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212)
특성 쌓는 김전사-212화(212/300)
212화 동부군의 어둠 –2-
군단장이 거칠게 서류 뭉치를 내던졌다.
원래 같았으면 제멋대로 퍼져야 했을 서류 뭉치.
그런데 달랐다.
종이 병정처럼 오와 열을 맞춰 날아오르더니 책상에 내리꽂힌다.
도열하듯 앉아 있는 사단장들, 참모들 앞에.
특히 군단장을 닮은 이들 앞에.
파파파팍!
탁자를 반쯤 파고들어 꼿꼿하게 정렬한 종이 병정들.
앉아 있던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구진주, 구형주, 두 사단장이 특히 그랬다.
의외인 것은 구정주, 나와 싸웠던 소드마스터 구 노인은 물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는 점.
동생 둘이 곤욕을 치르게 생겼으니 성격상 기뻐할 만도 한데.
내게 패하고 얻은 깨달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걸까?
“아버지, 아니, 군단장님. 이건…….”
2사단장 구진주가 뭐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자 군단장이 눈을 부라린다.
“할 말이 있느냐?”
냉기가 칼날처럼 몰아친다.
북풍한설 같은 바람.
군단장이 터지기 직전이라는 뜻.
2사단장이 곤란한 얼굴로 뭐라 하려는 찰나, 옆에 앉아 있던 3사단장 구형주가 벌떡 일어났다.
콰앙!
그러더니 탁자에 대고 머리를 냅다 박는다.
굉음이 터질 정도로.
대신 부서지진 않을 만큼만.
90도로 허리를 숙인 것.
“죄송합니다. 군단장님! 제가 미욱하여 군단장님께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어째서 이딴 짓을 한 거냐!”
“죄송합니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8레벨이 되고 싶은 마음에 과욕을 부렸습니다!”
“멍청한 놈. 이딴 사술로 8레벨이 된다고 해서 진짜 8레벨이겠느냐? 얼마 전에 울릉도에서 일식 학파 흑마법사 놈이 한 짓을 보고도 몰라?”
“죄송합니다! 즉각 철회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겠습니다!”
“쯧쯧쯧.”
울릉도 일식 학파 흑마법사?
4대 세력들은 다 아나 보다.
태양 마탑에서는 분명히 비밀로 했을 텐데.
군단장이 혀를 끌끌 찼다.
칼날처럼 일어나던 공기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의기상인] 특성이 비활성화된 것.이게 정답이었다.
만약 3사단장이 적당히 오리발을 내밀고 발뺌했으면 바로 터졌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2사단장, 3사단장은 초죽음이 됐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군단장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2사단장도 일어나서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자식들이 그러는 걸 보니 군단장도 마음이 풀린 모양.
눈가와 목에 솟았던 핏대가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나는 군단장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군단장님. 저는 엄연히 외부인이니 군단 내부의 일에는 관여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과연 이런 일이 성수동 공장에서만 있었을까요? 저는 성수동 공장 일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음…….”
나직이 신음하는 군단장.
잠시 눈을 감더니 2사단장과 3사단장, 아울러 다른 장군들과 참모들을 한 번씩 쏘아본다.
“여기 이 자리에서 말해 보아라. 그러면 내 정상 참작 해 주마. 여기 검성의 의심이 사실이냐?”
잠시 침묵.
군단장이 탁자를 내리쳤다.
“왜 대답이 없어!”
꽈앙!
탁자가 모양 그대로 바닥에 박힌다.
부서진 것도, 망가진 것도 아닌, 서류 뭉치를 여전히 병정 떼처럼 품은 채로.
앞에 앉아 있던 장교들이 목을 움츠렸다.
3사단장이 악을 쓰듯 외쳤다.
“절대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제가 비록 한 번은 실수했지만 이 일 말고는 절대 사도를 걸은 적이 없습니다! 군단장님께서 엄격히 금지하신 일에 어찌 감히 손을 대겠습니까?”
“그래?”
군단장이 의혹에 찬 눈빛을 보낸다.
그러자 3사단장이 억울하다는 듯 군단장을 마주 보았다.
2사단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이에요. 어쩌다 보니 공장 일에는 휘말렸지만 딱 한 번뿐이었어요. 초인 접합으로 8레벨이 될 수 있다는 소리에 혹해서 그만…….”
“쯔쯔쯔! 내 그리 당부를 했거늘!”
“죄송합니다. 하지만 딱 한 번이었다는 건 정말이에요. 돌아가신 어머니께 맹세할 수 있어요.”
“믿어도 되겠느냐?”
“그럼요.”
인성 봐라.
엄마를 걸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군단장은 반쯤 넘어간 모습이다.
군단장으로서는 자기 딸이 죽은 아내를 걸고 맹세하는데 안 믿을 수가 없겠지.
자기 죽은 뒤에 자식들끼리 어떤 개판을 벌이는지 모르니까.
“너희는? 너희는 어떠냐?”
군단장이 다른 자식들을 하나씩 쓸어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각자 공손히 머리를 숙인다.
“저희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전 사실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시 시정하고 바로잡겠습니다.”
