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오랜만에 듣는 낮은 중저음.
목소리만으로도 미남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는 남자.
기사단 내부 인기투표에서 언제나 꼴찌를 기록하는 사나이.
“워즈 탈레인.”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워즈는 300년 전과 마찬가지인 무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이렇게 다시 단장님을 뵐 수 있음에, 또한 단장님께서 걸으시는 길에 또 한 번 동행할 수 있음을 실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 음. 그래.”
옛날부터 너무 과할 정도로 예우를 차린다. 한나는 그래도 아주 가끔 유도리를 발휘하는데 워즈는 그런 게 일절 없다.
특히나 다른 단원들이랑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저 무표정함에서 나오는 충성심.
가끔 보면 잔잔한 광기가 느껴지는 충성심이 워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광기가 피를 타고 과수원장에게 물려진 게 아닌가 싶었다.
“어휴, 또 시작했네.”
“적당히 해, 단장도 불편해하잖아.”
톰과 한나도 한마디씩 거들며 워즈를 질책했으나 워즈는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두 사람에게 따지고 든다.
“우리는, 300년 전, 대륙을 구하신 가장 위대한 기사를 모신다는 걸 잊지 마라, 얼간이들아.”
“어, 얼간이?!”
“말조심하지?”
바로 흉흉하니 워즈를 노려보는 두 사람. 워즈 역시 지지 않고 둘의 시선을 맞받아친다.
“그럼? 단장님께서 아직도 이렇게 직접 적을 상대하게 만들었는데 너희가 얼간이가 아니면 뭐지? 나였으면 진즉에 끝냈어.”
그 말에 톰이 어이가 없다며 가슴을 쿵쿵 후려친다.
“야! 야! 지금 이 개 같은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잘 봐! 저기 잘 보라고!”
톰의 손끝이 괴로워하는 과수원장과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마수를 가리킨다.
“네 후손이라는 애가 지금 이 사달을 만들었다고! 게다가 저 마수는 네 검술을 쓰더라! 빌어먹을 놈아!”
“내…… 후손과 검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워즈.
그는 굉장히 당혹스러워하더니 휙 내 쪽을 바라본다.
“저, 정말입니까, 단장님?”
뭔가 여기서 솔직하게 대답하면 워즈가 꽤나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지만.
워즈의 뒤에서 톰과 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한다는 표정을 지었기에.
“……맞아, 네 검술 쓰더라. 그리고 이 반지.”
내가 반지를 내밀어 탈레인 가문의 문양을 보여주자 워즈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너희 가문 문양 맞지? 저 여자애가 이 반지를 이용해서…… 너를 소환했대. 그게 저 마수고.”
“저를? 마수?”
정작 당사자인 워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후 하고 숨을 내뱉는다.
“단장님, 제가 저놈의 검을 확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맘대로.”
마수에게 검이 없으니 내 검을 건네준다.
워즈나 다른 애들의 검에 비해서는 썩 볼품없는 물건이었으나 녀석은 귀한 보검을 하사받듯 조심스럽게 받아서는 마수에게 다가갔다.
“네가 내 검술을 사용하고 있다?”
워즈의 눈초리와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하고, 한기가 세차게 불어온다.
방금까지 내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조심스러워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싸늘한 목소리는 한 자루의 검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건 정신병 아닙니까?”
“하아, 단장이 한마디 해주셔야 합니다.”
“……동기들끼리 알아서 해라.”
톰과 한나의 꿍얼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수를 노려보는 워즈.
하지만 의외인 점은 마수 역시 워즈를 보며 복잡한 감성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좋은 감정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이빨을 보이며 숨소리가 거칠어진 걸 봤을 때 꽤나 화가 난 듯 보였다.
“검을 쥐어라.”
워즈는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단장인 나의 검을 마수에게 쥐어줄 수는 없다는 느낌인 것 같으면서도.
그냥 내 검을 사용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었다.
워즈의 장검을 쥔 마수는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자세를 잡은 둘.
“흠.”
자신과 똑같은 자세를 잡고 있는 마수를 보면서도 워즈는 동요조차 없었다.
단순히 판단하듯 숨소리를 한 번 내뱉은 후, 곧바로 움직였다.
카앙!
길게 울려 퍼지는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
깊은 울림과 더불어 터지듯 퍼지는 바람은 둘의 검술이 일정 경지 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신체능력 면에서는 당연히 마수 쪽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흠.”
견적을 보는 감정사처럼 묵묵하니 생각에 잠기면서도 워즈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원래라면 수비적인 방식으로 대련을 이끌어가는 게 워즈의 주특기였으나.
이번에는 마수의 검술을 보려는 심산인지 검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휘두른다.
“짜식, 답지 않게 휘두르긴. 저러다 지는 거 아닙니까?”
내심 워즈가 지는 걸 바라는 듯한 톰이 팔짱을 끼며 말했으나.
아마 톰도 워즈가 질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냥 워즈가 싫어서 그리 말한 것뿐이겠지.
쾅!
마수는 되레 정석적으로 검을 방어하고 워즈의 카운터를 치는 방식으로 전투를 이끌고 있으나.
정작 카운터는 손쉽게 막혀 버리고 워즈에게로 자연스럽게 흐름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군요.”
“뭐, 그렇지.”
한나의 말이 딱 어울렸다.
사실 검술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워즈에게 그 검술을 가지고 덤빈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
굳이 따지자면 가지고 놀고 있다기보다는 교수가 생도의 시험을 봐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흐음.”
그때 채점이 끝났는지 워즈가 한 걸음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인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워즈의 입에선 꽤나 날선 말이 튀어나왔다.
“제 흉내를 내고 계셨습니까, 웨인 형님.”
“웨인?”
“형님?”
