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5장 전쟁 발발(1)
몽골군은 완안자연은 물론 갈라전과 고려의 허를 찔렀다.
첩가가 이끄는 군대 1만 명은 아달의 부락을 비롯한 속빈로 남부를 평정하러 가는 것처럼 목단강 이북에서 수분하 이동으로 남하하였다가 수분하 하류에서 방향을 틀어 수분하를 도하하여 갈라전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몽골군이 공격을 한다 해도 갈라전의 연길(남경)을 먼저 칠 것이라고 생각하여 연길과 그 인근을 비롯한 목단강을 요의 주시하며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던 갈라전에서는 수분하 로부터 오는 진격 작전은 맥을 못 추며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 이전 성처럼 역적으로서 죽을 테냐? 아니면 죄를 뉘우치고 대하국의 신하가 될 것이냐?”
첩가는 첫 성을 공성한 후 사로잡은 포로들에게 제안조차 하지 않고 모조리 참하였다.
그 후에는 이전 몽골군들처럼 성을 점령하기 전에 항복을 제안하였고, 거절한 성과 부락들은 일체의 자비 없이 모두 살육했다.
“소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면 4대를 거쳐 우마처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항복하겠습니다!”
“동하국의 부흥에 동참하겠습니다!”
자신들이 버린 황자가 대군을 이끌고 침범한 것에 갈라전 변경의 여진족들은 고민했다.
그러나 멀리 있는 아군과, 가까이 있는 동하국의 황자와 몽골군.
무엇이 더 큰 위협인지는 뻔했다.
애당초 고려에도 진정으로 큰 충성을 한 이들도 적었던지라 동하국 황자 첩가의 제안에 항복하는 이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첩가에 붙게 만든 것은 그가 주장한 고려를 치는 징치(懲治) 이유 중에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협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려는 지금 몽골국을 기만하고 있다. 겉으로는 형제의 나라이니 동맹이니 고개를 숙이나, 뒤로는 금국의 황녀를 왕실에 들이고, 속빈로에 병사들을 보내 침탈하며 야욕을 품고 있으니 어찌 대국(몽골)에서 고려를 놔둘 것이라 생각하느냐! 곧 있으면 과인만이 아니라 대국에서도 수십만 대군을 보내 징치할 것인데, 그때 가서 자비를 구걸한들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왕식이 만든 프로파간다가 압구무를 처리하면서 드디어 첩가와 옷치긴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망하고 근절되었다고 생각한 금 황실 핏줄이 고려에 있고, 거기다 세자와 연을 맺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몽골이 금나라를 쳤듯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친다는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금나라를 가장 증오하는 것은 몽골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왕식이 금수유로 프로파간다를 할 때 우려한 최악의 사태였기도 했다.
갈라전의 여진인들은 고려에 귀순한 대부분의 이유가 몽골보다 고려가 더 낫다는 것과 살기 위해서였는데, 첩가의 몽골군의 대군이 고려를 칠 것이라는 협박은 귀순한 근간 이유를 뒤흔들어놓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더러 저항하거나 첩가의 제안을 무시한 여진인들도 있었지만, 그들 또한 고려의 충성심을 가진 자들보단 첩가와 몽골을 증오하거나 불신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첩가군에 붙는 여진족들은 점점 늘어났고, 그들은 길잡이, 선봉이 되어 갈라전을 치기 시작했고 그렇게 첩가군은 수분하를 넘은 지 5일 만에 두만강까지 당도하였다.
두만강을 넘으면 한반도에 진입하고, 남갈라전이 전장이 될 것이고 건너지 않고, 연길로 서진한다면 주전장은 북갈라전이 되는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첩가에 붙은 여진인들은 연길을 칠 것을 권하였다.
남갈라전과 북갈라전 중 동하국에게 있어서 큰 연이 있는 곳은 두말할 것 없이 남경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제안에 첩가는 고개를 돌리고 두만강 도하를 선택했다.
