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5
25화.
타닥.
하수도에 들어오자 길게 메아리치는 발소리.
꿉꿉한 냄새부터 시작해서, 찐득하니 달라붙어 오는 공기가 괜히 목을 간질였다.
마나등을 통해 밝혀진 길은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 있었기에 바로 따라붙으려 했으나 발걸음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울려온다.
“금방 들키겠는데.”
이쪽에서 습격했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 하수구 내부의 괴한들.
그러니 가능하면 은밀하게 접근하고 싶었는데 옆에서 마나가 잔잔하게 다리를 감싸온다.
“뮤트.”
앤의 마법에 감싸이고 바닥을 툭툭 두드리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훌륭한데?”
“흐흥, 이래 뵈도 너랑 같이 선택됐었잖아.”
“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오히려 앤 쪽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나, 기억 안 나?”
“기억이고 자시고, 본 적이 없는데?”
“아니, 같이 다섯 원석으로 뽑혔었잖아! 네 바로 옆에 내가 있었는데?”
아.
메이지 아카데미 1학년의 다섯 원석 중 하나였구나.
당시에는 알프레도 교수에게 너무 시선이 쏠려서 다른 학생들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다른 사람 볼 겨를이 없었어.”
“너 때문에 이번 1학년들 2학년한테 된통 깨진 거 알아? 기사 나부랭이한테 마나량으로 지냐고 막 따지더라.”
“그건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맞아. 너 말고 알프레도 교수님한테 따져야지.”
슬쩍 나를 확인하는 앤의 눈동자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마나 자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 보였다.
“뭔가 잘못 보신 것 같네.”
아무래도 그녀는 내 마나량을 얼추 가늠한 듯했다.
일단은 검을 쥐고 하수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밖에 있는 궁수랑 같이 안 와도 되는 거야? 그 녀석들이 부대장이라고 한 걸 보면 더 강한 녀석이 있을 수도 있잖아.”
“입 좀 다물어 봐. 말이 울리잖아.”
“…….”
그러자 또 마법을 사용해서 서로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됐지? 그래서 밖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건데?”
“걔가 경비를 불러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시간만 끌면 돼.”
“아하.”
물론, 거짓말이다.
한나는 하수구 밑으로 내려와서 계속 뒤따르고 있겠지만, 최소한의 거리를 둔 채로 이쪽을 따라오고 있다.
‘괜히 보이고 싶지 않아.’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타인에게 단원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보통 소환수는 정령이나, 마수가 대부분이었기에 인간인 한나를 보고 소환수라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또한 정말 다급한 경우에는 넬슨이 남아 있으니까 변수는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바닥에 핏자국이 없다는 거다.’
아직까지 크게 다친 아이는 없다는 의미.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이긴 했으나 여유를 가질 정도는 아니라서 발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헤엑. 헤엑.”
마법사임에도 뒤에서 꽤나 잘 따라오는 앤.
내 체력이 생도들 중에서도 저조한 편이긴 하지만 보통 마법사는 따라오기 힘들었을 텐데….
아까 바닥을 구르면서 단검을 피하는 것도 그렇고 단순히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한 마법사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 살려주세요! 제발요!
“……!”
하수구의 둥근 천장을 타고 울려오는 눈물 섞인 애원.
눈을 맞춘 나와 앤의 다리에 다시금 힘이 솟아오른다.
“가서 다음 애들 받아 올게.”
“이제 15명이니까 앞으로 5명만 더 받아서 딱 20명 채우고 빼라고 해.”
마침 다음 인질을 받으러 가는 괴한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로 숨을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건 정면돌파.
“아예 일대의 소리를 죽여 버려.”
“이곳은 오롯이 침묵이 자리했으니…….”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앤.
아까도 생각했지만 어린 녀석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냉정을 유지한다.
방금까지 보이던 순둥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차분하게 앞만을 노려보는 검은 눈동자.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선다.
마법사가 마법사의 역할을 했으니, 기사는 기사의 역할을 할 차례였다.
저 앞에서 후드로 얼굴을 가린 괴한 둘이 보였고, 저쪽도 나를 딱 알아챘다.
“너 뭐…!”
“침입…!”
“사일런스.”
두 사람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자, 깜짝 놀라 당황한 듯했고 그 틈을 노려 바로 한 놈에게 검을 박아 넣었다.
튀어 오른 피가 철썩하고 뺨을 후려친다.
동료가 죽는 사이 정신을 차린 남은 놈이 바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격이 서로 맞부딪치지만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 기형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우리의 숨소리도, 열기도, 살의도.
그저 침묵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발을 들어 녀석의 무릎을 내리찍었다.
“……!”
충격에 한쪽 무릎을 꿇은 녀석.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으나, 입만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릎 꿇은 적을 놓치지 않고, 검은 고요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입은 찢어져라 벌리며 뭐라 외치고 있었으나 전혀 들리지 않는다.
검을 뽑자 뒤로 넘어간 녀석은 그대로 수로에 빠져 흘러갔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바닥에 죽어있는 놈의 후드를 들추자 역시 수인이었다.
이렇게까지 수인이 많으면 레지스탕스라고 봐야 하는데.
‘그럼 마몬의 광신도가 아니라 단순히 레지스탕스의 납치극인가?’
다이니는 우연하게 그들에게 휘말렸고?
그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내 뒤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앤. 그녀는 뭔가 겁이라도 먹은 듯 하얗게 얼굴이 떠 있었다.
“마, 마법 범위를 실수했어! 생각보다 범위가 커져서 더 안쪽까지 소리가 차단됐을 거야!”
그 말에 바로 몸을 돌린다.
