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0
120. 네 주위를 봐라.2015.12.25.
“여인답지 않은 담력이군.”
시간이 좀 흘렀을까.
결국 장련에게 칼을 겨눴던 흑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얘기를 좀 들어보지.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네 목숨만은 남겨두지.”
“묵객부터 놔주거라.”
“이년이, 지금 너희가 어떤 상황인지…….”
“어서!”
장련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사내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한 발짝 물러나긴 했지만 묵객을 살려주는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만 놓아주자.”
“그래, 일단 얘길 들어보자고.”
장련의 옷섶에 피가 흥건히 맺힐 때쯤 흑의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스윽스윽.
묵객 주위에 있던 흑의인들이 몇 발짝 물러났다.
순간 묵객은 장련에게 달려가 그녀가 잡은 검신을 빼내 들었다.
“소저, 이렇게 위험한 짓을…….”
“다행이에요, 정말로…….”
장련은 그제야 웃어보였다.
다그치려던 묵객은 힘없이 말하는 그녀가 누구보다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것이 묵객의 가슴속 무언가를 찔러댔다.
“대장님을 부르는 게 좋겠어.”
“내가 가지.”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그들은 일단 판단을 미뤘다. 중요한 상황인 만큼 좀 더 신중히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조금 전 자리를 뜬 사내가 다시 이곳에 나타났다.
“왜 안 가고?”
“오셨다.”
“뭐?”
그때 나무숲으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조장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묵객과 장련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멍청한 놈들. 아직 처리 못 한 거냐?”
가장 먼저 도착한 일홍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곳도 아직 정리가 안 된 것이다.
“조금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들어보시면…….”
한 사내가 나서자 일홍은 미간을 찌푸렸다.
“듣기 싫다.”
“조장…….”
“가자.”
“예?”
“일 조는 철수한다.”
일호는 그 말을 남기고 움직였다.
주위가 우왕좌왕하던 사이 이번엔 다른 조장들이 나타나 말했다.
“뭣들 하느냐. 철수해, 어서!”
그 말에 다들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요?”
“모르겠소.”
장련과 묵객은 서로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뭐가 뭔지 아직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벅저벅.
그러던 그때 꽤 멀리 떨어진 교목 나무 밑에서 익숙한 사내가 나타났다.
광휘를 본 묵객과 장련은 그제야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성공한 것이다.
“꽤 많이 다치셨구려.”
광휘는 묵객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무뚝뚝한 말이었지만 왠지 그 말이 묵객에겐 살갑게 느껴졌다.
“형장에 비하면 요란하기만 했지, 내가 제대로 한 일은 없소.”
묵객은 손을 내저었다.
광휘는 시선을 돌려 장련을 보았다.
“괜찮으시오?”
“네, 무사님.”
장련의 말은 거짓이었다.
검을 가슴에 꽤 깊게 찔러 넣었다.
옷의 가슴 부근이 시뻘겋게 물들어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우리도 갑시다.”
하지만 광휘는 별다른 언급 없이 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에 장련은 놀란 듯 표정이 변했다.
예전에 자신이 알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활활활.
불이 타고 있었다.
처음엔 알아보기 힘든 작은 불이었으나 한 나무를 태우자 삽시간에 수십 그루가 불타버렸다.
건조한 날씨와 바람도 한몫했다.
습도가 낮은 데다 건조해 불길은 잘 사그라지지 않고 바람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수를 쓴 것 같습니다.”
후개 백효의 말에 능시걸은 침묵했다.
그는 눈앞을 뒤덮은 불길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불을 지펴서 증거를 지우려고 말입니다. 물론 이 계획에는 팽가의 의중이 녹아들어 있을 테구요.”
“음.”
능시걸은 신음을 내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불을 지피는 건 지금 사용하기 좋은 회심의 방법이다.
개방의 진입을 막고 동시에 퇴로를 막아 이미 올라간 사람들을 확실히 제거한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사파가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앨 것이다.
그것이 불을 낸 가장 큰 이유였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능시걸은 퇴로를 막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증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개방 방주인 자신이 개입된 사건이다.
증거라면 자신이 살아 있는 증거가 될 것인데 굳이 불을 태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백효가 입을 열었다.
“이젠 어떻게 합니까? 불길이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요지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개방의 병력이 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개방의 고수들이 속속히 몰려들고 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답답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길을 찾아라. 운수산의 모든 진입로를 봉쇄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 길은 분명 마련해 두었겠지.”
백효는 그 말에 뭐라 하려다 그만두었다.
아무리 운수산이 작은 산에 속한다고 하지만 전체를 둘러보기엔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별도의 해결책이 없는지라 그는 부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큰일이구나. 안에 있는 사람 모두 무사해야 할 텐데…….”
능시걸은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광휘가 뛰어나다곤 하나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거기다 지킬 사람도 있지 않은가.
“아, 그러고 보니…….”
백효가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조금 전 삼결 제자에게서 들었던 말입니다. 불이 나기 전에 어떤 대규모의 인원이 운수산에 들어갔다고.”
“누가?”
“그게 말입니다…….”
*
담명은 불길이 이는 숲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진작 운수산에서 내려갔어야 할 그가 아직 중간도 내려가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한담…….”
처음 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땐 불길이 이 정도로 거세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려가지 않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이곳 운수산의 지형 때문이었다.
