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짙게 퍼진 녹색 연기에는 보통이라면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나 우리는 아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대. 대악마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힘이지만 이쪽도 같은 등급.
반칙에 가까운 힘은 서로 고이 접어두고, 실력으로 싸우게 되었으나.
바다를 등지고 있다는 점을 벨페고르는 역으로 이점으로 활용하는 중이었다.
푸와아아악!
베히모스를 타고 선공을 찌르고 들어가려 했으나, 우리보다도 저쪽의 움직임이 한발 빨랐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장소.
물살을 가르며 바다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
레비아탄의 신도, 렉터가 사용하던 힘의 원류.
“크라켄을 불러 온 거야?”
바다의 악몽이라 불리며, 실제로 뱃사람들에겐 가장 마주쳐선 안 되는 공포라 불린다.
따로 크라켄을 마주쳤을 때의 행동요령이나 대피방법 같은 건 없었다.
놈의 눈에 띄는 순간,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으니 신에게 기도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크라켄의 몸통은 반 정도만 해수면 위로 떠올라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해안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이었다.
크라켄의 다리가 마치 방벽처럼 벨페고르를 감싸고 들며 모습을 가린다.
녹색 연기부터 시작해서 그 안에 퍼져 있는 수많은 해양 마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라켄의 다리까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상당한 전력을 모아, 견고한 방진을 짜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정말 바글바글 모여들었네.”
“마수들이 강화도 된 것처럼 보이죠?”
“하늘에 떠다니는 물고기는 또 처음이네.”
“회식 걱정은 없겠어요. 끝나고 구워 먹으면 되니까.”
“저거 먹어도 되는 거야? 녹색인 거 보면 오염된 거 같은데.”
마수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각기 한마디씩 하는 녀석들.
원래라면 조용히 하라고 일갈하는 게 맞으나 이런 식으로 나름의 긴장을 푸는 중이었다.
“크라켄은 내가 맡을 테니까 다른 마수들 정리하고 다시 모이자.”
베히모스를 타고 있는 나 정도나 크라켄을 빠르게 상대할 수 있지, 걸어 다니는 단원들로는 시간이 좀 걸린다.
푸르릉!
내가 고삐를 당기자 베히모스가 곧장 앞으로 치고 나섰다.
그러자 곧장 우리에게 달려드는 마수떼.
날카롭다보다는 흉측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녀석들의 이빨이 곧장 우리를 향해 날아든다.
“그냥 쭉 달려!”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 어느새 내 뒤에 탄 윤이 태도를 뽑아 들며 외쳤다.
말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베히모스는 더욱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나.
“왜 따라왔어.”
내가 윤에게 묻자 그녀는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검사로서 크라켄 같은 대형마수를 썰어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서.”
“너, 이 씨.”
기사단 소속임에도 내 명령을 잘 듣지 않는 유일한 단원.
하지만 윤이 이런 짓을 할 때마다 사실 부하가 말을 듣지 않는다기보다는 악동인 친구와 동행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너랑 나면 금방 끝낼 수 있는 거 아냐?”
태도를 휘두르며 외치는 윤. 그녀뿐만 아니라 한나의 화살도 베히모스를 확실히 엄호하는 중이었다.
“다리 잘라봤자 별 소용 없다. 알고 있지?”
“대강 느낌은 와. 저 머리처럼 생긴 걸 자르면 되는 거잖아?”
크라켄의 둥근 머리를 윤이 검 끝으로 가리킨다.
당장이라도 휘두르고 싶다는 듯 근질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얼추 안으로 들어오자, 이제는 마수들도 우리를 쫓지 않았다. 크라켄에게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륙의 달인들인데 너무 오래 걸리면 멋이 안 살겠지?”
장죽을 입에 물고 있던 윤이 연기를 푸우 뿜어내며 내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슬쩍 뒤를 확인하니 벌떡 일어난 상태로 뛰어오를 준비 중이었다.
“와, 다리 굵은 거 봐라. 저거 구워서 안주하면 딱 이겠는데?”
“너무 질겨서 못 먹지 않을까?”
“흠.”
