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이른 아침.
짐을 챙겨서 기숙사 밖을 나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
하나는 헥토르 교수였고, 또 하나는 2학년 선도부 실리아 위드니스였다.
선도부는 메이지 아카데미와도 연결점이 있다 보니 같이 가주려는 듯했다.
“크흠, 가자.”
여전히 내가 떠난다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헥토르 교관은 휙 몸을 돌렸다.
그래도 학생인 나에게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이 두 번째인가?”
슬며시 내 옆으로 와서는 말을 거는 실리아.
그녀의 연푸른 머리색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었다.
“예, 그때 학도들한테 저를 구해주셨죠.”
“레지스탕스를 혼자서 소탕할 정도의 실력자면 내가 오히려 방해한 게 아니었나 싶어.”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색하게 답하는 실리아.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내게 궁금한 게 있어 보였다.
“그런데 메이지 아카데미로는 왜 가는 거니?”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습니다.”
“…….”
굳이 설명할 생각이 없었기에 대강 답했다.
여자 기숙사에 침입했을 때 실리아와 마주쳤었기에 괜히 길게 대화했다가는 그때 괴한이 나였다는 걸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이제 와서 크게 문제될 거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아무튼 나이트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 바로 옆으로 몸을 트니 메이지 아카데미의 정문이 보인다.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장소.
입구의 수위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는지 그들은 별다른 검문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나이트랑 크게 다르진 않네요?”
“맞아.”
실리아도 웃으며 내 말에 공감했다.
물론, 기숙사 창문 너머로 메이지 아카데미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마법사를 가르치는 장소니까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진 않았다.
동시기에 지어져서 그런지 건물들의 형태도 대강 비슷하다.
눈에 띄는 점이라면….
“저건?”
본관 건물 옥상에 자리 잡은 거대한 마석. 기숙사에서는 보이지 않던 물건이었다.
“메이지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상징이야. 자세히는 잘 모르겠네.”
실리아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답한다.
하지만 나는 마석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눈을 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메이지 아카데미의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느낌이 들었다.
본관 안 건물로 들어선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학도들이 몇 없었으나 지나가는 학도 대부분이 힐끔힐끔 이쪽으로 눈을 흘긴다.
“나는 교무실 쪽으로 가서 미리 인수인계를 해놓으마. 실리아가 선도부로 가서 소개해 줘라.”
“알겠습니다.”
그러곤 가버리는 헥토르.
실리아는 나한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2층으로 올라간다.
“선도부 일 때문에 몇 번인가 여기 온 적이 있어서 길은 나름 알거든. 매점은 본관 뒤에 있어.”
나름 꿀팁이라며 알려주는 걸 보니 확실히 친절하긴 하다.
건물의 외관만 봤을 때는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었으나, 복도를 거닐고 있으니 확실히 다른 점이 느껴진다.
마법사들이 모인 영향인지 전반적으로 짙게 마나가 깔려 있으며, 낡은 고서 냄새 같은 게 코를 간질인다.
한 층 더 올라가 3층에 있는 선도부실로 들어간다.
내부에는 5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실리아와 마찬가지로 팔에 선도부 완장을 걸치고 있다.
실리아와 썩 친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대놓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간단히 인사하고는 바로 나를 소개하는 실리아.
그녀도 여기에 굳이 오래 있고 싶어 보이진 않았다.
“이 친구는 이안 아이넬.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학도로 생활할 거야. 사건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너희가 주의해서 봐줘.”
대놓고 사건사고가 많을 거라는 말에, 저쪽 선도부원 중 몇몇이 눈가를 움찔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우리한테 그런 말 하지 말고. 걔한테 조심하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맞아, 괜히 와서 물 흐리면서 배려를 논하고 있어.”
“학도들의 학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한다면 나름의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실리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음, 그래…. 나는 이안을 보호해 달라는 게 아니었는데.”
재밌다며 입꼬리를 올리는 실리아. 비웃음처럼도 보이는 미소였다.
“뭐, 너희가 알아서 잘해줄 거라고 믿어.”
실리아는 이만 가보겠다며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학도들 중 가장 뒤에 앉아 있는 남학도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안 아이넬? 혹시 이번 레지스탕스 사건 해결한 그 생도인가?”
“예, 맞습니다.”
나는 굳이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메이지 선도부원들은 실리아의 말을 이해한 듯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깨달은 것이다.
혹시라도 학도들 중에 정신 못 차리고 덤벼드는 애들을 잘 막으라는 말이었음을.
“가자.”
긴장이 감도는 선도부실을 빠져나온 나와 실리아.
아닌 척하고 있지만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져 있었는데 꽤나 통쾌한 듯했다.
“후배 잘 뒀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실비아와 함께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있던 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헥토르와 알프레도 교수.
진중한 외모의 알프레도 교수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크흠, 내려왔군. 그럼 우리는 이만 가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헥토르였으나 알프레도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후에 데리러 오지.”
“잘 지내. 힘들면 이쪽 선도부 통해서 나한테 연락하고.”
헥토르와 실리아가 떠나가고 둘만 남자, 알프레도 교수는 웃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일주일 동안 잘 부탁하겠네. 이안 학도를 가르치는 데 일주일은 턱없이 모자라지만 내 한번 열심히 가르쳐 보지.”
“예, 저도 전심전력으로 배우겠습니다.”
