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04)
특성 쌓는 김전사-104화(104/300)
극복법 -4-
혈왕은 꼿꼿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보이는 것만 그렇지, 실제로는 나이가 더 많다.
이미 여든을 넘겼다지?
나는 혈왕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전사입니다.”
“반갑네. 첸웨이일세. 아까 잠깐 봤었지? 연맹 총재직을 맡고 있네.”
“총재님의 헌신은 세계인이 모두 알고 있지요.”
“허허. 말이라도 고맙네. 자, 앉게나.”
연맹 총재실은 게임에서와 달랐다.
게임에서는 황금과 보석, 마법진이 온통 치덕치덕 발라져 있었다면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
그 흔한 기후조절 마법진은커녕 청결 마법진, 마력 안정 마법진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에어컨이나 청소 드론도 없이 탁자 하나에 의자 몇 개, 옷걸이 두 개가 전부.
‘심하네.’
소파도 없어서 불편한 나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야 했다.
내가 총재실을 훑어보자 혈왕이 담담하게 웃는다.
“미력하게나마 사부님 서재를 흉내 내 보았네. 사부님께서는 헛된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야말로 무의 길을 걷는 첩경이라고 보셨거든.”
사부.
그 단어가 나오자 내 자세가 저절로 경건해진다.
“천마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천마. 고금제일인이자 무가 하늘에 닿으신 분. 내 평생 그분의 발뒤꿈치는커녕 그림자 끝에도 닿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사부님을 조금이나마 닮고자 노력하고 있다네.”
9레벨은 아케인 서울에서도 드물다.
딱 4명이 전부.
신들이 살아 있던 중세시대까지는 심심찮게 나왔다고 하지만 신멸 전쟁으로 많은 신이 죽고 봉인된 지금은 극도로 희귀해졌다고.
나중에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다시 흔해지겠지만.
“천마님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어떤 걸 들었나?”
“음, 신화 같은 이야기지요. 마왕과 단신으로 싸워 이겼다거나 악신의 화신을 물리쳤다는 정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네.”
“예. 당시 기록이 확실하게 있으니까요. 가끔 다시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감탄하곤 합니다.”
“허허허. 그 허접한 영상 기록 말인가? 그걸로는 사부님의 위대함을 헤진 터럭만큼도 표현하지 못한다네.”
“총재님께서는 직접 보신 겁니까?”
“암. 직접 보았지. 그때의 신화적인 전투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네.”
나이가 많긴 많네.
겉모습은 아저씬데 말투는 완전히 할아버지 말투다.
뜻밖에도 한국어가 유창해서 그 뉘앙스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혈왕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쉬운 것은 사부님께서 폐관 수련 중이라 나도 수십 년째 얼굴을 못 뵈었다는 것이지. 지금도 활동 중이시면 아침마다 문후드리고 깨달음의 한 조각이라도 얻어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후우, 나나 대사형, 사저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신 거겠지. 우리 세 사형제가 나름대로 기재 소리를 들었지만 사부님의 눈에 차지는 않으셨을 테니.”
신군, 마후, 혈왕.
셋 다 SSR 등급이고 NPC로는 8레벨.
성녀와 동급의 괴물들이지만 천마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
원탑이잖아. 혼자 0티어고.
“삼존께서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계시니 천마님도 폐관에 드신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사부님은 완전한 신의 영역, 10레벨에 도달하시기 위해 폐관하신 거라네. 우리랑은 상관없이.”
“10레벨······”
“어쩌면 사부님께선 이미 우화등선하신 것일지도 모르지.”
“설마요.”
“진짜라네. 그 증거로 출입구에 놔둔 벽곡단과 넥타르가 22년째 사라지질 않고 있어.”
어? 뭐라고?
천마가 우화등선했어?
내가 놀란 눈으로 혈왕을 보자 혈왕이 손을 하나 들어보인다.
“우화등선하셨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우화등선하셨다고는 안 했네.”
“벽곡단과 넥타르를 안 드시고 계신다면서요?”
“이미 인간의 탈은 벗으셨을 테니까. 하지만 존재감과 마력 파장만큼은 고스란히 느껴진다네. 천산 초입만 가도 느낄 수 있지.”
“어, 그럼······”
“천산 비밀 연무관에 계신 것이 확실해. 이론상 육체에 모든 힘과 마력을 남겨놓고 영혼만 떠나셨다면 지금 현상이 설명되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옛 기록을 살펴보면 우화등선하거나 승천하신 분들은 대개 육체와 함께 떠나시거나 육체를 증발시키면서 하늘에 오르셨네. 지금은 우화등선의 전 단계일 확률이 높아.”
어쩐지.
게임에서 4대 초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천마, 리바이어던, 멀린, 지브릴.
만나서 대화할 수 없고 오로지 뽑기로만 볼 수 있는 캐릭터.
아마 천마처럼 폐관 수련 중이거나 그에 준하는 처지에 놓여 있을 것이다.
“아쉽습니다. 언젠가 천마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었는데요.”
“그거야말로 모든 전사들의 꿈이지. 연맹의 수호자들도 천마님의 가르침 한 조각을 전해 받기 위해 목숨을 건다네.”