그러자 정말 저 멀리서 마법사를 찾아 이쪽으로 다가오는 괴한들이 보였다.
“어, 어떻게 하지? 저, 정말 미안해!”
“괜찮아.”
어차피 초보 마법사한테 실수하지 않기를 바란 적도 없다. 오히려 방금까지의 유연한 대처가 더 이상했던 거다.
‘그런데 예상보다 범위가 커졌다니.’
보통 마법사들이 주문을 실수할 때는 위력이나 범위가 줄어들거나, 아예 마법이 발현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으로 마법의 위력이 더욱 광범위하게 커졌다는 건 눈여겨볼 부분이었다.
이쪽을 향해서 뭐라 소리치고는 있지만 전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녀석들을 향해 나는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마법은 얼마나 더 쓸 수 있어?”
“아, 아직 넉넉해!”
* * *
“……!”
한 손에 다이니를 쥔 채로 외치던 샤카렌은 갑자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말은 하고 있으나 소리를 잃었다.
주변의 다른 신도들 역시 당황하며 자신들의 목을 만지거나, 다른 사람들을 확인하고 있다.
“……!”
콧김을 뿜어낸 샤캬렌은 다이니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한쪽 벽에 던져버렸다.
“……!”
다이니의 신음소리가 찢어질 듯 터져 나왔으나, 이 역시 침묵에 파묻힌다.
무언가 상황이 벌어졌다는 걸 알아챈 샤카렌.
하나 재물 숫자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크흥! 가서 내가 직접 데려와야 겠군.’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는 거슬리지만 기껏해야 로베르담 경비대 정도가 내려왔을 거다.
기사들이 움직이기엔 지나치게 빠른 시간이었으니까.
경비대를 포함시켜 스무 명을 딱 맞출 생각으로 샤카렌은 자신의 무기인 거대한 톱날 대검을 챙겼다.
“……!”
도중에 다이니의 사지 중 하나 정도만 찢어놓으라 외쳤으나, 당연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또다시 확 짜증이 솟은 샤카렌이었으나 눈치를 보던 신자들은 이해했다는 듯 손을 위로 크게 뻗어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실제론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대충 잡아두라는 말로 받아들인 신자들은 다시금 다이니를 묶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놈이 전혀 없군!’
부대장은 귀한 마법사 전력이자 이번 계획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하수구에 다른 마법사가 나돌고 있다는 건 부대장이 죽었다는 의미.
샤카렌은 목에 걸린 마몬의 로자리오를 강하게 쥐며 주문을 준비했다.
혹시라도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한 철두철미한 준비.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지만, 마몬을 섬기는 선지자라는 자리가 그를 후천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늘 로베르담의 지하를 당신의 만찬 회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자신의 신을 향한 기도와 함께 샤카렌은 감히 이따위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를 향해 나아갔다.
* * *
“하아, 생각보다 고되네.”
주문을 계속 쏘아대느라 지친 앤은 지팡이에 기대어 겨우 넘어지지 않고 서 있었다.
실전에서 마법을 이렇게까지 많이 쏴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앤이 비틀거리는 사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려는지 수로 쪽으로 향하는 이안 아이넬.
그걸 본 앤은 화들짝 놀라며 지팡이를 들었다.
“더, 더러워! 내가 해줄게. 클린즈!”
마치 몸 전체가 세탁이라도 한 듯 깔끔해진 이안.
그는 오늘 있었던 중에서 제일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와, 이런 마법도 있구나.”
“어? 클린즈는 꽤 유명한 마법이잖아.”
“그래? 유용하겠네.”
발명된 지는 30년 정도밖에 안 됐으나, 그 효율성 때문에 많은 마법사들이 필수적으로 익히는 마법.
‘기사 지망이니까 모를 수도…….’
방금 전의 클린즈를 사용함으로 정말 마나가 다한 앤이 풀썩 주저앉는다.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널브러진 시체들.
자신의 마법도 이 광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가슴을 쿡쿡 찔러왔으나 정의로운 일이라 스스로에게 되뇐다.
‘그것보다도.’
시체 쪽으로 다가가 뭔가를 확인하는 이안의 뒷모습을 보며 앤은 생각에 잠긴다.
체력이나 근력은 기사생도라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마나를 다루는 것도 생각보다 조촐했으며 마나량도 썩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달려드는 괴한들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정리해 가던 그의 뒷모습에서는 다른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듬직함이 있었다.
베테랑 검사가 오롯이 기술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느낌.
검과 기사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자신이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다른 기사생도들은 방금 그의 전투에서 무엇을 느낄까?
사뭇 궁금해지는 앤이었다.
“거기서 잠깐 쉬고 있어. 내가 인질들한테 다녀올 테니까.”
“어? 혼자?”
“너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오면서 인질들 핏자국도 없고, 이놈들이 달려들 때 따로 피가 묻어 있지 않았던 걸로 봐서는 인질은 아직 안전해.”
“그, 그렇구나.”
단순히 다가오는 적에게 질려서 세세한 건 확인하지 못했었다.
앤은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며 후들거리는 종아리를 툭툭 두들기며 답했다.
“알았….”
뚝 뚜둑.
로브를 적시는 흥건한 물방울.
갑자기 머리 위에 드리운 그늘에 멍하니 고개를 드는 앤.
고개를 드는 와중에 놀란 눈을 한 이안이 이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어?”
“네년이 잔재주를 부린 마법사구나!”
수로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상어 수인이 그대로 앤의 목덜미를 손으로 낚아챈 순간.
쐐에엑!
하수구 전체를 울리는 강렬한 파공음이 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