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25
525화
26장 영몽 연합군(2)
그 후 몽골군이 파리마저 점령하자 영국의 왕제 리처드도 당도하여 루이 9세가 아직 살아서 도주하고 프랑스와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아서 공사다망한 왕 대신 동생인 자신이 왔다고 변명하고 고개를 숙인 것이 일련의 상황이었다.
“…….”
리처드는 한쪽 무릎만 꿇고 인사하였는데, 그 모습도 그렇고, 왕 보고 직접 오라고 했는데 그조차 오지 않은 사태에 몽골은 불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국왕의 체면을 위해 아들이나 동생, 혹은 다른 왕족을 보내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고, (특히 고려한테) 질리게 당해본 몽골도 이 정도는 예상한 범주기도 했다. 덕분에 야율초재는 이런 경우의 대책도 준비한 상태였다.
“대칸께서 하교하시니, 기존에 내리신 명은 양군이 만날 때 영길리가 말한 영토의 주인이 친조하면 그에게 영길리의 옛 강역을 봉토로 하사한다고 하셨다. 한데, 지금 여기에 영길리왕 왕제(王弟) 리처도(利處道)가 왔으니, 그가 당대 주인이라 할 수 있다. 하니, 앙주왕(秧州王)으로 책봉하니, 그대는 왕인(王印)과 관복을 절을 올리고 받도록 하라!”
“?!”
그리고 그 지시에 리처드는 황당과 당황을 동시에 느끼며 숙인 고개를 다시 들어야 했다.
* * *
아무리 상황이 상황인지라 수락한 헨리 3세였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야만인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말에 기분 좋게 숙일 리 없었고, 실제로 그걸 피하기 위해 본인 대신 동생인 콘월의 백작 리처드를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여 공까지 세운 리처드가 형과 다르게 이교도 야만인 따위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상자일 리 없었고, 리처드는 형이자 국왕의 지시를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헨리도 동생이 그냥 대신 가라고 한다면 거절할 것을 예상했기에 마음을 돌릴 만한 것도 이미 준비한 상태였다.
“네가 간다면, 영지를 주마. 이 일을 해서 주는 것이니 귀족들도 군말하지 못할 것이다.”
“으음. 그렇다면야.”
몽골을 끌어들여 탈환하게 되는 영토 일부를 리처드에게 주겠다는 헨리의 제안은 리처드도 퍽이나 끌렸고, 결국 그 제안을 받아 엄청난 굴욕을 감내하면서 타타르에게 고개를 숙이러 간 것이다.
그러면서도 처음만 하더라도 굳이 야만족의 힘을 빌려야 하는지, 그리고 왕은 어째서 저런 야만족에게 그렇게나 겁을 먹는지 의문이 들고 마음에도 들지 않았던 리처드였으나, 가던 도중 상파뉴에서 프랑스군이 대패하고 파리마저 함락되어 불바다로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생각을 고쳤다.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이끄는 군대가 대패하고 파리마저 불바다가 되었다고?! 훈족의 재래라고는 들었지만, 이제 프랑스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말도 더 이상 헛소리라고 못 하겠구나.’
그렇게 몽골의 힘을 인식하며 불가침의 필요성을 인식한 리처드였으나, 그 상황에 이르러서도 한 가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몽골인들에게 강요받은, 그 카르피니 사절단들도 경험했다는 무릎을 꿇으라는 굴종의 행위였다.
아무리 고개를 숙이기 위해 왔다고 하더라도 노예나 할 법한 그 행위만큼은 리처드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몽골인들을 만난 후 무척이나 애원하듯이, 그러면서도 최저한의 품격은 유지하기 위해 요청하였다.
“미안하지만 한쪽 무릎만을 꿇겠소. 이것이 이곳에서 왕에게 하는 경의를 표하는 최고의 방식이오. 그대들은 외국인인 우리가 그대들의 왕에게 경의를 표하러 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오?
예로부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란 말이 있듯이, 오늘 양국이 정식으로 대면하는 것인 만큼, 귀국의 왕이 존귀한 신분인 것은 이곳의 사람이, 이곳의 방식으로 먼저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소?”
각고의 협상과 애원 끝에 겨우 이번 한 번만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도 숙이는 방식으로 타협에 성공했다.
비록, 타타르인들은 언짢아하는 기색을 드러냈지만, 리처드 또한 내색하지 않을 뿐, 이교도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실이 불만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번 한 번뿐이라고는 했지만 이쪽도 다시는 올 생각이 없다. 이 야만적인 놈들아. 이민족의 왕에게 한쪽 무릎을 굽혀주는 것도 이번뿐이니 영광으로 알 것이지.’
그렇게 적당히 추켜세우고 어서 돌아가 영지를 받고 싶은 마음에 가득 차 있던 리처드였으나, 이 타타르인들이 미친 것인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리처드의 감상은 단순하고도 직설적이었다.
