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56
교랑의경 256화
범강림이 재빨리 곁에 두고 있던 활을 집어 들고 일어서자, 다른 형제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부대의 앞뒤에서 정찰과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소식을 전했다.
“괜찮습니다. 우리 사람입니다.”
전령병이 뛰어다니면서 외치자, 자리에 서서 경계하고 있던 병사들이 중앙의 막사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군관 몇 명이 이미 막사 밖으로 나와 있었다.
별로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경성에서 그리 떨어져 있는 곳도 아니고, 관로로 행군하고 있던 데다 깃발만 보아도 조정의 군대임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이런 관로에서 누군가가 소란을 피운다면 경성에 있는 수많은 관리가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던 군관이 전령병의 문서를 쓱 훑어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옆에 있던 다른 군관에게 건넸다. 전령병의 문서를 죽 돌려 본 군관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황당한 노릇이군.”
군관 중 한 명이 불만스러운 듯 투덜대고는 소매를 휙 내치며 자리를 떴다. 문서를 본 다른 무관들도 고개를 가로젓거나 말없이 각자의 막사로 돌아갔다. 팽팽했던 긴장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지자, 일어섰던 병사들도 경계를 풀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누구래?”
“여기 와서 뭘 한다는 거지?”
다들 경성을 떠나온 방향을 내다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렸다. 야외의 밤은 경성의 밤보다 훨씬 어두워서, 아무리 목을 빼고 쳐다보아도 새까만 하늘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듣자니 배웅하러 온 거라던데?”
이 말을 듣자마자, 서무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한쪽 옆에서 새 소식을 공유하던 병졸들에게 물었다.
“누굴 배웅한단 말이오?”
“이 야밤에 쫓아오는 것도 모자라서 관청의 전령병을 길잡이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보통내기는 아닐 거요. 그러니 댁이나 나 같은 사람을 배웅하러 온 건 당연히 아니겠지.”
대답하던 병졸은 군관들의 막사를 향해 눈짓하고는 입을 삐죽였다.
“이번 행군에 젊은이들이 많잖소. 다 관가의 자식들이니, 집안에서 얼마나 응석받이로 키웠겠어? 가족들이 아쉬워서 그냥은 못 보내겠지.”
그런 말을 나누는 사이, 새까맣던 하늘 아래에 횃불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배웅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은가 보네. 영지에 있던 병졸들은 다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일어서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내다보았다.
멀리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영지 가까이 다가오자, 바람에 일렁이는 횃불이 말을 타고 오던 열댓 명의 사람과 마차 한 대를 비췄다. 열댓 명의 호위 뒤로는 사람이 타지 않은 말도 몇 필 보였다.
“어느 가문이길래 호위한테도 말을 두 필이나 붙여주는 게야?”
병졸들은 놀란 얼굴로 감탄했다.
장거리 이동에서 제일 크게 상하는 게 말이었다. 이동에 가장 좋은 방법은 말 두세 마리를 번갈아 가면서 타고 가는 것인데, 말이 귀한 중원 지역에서는 이런 사치스러운 일이 극히 드물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서북 군영이라고 해도,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말 두세 마리를 동시에 배정받을 수 있는 자격은 오직 능력이 뛰어난 척후병에게만 주어졌다.
미리 전령병이 소식을 전한 덕에, 행렬은 병사들의 제지를 받지 않고 영지 밖에 말을 세웠다. 마차의 휘장이 들리더니, 여인 한 명이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 영지에 있던 병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거 보시오. 내가 뭐랬소? 어느 집 여인이 가족을 배웅하러 오는 거라니까.”
병졸 하나가 서무수에게 으스대며 말했지만, 서무수는 대꾸 없이 놀란 눈으로 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병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무수 옆에 있던 형제들을 쳐다보자, 형제들도 눈알이 떨어질 모양새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게 보였다.
놀랄 게 뭐 있다고 저러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내들이네!
병졸이 서무수 일행을 비웃으려는 찰나, 서무수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배웅 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자네를 찾으러 온 것도 아닐 텐데, 괜히 가까이 구경 가서 얻어맞지 말게나!”
병졸이 서무수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봉추가 외마디 함성을 지르고는 서무수와 같은 방향으로 뛰어갔다. 이어서 다른 형제들도 서봉추의 뒤를 따랐다.
떠들던 병졸은 깜짝 놀랐고, 다른 사람들도 서무수 일행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배웅을 나온 사람들의 호위가 서무수 일행을 때리거나 제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선 놀랐고, 서무수 일행이 마차 앞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내렸던 여인이 그들을 향해 예를 올렸다는 점에서 두 번 놀랐다.
예를 올리다니! 구경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설마, 저 비렁뱅이 병졸들을 배웅 온 건 아니겠지?”
방금 전의 병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반근이 휘장을 들어 올리자, 마차 안에 앉아 있던 정교랑이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누이,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생겼어?”
일곱 형제는 걱정스럽고 다급한 마음에 중구난방으로 물었다.
“배웅 왔죠.”
정교랑이 가볍게 대답하자, 일곱 형제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정말로 세 번째 선물이 있는 거야?”
서봉추가 소리쳤다.
“당연하죠.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나요?”
정교랑이 손으로 한쪽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예요.”
정교랑이 가리키는 곳에는 말 일곱 필이 콧김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말을 선물하러 왔던 거구나.
“콧등이 하얀 건 내 거야!”
서봉추가 제일 먼저 외치면서 말을 향해 뛰어갔다. 다른 형제들도 웃으며 서봉추의 뒤를 따라갔다.
“정말 이럴 필요 없어. 급히 행군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기마병도 아니니, 서북에 도착하면 써먹지도 못해. 왜 이 야밤에 달려온 거야? 혼자 왔어?”