한번 일기 시작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산 정상으로 가파르게 올라갈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되돌아갔으나 그곳에 광휘는 없었고 죽은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찾는 일이 어려워지자 그는 결국 찾는 걸 포기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헌데, 지금은 자신도 내려가지 못할 만큼 불길이 이렇게 번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더 올라가보자.”
고민하던 담명은 결심을 다시 굳혔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로 보아 산 정상에 옮겨붙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되면 광휘란 사내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묵객과 장씨세가 사람들도 위험해질 것이다.
스윽.
담명이 몸을 돌리던 때였다.
“헉!”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복장을 한 복면인이었다.
“아직 살아 있는 미꾸라지가 있었군.”
‘도망가야 해.’
타탓.
순간적으로 위기를 느낀 담명이 급히 다른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사사사삭.
이에 복면인은 즉각 반응하여 담명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슈슉.
지척까지 다가와 찌른 그의 검.
휘익.
담명 역시 곧장 반격을 가했다.
캉! 캉! 캉!
세 번의 검이 부딪친 후 담명의 몸이 뒤로 밀렸다.
복면인이 그의 무공을 단번에 파훼한 것이다.
‘고수다.’
담명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경신술을 발휘해 다시 한 번 전력으로 뛰었다.
팟.
“윽!”
허나, 상대는 삽시간에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고 담명은 어깨를 베인 채 비틀거렸다.
타타탓.
담명은 다시 옆으로 뛰었다.
그와 부딪쳐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모습에 복면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놈이.”
사사삭.
사사사삭.
담명은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달려나갔지만 이내 따라잡혔다.
신법도 그보다 한 수 아래인 데에다, 심어진 나무가 방해물이 되어 그의 앞길이 막힌 것이다.
“으윽!”
결국, 커다란 나무 앞에서 담명은 허벅지를 붙들고 쓰러졌다.
이번엔 그곳을 베인 것이다.
“컥!”
뒤이어 담명은 또다시 신음을 토해냈다.
복면인이 나머지 다리 한쪽도 찔러버린 탓이었다.
“빨리 끝내고 나도 좀 쉬자.”
짜증이 난 듯한 복면인은 길게 끌지 않으려는 모양인지 곧장 검을 세웠다.
‘한 번. 딱 한 번에 승부를 봐야 해.’
담명은 자신의 손에 검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낮은 확률이겠지만 그가 검을 내리꽂으려 할 때 몸을 뒤틀어 반격을 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가라.”
슈숙.
복면인이 세웠던 검을 가차 없이 내렸다.
순간적으로 반응하려던 담명의 눈에 그늘이 어렸다.
상대의 움직임이 자신이 생각한 동작과 전혀 달라 반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으윽!”
결국 담명은 몸을 틀기는커녕, 눈을 질끈 감아버리며 본능적으로 신음을 토해냈다.
“……?”
찰나의 순간이 지나간 후에, 담명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상한 느낌에 조용히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검 두 개가 맞물린 채 천천히 떨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
그는 복면인의 칼을 막은 자가 누군지 깨달았다.
그의 아버지, 모용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간 잘 있었느냐.”
팟.
복면인은 급히 물러섰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사내 때문이었다.
“너는 누구지?”
“글쎄, 누굴까.”
복면인은 잔뜩 경계를 하며 말했지만 오히려 모용상은 태연하게 답했다.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검집을 다시 회수하고 자연스레 뒷짐을 진 것이 수상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과하군.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
“그걸 굳이 꼭 알아야 하나.”
그 말에 복면인의 눈이 찡그려졌다 펴졌다.
하지만 이내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연히 알아야지. 네 주위를 봐라.”
슥슥슥슥.
그때였다.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복면인들이 운집해 있는 나무 사이로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에 은신해 있다 나타난 것이다.
그 숫자가 무려 오십여 명에 육박했다.
“이럴 수가.”
담명은 눈을 껌벅이며 읊조렸다.
눈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토록 많은 숫자가, 그리고 또한 저런 고수들이 자신을 계속 지켜봤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흠. 엄청난 숫자군.”
하지만 모용상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어떠냐. 이제 우리가 누군지 알고 싶으냐?”
“조금 그런 생각이 드는군. 헌데 말이야. 너는 왜 보지 않느냐?”
“뭐?”
“나도 봤으니 너도 봐야지.”
그 말에 복면인은 눈을 꿈틀거렸다.
대체 이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네 주위도 말이다.”
그 말에 사내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와 동시에 복면인들도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슥슥슥슥슥.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사이에 빼곡히 들어선 것은 물론이고 비탈길 위, 교목 사이, 너럭바위 위, 심지어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사람들도 있었다.
오십여 명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가 일대를 뒤덮어버린 것이다.
“이제 좀 실감이 나나?”
모용상의 말과 분위기에 압도당했는지 사내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한참을 서 있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숫자만 많다고 이길 것이라 생각했냐?”
“……?”
“우리가 누군지 알면 이렇게 나오지 못할 텐데.”
“아, 그 전에 말이야.”
모용상은 자연스럽게 돌아보았다.
“……!”
그 순간 사내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모용상이 비스듬히 서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옷의 문양이 보인 것이다.
“이번엔 우리부터 소개하지. 모용세가 가주 모용상이라고 하네.”
모용(募容).
북쪽의 팽가에 밀리지 않는 남쪽의 모용. 오대세가 중 하나인 모용세가의 표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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