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7
47화.
당연하지만 나도 진짜로 다이니랑 샬롯이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반쯤 장난삼아 했던 말이 이렇게 이뤄지니 당황스럽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은 방향이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부터 다이니를 만나서 먼저 본인이 가진 트라우마를 깨고 시험에 임한다면, 샬롯은 상당히 높은 순위에 안착할 수 있을 테니까.
“아으, 하으! 아오으!”
“…….”
한 가지 변수는 샬롯이 과할 정도로 다이니를 의식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상황이겠지.
중간고사를 위해서 전부 운동장으로 나와 있는 1학년들.
곳곳에 간이 대련장을 위한 선이 그어져 있었고, 심판을 보는 교수들도 각기 포진해 있었다.
잠시 후 중간고사가 바로 시작될 거다.
개막전이라 볼 수 있는 첫 번째 대련조에 섞여 있는 샬롯과 다이니.
샬롯은 바닥이 뜨겁기라도 한 것처럼 쉬지 않고 조급하게 걸어 다니며 초조하다는 걸 온 몸으로 표출해 냈다.
“어떻게 하지? 나 이번 시험은 진짜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이, 이안. 패자부활전 같은 건 없겠지?”
뭐라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그동안 흘린 땀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런 판에 박힌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쯧, 너무 실패에 익숙해져있어.’
지금까지 샬롯이 겪어왔던 과거들을 생각해 보면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들은 전부 공허할 것이다.
유실된 일레인 가문의 검술.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서 노력해 봤지만,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도 몰라 길을 잃고 방황하던 소녀.
늘 실패만 해왔던 그녀에게 막연한 승리를 말하고, 용기를 북돋아 봤자 텅 빈 울림에 불과할 것이기에….
“그만 떨고 가서 해봐.”
등을 떠밀어주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직접 부딪쳐 보면 결국 알게 될 테니까.
“자, 자, 잠깐만!”
당황해서 허우적거리는 샬롯.
중간고사를 시작하겠다는 안내가 들리고, 그녀는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결국 내 손에 밀려서야 억지로 대련장 앞에 설 수 있었다.
“시간만 번다고 생각해.”
“시, 시간 벌면 무승부야?”
갑자기 헛소리를 하는 샬롯의 등을 마저 밀며 나는 웃었다.
“무승부면 네가 손해야. 무조건 이겨.”
그렇게 힘겹게 계단을 오른 샬롯이 대련장 위에서 다이니와 마주 봤다.
벌벌 떨고 있는 샬롯은 반 배치고사 당시의 패배가 떠오르는 듯 보였다.
그런데 다이니는 샬롯이 아니라, 오히려 내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그녀.
설마 내 말대로 진짜 샬롯이랑 대련을 하게 될 거라고는 그녀도 상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나는 그런 다이니의 시선을 고개를 돌려 슬며시 피했다.
자연스럽게 남자 기숙사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는데 거기에는 창문에 옹기종기 모여서는 이쪽을 보고 있는 단원들이 있었다.
‘저러다 걸리는 거 아냐?’
조금 불안하긴 했으나, 그래도 다음 세대의 은빛사자 기사단의 일원이 될 샬롯의 성장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특히 넬슨은 본인이 직접 대련하는 것처럼 긴장한 상태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한나와 톰도 막내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살짝 옆으로 나오는 배려를 해주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교수의 선언과 함께 각 대련장에서 대련 시작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 * *
“…….”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앞에 있는 건,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은발 머리 친구도 아니고.
거대한 덩치로 찍어 누를 것 같은 둠베스트의 외동아들도 아니었으며.
붉은 머리카락을 화려하게 흩날리며 싸움 자체를 즐기는 광적인 소녀도 아니었다.
작은 체구.
갈색 단발머리.
살짝 기가 세 보이는 외모.
심드렁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다이니는 왜인지 기분이 나빠 보였기에 샬롯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껏 함께 훈련을 해온 이안 아이넬, 베런 둠베스트, 마리아 레이로즈보다 앞에 있는 소녀는 약하다.
그럼에도 위압감은 다른 셋보다도 극심했다.
솔직히 자신이 이렇게까지 다이니를 두려워하고 있다고는 샬롯조차 생각하지 못했었다.
처음 있었던 대련에서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기 때문도 있었지만.
다이니의 앞에 서면 무기력하던 입학 무렵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왜 하필 다이니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아래로 떨어진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검을 쥐고 있는 손에 닿았다.
여성의 것으로는 보기 힘든 거친 굳은살이 박혀있는 작은 손.
여학도들은 대부분이 손 관리를 위해서 여러 비용을 지출한다.
하지만 샬롯은 당연히 그런 곳에 쓸 돈이 없었다.
당장 학식만 해도 일정 금액 아래의 메뉴들만 먹고 있는데 무슨 관리인가.
“아.”
옛날에도 손은 거칠었으나, 지금은 훨씬 더 거칠어졌다.
여성으로서는 썩 반갑지 않았으나.
검사로서는 묘한 자긍심이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휘둘러 왔던 검이, 손바닥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느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다이니를 보면 어깨가 움츠러들었으나, 그래도 검 정도는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만.
시간만 벌어보자.
“하, 하아.”
억지로 숨을 고르며, 앞으로 검을 내민다.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함께 갈색 머리 소녀는 바로 앞으로 내달렸다.
콰앙!
일격에 끝내겠다는 속셈이 보였다. 혹은, 기세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던 걸까.
검과 검이 맞부딪치고.
