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72)
특성 쌓는 김전사-172화(172/300)
172화 대미궁 –4-
네피림은 죽었다.
비로소 몸을 이완시켰다.
“으으으.”
진짜로 죽을 것 같다.
근처에 굴러다니던 내 팔뚝을 주워 잘린 자리에 붙였다.
최상급 치유 물약을 하나 시원하게 들이켰다.
[불사][소생][재생] [토르 연공법][마력 회복][명상]특성을 바꾸고 눈을 감는다.
명상의 힘을 빌려 내면 속으로 침잠.
마력의 불을 일깨웠다.
번갯불 같은 마력이 마력 회로를 회전한다.
피부에서 수증기가 일어나면서 급속 치유되기 시작.
한참 걸렸다.
팔이 붙고, 전신을 할퀴던 통증이 사라지기까지는.
치유를 끝내고 눈을 뜨자 가까이 와 있던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팔은요? 팔은 어떠세요?”
“살아 계신 거죠?”
뒤에서 많이 걱정한 모양.
그만큼 처절하게 싸웠으니까.
확실히 보스급은 달라.
완성된 7레벨이었던 학살 여제보다 더 힘든 느낌이었다.
중간에 내 의도대로 광휘를 얻지 못했으면 최상급 치유 물약이 아니라 엘릭서를 써야 했겠지.
“허허, 거참.”
“6레벨 맞으십니까?”
“7레벨도 불가능할 일을…….”
“대단하십니다. 단신으로 51층으로 내려가실 수도 있겠어요.”
“이거야 원. 지상의 맹우들이 들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제자들만 와 있는 게 아니었다.
어제 잠깐 얼굴을 봤던 대포 기지 수호자들이 날 보고 경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포 기지에서 네피림 결투장까지는 도보로 1시간 거리.
중간에 특별한 장애물이 없는 만큼 잘 보인다.
몇 시간 내내 번쩍번쩍하며 싸우고 있으니 수호자들이 찾아온 것.
나는 적당히 웃어 보였다.
“제가 좀 셉니다.”
“허허허.”
“하하. 조금이요?”
“나중에 총재 하실 생각은 없소? 생각 있으시면 우리 형제단이 밀어 드리리다.”
“전 할 일이 있어서요.”
총재?
미쳤냐?
그거 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수호자 연맹 공헌도를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대미궁이든 대균열이든 거의 10년 이상 박혀 있어야 한다고.
그냥 시켜 준다면 모를까 꼼짝 못 하고 대미궁만 파는 건 사절이다.
저벅저벅.
핏물을 밟으며 쓰러진 네피림을 향해 걸어갔다.
벌써 증발이 진행되고 있다.
거친 피부가 연기로 변해 흩날리는 중이다.
뒷목에 꽂힌 묵호검을 빼낸 후 왼손으로 쥐었다.
거꾸로, 역수로.
그걸 들고 네피림이 아직도 쥐고 있는 거대 검을 향해 다가간다.
‘여기네.’
귀안으로 보면 보인다.
시내버스 크기의 몽둥이 같은 검.
그 중심에 빛나는 마력 덩어리가 있는 것이.
사람이 쓸 만한 검 형태로.
거기다 묵호검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묠니르를 들고 힘껏 내리쳤다.
꽈앙!
굉음이 터진다.
마치 정을 들고 망치를 내리쳐 바위를 깎아 내는 모양새.
제자들이, 수호자들이 어안이 벙벙해서는 쳐다본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뭐 하시는 겁니까?”
“보면 압니다.”
섬세하게 깎아 낸다.
그런 내 등에서는 광휘가, 왼손에 쥔 묵호검에서는 성광이, 오른손에 든 묠니르는 신기의 힘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구경하던 이들의 눈이 모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선생님 성기사였어?”
“글쎄…….”
“무사시지.”
“아냐. 전사셔.”
“천마지체시잖아, 천마지체. 단순히 성기사나 전사라고 할 수 없지.”
“아, 맞다.”
꽈아앙! 꽝!
몇 번을 내리치자 거대 검의 표면에 금이 쩍쩍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파괴되어 속살을 드러낸다.
