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11
교랑의경 511화
황제가 정 낭자를 부르려 하자 진소가 반박하며 질책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폐하께서 또 정 낭자를 부르셨다고? 무슨 일로?”
고능준의 물음에 수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시가 말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진소 역시 묻기도 전에 대뜸 호통부터 쳤고요.”
고능준이 손을 휘휘 내젓자 수하가 물러가고, 측근이 앞으로 다가섰다.
“궁에 가서 물어봐라.”
측근이 알았다고 대답한 후 나갔다.
황궁 안에 있던 귀비는 질문을 받고서야 그 일을 안 듯 고능준보다 훨씬 격하게 반응했다.
“또 무슨 일로? 안비 하나가 회임한 것으로도 부족하단 말이냐?”
“마마, 말씀을 가려서 하십시오.”
옆에 있던 내시가 놀라 얼른 쉿 하는 동작을 했지만, 귀비는 손에 들고 있던 손난로를 내던지고 홱 돌아섰다. 내시와 궁녀가 조심스레 주웠다.
“그까짓 회임이 뭐? 품계를 올려 주고 친정 가문에 작위를 내린 것도 모자라 산해진미로 시중을 들고 가희에 무희까지 보내 기분을 달래 줘? 누구는 애 안 낳아 봤나!”
귀비는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무슨 귀한 집안 출신도 아니고. 큰 나무통이나 만드는 집안 출신이!”
내시가 하는 수 없이 웃으며 비위를 맞춰 주었다.
“마마, 폐하께서 어디 안비마마가 귀해 그러시겠습니까. 또 자식을 얻게 되셨으니 기쁘셔서 그렇죠.”
내시는 이미 사내의 몸이 아니었으나 이 세상 사내는 다 똑같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귀비는 콧방귀를 뀌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이러다간 폐하께서 신선께 도를 여쭈실지도 모르겠구나. 황궁의 체통이 어찌 되려고!”
거기까지 말한 귀비는 풍림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어린 계집 하나 상대하지 못하다니. 쫓겨나도 싸지!”
내시가 귀비를 타이르며 함께 웃어 주었다.
“마마, 이렇게 된 이상 긴말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일단 폐하께서 무슨 일로 정 낭자를 부르셨는지 먼저 알아보시지요.”
귀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폐하께선 어디 계시느냐?”
내시가 고개를 숙이고 가까이 다가와 아뢰었다.
“방금 태후궁에서 나와 안비의 궁으로 가셨습니다.”
귀비 손에 든 비단 손수건에 주름이 갔다.
“가자. 우리도 안비를 보러 가자꾸나.”
한숨을 내쉬고 난 귀비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한편 같은 시각 진안 군왕도 찻잔을 내려놓으며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아, 참.”
진안 군왕이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요즘에도 집안사람들이 혼사 얘기를 합니까?”
혼사? 갑자기 그건 왜?
반근이 고개를 들었고,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안 군왕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자신을 가리켰다.
“우리 집안사람들은 하거든요.”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경하드립니다, 전하.”
진안 군왕이 얼른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얘기를 꺼내긴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요.”
거기까지 말한 진안 군왕이 머리를 긁적였다.
“난 어릴 때 부모님 때문에 궁으로 보내져 늘 남이 결정하는 대로 살았어요. 나 스스로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죠.”
진안 군왕은 웃음을 거두고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내가 결정권을 쥐고 싶어요.”
정교랑이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과 혼인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질문을 던진 진안 군왕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시녀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듯한 정교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이 질문은 좀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네. 친구끼리는 이런 얘기 안 하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만나면······ 알겠죠.”
하긴, 만나 보면 알겠지. 무슨 이유가 그리 많이 필요할까.
정교랑은 찻잔을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나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아마 그렇겠죠.”
진안 군왕이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그 이상한 화제를 적당히 마무리 지었다.
“아무튼 이젠 내가 결정할 거라 거절했어요.”
“스스로 결정하겠다고요?”
