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97
497화
13장 고려 견송주청사(遣宋奏請使)
귓속으로 파고드는 남송 황제의 목소리만 들어도 무척이나 환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몽골 서정에 대동한 영녕공은 왕족이고, 과거 북송에 갔던 의천대사는 왕자이긴 하지만 출가를 한 입장이었으니 실질 타국에 조공을 하러 간 태자는 내가 고려 건국 이래 최초일 것이다.
뭐, 고려 건국 이전으로 따지면, 고구려 시절 아직 당나라와 대립노선을 걷기 전에 고구려 태자가 당나라에 입조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하기에는 여기가 바로 복마전(伏魔殿)이오, 어느 의미론 몽골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신(臣) 고려국 왕태자 왕검. 삼가 대송국 황제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당연하지만 인사부터 시작해서 모든 말들이 역관을 통해 대화한다. 내가 고려말을 구사하면, 상대 쪽 역관이 송나라 말로 풀어놓는 식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시나 대등국끼리 의견교환의 장이었다면 이쪽도, 이쪽이 준비한 역관이 곁에 서서 상대의 말을 통역해 주는 식이겠지만, 지금은 상국인 남송에게 제후국인 고려의 태자가 조공을 바치는 상황이다. 역관이 대동했으나 실시간 통역하지 않고, 송나라 측의 역관만이 대답할 뿐이다.
다만, 이번에 온 것은 나만이 아니다.
“그래. 그리고 그대들 뒤에 있는 저들이 이번에 새로 조공하러 온 탐라인들이라고 하였나?”
곧이어 황제의 말이 통역되어 전해지자 함께 온 탐라국의 사신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한다. 여기서 남송 입장에선 문제가 터졌다.
“…어?”
내 말은 술술 통역하던 남송의 역관이 탐라국의 사람이 입을 열자 순간 잘못 들었다는 듯 반응하더니 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어버버 거리며 말문이 막힌 것이다.
술술 말해야 할 역관이 갑자기 통역을 멈추니 당연히 장내 이목이 그 역관에게 집중되었는데, 역관은 그 시선 속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니 이내 용서를 빌며 사실대로 토해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들의 말이 고려 말과 달라 신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사옵니다. 아무래도 고려와 탐라는 말이 다른 듯하오니, 신의 능력으론 탐라인들의 말을 통역할 수가 없나이다.”
“뭐라?”
현대에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외국에 나가 현지인들과 소통까지 가능한 사람도 그 나라의 방언으로 대화하면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이해를 못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만큼 표준어와 사투리(방언)은 모르는 이들이 보면 별세계의 언어고, 간혹 자국인들이 들어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들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선 단연 제주도 방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보다 교통과 교류가 떨어지는 이 시대의 제주도(탐라)의 언어는 오죽하겠는가? 나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너무 달라서 알아듣는데 고생했다.
이번에 나와 함께 온 탐라국의 신하들이 말하는 것은 전부 탐라 사투리. 아니 당대 탐라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었으니, 제아무리 황실에서 준비한 역관이라고 할지라도 막히는 것은 무리는 아니다.
“허어. 고려와 언어가 다르단 말인가.”
애당초 탐라는 수백 년 동안 신라와 고려의 번국으로 있었다. 독자적으로 중국에 조공을 바친 적이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근 1, 2백여 년 동안에는 없고, 저들도 탐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덕분에 남송에서 탐라어를 전문적으로 익힌 이들이 없어도 이상할 것 없고, 오히려 있다면 그것이 놀라울 것이다. 그런고로….
“어쩔 수 없구나. 탐라인의 말은 고려의 역관을 통해 말하도록 하라.”
결국, 이쪽에서 준비한 역관이 탐라어를 고려어로 통역하여 남송의 역관이 통역하여 전달해주었다.
“소인 탐라국의 세자(世子). 고여림(髙汝霖)이 대송황제 폐하께 인사 올리옵니다.”