투명하게 새어 나오는 묵광.
혹은 칠흑.
더욱 힘을 주어 파괴 특성을 사용했다.
한참 힘을 쓴 끝에 마침내 내가 찾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자루의 검.
아니, 광선.
검 자체가 무형체였다.
어둠을, 까만빛을 담금질하여 만든 것처럼 보였다.
손잡이도 코등이도 없이 칼날만 존재하는 기이한 어둠의 검.
[SSR 칠흑검]그런 주제에 컸다.
흔히 보이는 장검 종류가 아니었다.
차라리 양손검이라고 봐야겠지.
검의 형태를 봐도, 길이와 넓이를 봐도.
“쟈네트.”
“네?”
“네 거다.”
쟈네트를 손짓해서 불렀다.
칠흑검은 좋은 검이다.
공격력과 능력치 모두 빠질 게 없다.
특히 검강이나 강기를 쓰면 증폭되어 만들어지는 칠흑강기는 아케인 서울에서도 손꼽히지.
무형체 검이라 몸에 넣어 다닐 수도 있고.
하지만 묵호검과 비교하면?
둘 다 좋지만 선택의 문제.
파괴불가와 공격력을 선택할 거냐, 능력치와 특수 효과를 선택할 거냐.
묠니르가 있으니 내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쟈네트의 눈이 흔들렸다.
“저, 저요?”
“그래. 아, 성검은 칼리 줘라. 칼리도 슬슬 좋은 검 써야지.”
“제, 제가요? 선생님이 다 하셨잖아요.”
“난 쓸 데가 없어.”
묵호검을 툭툭 치며 웃자 그제야 쟈네트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반면 수호자들은 뚱한 얼굴.
“흠…….”
“이거,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저들이 떨떠름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칠흑검은 네피림과 함께 증발하거든.
네피림은 설정상 불멸의 존재.
죽여도 봉인해도 하루가 지나면 되살아난다.
자길 죽였던 이들은 지나가도 못 본 척하지만, 아닌 이들은 공격하면서 수문장의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칠흑검을 얻는 방법이 있지.
쟈네트가 와서 칠흑검을 쥐었다.
제자들은 탄성을, 수호자들은 탄식을 질렀다.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수호자들이 다가와 입을 연다.
“저기, 성흔의 수호자님? 실은 말입니다. 그 검…….”
“알고 있습니다.”
“아신다고요?”
“예. 알고 있으니까 보고만 계세요.”
쟈네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내가 묵호검을 꽂았던, 지금도 흐물흐물한 상처를 가리켰다.
“쟈네트. 여기에 검을 꽂아라.”
“이거요?”
“어. 그리고 검이 하라는 대로 해.”
“검이 하라는 대로…….”
“그래. 그러면 돼.”
쟈네트가 날 한 번 보더니 검을 치켜들었다.
콰악!
힘껏 상처에 내리꽂는다.
사방으로 튀는 묵광.
칠흑검이 아예 검은 빛 덩어리로 변했다.
쟈네트는 물론 쓰러진 네피림을, 그 주위 공간을, 심지어 경기장 전체를 할퀴듯이 감쌌다.
“엇!”
“이, 이건?”
“무슨 마력이…….”
얼핏 느끼기에도 무시무시한 마력.
나는 묵호검과 묠니르를 쥐고 풀쩍 뛰어내렸다.
둘은 허리에 갈무리한 뒤 등에 짊어지고 있던 총을 들었다.
다산총 중 자동소총.
나머지 다산총도 모두 갖고 있어 다섯 속성을 모두 쓸 수 있는 상태.
“수호자분들께서는 대포 기지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왜 그러십니까?”
“곧 악마들이 몰려올 겁니다.”
“악마들이요? 왜요?”
“이것 때문이죠.”
나는 경기장 안의 묵광을 소총으로 콕콕 찔렀다.
“타락 천사의 시체입니다. 악마들에겐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지요. 51층에서 악마들이 몰려옵니다. 거의 작은 웨이브 수준이에요.”
“헉!”
“웨이브라고요?”
