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
6화.
‘좀 적당히 하지.’
무슨 마음인지는 이해간다.
자기 후손이 대련하는 걸 보는데 어느 조상이 발 벗고 나서서 응원하지 않겠는가.
근데 저건 좀 과하지 않은가.
‘떨어지겠다, 이 자식아.’
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면서 뭐라 뭐라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넬슨이 저렇게 흥분한 것도 이해는 간다. 샬롯은 썩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읏!”
떨어지는 장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샬롯.
‘오히려 움직임이 저쪽이 더 빠르네.’
이게 참 웃기게도 한손검을 쥐고 있는 샬롯보다, 장검을 쥐고 있는 밤색머리 소녀의 움직임이 더 가벼웠다.
처음에는 저 덩치로 장검을 들고도 저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나? 생각했지만….
‘연습용 무기라 그렇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물론 밤색 머리 소녀의 실력도 썩 나쁘진 않다.
하나, 근육이나 체격, 운용하는 마나량을 봤을 때, 장검을 저렇게 쉽게 다루는 건 숙련된 기사도 어렵다.
그런데 대련용으로 만들어진 탓인지 일반적인 검보다 훨씬 가벼워 보인다.
추가로 마나를 다루는 솜씨 역시 반대편 소녀의 실력이 훨씬 우위에 서 있었다.
무기의 선택, 검술, 마나 숙련도 등 전반적인 대련의 내용에서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는 샬롯 일레인.
그리고 창문틀을 주먹으로 탕탕 내리치며 탄식을 쏟아내는 넬슨.
솔직히 나도 이해가 안 되긴 했다.
‘왜 저딴 식으로 검을 휘두르는 거야?’
물론 넬슨 일레인이 은빛 사자 기사단에서도 최약체에 속했던 건 맞다.
가장 늦게 입단하기도 했고, 나이도 가장 어렸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넬슨에 한정된 것일 뿐 누구도 일레인 가문의 검술을 무시하진 못했다.
다채로운 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일레인 가문의 검술.
어느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 가능한 게 일레인의 검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지금 샬롯은 일레인의 검술을 사용한다기보다는 그냥 흉내 내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그것도 전혀 비슷하지 않게.
다채로운 검이 특징인 일레인 가문이었으나, 그러한 검을 다루기 위해서는 역으로 기본기가 가장 잘 잡혀 있어야 한다.
일레인의 검술은 겉으로 봤을 때, 다채롭고 화려해 보이나 실상은 내실이 굉장히 탄탄한 검술이었다.
굳게 뿌리내린 기본 초식에서부터 잔가지가 많이 뻗어 나갔을 뿐.
사실상 기본을 가장 중시하는 검이다.
그런데 그 기본이 전혀 잡혀 있지 않으니 그저 난잡할 뿐이었다.
마치 도떼기시장에서 상인 한 명이 육류, 채소, 생선 같은 식재부터 의류, 신발, 심지어는 검까지 취급하는 듯한 잡스러운 모양새.
그러니까 지금 넬슨이 저렇게 난리를 치고 있는 거다.
선조들이 발전시켜 온 가문의 고유 검술은 어디다 팔아먹고 엉망으로 펼치고 있는가.
‘검술 계승에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건가?’
샬롯의 훈련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체계적으로 자리 잡은 근육이 그녀가 노력파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주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재능의 영역을 따지기에도, 뭐 보여준 게 있어야 따져보지 않겠는가.
‘답답하긴 하겠네.’
그렇게 생각하니 넬슨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나 같은 경우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고아이기도 하니 후손이 있을 수 없지만, 만약 내 후손이 저 짓거리를 하고 있었으면 바로 뒤통수 후려갈겼을 거다.
“끄앗!”
“승자, 다이니 브랜드.”
결국 일방적으로 패배한 샬롯.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은 비웃음을 지으며 샬롯을 내려다본 후 그대로 대련장을 내려갔다.