천마한테 천마신공을 전승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최강의 특성이자 최고의 특성인 천마신공.
3대 검법보다도 훨씬 그 격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천마신공은 궁극의 공격기이자 방어기인 동시에 마력 연공법이며 이동기이기 때문이다.
천마파천장 더하기 천마강벽 더하기 천마심법 더하기 천마군림보가 천마신공이라고 보면 되겠다.
3대 검법이 공격기와 마력 연공법을 포함하는 것과 비교해도 격이 달랐다.
‘3대 검법만 해도 사긴데, 미쳤지. 아주.’
혈왕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도 자네를 보면 좋아했을 텐데 아쉽군.”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니야. 자네는 묘하게 사부님과 기질이 닮았어.”
“예? 제가요?”
“그래. 말로 설명은 못 하겠군. 성격도 외모도 확실히 다른데 뭔가 비슷해. 자네 얼굴이 조금만 사부님을 닮았어도 친아들이라고 생각했을 걸세.”
“영광입니다. 이런 말씀은 처음 들어봅니다.”
“정말이야. 사부님께서 폐관 중만 아니셨으면 자넬 데려가서 막내 사제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야.”
뭐지?
장난치는 건가?
눈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혈왕은 진심 어린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8레벨이라 내 특성 전환을 알아본 걸까?
내가 비록 어마어마한 속도로 레벨을 올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예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서우진만 해도 신열을 극복하자마자 5레벨이 됐잖아.
‘조심해야겠어.’
성녀도 그렇고 마탑주도 그렇고 군단장도 그렇고 8레벨이 되면 나한테 뭐가 보이는 모양.
나는 그저 고개만 푸욱 수그렸다.
“말씀 감사합니다. 대대손손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흠,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내 제자가 될 생각은 없나?”
“예에?”
“천마신공은 대사형에게 갔으니 못 가르쳐주네만 내 혈천신마권도 만만한 무공은 아니라네.”
혈천신마권도 나쁘지 않지.
격투술에선 1티어.
3대 검법 바로 아래 단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격투술 최강인 [가루다]와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하다.
굳이 따지자면 동부군 군단장의 묵호무적검법과 동급.
군단장의 제안도 뿌리치고 걸어 나온 나다.
그런데 혈천신마권을 배우라고?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입니다. 정말로 큰 영광이고 감사한 말씀이지만 총재님의 말씀에 따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어째서? 내가 자네 사부로 부족한가?”
“그럴 리가요. 하지만······”
나는 보란 듯이 허리에 찬 검을 툭툭 쳤다.
바로 묵호검.
혈왕이 눈썹 하나를 추어올렸다.
“그게 왜? 늙은이가 나한테 뭐라고 할 것 같나?”
“그래도 군단장님의 체면을 정면으로 뭉개는 일 아닙니까. 총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군단장님은 대한민국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자 역사적 위인입니다. 그런 분의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습니다.”
독립 영웅이자 전쟁 영웅.
초창기 대한민국을 떠받쳤던 거인.
군단장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천마 본인이라면 모르겠으나 그 제자와 비교할 수는 없다.
혈왕이 혀를 찼다.
“쯧. 간만에 똘똘한 제자감을 발견했나 했더니······ 늙은이 하나 때문에 망했군, 망했어!”
“죄송합니다.”
“에잉. 됐네.”
3대 검법 중 2개를 이미 확보했다.
그런 나한테 혈천신마권으로 만족하라는 건 있을 수가 없지.
천마신공을 주겠다고 하면 얼른 절부터 했겠지만.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묵호검 아니었으면 꼼짝 못 하고 혈왕 제자로 들어갈 뻔했다.
이게 그거냐?
마탑주가 감탄하고 군단장이 경악하며 총재가 원한다는 그거?
“이거나 받게.”
혈왕이 패 하나를 꺼내 던졌다.
거무튀튀하고 굉장히 무거운 직사각형 패.
나는 패를 받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천마군림 만마앙복]만년한철로 만든 패에 많이 보던 한자가 적혀 있어서.
무협 소설 단골 멘트.
약간의 바리에이션은 있어도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
“천마패일세.”
“이, 이걸 왜 저한테 주십니까?”
“내 마음의 표시라네. 오로지 사부님과 우리 사형제, 직계 사손들만 사용할 수 있는 패지. 언제든 필요하면 쓰게나.”
대신······ 알지?
혈왕이 흐릿하게 웃었다.
겉으로 보기엔 무덤덤해 보이는 얼굴.
그러나 무감정한 눈 깊숙이, 나는 어떤 감정을 하나 읽어냈다.
경쟁심이었다.
아마도 동부군 군단장을 향할 감정.
젊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걸까?
나이 차이도 둘이 많이 나면서.
군단장은 백 살이 넘고, 혈왕은 여든 살을 조금 넘었잖아.
거의 스무 살 차이가 나는데······
“그만 가보게나. 다음에 볼 때는 사부님이라고 부르면 좋겠군.”
“강녕하십시오.”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다.
나름 편하게 대한다고 했는데 긴장했던 걸까?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후우우!”