‘이… 미친….’
* * *
헨리 3세도, 그리고 리처드도 왕이 직접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은 것을 두고, 몽골이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는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 대신 온 자에게 영토의 소유주로 줄 것이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사태였다.
‘타타르인들이 내가 대신 온다는 이야기를 알았을 리 없다. 설마 왕족이 아니라 다른 귀족이 왔어도 준다고 하진 않았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타타르인들의 행동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라고 확답할 수 있냐고 한다면 그건 또 못한다는 무서운 사실에 리처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뇌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국왕인 형에게 보내달라거나 일단 돌아가서 대답을 들어봐야겠다는 말도 해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마치 셀레우코스 제국의 군주 ‘안티오코스 4세’가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을 치다가 고대 로마 대사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에게 받은 최후통첩과 같이 이 자리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강압적인 지시를 받는 상황과 같았다.
아직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대등한 국가의 사신이 아닌 신하처럼 취급하는 이 행위에 리처드는 굴욕을 느끼면서도 무척이나 곤란함을 느꼈다.
터무니없이 굴욕적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그들이 내건 것은 필요 없다고 단칼에 거절하기 힘든 선물인 것이다.
필요 없다고 말하면 저 타타르족들은 정말로 돌려주지 않을 것이 뻔했고, 호의를 무시하는 자신을 이곳에서 곱게 놓아줄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렇다고 눈 딱 감고 받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형이나 세간의 인식이 신경 쓰였다. 영국이 교황청도, 로마의 황제도 아닌 타타르 왕에게 작위와 봉토를 받는 것은, 앞서 헨리 3세가 생각한 선물 주니 받는다는 개념과 다르다.
특히 전 세계(유럽)이 프랑스에 기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프랑스가 패하자 영국이 ‘타타르의 개’로 변했다고 인식하기 충분한 사건이고, 그중에서도 자신이 그 타타르의 첫 번째 영국 품종 개라는 오명을 받게 될 위기인 것이다.
‘…괜히 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안 오는 건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죽을 곳에 왔단 말인가? 이건 모두 앙주 시절의 땅을 나눠주겠다는 형의….’
거기서 리처드는 잠시 사고가 멈췄다. 그랬다.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과 영국왕이 자신을 보낸 이유. 그리고 현재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서 리처드는 가장 실리를 얻고, 잘하면 후일 체면도 지킬 방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굴욕적인 선택이었다.
“오늘 내가 왕이 되는 것이 신께서 내린 운명이라면, 신의 자식이자 종인 내가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귀국의 왕, 아니, 황제(Imperator)께서 내린 작위를 받겠습니다.”
리처드는 그렇게 말한 뒤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다시 고개를 숙였으나, 이번에는 몽골인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야율초재가 먼저 그것을 지적했다.
“그대는 지금 부로 대칸의 제후가 되는바, 그에 걸맞은 예법으로 행하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한 리처드는 속으로 눈을 질끈 감은 채 그토록 굴욕적이라고 여겨 피하고자 한 노예의 행위(절)를 결국 해야 했다.
* * *
상파뉴 전투로 프랑스군이 대패하자 타타르인들이 파리를 점령하고 그 옛날 훈족이 그랬던 것처럼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겁탈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유럽 전역에 퍼졌고 리처드도 그렇게 들었으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저, 정말로 우린 주, 죽이지 않는 겁니까?”
“오냐. 세금을 제대로 내고 반항하지만 않는다면 그대로 여태까지처럼 이곳에서 살아도 좋다.”
“그, 그렇지만 옆 마을에서 살던 이들은 끌려갔다고 들었는데….”
“옆집이나 옆 마을? 어디 보자. 아, 거긴 이사 갔군. 괜찮다. 조만간 다른 이웃이 올 것이니 그들과 지내도록 하라.”
파리가 점령당하고, 약탈당한 것도 사실이나 파리가 불바다는 되지는 않았다. 불바다가 되기는커녕 성은 몽골이 알차게 이용하고 있었고, 그곳에 살던 프랑스인들도 상당수 살아 있다.
물론, 파리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구 신성로마제국령이나 루스령 혹은 동방으로 강제로 끌려간 이들도 적잖아 있었지만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 아닌가?
“어무니. 우, 우리 여, 여기서 사는 거야?”
“그, 런가 보구나.”
그리고 몽골은 그들을 이주시키며 비게 된 자리에 한족이나 여진인 등 동방에서 끌고 온 정복민들, 혹은 근래 화살받이로 전열에 배치되는 정복지 출신의 병사들의 가족들로 채운 것이다.
“나, 나는 이번에 3명이나 잡았고, 전열에 있었소. 정말 주는 것이 맞겠지요?”
“오냐.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네 땅이다. 그 안에 있는 인간들도 너의 것이니 마음대로 해라.”