“저 또한 그리하겠습니다.”
“허허, 썩었구나. 아주, 아주 다 썩었어! 허허허. 내 발 밑이 이렇게 썩어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니!”
군단장이 장탄식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로서는 헛웃음밖에 안 나올 일이다.
군단장 장교들 모두가 적당히 넘어가려는 게 눈에 보여서.
지금 죄를 고백한 이들도 다들 조그마한 거 하나 털어놓는 게 전부였다.
여기 있는 장교들은 모두 군단장의 혈족.
묵호 구가 출신.
꾸중은 듣고 근신은 해도 보직 해임이나 형사 처벌당할 수위의 죄는 고백하지 않고 있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구 노인뿐.
주름 자글자글한 그 얼굴을, 자기보다 두 배는 나이 들어 보이는 장남을, 군단장이 직시하며 마지막 질문을 남겼다.
“정주 너는 어땠느냐?”
“제가 가장 악질이었지요.”
“악질이었다?”
“예.”
구 노인이 손을 휘저었다.
탁자에 꽂혀 있던 서류 뭉치가 날아올라 구 노인의 손에 들어간다.
구 노인이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말했다.
“범죄자 반출, 불법 이송, 생체 실험, 살인, 고문, 어이쿠, 범죄자만 아니라 일반 초인도 몇 명 썼네? 출신 가문 없고 비빌 소속 단체 없는 개천용 초인들로만. 너희 둘 참 가지가지 했다.”
“으흠!”
“흥.”
경쟁자라 그럴까?
2사단장과 3사단장이 고개를 돌렸다.
둘의 얼굴이 어떤 감정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래서 댁은 어땠는데, 하는 얼굴.
구 노인이 뒤에서 뭔 짓을 했는지 둘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탁!
구 노인이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티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군단장을 주시한다.
“저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고작? 고작이라고?”
“예.”
힘을 주어 머리를 끄덕이는 구 노인.
“저는 죄 없는 자들을 잡아다 고문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력 파장의 흔들림을 보았으며, 묵호무적신공을 주입할 때 뒤틀리는 혈맥과 신경계에서 마력 회로의 모습을 유추하였습니다. 강제로 대호검법, 호왕검법, 묵호무적검법을 각인시켜 서로 싸우게 하였고 그 모습을 보며 검로를 그리고자 하였습니다. 또, 마법사들을 이용하여 묵호무적검법에 최적인 육체로 환골탈태하는 방법을 연구하였지요.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수백이 넘습니다.”
“허, 허허허.”
군단장이 웃음을 터뜨린다.
살기로 가득 찬 웃음이었다.
가라앉았던 의기상인이 재활성화된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날카로워진다.
내가 입은 마법 추리닝 겉면이 베여 실밥이 흩날릴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걸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구 노인이 나를 한 번 보았다.
안 그래도 담담하던 얼굴이 더욱 담담해진다.
흐르는 강물처럼.
혹은 투명하디 투명한 시베리아의 호숫물처럼.
“이제는 모두 헛되고 무의미한 짓이었다는 걸 압니다. 비록 제가 한때는 미망과 미혹에 휩싸여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모두 손을 털었습니다. 저로 인해 희생된 이들에게 작게나마 사과와 배상도 하고 있고요. 살아 있는 자는 치료와 배상을, 그리고 의체를 주고 이미 죽은 이들은 그 유족들에게 배상하고 사과하고 다니는 중입니다.”
“흠…… 그래. 네가 그러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네가 미쳤나 했더니, 검성과의 인연이 네게 득이 된 모양이구나.”
“예. 검성에게 패배하고 비로소 눈이 뜨였지요.”
구 노인이 내게서 시선을 떼었다.
주위에 앉은 자기 형제자매들을 쭈욱 훑어본다.
그러다 2사단장, 3사단장을 보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진주야, 진주야. 너, 방금 돌아가신 어머니께 맹세한다고 했느냐?”
“그게 왜요?”
“풍파를 일으키기 싫어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그것만은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군단장님. 아니, 아버지. 저 둘이, 아니 우리 군단이 벌인 일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구 노인이 서류를 던졌다.
종이 낱장 낱장이 화려하게 허공을 누비다 탁자에 꽂힌다.
아까 군단장이 꽂았던 지점과 똑같은 지점에.
범재였던 구 노인으로서는 보여 주기 힘든 기예.
미망을 털어 버린 후, 구 노인은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 층 성장한 것이다.
8레벨은 못 됐어도.
“군단장님.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리 군단에는 불법과 사술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군단은 10년 뒤에는 지금과 같은 전사의 요람이자 천국이 아니라 일개 강화병 집단에 불과하게 될 겁니다. 필연적으로 재벌들, 그 돈에 미친 놈들처럼 돈과 권력만 추구하게 되겠지요. 군단장님께서 설파하신 나라와 겨레의 방패가 아닌, 민간인의 보호자가 아닌 깡패 귀족 무리로 변질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허, 형님이 그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3사단장이 빈정거렸다.
하지만 구 노인은 당당하게 군단장을 보고 있었다.