샬롯의 분홍빛 눈동자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는데, 다른 사람한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얼른 눈가를 가리고는 도망치듯 대련장을 내려갔다.
‘저렇게 보니까 또 불쌍하긴 하네.’
마차에서 신나게 닭꼬치를 먹던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씁쓸해진다.
결국 샬롯의 뒤를 쫓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넬슨이 궁금해할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일레인의 검술이 어떻게 된 건지 호기심이 일었다.
어차피 여생도들이 먼저 대련 중이었기에 내 차례가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샬롯은 수돗가에 있었다.
거기서 괜스레 세수를 하는 척 눈가의 눈물을 닦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다.
“고생했어.”
“……이안 아이넬?”
“전혀 아깝지는 않았고 뭘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포기하지는 않았으니까.”
“놀리려고 온 거야?”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샬롯.
나는 수돗가에 손을 걸친 채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내가 아는 일레인 가문의 검술은 그런 게 아닌데?”
“네가 뭘 안다고!”
검술에 대해서 한번 톡 건드리자 바로 터져 나오는 샬롯의 감정.
눈이 붉게 충혈된 모습에 괜히 애를 괴롭히는 기분이 들어 조금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화려하고, 다채롭고, 유연한 검이지. 근데 네가 방금 보여준 검술은 아니잖아. 검을 다루는 것도 조잡하고.”
내 말에 샬롯이 조금 놀란 듯한 기색으로 내게 되물었다.
“……어떻게 네가 우리 가문의 검술을 알고 있어?”
“응?”
말실수를 한 건가 걱정하던 순간 되레 나에게 매달리듯 물어 오는 샬롯.
이게 무슨 상황인가 당황하고 있는데 샬롯은 신경질적이던 방금과는 정반대로 무언가 희망이라도 봤다는 듯 내게 달라붙는다.
“너! 우리 가문의 비급에 대해서 뭔가 알아? 혹시 어디서 본 거야? 어디서? 도대체 어디서……!”
“잠깐만, 좀 진정해 봐.”
가까스로 샬롯을 진정시킨 나는 그녀에게 일레인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문의 비급이 아주 오래 전에 유실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일레인가에서는 가문의 고유 검술이 아니라, 원본 검술의 검로를 유추하여 복원한 검술을 익히고 있다고 한다.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어. 당시는 악마들의 재앙이 범람하던 때라서 일레인 가문의 검술을 익히고 있던 익스퍼트 등급 이상의 검사들 대부분이 죽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비급마저 사라졌으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 일레인 가문은 자신들의 검을 잃은 가문이 되었다.
“허.”
설마 일레인 가문에 이런 비화가 생겼을 줄은 몰랐다.
샬롯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동안에 어색했던 일들이 하나씩 딱딱 맞춰진다.
이 아이가 귀족임에도 평민들을 위해 준비된 마차를 타고 입학식에 온 것도.
마차 안에서 닭꼬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것도.
허울만 귀족일 뿐 일레인 가문은 완전 몰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네가 어떻게 오래전 유실된 우리 가문의 검술을 알고 있는 건가 했어. 혹시 단서라도 있나 싶어서.”
“…….”
이건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지금 내 방에는 일레인 가문의 검술 그 자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샬롯을 가르치는 걸 허락한다면 당장이라도 “감사합니다!” 외치면서 가르치려 들겠지만….
‘설명할 수가 없다.’
넬슨과 내가 어떻게 일레인 가문의 검술을 알고 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를 납득시키려면 내가 은빛 사자의 단장인 라인 레이먼드였다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골치 아프네.’
사정이 딱하기도 했고, 넬슨의 후손이라 도와주고 싶기도 한데….
“이안! 이안 아이넬 어디 있지?”
고민을 하던 와중, 벌써 내 차례가 됐는지 나를 부르는 교수의 목소리.
일단 샬롯에게 한번 같이 고민해 보자는 말만 한 뒤, 바로 대련장으로 향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련장에 오르자 담당 교수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들의 시선도 내게로 집중된다.