인사라도 하듯 때마침 우리에게 뻗어 오는 크라켄의 다리 한 짝.
두껍고 거대한 것이 고작 다리 하나인데도 우리를 짓누르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머리 위로 그늘이 지며 곧장 내리찍으려는 크라켄이었으나.
부웅!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듬직한 베히모스조차 순간적으로 버티지 못하고 흔들릴 정도.
윤의 참격이, 어느새 크라켄의 다리를 잘라낸 상태였다.
쿠우웅!
푸르르릉!
떨어지는 다리를 다급히 옆으로 피한 베히모스는 불만을 표출하듯 투레질 했으나 윤은 자신의 검을 멀뚱히 바라보며 썩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두껍긴 하네. 단단하고. 안주 삼을 물건은 아니긴 해.”
“도로시처럼 얘기를 하냐.”
“항구도시에 왔는데 해산물에 술도 못 마시니까 그렇지.”
“……쩝, 그건 나도 많이 아쉬워.”
“어휴, 좀 어른 인형에 넣어주면 안 됐나? 내가 이 모습으로 주점에 들어가니까 길 잃었냐면서 사탕 주더라.”
“나도 아직 17살이라 못 마셔.”
푸르르릉!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시면서 서로 투덜거리는 듯한 대화가 오가자, 베히모스는 정신 차리라며 경고한다.
“걱정 마.”
나는 그런 베히모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앞을 확인했다.
윤에게 베였던 다리는 이미 재생을 시작했고, 놈의 다른 다리들이 우리를 덮쳐오지만.
“길 정도만 뚫어주면 충분하지?”
“어, 부탁할게.”
천천히 내 어깨에서 손을 놓은 윤이 곧장 위로 도약한다.
붕 떠오른 그녀의 몸이 빙글 도는 순간, 태도는 다시금 바람을 베어 가르며 그 위용을 뽐낸다.
쿵! 쿵! 쿵! 쿵!
“어어억!”
순식간에 잘려나간 크라켄의 다리들.
바닥에 떨어지며 윤도 휘말리듯 밑에 깔렸으나 다행히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순식간에 다리를 다섯 개나 잃은 크라켄이 당황했으나 베히모스는 그 틈을 노려 발굽에서 불꽃을 뿜어낸다.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 크라켄의 머리로 향하는 베히모스.
아직 남은 다리들을 피해내며 거의 끝에 도달한 순간.
베히모스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고마워.”
등 위에 선 나는 곧장 베히모스의 머리를 밟으며 앞으로 뛰었다.
바닷바람의 짠내음을 맞으며 거대한 크라켄의 머리에 역수로 쥔 아르가스를 곧장 박아 넣었고.
그대로 마몬의 기운을 힘껏 안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크라켄이라면 인간이 절대로 죽일 수 없는 공포의 마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기이한 울림이 퍼져 왔다.
그것이 크라켄의 비명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건 바다 한 가운데서 조우했을 때를 말하는 거지. 이렇게 뭍까지 나와 주면 그냥 크고 단단한 마수랑 다를 바 없어.”
어쨌든 녀석의 안으로 퍼져가는 마몬의 기운.
크라켄을 조종하고 있는 벨페고르의 기운을 먹어치우려고 했으나, 의외로 그쪽도 거세게 저항하며 이쪽의 기운을 반대로 오염시키려 하고 있었다.
“크읍!”
예상치 못한 주도권 싸움.
나도 양손으로 아르가스를 꽉 쥔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마몬의 기운을 계속 쏟아냈고.
벨페고르 역시 크라켄의 옆에서 그에게 자신의 녹색 기운을 계속 뿜어냈으나.
승자는 나오지 못했다.
퍼어어어어억!
두 대악마의 기운을 몸에서 받지 못한 크라켄의 머리가 결국 터져버리고 만 것.
핏물과 내장은 찝찝한 빗물처럼 쏟아져 내렸고 나는 몸을 날려 바로 밑.
벨페고르의 앞에 착지할 수 있었다.
“더 끌어올 마수가 있어?”
“후우.”
바다의 공포라 불리는 크라켄을 끌고 왔음에도 무기력하게 토벌된 이상, 사실상 이제 어떤 마수를 끌고 오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겠지.
