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3
23화.
“헤엑! 헤엑!”
평소보다 더욱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는 샬롯.
여성이자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생각하자면 썩 듣기 좋은 소리라고는 빈말로도 할 수 없었다.
“끄어, 죽을 것 같아.”
땀에 절어서 머리는 떡진 상태로 뺨에 딱 달라붙어 있고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그대로 운동장에 대자로 뻗어 흙먼지도 묻었다.
기습이긴 했어도 2학년인 세나를 이겼다는 것이 샬롯에게 좋은 촉진제가 되어주었다.
나는 가져온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른 한 장은 녀석의 얼굴에 툭 던져줬다.
나풀나풀 얼굴에 내려앉은 수건. 그녀는 시체가 안치된 것처럼 잠시 가만히 있더니 땀을 닦으며 버둥거렸다.
“푸하! 씻으면 바로 잘 것 같은데?”
“저녁은 먹어라. 근육 붙이려면 운동이랑 식사는 필수야.”
“별로 입맛이 없는데.”
딸 키우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식사의 중요성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 전에 샬롯이 벌떡 일어나서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사줄게.”
“음? 네가?”
“응, 운동하는 거 이렇게 도와주고 있으니까! 가서 치킨 죽이자!”
“……됐다.”
다른 생도였으면 별 생각 없이 받았겠으나 샬롯이나 마리아처럼 우리 기사단원들의 후손들한테는 뭔가 받기가 껄끄럽다.
친구의 딸한테 밥을 얻어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사주면 사줬지 굳이 아이들한테 뭔가를 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중에 기사단에나 와줘.’
이렇게 열심히 키웠는데 다른 기사단에서 채가면 그건 또 그거대로 배가 아플 것 같단 말이지.
나와 샬롯은 사용했던 목검을 챙기고 슬슬 식당으로 이동했다.
저녁 라스트 오더 시간 아슬아슬할 때까지 훈련을 하기 때문에 운동장에 우리 말고 다른 생도들은 없었다.
“그런데 내일이면 드디어 외출이네?”
나이트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2주째. 내일은 토요일로 드디어 신입생들도 시내로 외출을 할 수 있게 됐다.
평일에는 아카데미 밖으로 못 나가서 주말만 되면 로베르담 시내는 기사생도와 마법학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카데미의 존재 덕분에 주변 상권도 큰 성장을 이루어 로베르담 시민 대부분은 생도와 학도를 좋게 본다.
사고를 일으켜도 아카데미 측에서 발 빠르게 해결해 주기도 하고.
“나 로베르담은 처음이라서 마차 타고 오면서도 엄청 구경했잖아. 이런 대도시는 처음이야!”
“나도 그렇긴 해.”
확실히 300년이 지난 도시는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가 되었다.
아마 여유롭게 돌아다니진 못할 것 같지만.
* * *
그렇게 시간이 지나 토요일 점심시간.
우르르 몰려 나가는 생도들은 주말임에도 검은색 바탕의 생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1학년을 나타내는 붉은 명찰과 넥타이가 가장 많았다.
아무래도 첫 외출이다 보니 대부분의 1학년이 외출 신청을 한 탓이었다.
“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예상은 했지만 입구를 나서는 것부터가 곤혹이었다. 주변 생도들의 어깨에 치일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입구만 나오면 그나마 좀 괜찮겠거니 생각했었으나,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밖은 더 북적거렸는데 그 이유는 메이지 아카데미에 있었다.
나이트 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2주차부터 신입생들 주말외출을 허용해 줬는지 입구를 나서니 하얀 로브를 두른 마법학도들이 딱 생도 숫자만큼 있었던 것.
아카데미 러시아워.
“아이 씨, 이 시기에 외출하는 게 아니었는데.”
“적당히 좀 밀어요!”
“앞에 빨리 좀 가면 안 되나? 뭐 하는데 이렇게 밀려?”
“저기요! 발 밟으셨어요!”
갖가지 비명소리가 울려온다. 중간 중간 생도와 학도가 기 싸움 하고 있는 모습들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제 입학한 지 2주 됐는데 벌써부터 철전지 원수를 보는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그나마 다들 시내로 빠진 덕분에 조금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조금 더 걸어 근처 골목에 쏙 들어갔다.
“밖에서 하는 건 처음인데.”
슬쩍 주변 눈치를 본다.
밖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기는 했으나, 이 좁은 골목에는 크게 시선이 끌리진 않았기에 집중해서 마나를 운용했다.
주변 학도들의 눈에 띌 수도 있으니까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마나는 서서히 사람의 형상으로 변모하더니 곧이어 의족을 단 기사단의 궁수가 되었다.