정교랑이 불쑥 물었다. 진안 군왕은 문득 가슴이 뛰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요, 나 스스로 결정해야죠. 저들 마음대로 아무나 밀어 넣지 않도록.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요.
걱정? 이 여인이 걱정할 일이 뭐 있을까. 자기 일도 아닌데.
진안 군왕은 순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참, 나랑 내기 하나 해요.”
진안 군왕이 또 무언가 떠오른 눈치였다.
“나랑 내기를 하겠다고요?”
정교랑이 물었다.
“맞아요, 그러니까······.”
진안 군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보름날 월식이 있을지 없을지 내기해요.”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재차 물었다.
“나랑 그거로 내기를 하자고요?”
“네, 그거로 내기해요. 난 못 믿겠어요. 낭자가 그렇게 정확하다고는······.”
진안 군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축시 사각에 달이 서쪽에서 이지러지기 시작하여 10분의 5만큼 식(蝕)이 진행돼요. 육각에는 8할까지 먹히면서 달이 유지(酉地: 방위도상 서쪽)를 모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죠.”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도 내기할래요?”
진안 군왕이 웃음을 지었다.
이 여인이 이런 말투로 나한테 얘기하는 건 처음 봐. 그 내시의 말이 맞는 것 같네.
“할래요. 지는 사람이, 상대한테······ 1천 관을 주기로 하죠.”
반근은 진안 군왕의 말에 놀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내기? 1천 관? 그만한 액수는 돈으로 치지도 않는 분들께서.
반근이 두 사람을 쓱 훑어보았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고 나서 시치미 떼기 없습니다.”
진안 군왕이 씩 웃고는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대문을 나선 후에도 진안 군왕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고 되려 진해지기만 했다.
틀림없이 질 거야.
진안 군왕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났다.
“전하.”
다소 큰 소리가 나자 진안 군왕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마차의 휘장을 들어 올렸다. 내시 하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
“바로 입궐하시겠습니까?”
“입궐은 왜?”
진안 군왕의 물음에 내시가 멈칫했다.
“전하, 정 낭자가 전하께 월식에 관해 말하지 않았습니까.”
진안 군왕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다. 일단 입궐은 됐다. 그보다 먼저 볼 사람이 있어.”
이번엔 곽원이 먼저 도착했다. 이번에도 전과 같은 방이었지만, 산해진미는 차려져 있지 않았다.
곽원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노라니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두봉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곽원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내가 대신 물어봤느니라.”
기쁨이 묻어나는 경쾌한 목소리가 위에서부터 들려왔다. 말하고 있는 사람이 웃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저 대신 무엇을 물어보셨는데요?”
곽원이 어리둥절한 채로 물으며 고개를 들었다. 금실로 연꽃을 수놓은 병풍 앞에 서 있는, 준수한 소년의 모습에 눈이 부셨다.
“월식 말이다.”
진안 군왕이 미소를 지었다.
“네 계산이 맞았어. 보름날 축시 사각에 달이 서쪽에서 이지러지기 시작하여 10분의 5만큼 식이 진행된다. 육각에는 8할까지 먹히면서 달이 유지를 모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귀에 익은 전문용어가 들리자 곽원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축시 사각에 달이 서쪽에서 이지러지기 시작하여 10분의 5만큼 식이 진행된다. 육각에는 8할까지 먹히면서 달이 유지를 모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곽원은 진안 군왕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한 다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 이걸 계산해 냈단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그럼 월식이 눈으로 보고 예측하는 것이더냐?”
진안 군왕이 말했다.
계산했다니, 이렇게 정확하게 계산해 내다니.
곽원이 진안 군왕을 쳐다보며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전하를 뵈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전하.”
곽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진안 군왕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이제 내가 너에게 알려 주었으니, 넌 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거라.”
곽원은 다시 멈칫하며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요?”
