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Dragon RAW novel - Chapter (78)
* 78화 *
#14 오라클
“사이킥 등급 B, 분대장적성 A, 스트라이커적성 B+. 다른 병종은 고려할 필요가 없네. 특기가 확실해서 좋아. 분대장형 무장은 따로 없으니, 스트라이커로 초점을 맞추면 되겠군.”
제3기술팀 치프, 옥토가 말했다. 그는 이한의 프로필을 정리하듯 말했다. 듣고 있던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거동이 불편해서 훈련은 중단한 상태다. 의료진의 말로는 절대안정이 필수라고 했다.
“어떤 식으로 무장을 짜는 거죠?”
이한이 물었다. 옥토는 머리를 긁적였다. 2세대 사이코프레임 커스텀무장은 이번이 첫 번째 사례다. 기존 데이터는 전부 1세대의 것이다.
“보통 스트라이커는 경량화하는 편이지. 기동성과 공격력이 생명이니까. 특히 사일런스처럼 블링크능력자의 사이코프레임은 외장은 최소화하는 편이야. 몸이 무거울수록 블링크에 걸리는 부담이 심해지니까.”
이한은 옥토의 말을 들으면서 아래를 쳐다봤다. 2세대 사이코프레임은 기본외장이 끝난 상태다. 옥토의 입맛대로 적당하게 개수됐다.
“당장이라도 착용이 가능한가요?”
“네 몸만 멀쩡하다면, 벌써 테스트 들어갔어. 올드맨의 데이터만으로는 정확하게 세팅을 끝내진 못해.”
“1세대보다 작네요.”
이한이 감상을 말했다. 2세대는 관절부나 움직임에 필요한 부품 숫자가 확연하게 줄었다.
“1세대가 반쯤은 착용이 아니라 탑승한다는 느낌이었다면, 2세대는 확실하게 착용한다는 느낌이지. 기술의 발전이 보이지 않아? 1세대는 10년도 지난 것들이야. 지금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다.”
“그 정돈가요….”
이한은 1세대 사이코프레임이 오래 됐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부분 이한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10년이면 첨단 선두기술의 세대가 몇 번은 바뀔 시간이다. 언제나 돈이 문제였을 뿐이다.
옥토는 사탕을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이한은 한참이나 사이코프레임을 쳐다봤다.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힘.’
이한은 문득 아크가 두려웠다. 아크도 이한을 두려워한다. 드래곤이라는 천적이 없었더라면, 그 누구도 어린 소년에게 이런 엄청난 힘을 쥐어주지 않을 터다.
쿠로는 연구소에서 대부분을 시간을 보냈다. 정신적 문제는 많이 나아졌다. 죄책감이 옅어지고, 심리적으로 안정됐다. 유약한 성격은 여전하지만, 확실한 동기가 부여되자 의욕은 높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에 사용했다.
‘빨리 친구들이 보고 싶어.’
쿠로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친구를 사귀는데 능하지는 않지만, 고아원에서는 고양이를 친구로 삼을 만큼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성정이다.
“쿠로, 뭐 먹고 싶은 건 없니?”
여자연구원이 말했다. 이곳 연구원들은 쿠로에게 다정했다. 심리치료도 겸하고 있기에, 연구원들 언행 하나하나가 쿠로를 향한 배려가 녹아있다.
‘하지만 저건 거짓.’
쿠로도 구분이 가능하다.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바뀌면 언제든 안색을 바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서는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 꽤 오래 지냈음에도 감정적 교류는 없었다.
“평상시에는 A 상등급이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자의로 S급 발현은 제어가 불가능한 건가.”
“실전에서 외부자극을 받으면 가능하겠지. 감성이 여린 만큼, 변동의 낙차도 크니까.”
연구원들이 자기들끼리 말했다. 쿠로는 순수파 습격 이후로 사이킥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막힌 둑이 터지듯이 사이킥을 능숙하게 다뤘다. 어지간한 염동력 전문 사이커보다 염동력이 더 강했다.
“잠재적 S급이라는 건가.”
S급의 상징은 눈으로 보일 정도로 밀도 높은 사이킥 에너지다. 보통 그 현상을 사이킥 오라라고 부른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들을 모조리 죽일 수도 있겠지. 그럴 애는 아니지만.’