수호자 연맹 로비까지 나와서 한숨을 쉬자 따라왔던 시그문드가 씩 웃는다.
“고생하셨습니다. 쉽지 않지요?”
“이상하게 긴장되는 분이네요.”
“초월자 아닙니까, 초월자. 우리 같은 평범한 초인과는 격이 다르지요.”
“시그문드 씨도 5레벨인 시점에서 평범하다고는 못 합니다만······”
“여기서 5레벨이면 평범한 겁니다. 6레벨도 목에 힘을 못 줘요. 7레벨은 되어야 얼굴 쳐들고 다닙니다.”
“용담호혈이 따로 없네요.”
“어······ 드래곤 폰드 타이거 케이브요?”
내 번역이 이상했나?
직역하니까 이상하게 들리긴 한다.
내가 영미권 속담이랑 격언을 알아야 말이지.
“자, 자, 미스터 김 수호자 됐으니 축제를 벌입시다!”
“또요?”
“어허. 당연한 거 아닙니까? 지금 연맹 밖에 수호자들이 떼로 몰려와 있어요. 만인의 은인 아닙니까! 만인의 은인! 곧 도시 축제가 시작될 겁니다.”
“도시 축제는 또 뭐에요?”
“말 그대로죠. 가족 축제나 형제단 축제로는 모자랍니다. 어쩌면 매년 오늘 미스터 김과 성흔 극복법을 기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성흔 전부, 혹은 중급 마신까지 극복법을 알려줬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겨우 6종 알려주고 땡이었잖아.
그 6종에서 규칙을 발견하고 108좌 마신 전부에게 확장시킨다면 가능하겠지만······
퍼엉! 펑펑!
갑자기 바깥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시그문드가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니 나만 빼놓고 시작해? 이 인간들이! 어서 갑시다! 어서!”
“자, 잠깐만요. 숨만 좀 돌리고······”
“가면서 숨 돌리면 돼!”
노르드 전사의 추진력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시그문드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이미 놀자판.
도시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구아앙! 구아아앙!
20미터짜리 뿔피리를 혼자 들고 불어대는 초인.
쾅쾅! 콰콰쾅!
초거대 마력 역장 북을 마구 두들기는 초인.
찌이잉! 찌르르르!
수백 미터 마천루에 마력실을 걸어놓고 바이올린 켜듯이 신검으로 연주하는 초인.
온 도시가 춤판이었다.
다들 한 손에는 진은 술잔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고깃덩이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고래고래 노래를 빙자한 고함을 지르는 것은 덤.
웃통 벗은 노르드 전사와 치마 갑옷 입은 스파르타 전사가 어깨동무를 하고 캉캉춤을 춘다.
사이보그 흑인 강화병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앞에서 마술사 복장을 한 마법사가 타로 카드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카드가 꽂힐 때마다 화려한 마법이 발동하여 두 눈을 사로잡았다.
사제들이라고 다를 건 없다. 사제복을 거꾸로 입고 물구나무를 서서는 꽥꽥 대며 합창하고 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
“이, 이게 도대체······”
“수호자님은 처음 보시겠습니다.”
시그문드가 환하게 웃었다.
“도시 전체가 축하할 일이 있으면 이런 축제가 벌어지곤 합니다.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30년 전, 천마님께서 마지막으로 미궁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이후로는 특별히 축하할 일이 없었는데.”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요.”
“하하하! 인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축제입니다. 어서 가죠!”
이거 축제 맞아?
광란의 도가니 아니야?
하지만 나 또한 이내 광분하는 군중들 틈에 섞이게 되었다.
“미스터 김!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우리 딸이 살았어요!”
“미스터 김 아니었으면 오빠가 죽었을 거예요!”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는, 또 전신으로 고맙다고 방방 뛰는 사람들 덕분에.
술을 죽기 직전까지 마셔야 했지만 괜찮았다.
[불굴][마약 저항][독 저항] [시구르드 연공법][인내][결의]나한텐 특성 전환이 있었으니까.
“으응? 우리 수호자님 술이 좀 세신데?”
“함 붙어보자!”
“끝까지 가보자고!”
술고래 노르드 전사.
괴수곰 생체 변이 강화병.
평생 술 마법만 연구했다는 마법사.
디오니소스에게 직접 포도주를 바쳤다는 사제.
모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우왜액!”
“아윽!”
“드르렁······ 푸우우······”
내 주변에는 전사한 사람들만 남았다.
꺽꺽대며 토사물을 쏟아내는 초인,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자는 초인, 바닥을 벅벅 긁으며 기어가는 초인.
조금 아쉬웠다.
술이 술을 부른다고 해야 할까?
한 서너 병만 더 마시면 딱 좋겠는데.
“에라.”
술은 무슨 술이냐.
나도 들어가서 자야지.
그렇게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호텔 바로 옆 골목.
땅거미가 내려 으슥한 곳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형! 형!”
영어도 독일어도 아닌, 날 것 그대로의 한국어.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분명히 아는 목소리였기 때문에.
“어······ 사제야?”
후드티를 깊이 눌러썼지만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순둥한 얼굴에 금속성 광택이 어린 하얀 머리.
바로 김사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