“이런! 왜 말도 안 하고 일을 저지르신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끼리 방어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일이 잘못돼도 대포 기지까진 안 쳐들어갑니다. 여기서 시체 뜯어먹고 흩어지지.”
“음…….”
“그러니 여러분은 고생하실 필요가 없어요. 여긴 저희한테 맡기시고 돌아가세요.”
악마 웨이브는 네피림을 쓰러뜨린 파티라면 충분히 막는다.
제자들이, 특히 4레벨인 칼리가 걱정되긴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법.
정 위험하면 내 그림자에 숨어 있으라고 해야지.
“참으로 패기만만하십니다.”
수호자 중 머리 허연 노인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명색이 수호자란 인간이 악마 앞에서 도망칠 수는 없지요.”
수호자들이 서로를 보며 눈짓을 나눴다.
그러더니 어깨를 마주하고 경기장 출구를 틀어막는다.
젊어 보이는 수호자가 기세 좋게 외쳤다.
“전리품은 우리 겁니다!”
“기여하는 부분만큼 당연히 분배해 드리겠습니다.”
두두두두.
땅이 울린다.
경기장 출구 바깥 계단.
32차선 도로를 만들고도 남을 공간으로 불길한 마력 파장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악마들.
“키킥! 키에엑!”
“케에에엑!”
“캭캭! 인간이다!”
“천사! 천사의 피! 천사의 살점!”
51층부터는 대미궁도 차원이 다르다.
몰려다니는 잡졸들이 6레벨.
간혹 보이는 흉악한 악마가 7레벨.
그나마 보스인 8레벨 악마는 올라오지 않은 모양.
제자들이 긴장하며 수호자들 뒤에 가서 붙었다.
“저, 저희도 도울게요!”
“방해나 하지 마라!”
“도움이 될 거예요!”
“빠져 있어!”
다들 긴장한 기색.
수호자들의 얼굴도 굳어 있다.
언뜻 본 규모가 최소 수백은 되어 보이니까.
“후으읍.”
총을 겨눈다.
처음으로 써 보는 다산 소총.
하지만 몸에 착 감긴다.
다산총 중 가장 구하기 힘들다는 총답게, 총에 부여된 온갖 마법이 나를 보조하고 있었다.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탕!
연발로 놓고 갈겼다.
그러나 총구가 들리는 일 따위는 없다.
내가 겨눈 대로, 가늠쇠와 가늠자에 넣은 대로, 시커먼 피가 퍽퍽 터지며 악마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케겍!”
“켁!”
“키아악!”
울려 퍼지는 비명.
그 뒤로 성스러운 빛과 강렬한 번개, 까만 불꽃이 나란히 피어났다.
우스스 추수되는 악마들을 보고 수호자들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게 무슨!”
“불가능해! 저건 불가능하다고!”
“어떻게 총으로 6레벨 악마들을!”
총은 검보다 약하다.
총이 만병지왕이던 것은 1, 2레벨까지다.
3레벨부터 검이 총을 따라잡으며, 5레벨쯤 되면 완벽히 역전한다.
그런데 내 총에 악마들이 학살당하는 이유?
간단하다.
첫 한 발.
방아쇠를 당기는 최초의 순간.
[정지] 속성이 악마를 멈춰 세운다.뒤이어 [파괴] 속성이 약점에 꽂힌다.
파괴된 외피를 [충격] 속성이 찢어발긴다.
[영탄] 속성이 약해진 지점에 작렬하여 기절시킨다.기절하면 일시적으로 방어력도, 저항력도 저하되는 법.
최종적으로 [죽음] 속성이 악마를 끝장내고 만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정지 속성을 쓸 때는 성광 특성을.
파괴 속성은 파괴 특성과 함께.
충격 속성은 벼락을 동반한 채로.
영탄 속성은 강타와 신성력.
죽음 속성 마무리는 흑염을 함께 사용한다.
총잡이, 실전 격투, 일기당천 같은 기본적인 특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고 있었고.
휘익!
총알을 다 썼다.
미리 바닥에 쏟아 놓은 탄창을 툭 쳤다.