“황자 전하.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강을 넘는다!”
“전하. 남경을 먼저 취해야 후방이 안전할 것이옵니다. 만일 남경에서 병마사의 군대가 남하한다면 우군은 위아래로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할 것이옵니다.”
“그럴 일은 없다. 그 역적은 목단강 이북에는 대국(몽골)의 군대에 겁을 먹고 껍질 속에 처박힌 거북이처럼 남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오나. 남갈라전으로 간다는 것은 고려에서도 군을….”
“흥! 내 분명 고려의 죄는 매우 커 대국에서도 군대를 보내 징치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기 오기에 앞서 속빈로를 노리던 고려의 병사들을 벌하고 오는 것인데 어찌 이제와 고려를 두려워하겠느냐?”
사실 첩가에게는 이 길밖에 없었다.
남갈라전을 치는 것은 첩가의 판단 이전에 고려로 가는 길목의 확보를 원하는 테무케의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첩가 또한 고려를 칠 수 있다는 것과 남갈라전까지 동하국의 영토로 복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되려 찬성하였기에 여러 의미로 거절할 까닭은 없기도 했다.
“이미 대국의 노왕께서도 나와 뜻을 함께하기로 하였으니 그대들은 안심하고 지시에 따르라. 그것이 아니라면….”
“아, 아니옵니다. 전하의 명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1만 하고도 갈라전 여진족 1천 명의 군대는 그렇게 두만강을 도하 하여 무서운 속도로 남진하였다.
* * *
첩가의 침공과 두만강 도하는 연길에 있는 완안자연에게도 전해졌다.
“첩가 황자가 몽고군을 이끌고 갈라전의 동쪽을 치고 이제는 두만강을 도하하여 남진하고 있다 합니다. 병마사 남갈라전으로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당연히 연길성에 있던 장수들은 완안자연에게 남갈라전에 구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고려에 가깝다고는 하나, 신분 배경이 낮고 고려의 간섭이 클 아부한 두문이 담당하는 남갈라전과 형식상 갈라전 여진족 중 최고 서열에 국혼 이후 다시 한번 여진족과 금 황족을 언급하며 입지를 알린 완안자연이 관리하는 북갈라전.
둘 중 쪽이 어느 쪽이 여진족들이 따를지는 일목요연하였다.
거기에 압구무가 제거된 이후 몽골을 경계하며 남갈라전에도 병력을 요구했고, 아부한 두문도 일부 병력을 보내 북방의 방어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몽골군이 쳐들어와도 속빈로를 완전 정토(征討)한 뒤거나 하다못해 연길부터 노릴 것이라 생각했던 갈라전에서 몽골군의 남갈라전 직공은 무척이나 위험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만일 남갈라전이 정복이라도 된다면 북갈라전은 고립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첩가의 장담은 적중하였다.
“이북에 몽고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말을 잊은 것이냐?”
“…지금 남갈라전을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기가 막히다는 남갈라전에서 온 장군의 반응에 완안자연은 발끈하며 호통을 쳤다.
“어리석은 놈! 지금 우리 군을 빼내는 것이 저들의 노림수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지금 저들은 이곳 연길의 병력이 분산되는 것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사정을 보지 않고 눈앞의 함정에 자원하여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명령 따위 나는 내릴 수 없다.”
“이전에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몽고군의 군 주력은 첩가 황자가 이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연길성의 병력 전부를 보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남갈라전에서 왔던 병력만, 아니 하다못해 그 일부만이라도 다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적의 기세는 거세 이미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진군 중인데 한 줌의 군대를 보낸다 한들, 한 잔의 물로 거칠게 타오르는 수레의 불을 끄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몸을 혹사시켜서 간다 한들, 지치고 적은 병력으론 큰 효험도 없을 터이며 되려 북갈라전의 방어가 약해지 힘드니 불가하다.”
“병마사!”
