 그녀의 손에 그럴듯한 양머리 모자가 완성됐다.
“짠-!”
“우와아아-! 만화에서 봤던 거다!”
완성된 모자를 머리를 쓰자 예나가 눈을 반짝였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하영이 예나에게 손을 건넸다.
“예나도 만들어줄까?”
“예나가 직접 만들래!”
“그럼 선생님이 만드는 법 알려줄게.”
“응응!”
김하영은 다시금 자신의 모자를 풀어 곱게 펼쳤고, 옆으로 쪼르르 달려온 예나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태리도 함께 하면서, 곧 세 사람의 양머리 모자가 완성됐다.
“됐다! 예나 잘했어?”
“응. 우리 예나는 만드는 것도 잘하네.”
엣헴-!
기분이 좀 풀렸는지 자신의 양머리를 매만지며 환하게 웃는 예나. 자연스럽게 김하영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스승님. 수영하자!”
“좋아, 누가 먼저 저기까지 가는지 내기다!”
“앗! 비겁해!”
첨벙첨벙-!
양머리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샌가 예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신나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김하영은 예나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두 분께는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라.’
김하늘과 강바다 입장에서는 자신을 고깝게 여겨도 할 말이 없는데.
정밀진단과 항공권 등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선뜻 제공해줬을뿐더러, 예나와 함께할 시간까지 허락해주다니.
‘정말 다행이야.’
예나를 맡아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라서. 김하늘과 강바다라면 자신보다 훨씬 더 예나를 잘 보살펴 주리라.
‘···엄마도 힘낼게.’
시한부를 선고받은 몸.
희망은 내다 버린 지 오래다.
허나 혹시 모를 유전병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으니,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내야만 한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발병하는 병은 아닌 듯하니, 예나가 지금 자신의 나이가 될 즈음에는 뭔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드디어 엄마다운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예나에게 엄마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지금 와서 욕심부릴 생각도 없고.
“선생님!”
“금방 갈게!”
예나의 부름에 김하영은 몸을 얼른 일으켰다. 이후 그녀는 예나와 함께 수영도 하고 물싸움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엄마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예나의 미소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과분한 행복이라고. 김하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