톰과 한나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으나, 나는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리에서 번뜩임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
탄성과 함께 답을 내놓으려 했으나, 놀랍게도 나보다 한 발 먼저 정답을 말한 사람이 있었다.
“웨인? 웨인 탈레인? 도, 도망쳤다는 가문의 수치?”
마찬가지로 탈레인 가문인 과수원장이 버럭 외치며 마수를 노려본다.
“워, 워즈 님과 반대로 악마들과 싸우는 걸 무서워해서 도망쳤다는 겁쟁이잖아!”
그 말에 마수가 거칠게 포효하며 과수원장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넘어뜨렸다.
“꺄악!”
웨인에 대해서 욕했을 때 보이는 과민반응.
워즈와 비슷하지만 디테일에서는 많이 부족한 검술 등.
“확실히 웨인인 것 같네.”
웨인도 은빛사자 기사단에 면접을 보러 왔었고, 검술은 나름대로 실력이 출중했으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좀 많이 부족해서 탈락시켰지.”
자신보다 강한 기사와는 대련하지 않거나, 위협적인 마수 토벌에서는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던 기사였다.
기사란 지키는 존재.
“본인보다 강한 적을 만나게 됐을 때 도망치면 안 되잖아.”
보통 우리의 뒤에는 항상 누군가 있다. 그게 평범한 시민이든, 지켜야 할 동료이든, 아니면 귀한 핏줄의 귀족이나 왕족이든.
어쨌든 우리의 방패와 검은 물러서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내, 내가 불러낸 게 워즈 님이 아니라 웨인이였다고?”
밀쳐 넘어졌음에도 과수원장은 재빠르게 벌떡 일어나 과격하게 부정한다.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기사단을 재건하기 위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이제는 마수의 어깨를 잡고 과수원장은 격렬하게 따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해! 왜 진짜 워즈는 저애한테 가 있고! 네가……!”
콰득!
방금까지 억울함을 토로하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이빨이 붉게 물들어간다.
“아…….”
웨인이 휘두른 장검에 심장이 찔린 과수원장.
눈동자에서 점차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하며 힘이 풀렸는지 무릎을 꿇는다.
“아, 아.”
억울함이나 분노를 토해내지도 못하고, 과수원장은 무릎을 꿇으며 제대로 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허무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에는 자신의 조상에게 이용만 당했고, 또한 조상의 손에 의해서 대가 끊어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거였다.
처음 과수원에 왔을 당시, 과수원장을 보면서 기사단원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악인일 수도 있다는 건 생각했었으나.
설마 단원의 가족이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생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형님.”
후손을 죽였다.
꽤나 민감하게 반응할 법함에도 워즈는 여전히 똑같은 표정으로 냉정하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그대로 베어 넘어가는 마수.
자신의 형제를 상대함에 있어서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찝찝하구만.”
“저희가 할 걸 그랬습니다.”
워즈의 형인 웨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자신들이 움직일 걸 그랬다고 말하며 후회하는 톰과 한나.
방금 소환된 워즈에게 너무 가혹한 짐을 짊어지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랬으면 오히려 더 싫어했을걸.”
워즈의 성격상 자신의 형인 웨인이 연관된 사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을 거다.
잔혹한 상황이긴 했으나 어쨌든 대충 정리되었나 싶은 순간.
푸우우우욱!
마수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녹색 기운.
저게 웨인이 준비했던 마지막 마수의 육체였던 걸 생각하면,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가 싶었다.
“흡!”
대악마의 기운이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워즈가 팔로 코와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으나.
정작 녹색 기운은 재빠르게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커, 헉!”
쓰러진 바레타에게로 쏟아져 들어가는 녹색 기운.
바레타의 코와 입, 귀로 쏟아져 들어가는 녹색 기운은 곧이어 그녀의 피부 안에서 옅은 빛을 뿜어낸다.
해적여제라고 불리던 여인의 최후로는 썩 안타깝긴 했으나, 어찌 보면 관련 없는 자가 악마의 영역에 발을 내딛은 최후라고 할 수도 있었다.
불쌍하긴 해도 어쨌든 해적.
그녀가 약탈해 왔으며, 죽여 온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철퇴가 내려온 거라 할 수 있었다.
꾸드드득!
웨인에게 얻어맞으며 부러졌던 코뼈와 여기까지 오며 입었던 상처들이 하나둘 치유되기 시작한다.
“쏴 봐.”
혹시 몰라서 한나에게 화살을 한 발 쏘라고 했고, 정확하게 바레타의 이마에 적중했으나 새로 돋아나는 살이 박혀든 화살을 밀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손과 발로 균형을 잡고 일어난 바레타.
아니, 이제 바레타라고 부를 수 없겠지.
“워즈…….”
바레타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땀과 핏물에 젖어 눅진하게 달라붙은 머리카락일 치우며 워즈를 노려본다.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워즈를 찾아왔다는 듯한 말투.
아까 마수의 몸을 사용하던 때와는 다르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보니 많은 게 보였다.
워즈를 향한 일종의 집착과 분노, 열등감이란 감정이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졌다.
“형님.”
바레타의 몸을 차지한 웨인을 향해서도 워즈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냉정하게 답해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
“그런 힘은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악마와 손이라도 잡으신 겁니까?”
워즈의 질타 속에서 웨인은 바닥에 떨어진 장검을 주워들며 외쳤다.
“그래! 너를 만나기 위해서! 가문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네놈 때문에! 벨페고르와 계약했고 이 시대에 올 수 있었다!”
우웅.
바레타, 아니.
웨인의 손등에 떠오르는 녹색 각인.
내 가슴에 있는 마몬의 각인과 윤에게 있던 레비아탄의 각인처럼.
아무래도 웨인 역시 또 다른 대악마와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