한 줌의 병력마저 지원할 수 없다는 강고한 태도에 남갈라전의 장수는 분통에 입술을 깨물었고, 그 모습에 자신이 너무했다 깨달은 완안자연은 헛기침을 하며 그를 진정시켰다.
“진정하라. 이러한 일을 대비하여 전하께서도 갈라전을 남과 북으로 구분하지 않았느냐. 남갈라전은 지형이 험하여 수비하기가 수월하고, 복병을 배치하기 좋다. 이것이 내가 보내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남갈라전은 고려와 인접하여 부병마사가 조금만 수비를 한다면 고려에서 군이 갈 것이니 구태여 우리가 군을 나누지 않아도 좋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다. 세 번째 이유는 남갈라전에 비해 이곳은 북으로는 몽고 노왕이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고, 서로는 동요국과도 인접하고 있어 방어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한정된 병력으로 여러 곳을 지켜야 하니 군을 나누기가 힘드니 어찌 갈라전을 보내겠는가? 첩가 황자가 무섭게 진군을 하고 있으나 북갈라전이 굳건하다면 결국 후방의 퇴로와 협공을 걱정하여 갈라전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이곳을 지켜야 하는 마지막 이유라 할 수 있다. 이제 내가 군을 보내지 않는 이유를 알겠나?”
여기에 더해 완안자연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있었다.
‘만일 첩가 황자가 말한 대로 금 황족의 문제로 쳐들어온 것이 사실이라면 남경성이 점령되는 순간 나는 죽는다!’
금 황실의 성을 쓰는 자신을 그들이 살려줄 리 없었다.
연길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려 세자에게 금 황실의 정통이 있다는 듯 말하고, 동하국 재상 왕회를 설득하고자 황녀를 운운한 것이 자신이었다.
거기에 팔관회 이후 아부한 두문에게 재차 자신의 입지와 중요성을 올리고자 국혼에 관여했다는 듯 프로파간다한 덕분에 금과 동하국을 배신하여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자신이 현 갈라전 여진들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기껏 세운 위상과 입지가 족쇄가 되었고, 여기서 연길성을 떠나는 것은 지위와 체면, 세간 평가, 자존심 모두를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즉, 완안자연에게는 북갈라전에서 살아남는 것밖에 길이 없었고, 남갈라전에 병력을 나누지 않는 것도 자기 보신 문제가 큰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갈라전에서 올라온 장수는 병마사의 명령에 입술을 깨물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그러나, 남갈라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나마 고려에 가깝고 왕식이 지난해 순행을 하였기에 첩가에 붙는 이가 두만강 이북보다는 덜하다 할 뿐이지 첩가의 대군에 겁을 먹고 붙거나 감히 맞붙을 수 없어 군을 피해 성에 처박힌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예상 이상으로 저항이 없는 갈라전을 상황에 첩가의 군대는 쭉쭉 남하하였고 무사히 경흥을 통과할 수 있었다.
때마침 만일 연길이 공격을 받는다면 언제든지 남갈라전에서 병사들을 동원하여 북갈라전으로 갈 수 있게 부령(富寧 : 왕식이 붙였다. 오늘날의 부령.)에서 사냥을 하며 대기하고 있던 아부한 두문은 첩가의 대군에 놀라 퇴각을 하며 고려와 갈라전 전역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그러고는 군을 모아 남갈라전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경성(鏡城 오늘날 경성. 왕식 명명.)에 가서 진지를 만들며 일전을 대비하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갈라주에 있던 이안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안사는 동하국이 부흥하여 쳐들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주민들과 인근 제추들을 불러 술자리를 마련하였고, 모두 취기에 빠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외쳤다.