교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몸을 풀거나, 이미 대련이 끝나서 쉬고 있던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까지 시선이 쏠리는지에 대한 의문은 수군대는 생도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쟤가 걔지?”
“이번에 메이지 아카데미에서 다섯 원석으로 뽑힌 애?”
“마나량이 그렇게 많다면서 왜 나이트 아카데미로 온 거야.”
“요즘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기본적인 검술 소양도 없는 평민을 마나량만 보고 입학시키다니….”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검을 얼마나 휘둘렀는데,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아, 하긴.’
신입생들의 경우에는 내가 메이지 아카데미에 선택되는 걸 가장 가까이서 봤는데 제대로 된 해명도 듣지 못했다.
교수들 같은 경우에는 아직 학장에게 듣지 못했는지 몇몇이 조금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기도 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구나?’
대부분의 시선은 나에게 오래 붙어 있지 않고, 내 상대가 될 소년에게도 닿았다.
좋은 풍채를 가진 검은 머리의 소년.
‘머리 마음에 드네.’
완전 밀어버린 지 얼마 안 됐는지 소년의 머리는 잘 정돈된 잔디밭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생도들은 대부분이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입학하지만 개중에는 조금 음흉한 속내를 가진 아이들도 있다.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하고, 검을 휘두른다.
자연히 눈이 맞을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 어머니마저도 가서 신붓감 하나 낚아채 오라고 신신당부 하셨으니까.
그렇기에 대부분의 생도들이 아카데미 입학 전에는 나름 꾸미는 편이었는데….
소년의 머리에서는 오롯이 검을 휘두를 생각으로 아카데미에 왔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거기에 굵은 눈썹과 투지가 담긴 살짝 찡그린 표정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만약 내가 기사단장이었어도 다른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저 소년에게 주목했을 거다.
“베런 둠베스트와 이안 아이넬은 위치로.”
“둠베스트?”
나도 모르게 소년의 가문명을 따라 읊조렸다.
‘곰 아저씨 가문이잖아?’
300년 전에도 커다란 덩치와 타고난 힘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당시에는 명문 중의 명문이었는데….
‘지금도 썩 다르진 않다지.’
원래 해먹던 놈들이 잘 해먹는다고, 둠베스트 가문은 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어깨에 힘 잔뜩 주고 다니고 있었다.
“나름 빅 매치다.”
“빅 매치는 얼어 죽을.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기사면 검으로 판단을 해야지. 제대로 검술을 배워본 적도 없어 보이는 촌뜨기를 어디에 비교하냐.”
“그렇다고 마나량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너 마법사야? 여기가 메이지 아카데미야? 평민인 쟤가 마나를 제대로 다룰 줄은 알겠어? 개인교습을 따로 받은 나도 마나를 다루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는데?”
“그렇긴 한데….”
“애초에 어중이떠중이가 마나만 많이 가지고 있어봤자 쓸 줄 모른다니까? 봐라, 마나량 믿고 입학한 거 이제 금방 후회할 테니까.”
“하긴, 마나는 그냥 태생적 운이잖아. 둠베스트가 이기면 좋겠다.”
“설령 마나를 조금 다룰 줄 알아서 신체 강화를 한다고 해도 어차피 근본이 되는 검술이 허접하면 못 이겨.”
여기저기서 생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반해 베런 둠베스트는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고 집중하며 자신의 두꺼운 장검을 한 손으로 쥐었다.
연습용이라서 굳이 양손으로 잡을 필요 없다는 건가.
그는 내 앞까지 천천히 걸어오더니 무겁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마나량만 믿고 입학했다면 후회하게 될 거다.”
“…….”
“노력 없이 얻은 재능에 가치는 없다. 또한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모른다면 더더욱.”
“…….”
“그러니 증명해 봐라, 네게 기사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그러지 못한다면 이 베런 둠베스트가, 그 쓸모없는 재능을 박살 내주마.”
이어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베런의 검이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