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1
121. 말본새 보소.2015.12.30.
“금호(金浩)!”
“옙.”
모용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사내가 그의 옆에 나타났다.
분명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모용상이 외치는 순간 등장한 것이다.
“담명을 데리고 나가라.”
“옙.”
터억.
모용상의 지시에 사내는 담명을 어깨에 둘러메고 곧장 사라졌다.
그야말로 삽시간이었다.
‘고수…….’
밀영대 조장 진중악(陳仲岳)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다.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공술을 그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러서거라.”
그때였다.
누군가 다그치는 목소리에 진중악은 고개를 돌렸다.
흰 눈썹을 한, 유독 소매가 늘어진 옷을 입은 복면인이 자신 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주.”
진중악은 급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밀영대주 담귀운은 그런 그를 말없이 보더니 이내 주위를 다시 한 번 훑었다.
“흐음.”
밀영대보다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모용세가 무인들이 주위를 에워싼 형국.
전 방위를 압박하듯 막아서서 그런지 달아날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귀운은 모용상 앞에 멈춰 서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는 모용세가의 공자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수하가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
“해서 말입니다…….”
담귀운은 읍을 해보이며 말을 이었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서로 전력으로 부딪친다면 많은 피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담귀운은 밀영대의 수장답게 지금은 물러서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모용상이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자 그는 말 한마디를 더 던졌다.
“가주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 밀영대는 무공보다는 실전적인 싸움에 특화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혹여 모를까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지금 이곳엔 야월객도 와 있지요.”
담귀운이 이번에는 경고의 의미를 담아 말했다.
“……!”
순간 주위를 둘러싼 모용세가 무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야월객.
과거 적사문 문주가 구대문파 장문인도 죽일 수 있다 장담한 다섯 명의 자객.
현 중원 최고의 자객들이 거론된 것이다.
“야월객이라니…… 이거 큰일 날 뻔했구만. 몰랐다면 정말 큰 피해를 입을 뻔했어.”
담귀운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과연, 야월객의 이름만큼은 모용상이라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이다.
“헌데 밀영대주.”
“예, 말씀하시지요.”
모용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담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눈엔 우리 모용세가가…….”
잠시 머뭇거리던 모용상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만만해 보이나?”
움찔.
순간 담귀운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한가로운 표정이던 모용상의 눈이 어느새 시퍼런 살기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크흠, 할 수 없군요.”
담귀운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조용히 뒤돌아섰다.
하지만 과하게 지었던 미소는 점점 사그라졌다.
“한번 자웅을 겨뤄봅시다.”
*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대치 상황.
어떤 누구라도 움직이는 순간 싸움은 시작될 것이다.
“쳐라!”
시작은 모용상이었다.
그는 신호를 줌과 동시에 직선으로 달려나갔다.
피익-!
담귀운 역시 반응은 빨랐다.
단번에 뒤로 도약한 그는 모용상을 향해 뭔가를 집어 던지며 대응했다.
‘반월 모양의 구슬.’
모용상은 암기를 쳐내려 하다, 순간 손목을 약간 뒤틀었다.
그 후, 반월 모양으로 부드럽게 휘둘렀다.
따앙-!
‘제기랄!’
담귀운의 눈빛에 깃든 이채는 곧장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모용상이 구슬을 베지 않고 후려친 것이다.
구슬 안에 든 독 분말을 눈치챘음이 분명했다.
모용상과 담귀운과의 거리가 이 장 이내로 좁혀질 때였다.
휙. 휙. 휙. 휙. 휙. 휙.
‘매복.’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복면인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도 모용상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단지 공중을 몇 번 더 박찼을 뿐이었다.
“허공답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담귀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경공술이 입신의 경지에 닿아야만 펼칠 수 있다는 허공답보.
그가 계단을 밟듯 공중에서 무려 세 번이나 솟구쳐 오르며 이를 펼쳐 보인 것이다.
‘저놈을 날려버려야 해.’
모용상은 밀영대원들과 검을 맞대어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목표는 오직 밀영대주, 그였다.
터억.
여섯 명의 복면인을 뛰어넘은 뒤 바닥에 착지한 모용상은 담귀운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거의 지척까지 다다른 것이다.
쉭. 쉭.
그러자 이번에도 몸을 숨기고 있던 복면인 두 명이 그의 앞을 가리며 날아들었다.
지이이이잉.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모용상의 도에 희미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쇄액. 쇄액!