“은빛 사자 기사단, 한나. 단장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제 얘기해 뒀던 거 기억하지?”
미리 어제 다 얘기를 해두고 역소환을 했던지라 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자신의 로프를 꺼내 들었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로 신호를 드리겠습니다.”
“부탁할게.”
건물 옥상에 로프를 건 한나는 그대로 건물을 등반했다.
의족임에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 안심하며 자연스럽게 골목 밖으로 나왔다.
일단은 한나에게 맡겨뒀으니 그 사이에 할 일은 하나였다.
방을 가릴 암막커튼과 여러 마법 물품을 살 생각이었다.
어머니가 억지로 쑤셔 넣어주신 용돈이 나름 두둑하니 필요한 걸 충분히 살 수 있겠지.
짤랑이는 주머니의 무게감을 느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래서 내가 바로 몽둥이 피하고 주먹을 명치에 빡!”
“구라 좀 적당히 쳐라. 네가 뭔 10명이랑 싸워서 이겨.”
“지가 10명이었던 거 아니야?”
“와, 진짜라니까? 토란네 10:1의 패싸움 하면 다들 알아준다고!”
방방 뛰는 친구들을 보는 에디 브릴리언의 입에서는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이 아이들이랑 3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건가?
이제 2주 됐는데도 이런 기분인데 아마 금방 질려서 나중에는 혼자 다니게 되지 않을까?
“야, 그런데 진짜야? 마리아 그 미친년이 2학년 기숙사로 쳐들어갔대?”
“어, 나도 선배한테 들었어. 그냥 개처럼 처맞고 왔다는데?”
“…….”
에디의 뒤에서 같이 다니는 여생도들의 대화는 그나마 남생도들보다는 퍽 흥미로웠다.
‘마리아 레이로즈라.’
1학년들 중에서도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몇 꼽으라면 그중 에디, 베런과 함께 마리아도 들어간다.
‘그리고 이안 아이넬.’
자신의 형인 에드원을 여유롭게 쓰러트린 남자.
베런 둠베스트와의 대련에서 이긴 뒤로 1학년의 다크호스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그게 평민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생도들이 낮잡아 본 결과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에디는 확신하고 있었다.
1학년 기사생도 중 원탑은 이안 아이넬이라고.
그게 뭇 마음에 안 들면서도 당장의 수준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에디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지금 진다고 해서 나중에도 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결국에 이기는 건 나다.’
그렇게 혼자 생각하던 에디였으나, 여생도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왜 마리아 편 드냐?”
“뭔 편을 들어. 이상한 헛소문이나 퍼트리니까 알려준 거지.”
“걔가 혼자서 2학년 9명을 이겼다는 건 어디 찌라시야?”
“내가 직접 봤는데? 나도 같이 갔던 거 몰랐냐?”
다이니 브랜드와 다른 여학생들이 슬며시 갈라지며 서로를 노려본다.
에디는 쓸모없는 말다툼에 굳이 여생도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려 시선을 틀었는데….
그때, 골목 안쪽에서 웬 남자들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남자들 사이에 껴있는 메이지 아카데미 로브를 입은 여학도.
그녀는 우악스런 손에 입이 막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
이를 본 에디가 뭔가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에 무언가 걸린 것만 같은 과격한 답답함.
‘마법?!’
남자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뒤에 있던 마법사의 입 꼬리가 소름끼치는 호선을 그렸다.
* * *
“뭐 이렇게 비싸.”
암먹커튼을 살 때까지는 좋았다.
심지어는 아카데미로 배달까지 해주는 서비스가 있어서 편하기까지 했다.
“와, 이건 진짜.”
마법 보조 도구나 관련 서적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금액이 상당했다.
원래였다면 미련 없이 몸을 돌렸겠지만 발전한 마법 기술의 화려함은 그의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들었다.
‘마나 전도율을 높여주는 머리띠에 기초적인 술식 계산을 자동으로 해주는 팔찌?’
왜 마법사들이 그렇게 마도구점 앞에 줄을 서 있거나, 낑낑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나 또한 기본적인 술식 계산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었기에 팔찌 같은 경우는 좀 끌렸다.
“혹시 살 거니?”
“예?”
그런데 내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상점 주인이 조심스럽게 와서는 물었다.
“아니, 옷을 봤을 때는 기사생도처럼 보여서.”
아무래도 바로 근처에 메이지 아카데미가 있다 보니 마도구점도 꽤나 규모가 큰 편이다.
그런데 이 안에 들어와 있는 기사생도는 나밖에 없었고 다들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학도들뿐이었다.
슬쩍슬쩍 눈을 흘기며 나를 째려보는 마법학도들이 있어도 그냥 무시했었다.
그런데 가게 주인까지 지적할 줄은 몰랐다.