3학년이 된다는 것은 조금씩 아크의 통제를 벗어날 능력을 갖춘다는 이야기다. 아크는 소년들의 성장을 반기면서도 두려워한다.
“조금 지쳤어요. 돌아가도 될까요? 테스트가 더 남았어요?”
“아니, 수고했어. 이제 거의 끝났어. 끝났다는 의미는 오늘 일정이 아니라 전체 일정이 끝나간다는 의미야. 곧 3학년으로 올라갈 테니까.”
쿠로의 눈동자가 커졌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3학년이 되면 실전임무에 투입된다면서요?”
연구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근래는 예외가 많았지만, 상부에서는 항상 까다롭게 검토하고 나서 너희들을 작전에 투입해. 전력상으로 쉽게 이길 상황에서만 보낸다는 거지. 보통 사고들은 그 예상에서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야. 사고가 많은 만큼 앞으로 더 신중해질 테니 걱정 마. 특히 S급 사이커는 중요전력이니,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들이 너를 지킬 거다.”
쿠로는 고개를 나직이 흔들었다.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지켜줄 거야. 내겐 힘이 있어.’
그 각오로 아크의 잔류를 선택했다. 쿠로도 사내아이다. 강한 남자를 동경한다. 나약한 자신을 이겨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오랫동안 눌려온 성격은 조금씩 변화했다. 자신의 의지로 싸운다는 길을 선택했다.
이한은 산책을 나갔다. 이제 몸이 많이 회복되어서 곧 훈련복귀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산책할 겸으로 나갔지만, 몸이 근질근질해서 조깅을 했다. 간만에 몸을 힘차게 움직이니 기분이 좋았다.
“여, 한!”
“몸은 어때?”
지나가는 3학년과 군인들이 안부 인사를 했다. 이한도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익혔다. 어색하던 이한도 자연스레 3학년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언더아크.’
이한은 어디론가 걸어가는 간부들을 보며 생각했다. 일반병들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복잡한 길을 지나서 이어진 곳은 언더아크. 아크의 모든 기밀이 모인 곳이다. 이한은 그곳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최고위원회와 아크의 대립도 이해가 갔다. 아크는 분명 위원회에게 숨기고픈 일들이 있을 터다.
“하지만 결국 목표는 같겠지. 방법이 다를 뿐.”
이한은 아크의 체제를 신뢰하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의 군인들은 순수하게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저 조국과 자신의 가족,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지키고자하는 자들이다. 이한은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라오차, 해럴드, 슈발츠….’
이한과 교류가 있었던 이들이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후우.”
이한은 잠시 벤치에 앉았다. 통제구역으로 오가는 간부들을 구경했다. 그 중에 낯익은 인사도 있었다.
“레드 중사?”
레드 중사가 통제구역을 빠져나왔다. 그의 얼굴은 짜증이 가득했다. 옆에 따라 나온 고위간부들이 레드 중사를 달래듯 뭐라 말했다.
“닥쳐. 망할 자식들아. 예정보다 훨씬 빠르잖아! 치료방법도 아직 없는 주제에…!”
“만약 드래곤의 침략이 예정보다 빠르다면? 바하무트의 등장부터 예정에 없던 일이네. 무리를 하더라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어!”
“누가 발의한 거지? 사령관? 아니면 참모장? 나오라고 그래!”
레드 중사는 심하게 흥분했다. 그는 화를 잘 내는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짜증의 선이었다. 진심으로 화를 내는 일은 드물다.
화르르륵!
레드 중사의 몸 주위에서 불꽃이 일었다. 간부들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모두를 위한 결정이네. 레드.”
레드 중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이를 박박 갈았다.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기세였지만, 결국 참으며 뒤로 돌아섰다.
이한은 그 광경을 지켜봤다. 복잡한 상황이었다.
‘레드 중사가 화를 냈어. 상부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레드 중사의 심기를 거슬린 거지.’
간부는 레드 중사의 뒤통수에 몇 마디 더 뱉었다.
“정신 차리게. 레드 중사.”
뻐-억!