게다가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 중 대부분은 기사단원들의 흥겨운 기합이었다.
“없으면 주먹이라도 휘둘러야 할 것 같은데?”
“까불지 마라.”
바레타의 육신이다 보니 여성의 목소리를 가지긴 했으나, 말투는 바레타의 것도, 웨인의 것도 아니다.
묵직하면서도 강압적인 위엄이 느껴지는 말투를 보면 정말로 대악마가 완전히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너희의 땅에서, 너희의 육체로, 너희의 방식대로 싸워 이김으로 우쭐거리는 꼴이 우습구나.”
그야말로 우습다며 깔고 보는 시선이 꽤나 당돌하다.
마몬을 제외하곤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악마와 대화를 하는 건 사실상 처음인지라.
불현듯 이 기회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무시당하자니 그건 또 배알이 꼴렸기에.
“찾아온 건 너희면서 왜 여기서 싸우는 것 가지고 투덜거리냐.”
은근히 긁으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벨페고르는 확실히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본다.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낸 게 바로 너희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어리석은 자여.”
“…….”
부정하고 싶어도 막상 그러기엔 어려웠다.
레비아탄의 소환의식도 인간이 자행했던 것이고, 벨페고르도 워즈를 소환하기 위해서 과수원장이 불러낸 셈이었다.
“무슨 동네 형도 아니고. 부르면 그냥 기다렸다는 듯 오니까 그런 거 아니야.”
“…….”
“게다가 너희가 직접 계약을 하려고 찾아오기도 했잖아. 웨인 같은 경우는 네가 찾아왔다며.”
자신은 선택받았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던 웨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다.
내가 따지고 들자 벨페고르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다 뜻이 있고, 이유가 있음이다. 당시의 나는 그가 필요했다.”
“후, 적당히 해.”
스릉.
놈을 향해 아르가스를 겨눈다.
대악마를 상대한다고 생각해서 꽤나 긴장했었으나,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마수들은 이미 대부분이 정리되었고. 기사단원들은 하나둘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이 벨페고르를 상대함에 있어 가장 까다로운 녹색 기운.
닿는 순간, 신체에 전염되듯 파고들어 가는 힘이 우리에겐 통용되지 않기에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상성 면에서 좋았다는 것이겠지.
또한 벨페고르 자체의 무력도 크게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대악마라고 모두가 비슷한 무력을 지닌 건 아닌 듯 보였다.
“너한테 무슨 의도가 있었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는 건 사실이잖아.”
“…….”
“너희 악마들이 우리 땅에 내려와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고 있는지 알아? 300년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생각해 보니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짜증 나는 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벨페고르가 무덤덤하게 그것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음이 가까이 찾아오니까 갑자기 감성적이 되시나?”
“아니, 우리에게 이런 방식의 죽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뿐이다.”
“뭐?”
“탐욕의 악마를 가두고 있는 소년아, 나를 먹어라.”
“……이건 무슨 의도야?”
내가 어이가 없음에 단원들을 둘러보았으나 그들 역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레비아탄을 몸에 지니고 있던 윤이 장죽을 입에 문 채로 앞으로 나섰다.
“내가 품고 있던 레비아탄도 먹혀서 사라졌어. 네가 먹힌다고 해서 따로 이 녀석에게 피해를 줄 순 없을 거야.”
혹시라도 몸을 던져 자폭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효과 없다는 경고였으나.
벨페고르는 무덤덤하니 답했다.
“이미 나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을 다음에게 넘길 뿐이다.”
그 이상은 할 말 없다며 벨페고르는 나를 바라봤다. 꾹 다문 놈의 입을 보며 답답함이 가중되고 있었으나.
결국 해답을 얻을 순 없기에 나는 창을 쥐고 앞으로 향했다.
푸욱.
아르가스가 놈의 심장을 꿰뚫고, 녹색 기운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점차 안색이 하얗게 뜨기 시작한 벨페고르는 내 안으로 흡수되기 전.
아르가스를 꽉 쥐더니 덜덜 떨며 한마디 내뱉었다.
“우리를, 이 땅으로 보내는 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