‘가게 주인도 마법사구나.’
“살 수도 있죠.”
두루뭉술하게 말하자, 가게 주인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기사생도가 살 만한 물건은 없을 거다.”
“지금 보니까 팔지도 않으실 것 같네요.”
“크흠.”
“예, 나갑니다.”
발걸음을 돌리며 미련도 확실하게 놓아주었다.
어차피 소환마법을 위해서는 내 본신의 실력을 올리는 게 중요하니까.
‘저런 팔찌에 의지해서는 평생 제 자리에 있겠지.’
기술의 발전은 위대했으나, 그것이 마법사를 정체시킨다면 과연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괜히 사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씩 추가하면서 상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계속 나를 보고 있던 마도학도들이 같이 걸어 나온다.
은근슬쩍 골목 쪽으로 들어가자 녀석들은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왔다.
“야, 기사생도면 생도답게 굴어.”
다짜고짜 반말과 더불어 시비부터 걸어오는 학도들. 두르고 있는 리본의 색이 파란색이다.
‘2학년 색상이었나.’
메이지 아카데미는 리본의 색으로 학년을 구분하는데, 나이트의 넥타이와 학년별 색상이 똑같다고 들었다.
아마 저쪽도 붉은 넥타이 때문에 내가 1학년인 걸 알고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거겠지.
“생도는 마도구점 들어가면 안 되는 거야?”
“무식하게 검만 휘두르는 것들이 무슨 마도구를 쓴다고.”
“가게 안에 땀 냄새 난다고.”
“마나 길 터서 순환시키는 법은 아니? 신체 내부에서 속성 변화시키는 법은 알고? 우리 기본기를 너희는 2학년 중반에나 배운다고 들었는데?”
최근 젊은 귀족들이 기사보다는 마법사 쪽을 선호한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시한다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각자의 역할이라는 게 있는 건데.
“꼭 안 맞아본 애들이 이렇게 까분다니까.”
법이랑 마법보다 빠른 게 주먹이라는 걸 확실하게 각인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웃으며 나서는 순간.
“거기! 지금 뭐 하는 거야!”
골목 안으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목소리.
연푸른 머리에 생도복 위에 얹어진 푸른 넥타이는 그녀가 기사생도 2학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팔뚝에 걸려 있는 선도부 완장은 학도들도 뜨끔하게 만들었다.
“지금 1학년 생도를 괴롭히고 있는 거야?”
“시, 실리아 위드니스.”
2학년 마법학도들도 그녀를 알고 있는지 괜히 주춤거리며 뒤를 힐끔거린다.
도망칠 길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은 특히나 주의해서 순찰하고 있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예로부터 외출만 하면 계속 사건을 터트리는 기사생도와 마법학도들.
이게 1학년 싸움이 2학년 싸움으로 번지고, 그게 또 3학년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았다 보니 양측 아카데미에서 내놓은 해법이 바로 선도부였다.
나이트와 메이지 양측에 동일한 권한을 가진 선도부를 만든 것.
그렇다 보니 실리아가 기사생도라고 해도 마법학도들이 꼬리에 불붙은 개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그냥 얘기 좀 한 거야!”
“맞아, 마도구점에서 생도가 보인 적은 처음이라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거라고!”
고개를 퍼뜩 돌려 나를 향해 인상 쓰는 학도들.
당장 말을 맞추라는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저한테 무식하다고 꺼지라고 했어요.”
“이 새…!”
“하아! 너희 이름이 뭐지? 벌점 부과를 요청해야겠어.”
“자, 잠깐만!”
“미안해! 잘못했어! 나 이번에 또 벌점 받으면 진짜 위험하단 말이야!”
학도들이 바로 벌벌 기면서 빌기 시작했지만 실리아에게 자비란 없었다.
그녀는 수첩에 확실하게 이름과 학년, 학번 등을 적은 후, 그들을 보내줬다.
“괜찮니?”
“예, 괜찮습니다.”
“이쪽은 마도구점이나 책방, 지팡이 제작소가 늘어져서 마법학도들이 사용하는 거리야. 괜히 시비 걸리지 않게 조심해.”
“알겠습니다.”
“그래,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웬만해선 오지 마.”
어깨를 토닥이며 조언하던 실리아는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으음, 그런데 너…….”
여자 기숙사에서 마주쳤을 당시 투구만 쓰고 있다 보니 체격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실리아에게서 벗어나려던 순간.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마나의 일부가 쑤욱 하고 빠져 나간다.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 자, 잠깐만!”
뒤에서 실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나는 급하게 거리를 내달렸다.
‘한나가 신호를 줬다.’
임무에 관해서 보고할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
발에 힘을 주며 한나의 위치를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