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기분이 묘하네.”
나이트 아카데미의 기숙사에 있는 내 방으로 돌아오자 기분이 묘했다.
원래라면 지난주에 돌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가르간테의 등장으로 조사받을 게 워낙 많았다 보니 일주일 정도 늦게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우, 피곤해.”
육체와 정신이 정반대되는 상황.
몸은 하도 움직이지 않아서 찌뿌둥한 게 먼지라도 끼어 있는 느낌이었고.
정신은 하도 많은 곳 불려 다니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다 보니 닳아서 마모된 기분이었다.
다행이도 힐다의 소환은 들키진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에 보여준 대마법.
기적에 한 걸음 내딛는 그 마법은 마석 안에 담겨 있었던 걸로 잘 얼버무릴 수 있었다.
힐다의 대마법을 제대로 분석조차 못하고 잃었다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누구도 로베르담 시민들 앞에서 그따위 망발을 꺼내진 못했다.
결국 그 마법이 아니었다면 로베르담의 시민들은 모두 죽은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사건 자체는 깔끔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가르간테가 로베르담에 찾아왔으나, 힐다의 마석에 담긴 마법으로 퇴치했다.
물론, 힐다의 마석과 관련해서는 추후 마탑 학회에서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마석이 깨지는 장면과 그 안에 담긴 마법을 직접 본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아마 방학에 맞춰 초대장 같은 게 올 것 같았다.
이후 가르간테를 탈옥시킨 모종의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사실 누구일지 예상도 간다.
‘아마 마몬의 선지자들이었겠지.’
놈들이 점점 꿈틀거리며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
그 정도만 알아도 지금은 충분했다.
조사 과정에서 듣기로는 가르간테의 해방 과정에서 선지자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왕실에서 따로 추격대까지 파견했으니 지금은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거다.
‘굳이 여기서 나까지 뒤꽁무니를 쫓을 필요는 없다.’
넬슨이나 한나를 보내서 추격시킬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여기서는 다른 기사단들, 이 시대의 새싹들을 믿어볼 생각이었다.
마석 건은 미뤄졌고, 마몬의 선지자들은 기사단에게 맡겼으나, 그렇다고 여유롭게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 힐다의 등장은 꽤나 시사하는 바가 컸으니까.
‘나의 환생과 더불어 기사단이 나를 따라올 수 있었던 건, 힐다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요한 건, 힐다가 왜 이런 안배를 해 두었느냐는 것이었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힐다 혼자서만 온 게 아니라 다른 단원들이 다 데리고 온 거니까.’
힐다 혼자서 왔다면 또 정신 나간 짓거리를 계획하고 있을 거라 일축할 수 있겠으나, 그녀는 기사단원들과 함께 나를 따라왔다.
단원들이 그녀의 기행에 동조한 데는 무언가 주요한 이유가 있을 거다.
환생과 동시에, 내 몸에 새겨진 마몬의 각인.
처음에는 단순히 마몬의 저주가 따라온 것이라 여겼으나, 내 환생에 힐다가 관여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내 환생을 기다린 듯 300년간 잠잠하던 마몬의 선지자들이 준동하고 있는 상황.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시기가 너무 절묘하다.
‘힐다는 300년 후에 무언가 일어날 걸 미리 알았고, 이를 대비한 안배를 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마몬과 관련된 일이겠지.
어쩌면 다른 대악마들도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여러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어쨌든 결론은 하나였다.
“더 강해져야 한다.”
힐다의 존재만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에 큰 힌트가 되어주었다.
앞으로를 고민하며 묵직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메이지에서 빌린 소환 마법서들의 수가 상당하여 싸 들고 오느라 꽤나 무거웠다.
“이제 곧 중간고사라고 했나?”
원래 나이트 아카데미의 중간고사는 지난주에 진행되어야 했으나, 가르간테의 출현으로 인해 뒤로 한 주 미뤄졌다고 한다.
뭐, 시험이야 어렵지도 않을 듯하니 별 문제 없었지만.
“일단 한 시름 놨나.”
