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Empire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8)
작전은 간단하다.
먼저 야밤을 틈타 경복궁을 빠져나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야간 기차를 탄다.
그리고 부산에 도착한 후 이번에 새로 생긴 미국행 여객선의 표를 사고 배가 출발할 때까지 대기.
시간이 되면 추격자들의 시선을 피해 배에 탑승한 후 화장실에 숨어 여객선이 출발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여객선이 출발하여, 미국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나보고 황태자가 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원하는 건 놀고 먹고 자기만 해도 괜찮은 자유로운 삶이다.
그런 삶을 원하는 내게 황태자가 되고, 황제가 되라고?
절대 안 되지. 대한제국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황제인데, 그런 황제를 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미국으로 튀어야 했다.
내가 대주주로 있는 듀이 월드의 성공으로 배당금만 받아도 미국에서 편하게 살 수 있다.
황자만큼 부자는 아니겠지만, 그 대신 자유롭겠지.
그래서 옷 몇 벌과 비상금을 챙긴 후 늦은 밤 몰래 경복궁에서 나왔다.
궁에서 나오는 건 내게는 쉬운 일이었다.
이 세상의 경복궁 자체를 내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비밀 통로들 또한 알았으니까.
경계를 서는 시위대들의 눈을 피해 몰래 경복궁을 빠져나온 난 곧바로 한양역으로 향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재빨리 매표소로 다가갔다.
당직에 지친 건지 매표소 안에서 직원이 하품하며 앉아있었다.
모자를 꾹 눌러쓴 채 매표소 앞에서 돈을 꺼냈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표 주세요. 제일 빠른 걸로요.”
“어디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봐요?”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여유가 있어서일까.
평소라면 기계적으로 돈을 받고 표를 주기 바쁠 매표소 직원이 돈을 받으며 물었다.
대답을 어색하게 했다가 괜히 들킬라.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가족 문제로 급하게 내려갈 일이 생겨서요.”
“그런가요?”
직원은 그런가 보다 하며 내게 표를 내밀었다.
그 표를 보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유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표를 잡으려 하자, 직원은 기차표를 꽉 쥐곤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한 내가 고개를 들자, 방금까지 매표소 직원이 입고 있던 옷을 입은 황제가 날 바라보며 껄껄 웃고 있었다.
“황태자가 되어야지! 어딜 가려 하느냐!”
“으아아아아악!”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데, 황제가 매표소의 유리창을 쑤욱-하고 통과해서 나오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대한제국의 황제만이 배울 수 있는 비기(?器)니라! 네가 황태자가 되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난 황태자가 되기 싫다고요!”
내가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치자 황제가 화를 냈다.
“어허! 대한제국의 황자로 태어났으면서! 어찌 자신의 의무를 내팽겨 치려고 하느냐! 네 뒤의 세종대왕께서도 실망하셨지 않느냐?”
“누구요?”
그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이런 젠장.
진짜 세종대왕님이 훈민정음을 손에 들고 서 계셨다.
“이런 씨팔?”
“고의 먼 후손이여. 그대는 나보다 더 뛰어난 왕, 아니 황제가 될 수 있다. 혼자서도 일을 잘해서 황희가 필요 없이, 본인이 황희가 될 수 있을 정도니까.”
아니 그건 칭찬이 아니라 저주 아닙니까?
하지만 자신이 내게 볼드모트가 와도 ‘아, 이건 좀···’할 정도로 경악할 저주를 한 건 아는지 모르는지.
세종대왕은 웃으며 내 뒤를 가리켰다.
“보아라. 네 뒤에 있는 황희도 네가 일을 잘한다고 인정하지 않느냐?”
“누구요?”
그 농부한테 검은 소 누렁 소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냐고 물어본 세종대왕 직속 노예?
이번에도 고개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억센 손아귀가 날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귀에서 느껴지는 불쾌할 정도로 따뜻하면서도 부드럽고, 동시에 축축한 감각.
“밤일은 제가 더 잘한답니다?”
할짝!
“으, 으아아아악!!!”
화, 황희한테 내 순결을 빼앗긴다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다 그대로 발이 걸려 뒤로 넘어졌다.
쿵!