그러면 총잡이는 물론 급속 장전 특성의 보정으로 탄창이 툭 튀어오른다.
감각적으로 소총을 내밀면 거의 자동으로 결합.
다시 소총을 겨누고 갈겨 댔다.
기계적이기까지 한 재장전과 사격의 연속.
기세등등해서 달려오던 악마들이 빠르게 시체가 되고 있었다.
악마가 아닌 것 같았다.
좀비 떼 같았다.
인해 전술만 믿는, 느리디느린, 내구도도 약한 시체 더미들.
비장한 각오로 방어진을 펼쳤던 수호자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하.”
“저놈들 악마 맞습니까? 51층 놈들 맞아요?”
“맞네. 마력 파장을 보게.”
“그런데 어떻게…….”
“악마 학살이 저리 쉽다니…… 하하하.”
쉬워 보이냐?
겉으로 보기엔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뇌가 지끈지끈 녹아내리는 듯한 감각을 맛보고 있었다.
소총 연사 중에 특성 전환이다.
19세기 초에 만든 총이라고 하나, 최근 개조를 거쳐 원래 세계 K2 소총과 비슷한 제원을 가지게 된 다산 소총.
즉, 1분에 900발 가까이 발사할 수 있다.
그런데 1발 쏠 때마다 특성 전환을 한다?
주르륵.
코피가 흘렀다.
눈이 따갑다.
혀가 꺼끌꺼끌하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세상이 노래 보일 지경.
그러나 사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도.
근육이 긴장하다 못해 파들파들 떨려도 방아쇠를 당기고 장전을 하고 기계 인간처럼 움직였다.
여태 쌓은 경험이 아니었다면 못 했겠지.
멀리서 총만 쏘는 거라 가능한 거기도 하고.
“막아!”
“밀어붙여!”
어떻게든 방어선에 도달한 악마들.
수가 적었다.
올라온 수백 마리 중, 겨우 수십 마리가 방어선에 들이받은 게 고작이었다.
이 정도는 수호자들만으로도 충분히 막는다.
“죽어! 죽으라고!”
미친 듯이 폭주하며 요도를 그어 대는 백소린.
“흐압!”
신검합일하여 검기를 날리는 서우진.
“조심하세요!”
위험할 때마다 뒤에서 솟구치는 칼리.
이 셋의 도움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어느새 어둠이 지고 있었다.
영역을 좁혀 갈무리되는 묵광.
네피림 시체는 증발한 지 오래.
경기장 중심에 남아 있는 것은 쟈네트와, 쟈네트가 쥔 칠흑검 뿐이었다.
아우우웅!
기운차게 울부짖는 칠흑검.
생김새가 살짝 바뀌었다.
광선검의 칼날만 있던 모습에서, 손잡이와 코등이가 생기고 표면에 신성 문자가 둥둥 떠다니는 형태로.
완전히 현실에 고정되어 실체화된 것이다.
“저, 저 검은…….”
“아시는 검입니까? 전 처음 보는데요.”
“아니, 아닐세. 그런 검이 존재할 리가 없지.”
수호자 중 한 명은 알아본 모양.
그러면서도 설마, 하는 얼굴이다.
고문서 속 네피림의 검은 그만큼 허황된 검이고 검법이니까.
하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내 눈앞에, 또 쟈네트의 손에.
콰직!
쟈네트가 별안간 검을 자기 심장에 꽂았다.
“쟈네트!”
“뭐야? 왜 그래? 미쳤어?”
백소린과 칼리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서우진도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놀라지 않은 건 나 하나.
쟈네트 옆으로 다가가 담담히 물었다.
“알겠니?”
“네. 알겠어요.”
살며시 뜬 쟈네트의 푸른 눈.
그 안에 신성 문자가 빠르게 출력되고 있었다.
프로그램 코드를 마우스 휠 휙휙 굴려 내리는 것처럼.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
칠흑검이 쟈네트에게 귀속되고 나면 네피림의 검도 자리를 잡겠지.
“돌아가자.”
집에 갈 때다.
또, 네피림의 검을 전승받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