“음! 지금의 자네와 일주일 뒤의 자네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있을 거야!”
알프레도 교수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콧바람을 불었다.
* * *
메이지 아카데미의 1학년 C반에는 지금 의미 모를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이트 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가장 성적이 낮은 학도들이 모여 있는 C반.
평번한 아카데미와는 반대로, 실력이 곧 성적인 이곳에서 C반이라는 건 실력이 없다는 걸 의미했고.
당연히 불량학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누구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사생도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이안의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평소의 검은색 생도복이 아니라 학도를 의미하는 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게 다를 뿐.
C반 학도들은 이안이 거슬려 강의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반대로 그는 오직 강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교수의 분필이 움직이는 걸 조금도 놓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나오면 일단 무조건 받아 적는다.
우선은 지식을 때려 박을 필요가 있었다.
교수조차 처음 강의실로 들어왔을 때는 떨떠름하게 이안을 봤으나….
지금은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메이지 아카데미로 왔는지 느껴졌기에 더 열성적으로, 또 더 이해하기 쉽게 강의를 풀어내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지 않았다면 계속 이어갔을 정도의 집중력.
교수가 나가자 학도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만, 이안의 근처로는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근처 자리들도 전부 비워져 있다.
보통이라면 왕따를 당하는 듯한 느낌에 조금 소외감을 느끼겠지만, 이안은 아니었다.
그는 마법 전문단어 사전을 꺼내서는 방금 전 강의에서 이해하지 못한 단어들을 찾아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노트와 사전만 번갈아 보는 이안에게 주변 학도들은 정말 안중에도 없었으나….
쾅!
학도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문이 열리고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A반 학도들.
실력이 곧 성적인 이곳에서 보통 자신감 넘치고 기가 드센 불량학도들은 대부분이 A반에 포진되어 있었다.
나이트 아카데미랑 똑같다.
에디 브릴리언의 패거리나, 다이니 브랜드 같은 경우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거다.
몰려 들어온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안을 가운데 두고 사람의 장벽을 만들어 가둔다.
“얘가 걔 맞지?”
“생도 나부랭이가 와서 그런가? C반 공기가 더럽다.”
“야! 창문 열어! 환기 좀 시켜라!”
“얘, 쫀 거 아니야?”
그늘진 책상.
깔깔거리며 비웃는 학도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판단한 이안은 미리 준비해 온 귀마개를 꺼내서 귀에 뽁 하고 꽂았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조금의 시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의지가 느껴졌으나….
“와, 미친놈이네.”
“개웃기네! 쿨한 척하는 거 역겨워!”
“그냥 겁먹은 거 아니야?”
“메이지 들어오고 싶었는데 나이트 가서 서러웠어?”
학도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는지 깔깔거리면서 저들끼리 좋아라 웃어대는 학도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안의 행동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한 학도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그러곤 이안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밀어댄다.
“야! 야……!”
쾅!
순식간에 학도의 팔목을 낚아챈 이안이 바로 잡아당겨 책상에 팔을 쾅 내리찍는다.
“어, 어어어억!”
당황한 학도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넘어져서는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이안은 귀마개를 빼며, 천천히 일어나 학도들에게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시선이 학도들에게 향했고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짙은 짜증이었다.
“딱 일주일 공부만 하다가 갈 거야.”
시간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분기마다 일주일씩 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마법을 배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안은 일주일 동안 정말 오롯이 공부에만 매진할 생각이었기에, 이런 사소한 방해 하나하나가 그의 신경을 매우 자극하고 있었다.
“건드리지 마.”
나이트 아카데미에서처럼 내신을 위해 손속을 두거나, 미래의 기사단원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구슬릴 필요도 없다.
이안에게 있어 앞에 있는 생도들은 정말 하등 쓸모도 없는 방해물에 불과했다.
망설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주일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건, 반대로 일주일 뒤에 자신은 여기 없다는 뜻이니까.
그냥 마음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방해할 거면. 지금 다 해. 대신 진짜 많이 아플 거다.”
부상을 입히진 않더라도 고통을 주는 방법은 여럿 있다.
이안은 그런 방면에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좌중을 압도하는 기백에 누구도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방금 전 혼자서 나섰다가 당한 학도만이 울상을 지으며 인파 뒤로 도망칠 뿐.
“야, 뭘 쫄아!”
그때 학도 중 하나가 거세게 외치며 억지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들었다.
“우리 아카데미에 와서 이렇게 난리 치는 걸 두고만 볼 거야? 여기가 오고 싶다고 개나 소나 올 수 있는 곳이냐고?”
그 말에 다른 학도들도 소리를 지르며 동조한다.
“그래! 우리가 괜히 이래?”
“누구는 뼈 빠져라 공부해서 들어왔는데, 누구는 검이나 대충 휘적이다가 체험입학이랍시고 들어와?”
스스로의 명분을 정당하게 만들려고 하는 점은 알겠으나.
그냥 갑자기 등장한 생도가 고깝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포장이 되지 않는다.
결국 지독히 개인적인 악의가 여럿 뭉쳤을 뿐이고 숫자가 많아진다고 그것에 정당성이 부여되진 않으니까.
학도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안은 책을 덮고 시간을 확인했다.
쉬는 시간이 앞으로 5분 남았다.
‘대충 정리하고 다음 시간 정리하면 딱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