두 소녀의 시선이 서로에게 닿는다.
“아.”
갈색 눈동자 속에 담긴 건 자신을 얕보는 것도 아니고, 다음 대련을 위해 체력을 보충하겠다는 오만도 아니었다.
오롯이 전심전력으로 샬롯이라는 소녀를 쓰러트리겠다는 각오뿐.
다이니는 자신과 진심으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한번 이긴 상대라고 해서 자부심을 가지거나, 교만하지 않고 진지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볍다.’
샬롯은 다이니의 검이 가볍다는 걸 인지했다.
‘생각보다, 엄청 가벼워.’
분명 처음 대련했을 때는 단순히 휘둘러지는 검을 막는 데만 급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베런이나 마리아처럼 일격에 그대로 무릎을 꿇을 것만 같은 위력이 아니다.
이안처럼 신출귀몰하게 빈틈을 찌르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
샬롯은 저도 모르게 깨달음의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이안이 조금만 버티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는지.
대련에 집중하여 긴장을 완화시킬 시간.
상대인 다이니의 기량을 파악할 시간.
딱 그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이안은 샬롯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뇌가 찌릿하고 울려오는 기분이었다. 상쾌한 바람이 괜히 샬롯의 뺨을 훑고 지나친다.
땅을 보고 무심하게 걸어왔는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산봉우리 위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
웅크리고 있던 샬롯이 검을 옆으로 휙 뺀다.
유연하게 몸을 비틀자 다이니의 몸이 앞으로 쏠렸고….
뻐억!
샬롯이 그대로 다리를 후려 차자 다이니는 앞으로 구르며 넘어진다.
다이니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긴 했으나, 샬롯의 분위기가 이전과 달랐다.
샬롯의 눈동자는 이미 투지로 타오르고 있었다.
상대인 자신을 이기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구를 알아챈 다이니는 입술을 으득 깨물었다.
‘짜증 나.’
침착하게 나아가자고 생각한 다이니는 심호흡하며 거리를 좁혔다.
‘변칙적인 공격을 좋아한다.’
2학년의 세나를 쓰러트릴 당시에도 샬롯이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승리했던 걸 알고 있는 다이니.
그렇기에 최대한 변수를 염두하였으나….
빠악!
한달음에 치고 나온 샬롯의 검이 매섭게 다이니의 검을 짓누르고 어깨를 때리고 들어왔다.
“크흡!”
저도 모르게 비명을 삼킨 다이니였으나, 샬롯의 검은 매섭도록 정직하게 때리고 들어왔다.
다채로운 것이 일레인의 장점이다.
하지만 기본이 없다면, 가지가 풍성히 자라 있더라도 뿌리가 없는 나무에 불과하다.
‘읽혔구나.’
탄식을 내뱉으면서도 다이니는 다급하게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따라붙는 것도 고작이었다.
또한 근력에서 차이가 났기에 샬롯의 검을 막을 때마다 손이 저릿하니 감각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손의 감각이 무뎌지며 자연히 검이 느려진 다이니는 어깨에 크게 한 방을 얻어맞으며 쓰라리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변칙적인 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더니 무식하게 치고 들어왔다.
어찌 보면 이것조차 수 싸움의 일환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었다.
샬롯의 눈동자는 차분하니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련장에 올라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분위기.
심판을 보는 교수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로 그녀는 좋은 방향으로 급변했다.
한참은 뒤에 있다고 생각했던 분홍머리 소녀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손을 뻗어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
치욕스러웠음에도, 앞에 있는 분홍머리의 소녀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고 있었기에….
“내가 졌어.”
다이니는 검을 놓으며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 * *
“하아! 하아!”
흥분으로 머리가 뜨거웠다.
중간고사 첫 번째 대련의 승리에 불과했으나, 그럼에도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을 받은 기분에 샬롯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안에게 자랑하고, 뿌듯하게 웃고 싶었으나 그는 대련에 불려갔기에 하는 수 없이 샬롯은 혼자서 수돗가로 왔다.
머리를 찬물로 식히지 않으면 다음 대련까지도 이 흥분이 이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흐히! 흐히히히!”
기분 좋게 수돗가로 향한 샬롯이었으나, 그곳에는 멀뚱히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
혹시 방금 전의 망가진 얼굴을 저 사람이 본 게 아닐까 싶어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한다.
생도로는 보이지 않는 키와 말끔한 외모.
머리에는 비니를 쓰고 있었는데 묘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이상할 정도로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마치 아빠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런 적은 처음인지라 샬롯은 어색하게 수돗가로 걸어갔으나….
짝짝짝짝.
남자는 샬롯을 보더니 부드러이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훌륭하더라.”
“예?”
뜬금없는 칭찬에 샬롯은 어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인자한 그 미소에는 자신보다 더한 뿌듯함이 담겨 있었기에 샬롯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련, 잘했다고.”
“가, 감사해요!”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저 남자가 해주는 칭찬은 이상할 정도로 가슴에 박혀 들어왔다.
또 다시 차오르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샬롯은 억지로 수도꼭지를 돌려 머리에 찬물을 쏟아냈다.
찬물이 떨어지자 머리가 개운해지며 묘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누구지?’
교수님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생도도 아닌 게 생도복을 입고 있지 않다.
경비분들도 따로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머리색이 나랑 같았던 거 같은데.’
비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던 분홍 머리색이 떠오르자 샬롯은 퍼뜩 고개를 들며 정체를 물어보려 하였으나.
“저기 근데 누구…….”
이미 남자는 사라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