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60
60. 처음 보는 자요.2015.05.29.
“포기하시오.”
의자 팔걸이에 몸을 삐딱하게 기울인 노인이 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맞은편, 눈에 빛을 띠던 사내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다른 자도 아닌 전금방(電金坊)께서 찾지 못하는 자도 있소?”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유령이 된 자를 어떻게 찾는단 말이오?”
“그게 무슨 뜻이오?”
“에휴. 추방(追坊)아, 그 위에 놓인 서류 좀 들고 와 보거라.”
노인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탁자에 기댄 채 뭔가를 질겅질겅 씹던 깡마른 사내가 종이 뭉치를 들고 걸어왔다.
터억.
그가 탁자 위에 올려놓자 노인, 전금방은 곧장 입을 열었다.
“최근 십 년 동안 맹에 출입했던 사람들을 조사한 내용이오. 당신이 말한 인상착의부터 선별한 다음 말투, 습성, 그리고 마지막엔 그가 든 병기까지 조사했소. 그 결과…….”
전금방은 한데 쌓인 서류의 중간 지점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곳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용모파기가 그려져 있었다.
“유력하다고 뽑힌 자가 무려 백 명이오.”
“백 명?”
순간 맞은편의 사내, 묵객의 제자라고 스스로 일컫던 담명이 눈을 껌뻑거렸다.
곧 그는 탁자에 놓인 서류의 두께를 슥 하고 눈여겨봤다. 노인의 말대로 어림잡아 백 장은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이상하구려. 백 명이라 하더라도 유력한 자들이라면 응당 조사를 해야 할 것 아니오?”
잠시 당황하던 담명은 이내 당당한 태도로 돌변하며 말했다.
그 말에 전금방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장, 내 말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담명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전금방이 말을 이었다.
“꺾인 검과 거대한 크기의 휘어진 도. 내 태어나 그런 생김새의 병기를 보긴 처음이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조사를 해보니 그런 검과 도를 차고 있는 자가 백 명이나 된다고 하오. 그것도 아흔아홉도 아니고 백한 명도 아니도 정확히 백 명.”
“그러니까 조사를 한번 해보라는 것이…….”
“이쪽 업계에서!”
그는 조금 더 언성을 높이며 담명을 향해 말했다.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있소. 그게 뭔 줄 아시오?”
“뭡니까?”
“일부러 흔적을 남겨 놓은 정보에선 손을 떼라.”
담명은 그 말에도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상대를 바라봤다.
전금방은 답답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했다.
“누군가 개입했소.”
“누군가? 누가 말이오?”
“자세히는 모르지. 허나,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아오. 백 명이란 숫자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었소. 더는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말이오.”
“설마…….”
그 말에 담명은 이제야 이해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금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에서 손을 쓴 게요. 솜씨로 봐선 최소 당주급 이상일 테고.”
“허!”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개방이라니.
왜 그런 큰 조직에서 미리 손을 쓴 것인가.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담명이 궁금한 어조로 물었다.
“개방에서 정보를 조작하다니요.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희귀한 일이라 하지 않소.”
전금방은 탁자를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전달한 것은 여기까지요. 괜히 다른 곳에 또 알아보려고 날뛰지 마시오. 그러다가 한밤중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싫거든.”
“정녕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그 말에 전금방은 눈살을 찌푸렸다.
손을 떼라고 경고하는데도 꺾을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을 보니 호기심이 더욱 강해진 듯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뭐 방법이 있긴 하지.”
“뭡니까?”
“당신 아버지께 부탁하는 것.”
“……!”
“중원에서도 알아주는 귀하신 신분 아니오. 그분이 직접 맹을 찾아가면 아마 가능할지도 모르겠소.”
순간 담명의 눈이 매서워졌다.
하지만 노인은 예상했는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오. 의뢰를 받기 전에는 의뢰인을 먼저 조사하는 것이 우리 철칙이니.”
드르륵.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신단다. 배웅해드려라.”
그는 자신 쪽으로 주시하고 있는 장정들에게 말했다.
곧 둘은 담명 앞으로 다가왔다.
“가시죠.”
그들의 말에 담명은 잠시 바닥에 시선을 두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사내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치솟고 있었다.
‘광휘, 대체 너의 정체가 뭐냐?’
*
아침이 채 밝아오지 않은 이른 새벽녘.
모두가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각에도 장웅의 처소는 밝았다.
갑자기 불쑥 찾아온 일 장로 때문이었다.
“이것부터 보십시오.”
대충 차려입고 의자에 앉은 장웅 앞으로 일 장로는 겹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장웅은 곧장 그것을 펼쳐 들여다보았다.
“반 시진쯤에 본가로 도착한 첩지입니다. 내용을 보니 팽가의 대공자가 보낸 친서더군요.”
내용을 읽어가던 장웅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잠시 후 장웅이 친서를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이레 후 방문이라.”