서무수가 미간을 찌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이 호위들, 주씨 가문 사람들이었나?
서무수의 시선을 느꼈는지, 커다란 두봉을 걸친 사람이 말에서 내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낭자와 함께 왔습니다.”
말에서 내린 사람이 두모를 걷자, 횃불 아래로 소년의 준수한 용모가 드러났다.
수하 한 명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공자님, 공자님!”
이 막사는 네 명이 묵는 곳이지만, 다른 세 명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러 갔기에 지금은 주육낭 혼자만 막사에 남아 있었다.
“웬 호들갑이야!”
횃불 아래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주육낭이 호통을 쳤다.
“공자님, 공자님. 정 낭자께서 오셨어요!”
수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주육낭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
“정 낭자요. 정 낭자께서 배웅하러 오셨어요!”
수하가 연이어 외쳤다.
배웅을? 배웅을 왔다니!
주육낭은 온몸에 가시가 돋아 바닥에서 한껏 뒹굴어야 직성이 풀릴 듯한 심정이었다.
이게,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주육낭은 시뻘게진 얼굴로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하가 주육낭의 등에 대고 한마디 더 외쳤다.
“아, 진 공자님도 오셨어요.”
눈빛을 반짝이며 막사를 뛰쳐나온 주육낭은 저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여럿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횃불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지만, 주육낭은 커다란 두봉으로 몸을 싸맨 채 마차 옆에 서 있는 정교랑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어서 두모를 벗어 손에 쥐고 누군가와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듯한 진십삼의 모습도 주육낭의 눈에 들어왔다.
저 인간들이!
“정말로 저들을 배웅하러 온 거래?”
“뭘 선물로 줬다고? 말 일곱 필?”
“얼마나 좋은 말이길래 이 밤중에 쫓아왔대?”
막사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가는데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육낭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나 싶더니 결국 멈추어 섰다.
“듣기로는 누이랑 매부가 배웅 온 거라던데?”
누이랑 매부는 무슨! 주육낭이 고개를 홱 돌려 떠들던 병졸들을 노려보다가 병졸들과 눈이 마주쳤다.
이리 구경하는 게 규율에 어긋나긴 하지. 그래서 저 어린 군관이 언짢은가 보네. 더 있다간 눈에서 불이 나오겠어.
병졸들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주육낭은 그 자리에 서서 정교랑이 있는 곳을 내다보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무언가가 잡히는 느낌이 들어 손을 내려다보니, 조금 전 막사 안에서 읽고 있던 책이 여전히 손에 쥐어진 채였다.
“누이, 인제 그만 돌아가.”
말하고 보니 밤길에 돌아가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서무수가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아니면 마차에서 하룻밤만 쉬고 가는 건 어때? 괜히 밤길 서두르지 말고.”
범강림도 형제들에게 지시했다.
“모닥불 피워.”
정교랑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말을 선물하러 온 거예요. 이제 돌아가야죠.”
“앞으로는 이렇게 무모하게 굴지 마. 누이가 이렇게까지 해 주면, 우리가 뭐가 돼.”
서무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정교랑에게 말했다. 정교랑이 몸을 낮춰 사과했다.
“원래는 더 일찍 주려고 했는데, 계속 완성이 안 돼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오라버니들한테 걱정을 끼쳤네요.”
옆에 있던 진십삼이 미소를 짓고는 서무수에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내가 있잖습니까. 정 낭자가 그리 경솔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성격도 아니고요.”
서무수와 범강림이 진십삼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의 뜻을 보였다.
“그럼 공자님,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영광이지요.”
진십삼이 서무수와 범강림에게 가볍게 답례했다.
쳇, 정말 누이와 매부 같잖아. 주육낭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으스러트릴 기세로 꽉 쥐었다.
누이와 매부라고 해도, 정작 피 섞인 오라버니는 여기 있는데!
“넷째 오라버니.”
정교랑이 갑자기 서사근을 부르자, 서사근이 서둘러 정교랑 가까이로 다가왔다.
“사실 이 세 번째 선물은 오라버니를 위한 거예요.”
정교랑의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서사근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 둘 바를 몰랐다.
“나 말이야?”
서사근이 물었다.
“넷째 오라버니, 이 말들을 잘 돌봐 줘요. 시간이 지나면, 이 말들의 능력이 눈에 보일 거예요.”
정교랑이 말했다.
말? 능력? 서사근은 정교랑이 데려온 일곱 필의 말을 쳐다보았다. 좀 전에도 말들을 훑어봤지만 사실 그다지 좋은 말이라 할 순 없었다. 적어도 누이가 야밤에 쫓아와 선물할 정도로 특출나게 좋은 말은 아니었다.
물론 가격으로 따졌을 땐 값지다고 할 만한 선물이 아니었지만, 누이의 성의가 듬뿍 담겨 있는 선물인 건 분명했다.
그런데 이 말들에 다른 능력이 있다고?
“그게 뭔데?”
서사근이 물었다.
“말들을 얼마나 잘 돌보느냐가 관건이에요. 넷째 오라버니가 가는 길에 잘 보살펴 준다면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말은, 필요 없어요. 설명할 수도 없고요.”
정교랑이 싱긋 웃고는 서무수 형제에게 예를 올리며 작별을 고했다.
“군영이라 여인이 있기 불편하니, 이 누이는 이만 갈게요.”
“시간이 너무 늦었어. 가지 마.”
서무수 형제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재차 만류했다.
“걱정 마십시오. 호위도 많이 데려왔고, 경성으로 가는 관로이니 별일 없을 겁니다.”
진십삼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진 공자께 잘 부탁드립니다.”
서무수 형제들이 진십삼에게 예를 표했다.
이쪽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 머리를 돌리는 것을 본 주육낭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저 두 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