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귀동요령(鬼童妖鈴) (1)
서로 엉뚱한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마주침이었다.
도우빈은 도우빈대로, 또 단청은 단청대로.
“아니 왜 여기에?”
“너 여기서 뭘 하는?”
둘은 거의 동시에 묻다가 멈칫했다.
조금이라도 먼저 입을 연 도우빈은 흠칫 어깨를 들썩이면서 슬그머니 뒤로 몸을 뺐다.
단청이 입술을 강하게 비틀면서, 짐짓 못마땅한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도우빈은 기가 팍 죽어서, 볼멘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요. 왜 그런 눈이에요.”
“후우, 이 녀석. 하늘을 봐라. 하늘을.”
“하늘이요? 흠, 어둡네요.”
갑자기 하늘은 왜 보라고 하는 건지, 도우빈은 힐끔 곁눈질로 달빛이 둥실 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대꾸했다.
그러자 당장 뾰족한 호통이 터졌다.
“이 녀석이! 날이 훤할 때 나가서는 이때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냐!”
“……아.”
도우빈은 맹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설마 자신을 걱정해서 어둠 내린 오대산으로 찾아 나설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오대산이고, 자신은 혈사의 제자가 아닌가. 대체 무얼 걱정한단 말인가.
도우빈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꾹 다물면서 두 볼을 한껏 부풀렸다.
지금 떠오른 말을 그대로 꺼냈다가는 다시 호통이나 듣겠다.
그렇지만 단청은 이미 속내를 빤히 꿰뚫었다.
“흥, 오대산에서 뭔 걱정을 하느냐 이거로구만.”
“헛, 완전 귀신이네요.”
완전히 가슴이 읽힌 꼴인지라, 도우빈은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 단청은 더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새삼 차분한 기색으로 눈살을 모았다.
착 가라앉은 눈빛이 진지했다. 어느 정도는 안타까워하는 듯한 기색이기도 했다.
“요광 스님이 어쩌다가 당하셨는지 모르느냐.”
“윽…… 요광 사형은…….”
“그리고 아무리 고 사형께서 적도를 전부 베어 버렸다고 해도, 잔적(殘敵)이 어디에 또 있을지 모르는 판국이다. 마땅히 조심하고 또 경계해야지.”
“그게, 예, 그렇죠.”
도우빈은 목을 잔뜩 움츠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한 목소리는 구구절절 옳았다. 꾸짖고 혼쭐을 내는 것보다도 더 아픈 말이었다.
그리고 단청의 걱정대로였다.
잔적은 분명히 있었다. 바로 여기 폐허가 된 암자에.
단청은 한껏 움츠러드는 도우빈을 보면서 더 꾸짖지 않았다. 일단 알아듣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는 곧 어둑한 폐허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너는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게냐?”
“그, 단청 누님이 걱정하는 일이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에요.”
“응?”
“굳이 말하면 잔적이죠.”
단청은 급하게 재촉하기보다는 턱을 바짝 당기고 진지한 눈으로 도우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가슴은 쿵쿵 뛰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면 말이죠.”
도우빈은 열심히 정리해서 설명했다. 엄기찬도 조용히 눈치 보다가 슬쩍 끼어들어서 한두 마디를 거들었다.
단청은 둘의 설명을 들으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이 짙은 폐허를 둘러보았다.
고진무와 함께 걱정했던 술사, 그자가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인가. 심상치 않은 사기가 맴돌고 있는 걸 보니 분명한 일이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괜히 농땡이를 부린 건 아니군.”
“농땡이는, 무슨.”
도우빈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곧 단청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찌 찾으신 거예요?”
“흐음, 일단 요광 스님의 암자를 찾아갔더니. 네 녀석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거기서부터 걱정이 되어서 주변을 차차 살폈지. 그런데 한눈에도 수상한 흔적이 있더구나. 한곳에서 오래 웅크린 흔적. 그 흔적을 따라왔다.”
“아, 그렇구나.”
딴에는 신중하게 움직인다고 했지만, 도우빈과 엄기찬이 웅크리고 숨으면서 밟아 놓은 수풀의 흔적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단청은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서 여기까지 온 셈이었다.
“흠흠, 수상한 자가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 그쪽의 무사 분께서 그를 감시하고 있었고요.”
“예, 하동무사회의 엄기찬이라고 합니다.”
단청은 곧 엉거주춤하고 있는 엄기찬을 돌아보았다.
그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가, 부랴부랴 두 손을 맞잡았다.
단청의 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냅다 달려드는 결례를 저지르지 않았던가.
그에 더해서 선녀 운운하는 얼빠진 모습을 보인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흙칠하여서 시커먼 얼굴인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니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을 터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에서 두 귀는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렇게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엄기찬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조, 종남파 여협이시라고요?”
“엄밀히 말하면 속가입니다만. 예, 단청이라고 합니다.”
단청은 새삼 단정하게 낯빛을 다잡고서, 엄기찬을 향해서 두 손을 맞잡았다.
명문의 기도가 선명하다.
엄기찬은 종남파의 이름에 크게 반색했다가, 속가라는 말에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도우빈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속가? 그렇다면, 여기 도 소협도 종남파의 속가인 게?”
“엑! 엄 아저씨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혀요.”
두 사람은 동시에 어이없단 눈으로 엄기찬을 바라보았다.
도우빈은 그렇게 눈치를 주었음에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엄기찬의 무신경함에 황당했고, 단청은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단청은 곧 도우빈을 돌아보면서 타박하듯이 말했다.