레드 중사가 간부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의 눈빛은 매서웠다. 주위에 병사들이 레드 중사를 쳐다봤다. 레드 중사는 조용히 팔을 내밀었다.
“자, 끌고 가. 독방에 며칠 쉬다가 오지.”
레드 중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코피를 흘리는 간부가 병사들을 제지했다.
“이걸로 그만하지. 레드, 자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니까. 가보게. 맞은 건 없었던 일로 하지.”
간부도 보통이 넘는 사람이었다. 사소한 감정적 복수보다는 임무와 대의가 우선이다. 그들은 엘리트 군인들이다.
“쳇.”
레드 중사는 의족으로 헛발질을 했다. 그는 뒤로 돌아가다가 이한을 발견했다. 레드 중사의 표정은 당황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왜 네가 여기 있는 거냐?”
“산책 중이었습니다.”
“무슨 산책을 여기까지. 하아, 망할…. 다 봤냐?”
레드 중사는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걸 안다. 간부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이미 아크와 자신은 소수의 희생쯤은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주제에 개인적 감정으로 ‘누군가’를 특별취급하면 안 된다.
‘사춘기 소년들이나 할 짓이었어.’
레드 중사는 쓰게 웃었다. 그 꼴을 이한이 봤다고 생각하니 더욱 짜증이 났다.
“주먹이 매섭더군요.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였어요.”
이한이 말하자, 레드 중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경 꺼라. 그나저나 여기서부터는 통제구역인데….”
레드 중사는 이한이 여기까지 산책 왔다는 게 의구심이 들었다. 정상적인 3학년이라면 여기까지 도달할 일이 없다. 특히나 이한처럼 계획적인 녀석이라면 더욱 그렇다.
‘쿠로나 크누트 같은 녀석이라면 실수라도 오겠지만… 이놈은 밥 먹는 것도 실수할 놈이 아닌데….’
레드 중사는 물끄러미 이한을 쳐다봤다. 무언이지만 의미는 서로에게 닿았다.
“들어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언더아크. 레드 중사라면 분명 알 터다.
“대충 어떤 사유 때문인지는 알 것 같군.”
레드 중사는 이한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 최초의 2세대 강화병. 2세대가 사이코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은 최초다. 상부에서는 이한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아마도 24시간 감시 중일 터다.
레드 중사는 이한을 지나치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의 의족이 이한의 눈에 걸렸다.
오라클이 깨어났다.
공식발표가 없어도 군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3학년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오라클, 제2차 침략을 예언한 사이커. 1, 2세대를 통틀어서 유일한 장기예지능력자. 사람들은 모두 오라클이라 부른다.
“오라클이라면 그 예지능력자? 넌 본 적이 있어? 사일런스.”
식사를 하던 크누트가 말했다. 사일런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가장 오래된 3학년 중 하나인 사일런스도 오라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군인들은 깨어났다는 표현을 썼어. 깨어났다는 의미는, 최소한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거지.”
이한이 말했다. 오라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쿠로처럼 몇 초 앞을 보는 단기예지가 아니다. 몇 년을 앞서서 일어날 일을 예언한다.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나도 이름만 많이 들었어.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거든.
사일런스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다. 소문만 무성한 존재.
이한은 후식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레드 중사와 간부의 다툼이 떠올랐다.
‘그 일과 뭔가 관련이 있는 건가.’
오라클은 1세대 사이커다. 레드 중사도 알고 있을 터다.
웅성, 웅성.
갑자기 식당이 소란스러워졌다. 군인들 중 몇 명이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시선은 입구 쪽으로 쏠렸다.
“오라클….”
“오라클이다.”
“정말로 깨어난 거군.”
이한의 시선도 그들을 따라 입구로 향했다. 이한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떨렸다.
“여자야?”
크누트가 의아해하듯 말했다. 이한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1세대 사이커라면 당연히 여자도 있겠지. 2세대처럼 남자만 집중 양성하는 게 아니니까.’
이한은 눈을 깜빡였다. 오라클은 젊은 여자였다. 아직 소녀의 티도 남아있는 외모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교생이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한이 보기에도 1세대치고는 많이 젊었다.
‘도대체 전쟁 당시에서는 몇 살이었다는 거지? 기껏해야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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