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점심시간.
패배의 설욕을 위해서는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며 먼저 교실 밖으로 뛰어간 마리아를 두고 나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한나가 혼자서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내가 준 임무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바로 자세를 잡고 경례하는 한나.
방에 들어올 때마다 저렇게 예식에 맞춰 딱딱한 인사를 해오는 게 부담스럽지만 아무리 말해도 안 들을 거다.
“별일 없었지?”
“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따로 걱정돼서 물은 건 아니었다.
기숙사에서 일이 있어봤자 뭐가 있겠는가. 그냥 형식적인 대화였다.
한나를 두고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열었다.
꽤나 많은 양의 귀중품이 놓여 있었고 그중 색이 바란 꽃이 달린 가지 모양의 브로치를 꺼냈다.
촉매를 사용하기 위해서 넬슨은 어제 역소환을 해두었고 이제 막 재소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후우.”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 심호흡한다.
이미 어제 일레인의 브로치를 얻었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왔던 일이다.
천천히 브로치에 마나를 주입한다.
임무에 집중하던 한나가 슬쩍 내 쪽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혼이란 소모품이다.’
책의 저자는 이러한 말을 한다.
– 일반적인 소환사들은 촉매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오롯이 ‘물건’에 한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소환된 소환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원래 기량을 전부 소화해 내지 못한다. 이는 소환사와의 궁합, 마나량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다.
– 그중에서도 특히 차원을 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의 소실이 가장 큰 이유다.
– 그렇기에 촉매는 신체 일부나 오랜 시간 함께한 물건이 되는 게 보통이다.
– 그럼 여기에 정령전사를 소환하는 촉매인 검이 한 자루 있다고 치자. 그것은 언제부터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 광산에서 철광석을 캘 때? 철괴를 정련할 때? 철을 접어 질긴 쇠를 만들 때? 검의 형태를 만들 때? 담금질 할 때? 검이 주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
– 전혀 아니다. 이렇듯 단순히 물건으로만 판단을 하니 촉매에 대한 정의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 주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 혼이 스며들 때다. 나는 이 과정을 ‘영화(靈化)’라고 정의한다.
–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촉매는 물건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소환수의 정신이라고.
– 또한 단순히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원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이다.
– 그리고 우리는 이 작업을 보다 간소화해야 한다.
책에서 촉매에 대해서 했던 설명을 떠올린다.
그것은 물건일 수도 있고, 사상일 수도 있으며, 영혼일 수도 있고, 마법일 수도 있다.
내가 촉매로 사용할 건 ‘초식의 가지’인 브로치가 아니다.
바로 브로치 안에 담긴 일레인의 세월.
비유를 하자면 초식의 가지는 단순히 항아리일 뿐이고 나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방 중앙에 조심스럽게 브로치를 내려놓는다. 그러곤 손을 뻗어 얇은 마나의 실을 구현한다.
꾸물거리며 앞으로 나아간 실이 브로치에 닿자 자연스럽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촉매를 처음 연결할 때 드는 마나가 생각보다 많다.
가슴이 철렁하듯 쑥 빠져 나가는 마나에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려 입술을 꽉 물었다.
브로치에 닿은 마나의 선이 점차 굵고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연결하는 과정은 길을 터두는 것과 비슷하다.
검이나 휘두르던 내가 하기에는 꽤나 버거운 작업이지만, 소환수인 넬슨이 호의적이라는 것과 녀석도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게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서서히 브로치의 안에 있는 일레인의 신념들이 나의 마나에 닿아 공명하기 시작했다.
“……와.”
과묵한 한나조차 입을 벌리고 탄성을 내뱉었다.
내 마나는 점차 일레인 특유의 분홍빛으로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브로치를 거쳐 하나의 형상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제도 봤던 막둥이, 넬슨 일레인이 눈을 감고 서 있었다.
“후아!”
마법사들은 방 안에서 술식을 고안하고, 펜만 끄적이면 지루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적도 있었는데….
이 정도의 성취감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와, 와아?”
재소환된 넬슨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윗몸일으키기를 해보거나 스트레칭 같은 것들을 해본다.
묵묵하게 넬슨을 보던 한나도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끼는 듯했다.
“어떠냐.”
대성공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성취에 대한 답을 원했고 넬슨은 더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외쳤다.
“최고입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게 편해진 것뿐만 아니라 단장님과의 마나가 순환되는 통로도 뻥 뚫려서 손실되던 마나가 훨씬 줄었습니다!”
“그래, 고생한 보람이 있네.”
사실 결과에 비해서는 크게 고생하진 않았다.
그냥 남자애 하나 때려주고 온 거랑 책에서 읽은 내용을 답습한 거뿐이니까.
신이 나서는 허공에 주먹질하는 등 장난감 받은 아이마냥 즐거워하고 있는 넬슨을 뒤로한 채.
잠시 쉴 생각으로 의자에 앉았는데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1학년 여생도들에게 뺏은 많은 귀중품들.
“그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간단히 처리할 방법 있으니까 걱정 마.”