의도치 않았지만 꽤나 좋은 성과를 이뤘다.
단순히 메이지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배우고, 마법서들을 얻어 온 것에 그치지 않고.
힐다를 소환할 수 있다는 단서를 얻고, 더불어 가르간테가 품고 있던 마몬의 기운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다만, 마몬에 대한 믿음을 저버려서 그런지 기운 자체는 미약했다.
그 양이 샤카렌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하여 새로운 단원을 소환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때 밖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퍼뜩 일어났다.
혹시 몰라서 메이지 아카데미로 떠날 때, 벽에 걸어둔 사자의 깃발은 떼었기에 방에 이상한 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문을 잠그려고 했으나….
덜컹!
나보다 한발 먼저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건 일주일 동안 못 봤던 익숙한 얼굴들.
“배신자 왔다!”
“와! 학도다! 학도가 우리 나이트 아카데미로 왔다!”
“이안 아이넬 씨! 좋았나요? 거기는 좋았나요?”
“케이크 가져왔다.”
순서대로 마리아, 다이니, 샬롯. 마지막으로 베런까지.
지난주에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별생각이 없는지 다들 아주 작정을 하고 들이닥쳐서는 호들갑을 떨어댄다.
“야! 얘 가방에 마법서 있어! 와, 이거 진짜 마법사 다 됐네!”
“웩! 이안 수준!”
내 가방을 탈탈 털기 시작한 마리아와 그 옆에서 소름 돋는다는 표정으로 토악질 시늉을 하는 다이니.
“어땠어? 재밌었어? 거기는 마수를 바로 앞에서 봤다던데? 너도 거기 있었어?”
옆에서 무슨 토끼마냥 깐죽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샬롯.
“먹어라. 이번 주말에 시내에 나가서 사 온 거다.”
갑자기 내 얼굴 바로 앞으로 케이크를 내미는 베런까지.
“아.”
왜 내가 나이트 아카데미를 그리워했던 걸까.
벌써부터 정신 사나워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차례 소란이 일었다.
함부로 내 방을 뒤적일 뿐만 아니라, 뭐 숨겨둔 거 없냐면서 나다니는 놈들을 제압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숨겨둔 사자 깃발을 보일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내가 뭔가 들켜선 안 되는 무언가를 숨겨두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지만… 어쨌든.
베런이 사 온 케이크를 나보다 더 맛있게 먹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묘하긴 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전부 우리 기사단으로 와 주면 참 좋을 텐데.
“아참, 이안. 내일부터 중간고사인거 알고 있어?”
케이크를 우물거리면서 물어오는 샬롯.
나는 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차피 1학년 중간고사는 대련이 제일 배점 높잖아.”
대련에서 당연히 이길 거라는 듯한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뚱한 표정을 짓는 마리아와 베런.
두 사람은 승부욕이 강하다 보니 내 대답이 꽤나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뭐 던질 거 없냐. 재수 없어서 뭐 던지고 싶은데.”
“케이크라도 던지려면 던져라.”
바로 격렬한 반응들이 치고 들어온다.
그나마 다이니가 맛있는 케이크로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말려서 방이 너저분해지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그런 틈을 타서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서는 헤실헤실 웃는 샬롯.
“이안! 내일 새벽에 훈련 나올 거지? 나,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 엄청 많아.”
내가 없는 동안에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자신감이 넘치는 샬롯의 표정.
생각해 보니 샬롯을 안 봐준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본인이 익힌 일레인의 검술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을지 궁금했다.
“그래, 중간고사도 있으니까 그 전에 전체적으로 점검은 필요할 것 같다.”
“응! 이번에는 무조건 평균은 할 거야!”
다이니에게 두들겨 맞고 울면서 분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샬롯이 투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꼬옥 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샬롯의 모습에 미묘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평균은 무슨 평균이야. 상위권에 들어야지.”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다시 약해진 샬롯이 쭈글거리면서 슬금슬금 내게서 거리를 벌린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너는 무조건 상위권 뚫을 각오로 해라.”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했으니 기본적으로 3, 4명은 이겨야 평균 이상은 될 거다.