오 척에 육박하는 도기(刀氣)가 허공으로 비산하며 복면인의 목 두 개를 삽시간에 날려버렸다.
모용상은 재차 도기를 생성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담귀운을 향해 펼치려 한 것이다.
파바밧!
‘이놈들!’
허나, 모용상은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터벅!
두 명의 복면인이, 이미 목이 떨어진 와중에도 몸으로 모용상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훈련된 살수.
머리가 날아간 후에 쓰러질 것까지 계산하고 몸을 던진 행동.
손에 병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애초에 그들은 자살 대원들이었음을 깨달은 모용상이었다.
*
“응?”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 있던 밀영대 대원이 주위를 살피던 때였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모용세가 무인이 보이지 않았다.
패애애애액.
막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거대한 대도 한 자루가 그의 목을 반듯하게 베고 지나갔다.
슥슥슥.
동료의 죽음을 본 밀영대 대원 세 명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품속에 있던 칼을 꺼내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기척을 느끼자마자 바로 손을 쓴다!’
스슥.
나무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셋은 동시에 몸을 숙이며 적이 있을 법한 곳에 검을 찔러 넣었다.
“……!”
허나, 세 명의 눈앞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위다!”
“……!”
세 명의 대원이 고개를 올리는 순간.
푹! 푹! 푹!
공중에서 무사 세 명이 나타나 각각 그들의 정수리로 검을 쑤셔 박았다.
“컥!”
“크억!”
그와 함께 터지는 신음.
단말마와, 바람 새는 소리, 그리고 간혹 비명이 숲 안을 가득 메웠다.
쾌검(快劍)과 쾌도(快刀), 경공술.
모용세가 사내들의 무공은 밀영대 대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거기다 전략도 능했다.
상대의 시선을 끄는 자들과 공격하는 자들, 이렇게 둘로 갈라진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훈련해 왔을 합격술 또한 그러했다.
‘이, 이것이 모용세가…….’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진시황에 의해 나라가 통일되기 이전, 7개국 중 하나라는 연나라의 왕족으로 나온다.
역사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저력이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현 중원을 대표하는 오대세가를 통틀어 가장 역사가 깊다고 평가받는 이들이 바로 모용세가란 사실을, 살수들은 철저하게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크아아악!
빽빽한 숲 속에 살수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모용세가의 사내들은 은신해 공격하는 밀영대원들의 공격을 너무나 쉽게 막아내며 지체하지 않고 베어버렸다.
그로 인해 나뭇가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밀영대 대원들이 삽시간에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마라!”
한편, 몸을 가릴 수 없는 조금 트인 공간에 다섯 명의 복면인들이 등을 맞대고 있었다.
모용세가 사내들의 압박에 조금씩 물러서다 고립된 것이다.
그들 주위에는 이십 명이 넘는 모용세가 사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차피 너흰 죽는다.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을 기회를 주겠다.”
턱이 튀어나온 장년인 한 명이 다가오며 외쳤다.
모용진천대(募容進天隊)를 이끄는 수장, 위환(爲煥)이란 자였다.
“낄낄낄.”
그의 말에 복면인 중 한 명이 조소를 흘렸다.
척 봐도 살아날 방도가 없는 와중에도 그는 노골적으로 여유를 드러내고 있었다.
위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역시, 사파 따위에게 자비를 베풀어봐야 의미가 없군. 그냥 이참에 일망타진해버려라.”
“일망타진(一網打盡)?”
복면인이 웃음을 그치며 그를 향해 말했다.
“착각하지 마. 그물(網)에 걸려든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야.”
“뭐?”
“다시 말해줄까? 처리당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텅. 텅. 데구르르.
무슨 말인지 몰라 모용위환이 눈살을 찌푸릴 때 그들 밑으로 뭔가가 떨어졌다.
치지직!
그것은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둥근 구체였다. 모용위환은 눈이 찢어질 듯 부릅뜨며 외쳤다.
“피해…….”
콰아아아아아앙!
입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엄청난 폭발이 지축을 흔들었다.
*
끼이이잉-!
찌이이이잉-!
귀가 먹먹하고 지독한 소음만 가득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실 속에선, 깊은 꿈을 꾸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어지럽고 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윽!”
“으으윽!”
밀영대를 밀어붙이던 모용세가 무인들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모용상도 그런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려 이십 장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큰 충격을 받아 비틀거렸다.
정작 폭심에 가까이 있던 밀영대는 오히려 멀쩡했다.