이제 브로치는 촉매가 아니라 정말 평범한 물건이 되었기에 집어서 보석함에 툭 집어넣었는데….
“……으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수수한 장식의 목걸이 하나.
송곳처럼 생겼으나 이것은 이빨이었다. 그것도 아주 날카롭고, 흉측하며 기괴하게 생긴.
집게손가락으로 들어 올려 눈앞에 두자 옆에 있던 한나가 헛숨을 삼키며 외친다.
“다, 단장님! 이건……!”
평범하게 짐승의 이빨로 만든 목걸이가 아니다.
상당한 기술이 들어간 세공품이자 하나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종교적인 신념이 들어간 일종의 로자리오.
다만, 이 목걸이를 차는 사람들이 섬기는 존재는 이 흉측하게 형상화된 이빨의 주인.
“마몬의 신자가 아카데미에 있다?”
내가 죽였던 마몬을 섬기는 일종의 광신도.
종교로 치면 이단의 범주에 들어가는 인물이 1학년 여생도들 중에 있다는 소리였다.
* * *
또각또각 또각또각.
실리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의 경보로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선도부로서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규칙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어제 있었던 기숙사 습격과 관련해 처리할 일이 많은 실리아가 일을 다 놓아두고 도착한 장소는 교수 휴게실의 바로 앞에 있는 분실물센터.
평소엔 썩 사용되지 않는 작은 바구니 앞에는 1학년 여생도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고 그중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도 있었다.
다이니 브랜드와 샬롯 일레인.
어제 2학년 여자 기숙사에 침입했던 일로 벌점을 받은 두 사람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찾았는지 어제와는 다르게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찾았나 보구나.”
안심하고 웃으며 다가가니 두 여생도도 어제 자신들을 도와준 선배에게 꾸벅 인사한다.
“예, 찾았어요!”
“어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샬롯과 다이니의 감사에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고개를 저은 실리아.
“어깨는 좀 괜찮니?”
“예, 주신 붕대 효과가 너무 좋아요. 따로 보건실 갈 필요도 없이 자고 일어나니까 멀쩡해졌어요.”
“혹시 모르니까 한동안은 조심하면서 다니렴.”
“알겠습니다.”
빠릿빠릿하게 답하는 모습에서 다이니 브랜드가 꽤나 마음에 든 실리아.
나중에 선도부라도 지원해 보라고 할까 하다가 선배가 이런 말을 하면 강압적으로 보일까 봐 말을 삼켰다.
실리아는 슬며시 다른 생도들의 눈치를 보다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혹시 어제 투구를 썼던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니?”
어젯밤 세나의 방에 침입한 투구를 쓴 괴한.
그는 1학년들의 귀중품이 들어있는 보석함을 들고 도망쳤다.
그로 인해 이제 다시는 물건을 찾을 수 없을 거라며 서글퍼하는 두 사람을 위로한 게 바로 어제였다.
그런데 오늘 점심시간 이후.
분실물센터에 1학년 여생도들의 귀중품이 놓여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괴한을 쫓던 실리아는 직접 찾아왔다.
“저는 잘…….”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물쩍 넘어가는 샬롯과 확실하게 답하는 다이니.
실리아도 두 사람이 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분실물센터 주변을 살펴본다.
‘교수님들한테 여쭤볼까.’
교수휴게실 앞에 분실물센터가 있으니 혹시 교수 중 본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실리아는 차분하게 팔짱을 끼고 고민한다.
여생도들을 구해주고, 빼앗겼던 물건도 되찾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의적이라 부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실리아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혹시 생도가 아니면 어쩌나 했는데, 분실물센터에 놓은 걸 보니 다행히 생도다.’
바로 이틀 전 1학년 남자 기숙사에 괴한 둘이 침입했다는 얘기를 들어 혹시나 싶었으나.
이렇게 물건을 돌려준 걸 보면 아카데미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훔쳐가는 건 몰라도 대낮에 분실물 센터에 물건을 놓고 가는 건 아카데미 소속 말고는 불가능하니까.
원래는 귀중품을 찾아주기 위해서 괴한의 뒤를 쫓을 생각이었으나 목표가 바뀌었다.
‘일부러 여자 기숙사에 찾아와서 가져간 귀중품을 전부 돌려줬다라.’
이미 여생도들은 자신들의 분실물을 찾았는지 삼삼오오 흩어지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값싼 펜이나 노트 정도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아마 따로 빼돌린 물건은 없겠지.
더욱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런 이익도 없이 리스크만 짊어지는 행동을 했다는 게.
“후후.”
심리테스트나 독특하고 흥미로운 추리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든다.
팔짱을 낀 상태에서 천천히 턱을 괸 실리아는 차분하게 고민하는 중에 자신의 입가에 살포시 지어지는 미소를 깨닫지 못했다.
또한 집중하고 있었기에 서서히 멀어지는 샬롯과 다이니의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 그런데 굉장히 특이한 목걸이네.”
“응? 아, 나한테 소중한 거라서.”
“송곳? 아니면 이빨 같은 건가?”
“뭐, 비슷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