“사천대의 학생이라 하지 않았느냐? 천문과 역법을 익히고 윗전을 대신해 하늘과 통하는 게 너희의 직무다. 천문 현상을 계산해 냈으니, 이제 가서 폐하께 아뢰고 대처하시게 해야지.”
곽원은 진안 군왕을 멍하니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망설였다.
“저는······.”
“하기 싫은 것이냐? 아니면 용기가 없는 것이냐?”
진안 군왕이 물었다.
하기 싫냐고? 용기가 없냐고?
“저는 재능이 일천하고 학식이 부족하여 아는 것이 없사온데······.”
곽원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건 상관없다. 너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있거든. 그 여인이 네가 추론한 것이라 말해도 된다고 허락했느니라.”
진안 군왕이 곽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대인들께서 동의하지 않으실 겁니다.”
곽원이 고개를 들었다.
“윗전에 아뢰는 것은 네가 해야 할 일이자 네가 하고 싶은 일이다. 저들이 동의할지 말지, 인정할지 말지는, 저들의 일이고.”
진안 군왕은 미소를 지으며 옷자락을 털고 허리를 숙여 곽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불안함과 억울함이 넘실대며 반짝이는 어린 학생의 눈이었다.
“도박을 걸어 보지 않겠느냐? 그저 학생 신분에 만족하고 싶은 것이냐? 그것도 그 보잘것없는 놈들 밑에서? 아니, 이번 일이 지나고 나며 아마 사천대에서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 가서 평생 일지나 쓰는 하급 관리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
곽원이 고개를 숙이고 표정을 바꾸었다.
“물론, 그래도 대수로울 건 없지만.”
진안 군왕이 웃으며 손뼉을 치고 일어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섰다.
“그래도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진안 군왕이 씩 웃었다.
“네가 말하는 걸 듣는 이는 너 자신뿐이겠지. 네가 쓴 글을 보는 이도 너 자신과 후대 사람들뿐일 테고.”
적막한 곳에서 조용히 내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무릎 위에 올려 둔 곽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앞에서 두봉 자락이 휘날리더니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번 도박을 걸어 볼까. 윗전에 아뢴 후 정말 월식이 일어나면, 단번에 명성을 얻을 텐데.
물론 월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황제가 문신을 죽이지 않는다고는 하나 사천대 관원은 신분이 특수하여 예외였다. 게다가 천문 현상의 변화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문신 신분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의 예도 없지는 않았다.
곽원은 오래도록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손님?”
점원의 부름에 곽원이 고개를 돌리고 점원을 쳐다보았다.
“뭐 필요하신 건 없으신지요?”
점원이 공손한 말투로 묻자 곽원은 멈칫했다.
“저기, 계산은 하고 가셨소?”
점원은 곽원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같이 차려 주시오.”
곽원이 자리에 똑바로 앉으며 말하자 점원이 얼른 대답하고 물러갔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죽더라도 일단 먹고 죽자!
곽원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해가 지고 또다시 해가 떠올랐다. 조회를 마친 중서성은 여느 때처럼 각 관청에서 올라온 상소문을 심사하느라 분주했다.
하급 관리 하나가 상소문을 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천대에서 모처럼 천문에 관한 글이 올라왔군. 또 역법이 틀렸다며 새로 정하자고 하려나?”
상소문을 펼치던 하급 관리의 목소리가 돌연 줄어들었다.
“15일에 월식이 있사오니, 바라옵건대 유사(有司)에 내리시어 대책을 마련하고 천계(天戒: 하늘의 경계)를 삼가 살피시옵소서.”
월식?
하급 관리가 벌떡 일어섰다.
월식이 있을 거라고?
월식은 흉조였다. 위에서부터 시작하면 군주가 도리를 잃고, 옆에서 시작하면 재상이 기운을 잃으며, 아래에서 시작하면 장수가 법을 어긴다고 했다.
“이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보통 큰일이 아닌데!”
하급 관리가 쉰 목소리로 외치고는 상소문을 들고 뒤돌아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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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본문 내용 중 정교랑이 예측한 월식에 관한 내용은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