탐라의 조공이 허락된 것은 탐라 세자가 직접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유구의 순바준희의 아들이 직접 조공을 바치러 왔을 때 고려에서 반응한 것처럼, 아무리 들어본 적 없는 소국이라고 하더라도 일국의 후계자가 직접 와서 바친다면 어지간하면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는 것이다.
“그래. 너의 나라가 갑자기 조공을 바친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나라는 이번에 역적 양원이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참수되어 다시 개혁을 시작하였나이다. 이를 바다 건너 대국을 다스리는 대송 황제께 보고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것은 좋은 답이 아니다. 너희 나라가 비록 작으나 군신 간의 의리는 알 텐데 어째서 고려를 두고, 본조에 조공하려 하느냐? 만일 거짓을 꾸며서 짐을 속이려 든다면, 마땅히 그 죄를 징계할 것이다.”
황제의 대답에 술렁이는 것은 탐라인이나 고려인들보다 남송인들이 크게 술렁였는데, 지금 황제의 말은 나를 비롯한 고려인들이 있는 장소에서 ‘너희 주인은 고려인 거 아는데, 왜 여기 온 거냐? 고려가 아니라 우리를 따르기 위해 온 거냐?’라고 직접적으로 물은 것이다.
이것은 탐라의 소유를 고려로 인정하는 한편, 이제 고려랑 남송이랑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고 물은 격이라, 이쪽은 이쪽대로, 남송은 남송대로 노골적인 황제의 언동에 당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적이고 민감한 질문에 탐라국의 정사 고여림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
* * *
지금 남송에서 고려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원래라면 평생 올 생각이 없던 남송행을 내가 참가한 것이고, 그럼에도 오는 동안 의심의 시선이 사라지지 않았다.
뒤에서는 나를 두고 ‘고려 장의(張儀)’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장의는 전국시대에 진나라를 중심으로 연합하는 연횡책을 주장하던 진의 재상인데, 가증스럽게 6국을 돌아다니며 소진이 진나라와 맞서 싸우기 위해 구상한 합종책을 무너뜨려 결국 6국이 진나라에게 정벌당하도록 모략을 벌였다.
즉, 내가 남송과 손을 잡는 것은 몽고에게 남송을 팔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나를 비롯한 고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호칭이다.
그리고, 그런 멸칭을 들으면서 남송의 황궁에 당도한 나는 지금….
“따라드리겠사옵니다.”
“음.”
“명성이 자자하신 전하를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옵니다. 소인은….”
고려 국신사(덤으로 탐라사신단도)를 환영하는 연회에 출석하여 고려에서조차 받을지 의심스러운 환대를 받고 있다. 덧붙여 이 자리에서 나는 남송 황제와 가까이 앉아 있는데, 이건 남송에서 의전 서열로 남송 황제 내외 다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패자로 책봉되면서 의전서열상 남송 태자보다 높아지며 나도 덩달아 남송 태자 바로 다음으로 잡혔는데, 현재 남송 황제에게 태자가 없어서 결과적으로 내가 황제 부부 다음이 된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나의 기분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 그 자체다.
주청사인 만큼 이쪽에서 부탁할 게 있다는 것은 저들도 알고 있는데,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멀리서 온 고려 태자와 일행을 위한 연회를 준비했으니 즐겨보자며 반강제로 접대를 받고 있는데 생각해 봐라.
칼부터 꺼내는 몽골도 분명 위험하지만 여기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은 100만 냥을 준 시점에서 남송의 아량은 이미 한계의 조짐은 보여줬다. 연호의 폐지든, 승전이든 뭐든 그것들과 별개로 의심이 남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이쪽(고려)과 여기(남송)의 관계다.
그런 의심으로 대리국과의 연합을 주선하니 뭐니 하는 것으로 기폭을 미루거나 의심 이상의 신뢰를 준 것이지. 결국 의심 자체는 남고, 언제 북벌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상황임은 틀림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쪽 준비가 덜 되고 서정 간 몽골군이 돌아오면 남송으로 불안하다고 몽골까지 가서 아리크부카의 문제를 해결한 나다.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호구가 따로 없다.