‘저들은 어떻게?’
담귀운, 그리고 그를 호위하고 있던 네 명의 복면인들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며 툭툭 손발의 움직임을 풀고 있었다.
타타탓.
모용상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폭발이 났던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럴 수가.”
거대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폭발이 일어났으리라 짐작되는 구덩이가 보였고, 그 주위에는 참혹한 고깃덩어리로 변한 수십 명의 시신만이 남아 있었다.
팔다리가 날아간 자, 얼굴이 함몰된 자, 살점이 찢겨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자 등 제각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대부분이 모용세가 사내들이란 것이다.
“가주…….”
언뜻, 청각이 돌아오는지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모용상의 귀에 잡혔다.
그는 곧장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위환! 위환아!”
돌부리에 엎어져 있는 사내.
허리 밑이 잘려나갔지만 모용상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모용진천대를 이끄는, 모용세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모용위환.
“벽력탄…… 폭발…….”
“벽력탄이라고?”
모용상은 다시 한 번 주변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리 없다! 내 생에 이 정도 위력의 벽력탄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어! 이런 미친 파괴력을 지닌…… 위환!”
“…….”
“눈을 떠라, 위환! 위화아아안!!”
그러나 그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창졸간에 모용세가의 가장 큰 실력자이자 혈육을 잃은 모용상은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한 애통함에 부르짖었다.
챙! 채챙!
“억!”
“크아악!”
그러나 애도할 틈도 없이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망연하던 모용상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전세가 뒤집혔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던 모용세가의 정예가, 이젠 거꾸로 사냥감이던 밀영대의 반격에 속절없이 쓰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걸 노린 것이었나!’
조금 전 폭탄이 터지며 발생한 충격파에 자신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연히 자신보다 무위가 낮은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쇄쇄액!
쉬이익!
폭탄이 터짐과 동시에 귀를 막고 있었던 밀영대.
이젠 그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크윽! 이놈들!”
채앵!
“크하핫!”
“악!”
콰드득!
최대한 정신을 수습해서 반격을 시도하는 모용세가의 정예들이었으나, 그런 자들도 동귀어진을 서슴지 않는 그들의 대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거기다 정작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따로 있었다.
“피해라, 장훈!”
숲 속으로 들어간 모용상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한 장년인을 향해 외쳤다.
장년인은 뭔가 의아한 듯 주위를 바라보았지만 자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실처럼 가는 은사(銀絲)는 보지 못했다.
스각!
“허억!”
그의 목에서 곧 실금처럼 핏물이 새어 나오더니 곧 동그랗게 뜬 그의 눈이 뒤집어졌다.
지독한 살수(殺手).
과연 담귀운의 말처럼 깊은 숲 속에서 난전이 벌어지자 모용세가는 점점 밀려났다.
분명히 무공과 숫자가 우위에 있음에도, 기세에 밀리고 벽력탄의 충격파로 혼란된 상태이다 보니, 늑대에게 하나하나 목숨을 잃는 양떼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모두 이곳으로 모여라!”
모용상은 사력을 다해 외쳤다.
츠츠츠측.
그의 부름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곳곳에서 사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용상의 옆에 곧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어찌 된 일입니까, 가주.”
모용상은 침묵했다.
조금 전 살수를 뻗친 나무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 것이다.
잠시 뒤 그는 모용진천대 부대장 연호와, 강운을 향해 말했다.
“위환이 죽고 장훈이 죽었다.”
“예?”
“그리고…… 야월객이 왔구나.”
놀란 표정을 한 사내 둘의 눈길이 한곳으로 향했다.
느낀 것이다.
그들 사이로 몸을 은신해 있는 절정의 고수.
농담이 아니라 놈이 정말로 나타난 것이다.
‘벽력탄의 위력이…….’
조금 전 폭발, 그것은 상상을 넘어서는 공포를 자극했다.
그리고.
따닥따닥.
점차 불길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 그들 앞으로 독특한 복장을 한 사내 한 명이 담귀운 옆에 섰다.
야월객으로 짐작될 만한 사내였다.
“돌아간다.”
빠득.
모용상은 이를 갈며 말했다.
“가주, 이길 수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이대로 갈 수 없습니다. 본가의 사람들이 이렇게 죽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누구보다 더 애통한 모용상은 피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그들의 의견을 거부했다.
적들도 그렇지만 불길이 일기 전 미리 봐두었던 소로.