“···꿈 진짜 뭐 같네.”
그리고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충격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자다가 발버둥 치는 바람에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나 보네.
“꿈에서 황제가 날 쫓아오고, 세종대왕님이 날 혼내고 황희가 내 순결을 노리는 꿈이라···.”
뭐 이딴 꿈이 다 있어?
* * *
“···황태자 말씀이십니까?”
황제가 나보고 황태자를 하라고 한 다음 날 아침.
이른 아침 찾아온 김옥균에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당황하여 내게 묻는 김옥균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께서 저보고 황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
“하지만 전 황태자가 되기 싫습니다. 형님도 있는데 어찌 어린 제가 황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니 스승님께서는 다른 관료분들과 함께 잘못된 일이라고 좀-여보세요? 제 말 듣고 계십니까?”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김옥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하드리옵니다. 태자 전하!”
그리곤 나를 행해 절을 올리며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그런 김옥균에 깜짝 놀라 다급하게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일어나세요!”
“하지만 전하. 전하께서 황태자가 되셨는데 어찌-”
“난 그 황태자 되기 싫다고!”
“예?”
그제야 내가 황태자가 되기 싫다는 걸 들은 것일까. 김옥균은 당황하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째서 싫다 하십니까?”
“일해야 되잖아요?”
“······.”
내 말에 김옥균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해는 가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표정이랄까.
과로가 기본인 직장인으로서는 이해가 되지만, 대한제국의 관리로서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는 내게 쓴소리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디 가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쳇.”
내가 입을 삐죽 내밀자 김옥균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럼 전하께서 보시기에 황태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둘째 형님은 어떻습니까?”
“······.”
“···예. 그건 진짜 아니죠. 실언했습니다.”
지금 네가 제정신이냐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하긴 저런 반응이 과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검은 좀···.
‘그놈이 황제가 되면 대한제국은 망한다.’
정치와는 거리가 1만 광년쯤 먼 이검은 황제의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대신 결정해줄 비선 실세가 있다면 모를까. 이검이 황제가 되는 건 진짜 아니었다.
그러니 나 아니면 첫째인 이용이 황태자가 돼야 하는데, 이용은 황위에 아예 관심이 없어 남은 건 나밖에 없었다.
“아씨··· 진짜 하기 싫은데.”
꿈에서 했던 것처럼 미국으로 튈까?
근데 꿈에서 황제에게 잡혀서 그런지 실제로도 잡힐까 봐 겁이 났다.
실제로도 잡힐 가능성이 높았고.
“그럼 차라리 둘째 형님 말고 다른 방계 황족들 중 능력이 있는 놈들을 찾아야 할 텐데···.”
“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자신의 귀를 막은 김옥균이 도망가듯 방에서 나갔다.
괜히 관련됐다가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다는 소리겠지.
이익 스승이란 사람이 제자가 이렇게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도망쳐?
망할 김옥균. 내가 황제가 되면 황희 형에 처하겠어.
“진짜 어떡한다··· 진짜 방계 황족을 찾아야 하나?”
하지만 며칠 후. 가까운 방계 황족들을 모두 찾아본 나는 절망에 빠졌다.
멍청하다는 건 아니다. 일반인과 비교하면 똑똑한 황족들은 꽤 많았다.
하지만 세계대전 동안 대한제국을 잘 이끌 수 있을 만큼 똑똑한 황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태평성대라면 그러적럭 괜찮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난세에는 암군 소리나 듣겠지.
그리고 임진왜란 따위는 동네 싸움 정도로 만들어 버릴 세계 대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똑똑한 걸론 턱도 없었다.
“아이씨. 망했네.”
진짜 내가 황태자가 돼야 하나?
모든 후보들을 찾아본 뒤, 정말 나 빼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동안 많이도 돌아다니더구나.”
며칠 후. 황제가 부름에 강녕전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경을 쓰고 서류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황제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널 대신할 만큼 뛰어난 다른 황족은 찾았더냐?”
“······.”
이미 다 안다는 듯한 말투에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요. 없었사옵니다.”
“흐흐. 그렇지.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너 말고는 황제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춘 황족이 정말 없더구나.”