그리고 그런 호구도 아닌 놈을 호구로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한없이 사기에 가까운 도박을 하기 위해 내가 왔다.
‘성공해도 시간벌기밖에 안 되고, 실패하면 포로로 잡히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죽으려나?’
적어도 지금부터 할 짓을 수년 전의 내가 들었다면 ‘제정신이냐?’고 할 만한 행동인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남송에서는 무사히 성공하더라도 후일 이쪽이 곤란해질 가능성이 큰 행동이다.
‘이후 이래저래 대전 없이 화평으로 끝난다는 건 기대를 하지 말자.’
처음부터 여몽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대비하고 있던 것은 맞지만, 지금 이상으로 가능성이 더 커졌다.
내가 아는 구유크라면 절대 이걸 내버려 둘 놈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서정이 끝나고 돌아온 뒤 여유가 되면 반드시 진심으로 고려를 치려 들겠지.
‘그래도 이거 말고는 지금 상황에서 남송을 설득할 요소가 없어. 까짓것 진짜 한배를 탔다고 생각하자. …젠장.’
그렇게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가시방석 같은 연회가 언제 끝나고 본론으로 들어갈 것인가 추측하고 있는데, 갑자기 황제가 일어나 애절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아, 애통하고 애통하다. 짐이 기억하건대, 10여 년 전 양국의 관계가 100여 년 만에 회복하니, 궐 밖의 백성들은 양국이 한 가족이 된 것처럼 고려의 승전을 본조가 크게 기뻐하고, 본조의 걱정을 고려 백성들이 크게 걱정하였도다. 이러한 양국의 백성이 서로를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천하가 불과 어제의 일과 같아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짐이 제위(帝位)에 오른 지 언 20년이 다 돼가지만 유독 고려에 보내는 조서만을 자주 친히 적는 것은 그저 번방이라서만이 아니다. 천하에 오직 고려만이 부지런하고 충정(忠貞)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천하를 위하여, 안으로는 지극한 정성으로 힘을 다해 짐에 올바르게 돕고 밖으로는 두루 이적과 힘껏 맞서 싸워 시국의 어려움을 크게 구제하였기 때문이다.
아, 오늘 양국이 보존한 것이 과연 누구만의 힘이었겠는가? 참으로 양국은 군신의 성의(聖意)를 저버리지 않은 소치(所致)이고, 이에 백성들도 기뻐하였는데 이제는 궐 밖에서 소리가 없구나. 이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데 노(楫)를 잃은 듯하니 아, 애통하도다. 애통해.”
황제의 말에 남송의 궁녀들과 환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애통함에 동조하듯 눈물을 훔치고, 남송의 신하들은 그런 황제의 말에 당황하다가 이내 나와 일행들을 질책하듯이 일제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황제의 행동에 나도 당황했다.
‘모두가 보는 이곳에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거냐?’
참고로 언뜻 보면 지금 우리를 조리 돌림 하려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일방적으로 이쪽만 질책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 황제는 황제 생활만 몇십 년이요. 이쪽과 밀거래를 한 것만 하더라도 10년이 다 돼간다. 이쪽의 사정이나 심리를 어림으로나마 이해했을 황제고, 나도 어림으로나마 황제의 행동을 파악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안다.
남송 황제는 소문만으로 일방적으로 단교하거나 탓하는 작자가 아니다. 아닐 경우의 뒷감당을 떠올릴 경우 올인은 못하는 작자다.
지금 황제의 말도 언뜻 들으면 배신한 고려를 질책하는 것 같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고려를 의심하는 신하들과 백성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니 나는 이 부분을 잡고 설명하면 된다.
‘오냐. 이쪽이 주는 떡이나 잘 받아드시오. 요순황제 나리!’
#작가의 말
*주인공이 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힌트: 4부에서 얻은 것과 관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