“이 녀석아, 네가 똑바로 설명하지 않은 게 아니냐?”
“에엑? 아니, 그걸 뭘 굳이 설명해요. 척하면 척인 거지. 여기는 오대산인데!”
도우빈은 당장 턱 끝을 치켜들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이건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그러고는 곧 엄기찬을 홱 쏘아보았다.
“엄 아저씨, 정말 이러기예요!”
“으응? 도 소협.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엄기찬은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더듬거렸다.
그는 두 사람이 동시에 기겁하는 모습에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체 무슨 실수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시커먼 얼굴에서 두 눈만 동그랗게 떴다.
***
고진무는 고요하게 허리를 세우고서 호흡을 다잡았다.
그는 대웅전으로 돌아와서 가부좌를 취하고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서 명상에 집중하는 듯했다.
어둠이 머리 위에서 짙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유등의 흐린 불빛이 두둥실 떠 있는 듯했고, 아래에서는 요광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한참 가는 숨소리라도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건 그것대로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요광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지만, 고진무는 이미 귀동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한 다음이었다.
대웅전에 들어서자마자, 요광이 누워 있는 모습이 약간씩 달라져 있는 게 확 눈에 들어왔다. 목을 세웠다가 다시 누운 흔적이었다.
지금도 술사가 스며들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물러난 것인지, 고진무로서는 당장 알 도리가 없었다.
대신, 귀동에게 부탁해서 주변을 다시금 살펴 달라고 한 참이었다. 크게 기대하는 바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나.
고진무는 가는 숨을 흘리고 있는 요광을 지켜보면서, 흔들리는 자신을 애써 다잡았다.
“정주일여, 정주일여. 이런 때일수록 정한 마음을 기둥처럼 세워야지.”
종남파의 경구를 거듭 읊으면서, 고진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서늘한 검광처럼 눈빛이 번뜩였다.
귀동이 주변을 맴돌면서도 술사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곧 그만한 술사라는 뜻이고, ‘교’의 사자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고진무는 이런 때에 정히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욱 막막했다.
혈도조사에게도 바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빈사지경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요광이었다. 그런데 실은 요사한 술수에 당하여서 제 상태가 아니었으니.
고진무는 아플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짓씹었다.
새삼스럽게도 분노가 은근하게 맴돌아서, 곧 등줄기를 타고서 뜨거운 열기가 울컥 치밀었다.
‘교’, 그리고 술사.
참으로 끔찍한 자들이 아닌가.
이들에게 무슨 내력이 있고, 무슨 사정이 있든 간에, 이리할 수는 없었다. 이리하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요사한 술수 정도가 아니었다. 실로 악독하기 그지없는 술수였다.
“죽은 자를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산 자에게도 수작을 부려? 진정, 진정 이들은 하늘 아래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자들이다.”
고진무는 깊은 분노를 가슴에 담았다.
강시니, 실혼인이니 하더니. 이제는 멀쩡한 사람의 몸을 강제로 차지하는 술수까지 나올 줄이야.
그는 끌어안은 청명검을 한층 힘주어 움켜쥐었다.
지이잉…….
분노에 호응하여서일까, 청명검은 검초 속에서 검신을 떨면서 가늘게 울었다.
고진무는 깊게 숨을 삼켰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응?”
누군가 밖에서 서둘러 다가오고 있었다.
발소리도 그렇지만 허둥거리는 기척이 선명했다.
고진무가 의아한 것은 그중에 한참 낯선 기척이 있기 때문이었다.
고진무가 대웅전에서 자신을 애써 다잡고 있을 때에, 귀동은 한참 높은 곳까지 스르르 날아올라서 홍련사 외곽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밝은 달빛 아래에 귀동은 희뿌옇기는 하지만, 고진무와 함께 일종의 수련을 쌓은 덕분에 아이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다만 긴 꼬리를 남기면서 유유히 흘러갔다.
홍련사 안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면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불공이 끊긴 세월이 백 수십여 년이니, 사찰의 불력 때문일 리는 없었다.
바로 혈도승, 그리고 혈도조사의 무시무시한 살기 탓이었다. 사람 아닌 귀신이 움츠러들 정도의 살기가 짙게 맺혀 있을 정도라니.
특히 오대산 곳곳으로 흩어졌던 혈도승들이 이번 일로 다시 모여서 살기를 다잡기 시작한 터라, 주변의 살기가 한층 소란했다.
귀동은 차라리 높이 솟아올라서 주변을 살폈다. 그럼에도 좀처럼 요기나 술사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살기가 워낙에 짙은 홍련사인지라, 가까이에서는 음산한 기운이나 요력 정도로는 눈에 띄지도 않을 터였다.
귀동은 체념하듯이 형체를 부르르 흔들었다. 이대로는 아무리 돌아다닌다고 해도 가까이에서 어떤 흔적을 읽어 내기란 무리였다.
귀동은 문득 집중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홍련사를 중심으로 한층 멀리 내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벌려 나아가다가, 불현듯 한 지점에서 멈췄다.
귀동의 영체가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딱히 그늘이 짙을 리가 없는 자리인데, 유독 달빛이 닿지 않아서 어둡고, 음산했다.
부자연스러운 어둠이었다.
귀동은 불길함 때문인지 부르르 형체를 흔들었다. 호기심에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엄습하는 불길함이라니.
귀동은 곧 정신을 차렸다.
없는 눈을 크게 치뜨고는 허둥거렸다. 이건 고진무를 찾아서 서둘러 알려야 할 일이었다.
귀동은 긴 꼬리를 남기면서 빠르게 고진무를 찾아서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