축 늘어진 샬롯.
“너는 이미 내 안중에도 없다니까?”
“나도 너를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어느새 저들끼리 시비가 붙어서는 티격거리고 있는 마리아와 베런.
“하움.”
그 틈을 타서는 케이크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다이니까지.
“야, 다 나가.”
슬슬 내 방에서 나가줬으면 했다.
* * *
한 차례 폭동과 같은 소란스러움을 안겨준 아이들이 떠난 늦은 밤.
아직까지도 녀석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차를 끓여 왔습니다.”
불침번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같이 깨어있는 한나가 슬쩍 우려 온 차를 건넨다.
1층에 잠시 다녀온 것 같은데 새벽이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데 있어 큰 무리가 없었다.
따듯한 차가 목구멍을 통해서 몸 안으로 퍼져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몸이 눅진하게 녹아내린다.
기분이 좋다.
복잡하게 머리에 둘러져 있던 사고의 끈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기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슬쩍 몸을 돌리다 옆에서 차를 홀짝이는 한나와 눈이 맞았다.
“어떠신가요? 조금 진전은 있으실까요?”
“응, 확실히.”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마나를 일으켰다.
이제는 원래의 푸른빛이 아닌 탁한 검은빛을 이루는 마나색.
가르간테에게서 흡수한 마몬의 기운과 나의 마나가 점차 하나가 되어감을 느낀다.
“단순히 마법의 파괴력이 올라가는 수준이 아니야. 마나가 마몬의 기운과 섞여들수록 사용할 수 있는 마나량도 늘고 있어.”
검은 마나가 자연스럽게 마법진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분필 없이도 마법진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그것은 한 점이 되어 한나에게 닿았다.
깜짝 놀란 한나는 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휘둥그레 눈을 뜨며 폴짝 뛰어본다.
“몸이, 가볍습니다.”
“그치? 너희를 단순히 소환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보조마법을 통해서 강화도 해줄 수 있어.”
지금 한나에게 사용한 건 바람길이라는 기초적인 보조마법이었다.
몸을 가볍게 해주고, 발걸음이 빨라지는 간단한 마법이었으나 마몬의 기운이 섞인 덕인지 효율이 크게 증가했다.
소환수를 강화한다.
이 역시 테르토나 샤이먼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강력한 소환수를 얻는다면 그것이 가장 베스트이겠으나,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소환사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소환수는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얻은 이후가 오히려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약한 소환수를 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소환사의 역량이라 볼 수 있다.]기사단원들은 강하지만, 거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가르간테 같은 마수가 또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고, 또 어떤 위협이 도래할지 모른다.
‘전생에도 검술의 끝자락 언저리에는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근접전에서는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확신했었다.
실제로 나는 마몬과의 1:1 전투에서도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밀어붙이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당시에는 시야가 좁았어. 검을 휘두르는 것만이, 검을 단련하는 길이 아니었던 거야.”
지금의 내 앞에는 다채롭게 뻗어 있는 길이 놓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더라도, 성장과 연결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다시금 보조마법의 마법진을 그려 이번엔 내 몸에 때려 넣었다.
스톤스킨이라는 마법이었는데 몸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사실상 이런 마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마법사가 접근전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상대가 기사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쯤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의미 없는 마법이라고 괄시당하지만….
나와 단원들에겐 달랐다.
약한 몸의 내구력을 이걸로 보완할 수 있다.
태생적인 마나량 때문에 약한 몸뿐 아니라, 부족한 체력 역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근력이 부족하면?
근력을 증강시켜 주는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마법과 검술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둘 다 꾸준하게 수련하면 성과가 나온다는 건 동일했으나….
그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검술은 결국 운동이다.
또한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의 경지가 늘어있음을 실감하고,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마법은 일종의 문제풀이였다.
직관적으로 정답과 오답이 나온다.
이쪽의 성장이 더욱 빠르게 눈에 보여서인지, 굳이 성취감만으로 따지면 훨씬 높았다.
마나를 손끝에 두른 채로 반딧불이처럼 움직이며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