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각인.”
떠오른 놈의 각인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차올랐다.
“나는 선택받았다! 대악마에게 쩔쩔매던 너희와는 다르게! 선택 받았단 말이다!”
선택.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레비아탄을 소환하려 했으나 윤이 소환되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마몬의 각인이 남아있는 것처럼.
선택받았다는 말은 옳았으나.
저주인지 축복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서로 견해의 차이가 있을 듯했다.
“정신머리까지 어떻게 된 건가?”
“심하게 다친 것 같긴 한데.”
대악마에게 선택받았다는 걸 가지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톰과 한나가 한마디씩 보탠다.
“동생보다 못난 형이라는 게 생각보다 큰 압박으로 다가왔나 본데.”
“…….”
내 말에 워즈는 복잡한 심정이 담긴 눈으로 자신의 형을 바라봤다.
아니, 과연 저걸 이제 형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타인이나 마수의 몸을 뺏으면서까지 살고 싶으셨습니까.”
“닥쳐라! 네놈은 모르겠지!”
은빛사자 기사단에 지원했던 워즈와 웨인. 하지만 정작 입단한 건 동생인 워즈뿐이었다.
“가문에서 쏟아진 질책과 주변에서 나를 향하는 손가락질! 동생과 비교되어 살아온 나를!”
“형님.”
답답함과 슬픔이 워즈의 몸을 적셔오고 있었다.
어깨에 짓누르는 우울한 감정은 그에게 냉정한 진실을 말하라 종용하고 있었다.
“또, 도망치셨습니까.”
“네, 노오오오옴!”
거칠게 외치는 웨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온다. 당장이라도 워즈를 베어 넘기겠다는 듯 검을 겨누지만.
워즈의 입은 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무서우면 도망친다, 두렵기에 피한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행위입니다. 그것을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
“하지만 형님, 기사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기에 우리는 방패와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서는 거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워즈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300년이 지났으나, 그래도 당시 자신의 형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워즈의 입안에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형님은 기사가 되시면 안 됐습니다.”
“너……!”
“아버님의 압박에 밀려 기사가 되셨습니다. 사실 기사가 되었던 것도 아버지가 두려워 도망치셨던 것과 다르지 않았죠.”
“닥쳐!”
“죄송합니다.”
“닥치라고!”
우우우웅!
손등에 그려진 벨페고르의 각인이 녹색 연기를 흩뿌리기 시작한다.
마법사들이 모여서 대규모 안개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녹색 기운.
일반적으로는 저 녹색 기운을 마시는 순간 신체에 기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가르덴과의 싸움을 통해 우리에겐 통하지 않는단 사실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이미 마몬의 기운을 이용해 몸을 지키고 있는 나와, 그런 나의 마나로 소환된 단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녹색 기운이 뻗어오는 건 우리 쪽이 아니었다.
반대.
기운은 바다를 향해서 깊고 빠르게 뻗어 갔다. 그와 동시에 푸른 바다가 오염되듯 녹색빛을 띄우기 시작하고.
그것이 무슨 의도인지 알아차린 순간 이미 워즈와 톰이 재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부웅!
녹색 기운을 꿰뚫으며 날아든 한나의 화살이 달려드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치며 정확하게 웨인의 가슴에 박혀 들어갔다.
콰득!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거기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녹색 피가 흘러내린다.
순간, 레비아탄에게 몸을 뺏겨가던 윤이 떠올랐다.
점차 악마로 변해가던 그녀는 가까스로 저항하며 나와 싸웠으나.
웨인은 달랐다.
오히려 대악마에게 거리낌 없이 영혼과 육체를 넘겨주려는. 그야 말로 광신도에 가까운 모습.
“스스로에게 불안한 사람들은, 그들의 강압적인 방식을 오히려 받아들인다고 했었나.”
300년 전, 마몬의 광신도를 상대하면서 대마법사인 힐다가 내게 중얼거리듯 했던 말이다.
우리가 봤을 때는 지독할 정도로 어리석은 듯 보였어도 저들에겐 일종의 구원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
부우웅!
톰과 워즈의 검이 동시에 휘둘러졌다. 톰은 녀석의 머리를 노리고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들어갔고.
워즈는 자신의 장검을 회수할 생각으로 오른쪽 손목을 베어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깔끔하게 일격을 먹였다고 할 수 있었다.
둘 다 어찌나 힘을 줘서 휘둘렀는지 순간적으로 주변에 넓게 퍼졌던 녹색 기운들이 검풍에 밀려서 길이 뚫린 듯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개자식들.”
얼굴이 대검에 짓뭉개지고, 손목이 잘렸음에도 놈의 몸 어딘가에서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건 이제 바레타라고도 웨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후으읍!”
“……!
우리 기사들도 인간이 아닌 것들을 상대하는데 도가 튼 기사들.
특히나 톰과 워즈 그리고 한나는 가장 합을 오래 맞춰온 조합 중 하나였다.
앞장 선 두 사람이 검을 거두고 다음 일격을 준비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한나의 화살이 쏘아져 들어간다.
덕분에 생긴 잠깐의 틈에 맞춰 둘이 곧장 검을 휘둘러 이번에야 말로 확실히 끝내겠다고 생각했으나.
마치 묘기라도 부리는 돌고래처럼. 파도를 타고 튀어 나온 상어를 닮은 마수들이 톰과 워즈를 동시에 덮쳤다.
갑옷을 입고 있는 덕분에 큰 부상은 없고, 충격에 밀려난 것뿐이었으나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옛날부터 대악마들은 재주가 많아.”
“마수들을 불러들였나 봅니다.”
방금 얻어맞았음에도 심드렁하니 감상을 내놓는 톰과 워즈.