팽가의 친서.
예를 차리는 서문을 비롯해 여러 사족이 붙어 있었지만 이 첩지에서 언급하는 주요 내용은 하나였다.
이레 후, 팽가의 대공자가 장씨세가로 직접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누가 올까요?”
대공자의 친서와 직인이 찍혀 있으니 그는 올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외의 인물이었다.
그들이 보낸 첩지에는 그런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팽인호(彭人豪)란 자는 올 것 같습니다. 그는 야욕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팽인호.
하북팽가를 대표하는 장로 중 한 명으로 하북에서는 모를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조정의 연례행사나 오대세가 연회가 있을 때 직접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의 행보에 관해 말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이, 속내를 알 수 없는 중의적인 말투를 사용한다는 것.
오래전 장씨세가가 조정에 신임을 받고 있을 때 본가를 방문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일 장로가 언급한 것이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현 장씨세가는 석가장으로 인해 세력이 매우 비대해진 상황이 아닙니까. 뭔가 구실을 만들기도 좋아졌지요.”
장웅은 현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본가의 부흥기임과 동시에 위기라는 것을.
하북 내에서 세력을 확장한다는 것은 넓은 의미로 보면 하북팽가와 대등해지겠다는 것을 뜻했다.
세가 늘어나면 세력이 커지고 그것은 힘이 세질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도 그랬다.
석가장과 장씨세가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면 하북팽가와 견주어도 크게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곧 그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음을 상기했다.
“아버님은 뭐라 하셨습니까?”
장웅은 넌지시 장원태의 의중을 물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되,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는 말라 하셨습니다.”
“음, 그렇구려.”
“그럼 이 공자께서는…….”
일 장로는 한 번 멈칫하다 재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생각은 가지고 계십니까?”
“……?”
“가주도 가주시지만, 공자께서도 생각하시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일 장로는 듣고 싶었다.
가주의 의견이 아닌 장웅의 생각을.
그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의 식견이 어느 정도인지 느끼고 싶었다.
“짐작입니다만.”
이 공자는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
“이렇게 상황이 흐르고 보니 왠지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흐음.”
장웅은 잠시 생각을 되짚으려는 듯 탁자를 손으로 더듬었다.
손가락을 몇 번을 움직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일 장로 밑에 있는 장로 두 분이 누구지요?”
“이 장로와 삼 장로입니다.”
“맞습니다. 그분들이 계시지요.”
그 말에 일 장로는 눈을 껌뻑였다.
여기까진 당연히 알고 있는 얘기였다.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 장로와 삼 장로가 싸워 이긴 사람이 일 장로가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물론 일 장로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될 수 있는 상황도 가정해야겠지요. 한번 여쭙겠습니다. 일 장로는 그런 상황에서 이 장로와 삼 장로의 싸움을 말리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놔두겠습니까.”
“당연히 말려야겠지요.”
“왜 그런 거지요?”
“그들 중 싸워서 이긴 자가 저와 경쟁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지요.”
“맞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은 그렇지요. 하지만 팽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순간 일 장로의 눈이 커졌다.
앞서 이 장로와 삼 장로라는 가정은 장씨세가와 석가장을 두고 얘기한 것이다.
“누가 이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석가장, 장씨세가 중 한쪽이 지는 싸움이란 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팽가는 말리지 않았습니다. 후에 세력을 넓히고 그들을 위협할 세력이 만들어지는데도 말이지요.”
“그들이 이것을 원했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장웅은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팽가를 만나러 갈 당시 팽가의 대공자는 황가장과 만나고 있지 않았습니까? 왜 그들을 만나고 있었겠습니까. 자칫 싸움의 변수가 되어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장웅이 눈에 빛을 띠었다.
“명분이란 그런 겁니다. 싸움을 걸 수 있는 명분. 그간 방관했던 것은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아.”
일 장로의 머릿속은 천천히 정리가 되었다.
석가장의 공격이 왜 그렇게 매서웠는지.
당시 황가장을 만났던 팽가의 의중이 뭔지.
“이 문제는 아버님과 다시 한 번 상의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문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공자님.”
“무슨 일이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이 시간에?”
문 밖에서 들리는 말에 장웅은 잠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이내 눈에 이채가 맺히기 시작했다.
*
저녁이 되어서도 석가장 주변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석가장 인근은 관병들이 삼엄한 통제를 했고 장내에서도 무언가를 살피듯 민첩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이 보였다.
“안쪽을 더 살펴보거라.”
지부대인 담대경은 창고 앞에 다가가 지시를 내렸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은 병사들로 인해 곧 산산이 부서졌다.
이후 하나둘씩 창고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참, 이 녀석들이 어디에 숨겼단 말인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며칠째 제대로 된 단서가 나오지 않자 답답한 나머지 직접 찾아와 이렇게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분명히 집채가 통째로 날아갔다고 했나?”