“조, 좋아. 타타르고 뭐고 간에 이걸로 나도 기사다!”
“네? 우리가 노예란 말입니까?”
“이제껏 영주들에게 준 것을 저자에게 주면 된다는 말이다.”
그중에는 구 신성로마제국의 사람들이나 주군을 잃고 방랑하던 기사들 중 몽골에 붙어 공을 세워 상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보통 기존 프랑스인들이 살던 땅을 받았는데, 거기에 살던 프랑스인들도 덩달아 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유럽에 퍼진 거짓 소문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는데, 헛소문이 이미 많이 퍼졌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현재 유럽의 관심이 타타르에게 점령당한 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서양 최초의 동양식 왕작과 함께 세워진 앙주국(秧州國 Angevin kingdom)의 건국을 두고, 유럽 전역은 경악과 함께 분노를 참지 못했다.
“저 섬 촌놈이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유다! 저놈들이야말로 당대의 유다다!”
“앙주, 앙주의 영토를 그렇게나 바랐던 것이냐? 그래서 그 은화를 위해 또 배신한 것이냐! 유다여!”
겉으로 보기에 영국의 왕제 리처드의 행동은, 영국이 프랑스가 패하자 배신한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행보였고, 실제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파리가 불바다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과 달리 영국이 몽골에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럽 전부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적어도 바라던 대로 앙주 제국의 영토를 인정받고, 몽골과 전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달성한 헨리 3세였지만 그도 마냥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적어도 현 상황은 그가 처음 구상하고 바라던 구도와는 매우 달랐다.
그가 구상한 구도대로라면 몽골에게 앙주의 옛 영토를 얻는 과정과 행태는 고려가 금나라에게서 보주를 받은 것처럼 다소 굽히긴 해도, 크게 자존심을 잃지 않고 위험도 피하는 실리적이고 안전하게 얻는 것이었지.
지금처럼 석경당이 거란에 연운 16주를 팔고 굴종의 관계가 된 것과 맞먹는 처지가 된 영국의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몽골은 자신이 아닌 동생인 리처드를 앙주 영토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리처드와 같은 처지를 받았다면 곤란함을 느꼈겠지만, 직접 가서 받은 것도 아닌 이상 왕인과 옷 같은 것들은 바로 창고에 처박아 두며 대외적으론 쉬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 받은 것은 리처드였고, 리처드는 형인 헨리가 아닌 자신에게 준다는 것을 이해한 채 받았다.
헨리 3세 입장에선 위그 남작의 난을 지원하는 것부터 어렵사리 몽골과 만나 장소를 만드는 등 고생한 것은 자신인데, 결과물은 동생이 홀라당 먹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생기는 욕은 또, 자신이 가장 먹고 있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처드가 자발적으로 요청했을 리는 없다. 분명 타타르 놈들이 나와 동생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지금 프랑스 내에 있는 병력은 전부 아키텐에 밀집되어 있다. 병력도 없는 리처드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누가 리처드를 앙주의 왕이라고 인정한단 말인가? 지금은 리처드를 믿자. 어쨌든 구 영토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렇게 분을 삭이던 헨리 3세였으나 얼마 뒤, 타타르가 리처드에게 군대를 주어 영국의 옛 영토였던 노르망디를 치기 위해 진격시키니 영국도 군대를 보내 협력하라는 통지를 받자 헨리 4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귀족들을 소집해야 했다.
#작가의 말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들이 세운 디아도코이 왕조 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제국은 고대 중동 최강의 나라로,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 시절 최고 전성기를 이룩하지만, 하필 동시기에 포에니 전쟁으로 전투 경험과 기술이 만렙인 로마와 붙었다가 대판 깨집니다.
그리고 이 패배를 기점으로 몰락하게 되는데, 셀레우코스 제국에서도 회생을 하려고 오만 짓을 다합니다. 그중 하나가 만만한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같은 디아도코이 왕조 중 하나)을 당대 군주인 안티오코스 4세가 친정을 하며 정복전쟁을 벌이는데, 크게 우세를 점하며 중흥의 빛이 비추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어서 로마에서 대사가 찾아와 전쟁을 중단하고 회군을 하던가, 아니면 우리와 전쟁을 하자고 경고를 합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다 이긴 전쟁을, 그것도 왕인 자신이 친정한 전쟁을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자니 아쉽고 자존심도 상해서 회의할 시간을 달라는데, 이때 로마 대사의 행동이 걸작입니다.
시간을 달라는 안티오코스 4세 일행들 주변 지면에 나뭇가지로 원을 긋더니 ‘이 선 안에서 생각하고 결정해라.’라는 이게 일국 군주한테 가능한 말인가 싶은 발언을 합니다. 당연히 셀레우코스 제국 일행들은 수치와 분노를 느꼈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못 이긴 로마와 싸울 수 없어 돌아간다고 하며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