마수들이 뻗어 나와도 크게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건 저들이 물가에서는 호흡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
지금도 기세 좋게 밖으로 뛰쳐나왔으나 막상 팔딱거리는 생선처럼 모래사장에서 괴로워할 뿐이었다.
이런 수준이라면 별문제 없었으나.
푸우우우욱!
녹색 연기가 더욱 깊고 진하게 뻗어 간다.
그것을 바로 옆에서 흡입하고 있는 상어 외형의 마수들은 곧이어 표정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마수들은 녹색 연기를 거닐며 헤엄치듯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이뤄지니 우리도 슬슬 긴장됐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해안에서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마수들.
그것들은 녹색 연기가 마치 물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헤엄치며 우리를 물어뜯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쉽게 넘어가긴 힘들어졌네.”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고작 웨인이 대악마와 융화된 것만으로도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만약 레이로즈 가문에서 윤이 신체의 주도권을 잃고, 대악마에게 완전히 넘어갔으면 어땠을지 순간적으로 아찔한 감정이 스쳤다.
점점 불어나는 마수들.
대악마와 완전히 융화되어, 이제는 웨인인지 벨페고르인지 모를 존재가 되어버린 그.
“사실상 대악마가 재림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내 말에 단원들 역시 입을 꾹 다물며 동의한다. 손끝에서 치솟는 마나가 필기체를 적는 만년필처럼 재빠르게 마법진을 그려간다.
“일단 미리 하나만 확인할게.”
손에 쥐여진 거대한 사자의 깃발.
이것을 꽂기 전, 나는 워즈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저렇게 되었어도 결국에는 워즈의 형제였다. 그가 정에 휘둘리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나.
가족을 베어 넘겨야 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잔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워즈는 망설임 없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내 검을 조심스럽게 내민다.
자신의 장검을 회수했기에 이제 내 검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형제를 베어 넘기는 슬픔은 분명 괴롭겠지요. 아무리 대의를 위함이라 하더라도, 못난 형이라고 해도 저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던 분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워즈의 눈동자에는 이미 결의를 다졌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는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또한 300년 전, 이미 저는 모든 걸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
“…….”
“단장님께서 언제까지고 기사로서 걸으실 수 있도록, 악마들 따위에게 다시는 목숨 잃지 않으시도록.”
냉정하며 계산적인 남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감정적인 신뢰와 신념.
“이 워즈 탈레인, 그 길을 보좌하기 위해 300년의 세월을 지나 이곳에 왔습니다.”
그가 내민 검을 쥔다.
각오는 분명하게 들었다.
탈레인 가문의 워즈가 아닌.
은빛사자 기사단의 워즈로서.
그는 앞으로 나와 함께할 테니.
콰앙!
대사자깃발이 꽂혀 들어간다.
점차 영역을 확장하듯 퍼져 오던 녹색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하며 바닥에는 또 다른 마법진들이 그려졌다.
“우앗! 이게 무슨 상황이야.”
헛숨을 내쉬며 당황한 도로시.
“워즈 선배 나왔다.”
“아, 이제 몰래 놀러 가지도 못하겠네.”
워즈의 눈치를 보는 엘빈과 켈빈.
“흠, 저것도 대악마의 일종이냐?”
입에 장죽을 문 채로 웨인을 노려보는 윤까지.
아까 웨인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역소환된 넬슨을 제외한 모든 기사들이 소환되었다.
듬직하다기보다는 익숙했다.
이안 아이넬이 된 이후, 단원들과 함께 싸운 적이 많지는 않으나 어색함은 없었다.
깃발을 꽂아 넣은 후, 쥐고 있던 손에 다시금 소환마법진을 그려서 마몬의 성물이었던 아르가스를 꺼내 든다.
푸르릉!
단원들과 함께 소환된 베히모스도 당장이라도 놈에게 달려들겠다며 콧김을 길게 내뿜었다.
지난번 가르덴과 싸울 때는 덩치가 커졌으나, 그래서는 내가 올라타기 어려웠기에 조금 큰 군마 정도의 크기로 조절됐다.
베히모스의 위에 올라타 앞에 펼쳐진 경치를 바라본다.
“마몬.”
이쪽의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웨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묵직한 목소리.
아니, 웨인이 아닌 벨페고르라고 생각해야겠지.
“스스로를 죽인 인간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놈.”
벨페고르의 도발에 가까운 질책에 순간적으로 가슴에 박힌 문양이 욱신거리며 격렬한 살기가 터져 나온다.
당장이라도 놈의 목에 아르가스를 꽂아 넣고 싶다는 욕망.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너희는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마몬, 레비아탄, 벨페고르.
거기에 아주 오랜 과거에는 아스모데우스까지 있었다고 했다.
관련된 영약을 호우만에게 받아서 먹은 적이 있으니까.
“왜 대륙에 찾아와서 이렇게 깽판을 치는 거냐고, 귀찮게.”
단순히 정복하기 위해서?
살육을 좋아하니까?
그런 간단명료하면서도 일차원적인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분명 이유가 있으니까 대악마들이 계속해서 인간에게 자신들의 각인과 힘을 넘겨주고 대륙에 찾아오는 거겠지.
당연하지만 벨페고르는 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톰과 워즈가 만들었던 상처들은 이미 치유된 지 오래.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 기운은 얼마나 깊게 퍼진 건지 파도에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야 말로 대악마.
마몬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 속에서 나는 단원들 슬며시 바라본다.
300년.
그 시대를 넘어, 나를 따라와 준 이들이 드디어 그 목적에 걸맞은 전투를 하려하고 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대악마.
지금까지 준비해 온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우리가 증명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