옆에 있는 한 병사를 향해 담대경이 물었다.
“그러합니다.”
“추정되는 화약의 양은?”
“백 관(325kg) 정도의 위력이라고 합니다.”
“백 관? 그 정도를 썼다고?”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 정도 양을 구했다는 것을 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이곳에 더 있어. 그 정도 양을 들고 있는 자들이라면.’
담대경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화기를 찾지 못하면 이것은 괜한 오해로 번질 수 있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조정에서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화기가 아닌가.
“반드시 찾아내! 땅을 파내서라도!”
그는 분주히 주변을 조사하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던 그때였다.
안쪽에서 병사들이 나직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있습니다.”
“들고 오너라!”
그의 외침에 창고 안에 들어갔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이름 모를 거적때기나 오래된 고철들이 들려 있었다.
담대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버님.”
그때였다.
옆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아들 담경이었다.
“왜 그러느냐?”
“중요한 분이 오신 것 같습니다.”
“중요한 분?”
그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그 순간 병사들이 자리를 비킨 곳에 한 노인이 보였다.
“잘 있었는가?”
채색을 한 듯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자가 담대경을 보고 웃고 있었다.
하북 성도의 최고 책임자.
도지휘사였다.
*
“안에 계십니까?”
일출이 지나고 햇살이 비치는 아침 즈음에 장웅은 광휘의 처소 앞에 와 있었다.
“광 호위, 안에 있습니까?”
드르륵.
두 번 정도 불렀을 때 문이 열렸다.
늘 그랬듯 광휘는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를 맞이했다.
“아, 이른 아침부터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광 호위께 급히 소개해 드릴 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광휘가 담담히 그를 바라볼 때였다.
장웅이 뒤를 돌아보자 한쪽에 숨어 있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와 덤덤하게 중년인을 바라보는 광휘.
그들의 시선에서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 보였다.
“아시는 분이 맞으십니까?”
잠시 정적이 일던 중 장웅은 모셔온 중년인을 향해 물었다.
그간 고대하고 기대했던 대답을 기다리면서.
“이 공자, 당신이 말했던 자는 아니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중년인이 고개를 저은 것이다.
“예? 본 적이 없으십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오. 이런 자는 난 본 적도 없소.”
“아…….”
장웅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 말하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졌던 것이다.
“그럼 난 객방에서 쉬고 있겠소. 비슷한 사람이나 짐작되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시오. 이상한 사람이나 보이지 말고.”
그는 손을 한 번 내젓고는 자리를 떠났다.
무표정하게 서 있는 광휘가 장웅을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다른 게 아니고 호위무사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기에 우연히 모셔왔었습니다. 헌데 보니…… 아니었나 봅니다.”
장웅은 급히 얼버무리며 고개를 숙였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쉬십시오.”
그는 그 말을 남기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광휘는 장웅을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려 문을 닫았다.
그렇게 일각 정도가 흘렀을 때였을까.
장포를 걸친 광휘는 다시 문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
한정당으로 걷던 광휘는 정자 앞에 도착했을 때 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던 그는 이내 옆에 놓인 나무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그러던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명호(明湖)입니다.”
광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호는 그의 옆, 나무 의자에 다가가 앉으며 다시 한 번 말을 붙였다.
“이 공자에게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정말 그분이 있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말에 그제야 광휘가 입을 열었다.
“너는 잘 지냈더냐.”
“저희야 잘 지내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살아가는 데 노력할 뿐이지요.”
명호의 말에 광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중단 첩보대.
살수 암살단과는 성격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그들 역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맹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과거 몸을 담았던 문파나 세가로 돌아가지 못하는 부랑자 신세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 죽은 동료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아니면 제가 진즉 죽었을 테니까요.”
“살아갈 방향을 정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조장님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아니, 단장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 말에 광휘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무심한 표정을 보던 명호는 급히 수정했다.
“죄송합니다. 단장이란 말은…….”
“괜찮다. 괘념치 말거라.”
광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한정당의 인공 호수는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웠다.
“이 공자에게 나의 존재를 알렸느냐?”
이번엔 광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잘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알려줄 필요는 없지. 괜한 기대만 쌓일 것이 아니냐.”
그 말에 명호는 기대라는 말에 반박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이 혹시나 그를 자극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호는 늘 생각해 왔다.
만약 천하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지체 없이 옆에 있는 사내를 고를 것이라고.
그에게 광휘는 그런 자였다.
살수 암살단뿐만 아니라 자긍심 강한 천중단, 모두가 인정한 유일한 자.
“짐작은 했었다. 방각 대사를 봤을 때 과거에 인연이 닿은 사람들을 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말이다.”
“…….”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에 왔느냐. 내 이름을 들었다면 굳이 나를 보러 오지 않았을 텐데.”
그 말에 명호는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방각 대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벽력탄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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