“지금 같은 판탕(板蕩) 지세에는 충의가 가장 중요할 진데 지금 북쪽(갈라전)에는 충의는 고사하고 난민이 곳곳마다 일어나 ‘황상을 배반하고 수령과 장수들은 적들에게 달라붙으니 지난번 태자 전하께 맹세한 그 기개 있는 영웅, 충신들은 어디로 갔냐!’고 아우성이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우리 본도(갈라도) 내 신민들이 의기를 들고 일어나 난민을 타일러 의를 향하게 하고 외적(外敵)을 격파하고 대의와 인륜을 바로 심고 떨친다면 추후 조정에서도 우리를 어찌 홀대하겠는가!”
“옳소! 옳소!”
“우리가 나가서 모습을 보인다면, 고려에서도 우리를 재차 다시 보겠지.”
“껄껄껄. 이안사 저 친구 역시 말 잘하는군. 맞네. 맞아!”
이안사의 말에 바람잡이로 심어둔 몇몇이 감탄하며 호응하자 취기에 빠진 여진 추장들도 분위기에 따라 옳다고 대답했다.
“암, 우리가 영웅이오, 충신이지!”
“잘 말했네. 그렇다면 그대들도 나의 대의 동참하겠는가?”
“끄윽. 이미 술도 같이 먹고, 고기도 먹고, 사냥도 같이한 사이 아닌가? 친구가 대의를 떨치고 공을 쌓겠다는데 당연히 함께하지!”
“규래. 고뤠에! 나될세!”
“좋네. 그럼 지금 우리의 의기와 용기를 혈판장을 써 보이고 모두에게 알린 뒤 저 몽고적들과 싸워 용맹을 떨쳐보세!”
“못할 것도 없지! 히끅. 하하하.”
“나도, 나두! 내놔, 여기도 영웅호걸 있다아아! 꺼억!”
평소라면 절대 승낙하지 않을 제안이었지만, 이미 고주망태처럼 취한 그들에게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고 거절할 이성은 없었다.
그렇게 술자리에 있는 모두가 혈판장에 적힌 자기 이름에 피로 지장을 찍었고, 그 찍은 인장들을 내보이며 소리 높여 외쳤다.
“여봐라. 이곳의 영웅호걸들이 의기와 인륜을 떨치고자 이렇게 맹세하였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이 영웅호걸들의 의기를 전한 뒤, 영웅들의 집으로 가서, 따라 북으로 오라고 전하라. 우리는 먼저 북으로 갈 것이다!”
이안사는 그대로 취한 추장들을 데리고 길주로 향했다.
아닌 밤중에 승마와 야행이었지만 기세를 탄 그들은 이안사의 태도와 호응에 2차 술자리에 가는 사람마냥 웃으며 이안사를 따라갔다,
그제서야 추장을 따라온 측근들 중 일부가 사태가 이상함을 깨닫고 추장을 데리고 빠지려는 자도 있었지만 이미 에워쌀 대로 싸인 이안사의 사병에 의해 함께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여진 추장들이 술에서 깼을 시점에는 이미 갈라주 인근에 그들의 의용과 진군이 전부 알려져 있었고, 부락의 병사들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안사는 어제 그들 스스로 지장을 찍은 혈판장을 보이면서 웃었고 그 상황에 추장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땅을 치고 욕을 해야만 했다.
“술이 웬수다. 웬수야!!”
#작가의 말
*작중 남갈라전 지명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전부 조선 시대 지명으로 쓰겠습니다.
이유는 작가가 당시 지명을 조사하려 해도 알 수가 없고, 그나마 쓴다고 해도 위치 논란이 있는 것들이라.
거기다, 에선 고려 시대 파트에서 경성, 회령 등이 이미 당시 주요지명이라고 적혀 있긴 하더군요.
이러한 이유로 작중 갈라전 지명들은 왕식이 정했다고 설정했습니다.
**작중 이안사 사태는 고려 유금필, 송 조광윤, 조선 정문부 이야기들을 보고 적어봤습니다.
의병 명분 내기 정문부, 술 먹여 취할 때 인가받기 조광윤, 인가받은 거로 바로 해당 세력에 부하 보내 확인사살 받기 유금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