불길이 이곳을 덮어버리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용상은 담귀운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불길 밖으로 나오는 순간! 너희들은 죽을 것이다. 모용세가의 손에!”
그 말을 남기고는 모용세가는 철수했다.
*
“모용세가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담귀운 앞으로 야월객 중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모르겠소. 나도 그 점이 의아하오.”
“그럼 저들도 모르겠군.”
“그렇소.”
몇 마디 나눌 때였다.
갑자기 흑의를 입은 서른여 명이 이곳으로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담귀운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패했소.”
“뭐?”
일 조 조장 일홍은 고갯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위에는 아직 묵객과 장씨세가 호위무사가 남아 있다는 말이오.”
“고작 그 둘에 불명귀와 흑마대가?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일이 우리 예상과는 많이 달랐소. 일이…….”
일홍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흑마대주가 죽었고 조장들은 광휘라는 자의 기세에 밀렸다.
그리고 오는 도중 대원에게 들었던 장련이라는 년이 남긴 말, 이 모든 게 팽가의 노림수라는 것 때문에 대원들이 적지 않게 흔들리고 있었다.
“본 흑마대는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 없소. 대주의 명이요.”
“흑마대주가? 무슨 소리야? 아직 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니 이렇게나 신의가 없는 놈들이었나?”
밀영대주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흑마대 조장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의 같은 소리.’
이들 역시 같은 사파다.
지금은 서로 손을 잡았지만 언제 등 뒤를 찌르고 목을 물어뜯을지 모르는 이들이다.
전력의 약화를 밝힐 수도 없고, 이 모든 일이 음모인지 아닌지 의논해 볼 수도 없다.
‘만약에 음모라면, 이놈들이 가장 유력하니까.’
“뭐 어쨌든, 명이 떨어졌으니 우리는 가겠소.”
죽은 흑마대주의 명을 빙자하며, 흑마대는 화급히 자리를 떠났다.
어이없게 그들을 보던 밀영대와 야월객 중 한 명은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쓸모없는 것들. 피 좀 봤다고 꼬리를 내리다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불명귀나 흑마대나 원래 그런 놈들이지. 싸움에 진 개.”
담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라. 그들을 친다.”
*
“야월객 놈들……. 건방진 줄 알았지만 그토록 오만한 눈길을 보내다니.”
살아남은 흑마대 조장들과 대원들은 미리 약속된 곳으로 몸을 숨겼다.
동굴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미리 봐 놓은 탈출로 중 하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통로 끝, 빛이 새어 나오는 입구가 보일 때쯤 이 조장이 말했다.
“적사문 따위에게 그런 취급을 받다니!”
“오늘 이 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철수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조장들은 저마다씩 한마디를 내뱉었다.
밀영대주와 야월객의 비웃음 섞인 눈빛을 생각하자 얼굴이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일단 복귀가 급선무다. 본문에 돌아가서 대원을 재편하고 재정비해 들어가야 한다.”
일 조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했지만 이 조장은 그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내 정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장씨세가로 움직일 것이다.”
“하인이든 여인이든, 그 집에 사는 것들은 다 죽여!”
“개 한 마리 남김없이 다 쓸어버릴 것이다!”
그 말에 다른 조장들이 동의했다.
오늘 있었던 치욕스런 일에 조장들이 저마다 전의를 불태운 것이다.
“뭐, 너희들에게 그럴 기회가 있을까?”
“……!”
멈칫.
그렇게 달려서 동굴을 빠져나온 순간 앞서 있던 사내가 멈췄다.
뒤이어 한두 명씩 멈추기 시작하더니 밖에 나온 모두가 멈춰 섰다.
입구에서 허허롭게 웃으며 있는 한 노인 때문이었다.
“네놈들은…….”
일홍이 말을 잇지 못했다.
중앙에 선 노인과 함께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열 명의 노인들.
죄다 지저분하게 누덕누덕 기워진 누더기.
그런 허름한 무명옷 어깨 부분엔 다섯 개의 녹색 줄이 매듭지어져 있었다.
놀랍게도 허리춤이 아니라 어깨 쪽에.
“네놈? 하,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말본새 보소.”
“방주, 저놈은 건들지 마쇼! 저놈 주둥이는 내가 찢어버릴 테니까.”
한쪽에서는 찍 하고 침을 내뱉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런 이를 내보이는 노인들을 보고 일홍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개방 십오조…….”
구파일방중의 하나인 개방.
그곳을 대표하는, 십만 거지들 중에서도 최고인 고수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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