황제는 자신 또한 예전부터 찾아봤다 말하며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건 그렇고 하나만 물어보자꾸나. 도대체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날 지진은 어찌 예측한 것이냐? 집현전에서는 그런 연구는 하지 않았는데.”
아, 결국 저 질문이 나왔구나.
안중근이 진실을 알았을 때는 집현전에서 그런 연구를 해서 예측할 수 있었다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집현전에서는 그런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들도 불가능하다고 오래전에 결론 내렸을 테니까.
그걸 황제가 모를 리가 없었다.
또한 집현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들은 황실에서도 황제만이 안다.
아무리 황자라도 집현전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황제의 허락이 없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황제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또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넘어가야겠네.’
하지만 나도 제대로 설명하기엔 힘들었기에 안중근한테 했듯이, 신빙성이 있는 거짓말을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소자가 조사해 본 결과, 그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옵니다.”
“조사를 했다?”
“예. 샌프란시스코는 예전부터 일본처럼 지진이 자주 일어난 지역이었사옵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진 기록들을 토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것이란 걸 예측할 수 있었사옵니다.”
“허어···.”
황제는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기록만으로 대지진을 예측했다는데 감탄을 안 할 수가 없겠지.
“그게 가능한 일이었더냐?”
“사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도 지진이 일어날 것이란 가능성만 보았을 뿐, 정확히 언제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래서 만약 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계획만 세워두었을 뿐. 정말 제가 정확한 시기를 예측한 건 아니옵니다.”
“음··· 아쉽게 되었구나. 지진을 예측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천문학적이거늘.”
황제는 정말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럼 왜 안 대위에게는 집현전에서 그런 연구를 했다 거짓말을 한 것이냐?”
“안 그래도 성자 소리를 듣던 중이었는데, 예언자 소리까지 들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하하. 너에 대한 소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까 봐 감춘 것이로구나. 옳은 선택이다. 소문은 통제해야지, 휩쓸리면 안 되는 법이니까.”
옳은 결정이었다며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네 스스로 황태자에 어울리는 인재라는 걸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구나. 앞으로 있을 대전쟁에서 큰 피해 없이 대한제국을 이끌만한 인재는 너밖에 없으니까.”
“하아···.”
황제의 말이 맞았다.
잘난 척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엿 같게도 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끝까지 거부한다면?
보나 마나 이검이 황제가 되고 군국주의 루트를 타거나 세계대전 때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겠지.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예. 정확히는 조건들입니다.”
내가 결국 받아들이기로 하자 황제는 싱글벙글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황태자 문제가 해결됐으면서 동시에 내가 말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궁금한 눈치였다.
“먼저 제 책봉을 3년 뒤로 미뤄주십시오.”
“어째서 3년인 것이냐?”
“대한의 황태자 책봉 문제를 이용해 일본군 내부에 갈등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황태자가 된다면 일본군 사이의 싸움도 금방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더 오래 싸우도록 공식적인 책봉을 미루자는 것이군. 좋다. 일본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데 당연히 그래야지.”
황제는 그런 목적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조건은?”
“제가 황태자가 된 후, 절 러시아에 사절로 보내주십시오.”
“어째서?”
“러시아 제국은 대한에게 있어 중요한 동맹입니다. 또한 저희와 달리 앞으로 있을 대전쟁의 한복판이 될 유럽과 붙어있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대한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전쟁이 진행되게 하려면 러시아 제국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니 미리 가서 협조를 구하겠다는 것이냐? 좋다. 그것 또한 허락하지.”
조건들 모두가 내 개인적인 목적보다 대한을 위한 것이라는 말에 황제는 더욱 기뻐했다.
젠장.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내 비자금이라도 따로 챙겨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럼 실망하고 다른 황족을 황태자로 임명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게 끝이냐?”
“···예. 끝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유를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안 될 걸 뻔히 아는데 요구할 리가 없었다.
하아··· 좋은 날 다 갔구나.
앞으로는 늦게까지 침대에 뒹굴거리지도 못하고, 해가 지면 바로 잘 수도 없겠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황제가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앉거라. 앞으로 황제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 게 많으니.”
“예···.”
잘 가라! 내 자유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