“군단장님. 1사단장으로서 건의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단을 전수 조사하여 모든 불법과 사술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형님!”
“사형!”
“오빠!”
“사백!”
폭탄 발언이었다.
당장 장교들이 깜짝 놀라 비명 지르듯 구 노인을 불렀다.
특히 2사단장과 3사단장은 눈에서 불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넘실거리던 부르짖음은 곧 쥐 죽은 듯 적막을 맞이하게 된다.
“그만.”
듣고 있던 군단장이 오른손을 들었으니까.
“전수 조사를 하자고?”
“예. 검성의 말이 옳습니다. 성수동 공장 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장담합니다만 이 건은 우리 군단이 벌인 모든 불법적이고 사악한 일 중 1%도 안 됩니다.”
“1%? 그게 정말이냐?”
“예. 제 양심과 검에 대고 맹세합니다.”
“허허허, 흐허허, 흐하하하!”
군단장이 웃는다.
처음에는 작던 웃음소리.
조금씩 커진다.
나중에는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공기를 진동시켜 기이한 파장을 만들어 낸다.
“으으윽!”
“군단장님!”
“고, 고정하십시오!”
그 자체로 하나의 음공.
7레벨인 주요 사단장과 참모마저 괴로워할 지경이다.
6레벨인 자들은 거의 졸도할 지경.
나와 구 노인만 멀쩡했다.
군단장이 일부러 비껴 가게 사용해서?
아니다.
난 특성으로 버티고, 구 노인은 앉은 채 신검합일을 일으켜 버틴 거였다.
저 인간 진짜로 강해졌네.
“좋다.”
군단장이 웃음을 그치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군단 전체에 최고 강도 감찰을 실시하겠다. 그리고 그 감찰은…….”
군단장이 구 노인을 주시한다.
많이 바뀐 모습을 보여 준 만큼 구 노인을 시키려는 모양.
뜻밖에도 구 노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저는 검성을 추천합니다.”
“음? 검성을?”
“예. 군단장님. 이번 같은 일은 내부인이 감찰하는 것보다는 외부인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다고 봅니다. 애초에 공장 건을 가져온 것이 검성 아닙니까. 검성에게 의뢰하여 확실히 매듭을 짓는 게 낫지요.”
“외부 감찰이라니…….”
“형님. 우리 군단의 명예를 똥통에 처박으려고 작정하셨소?”
“우리 군단 명예에 똥칠을 한 건 나와 너, 그리고 진주지 검성이 아니다. 외부 감찰? 적당히 묻어 놓고 가는 게 정말로 불명예스러운 일이지 자정 노력을 하는 건 불명예스러운 일은 아니야. 이번 기회에 뼛속까지 깨끗이 하고 가야 우리 군단의 이름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다.”
“아주 성인이 납셨네요? 언제부터 그리 명예롭게 사셨다고.”
2사단장이 불퉁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감찰을 나한테 맡긴다라……
정식 의뢰하면 나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아니, 아주 대환영이다.
거듭 말하지만 동부군이 다시 태어나야 옛 아버지 교단과의 전쟁에서 제 몫을 할 테니.
“좋다.”
고심하던 군단장이 결단을 내렸다.
“검성에게 명예 감찰참모의 직과 명예 소장 계급을 수여한다. 이 직위와 계급은 감찰이 진행되는 기간에 한시적으로 유효하며 동부군 모든 인원에 대해, 나를 포함하여 성역 없이 감찰할 특권을 가진다.”
“군단장님!”
“아무리 그래도 외부 감찰이라니요!”
“시끄럽다!”
군단장이 발을 꽝 굴렀다.
마력이 땅을 타고 달음박질친다.
방패 계열 특성인 충격파를 발로 구현한 듯한 효과.
나도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감탄했다.
“애초에 너희가 잘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뭐? 생체 실험? 초인 접합? 이게 무슨 흑마법사들이나 할 짓이야! 너희가 그러니 여태 8레벨이 못 됐지! 전사가 강해지는 방법은 수련뿐이고, 수련에는 왕도가 없다!”
꽝! 꽝! 꽝!
군단장이 분을 못 이기고 발을 몇 번이나 굴렀다.
그때마다 충격파가 장교들을 후려갈겼다.
장교들이 더는 못 버티고 기절해 쓰러진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장교도 있었다.
2사단장과 3사단장이 창백한 얼굴로 허리를 굽혔다.
“죄송,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
“잘못인 줄 알면 하질 말았어야지!”
군단장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두드린다.
“잘 부탁한다, 검성. 자식새끼는 많은데 믿고 맡길 건 너밖에 없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말고. 혹여 흰소리 늘어놓는 놈 있으면 나한테 말해. 아니지. 그냥 콱 쥐어패. 죄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놈들이라 쥐어패야 말을 들을 게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군단장이 장교들을 노려본 후 자리를 떴다.
그제야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비척비척 일어나는 장교들.
그중 2사단장과 3사단장이 내게 다가왔다.
“검성. 잠깐 나 좀 보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한 얼굴.
그러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살의가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