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38
교랑의경 538화
“자네는 자네 할 일이나 하러 가. 자네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진십삼이 웃으면서 대꾸하고는 주육낭의 어깨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정교랑에게 물었다.
“혹시 또 선약이 있는 건 아니죠?”
정교랑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럼 같이 가는 겁니다?”
진십삼이 빙긋 웃었다.
“좋아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그러자 주육낭이 진십삼의 머리를 손으로 밀어냈다.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신랑 따라서 친영 행렬로 왔다니까.”
진십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고는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봐도 모르겠는데? 친영 행렬은 다 떠나고 없는데, 자네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뺀질거리고 있으니.”
흥겨운 풍악이 울리고, 폭죽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마차와 말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혼례 행렬을 구경하던 거리의 사람들이 신랑 신부에게 축복을 보냈다.
진십삼이 훌쩍 몸을 날려 말에 올라타고는 급하게 행렬의 뒤를 쫓아갔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서 두 사람에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자.”
주육낭이 고개를 돌려서 말하던 찰나, 정교랑이 멀어지는 혼례 행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게 보였다.
표정 역시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표정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처연했다.
저 애 나이가 올해 열여덟이니, 진십팔랑보다 한 살 적군. 세간의 분위기가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었다지만, 여인이 열아홉에 시집을 가는 것도 꽤 늦게 가는 편이지.
태후 때문에 혼담을 넣는 사내가 없으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똑같을 거야.
“뭐 볼 게 있다고.”
주육낭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혼례복이 예뻐서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삼백 년 전의 혼례복도 꽤 예쁘네. 아닌가, 혼례복은 언제나 예쁘긴 하지.
정교랑이 멀어지는 혼례 행렬을 내다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혼례복이라······.
주육낭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정교랑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하나도 안 예뻐. 가자, 가자.”
정교랑은 고개를 들고 주육낭을 쳐다보며 미소 짓고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를 따라갔다.
“정말 성질나 죽겠네!”
마차에서 내린 정 이부인이 이를 부득 갈며 소리쳤다.
“부인, 고정하세요. 주씨 가문 사람들이 원래 그렇잖아요.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
여종들이 서둘러 정 이부인을 다독였다.
“주씨 가문이 원래 그렇다고? 주씨 가문이 그렇게 판을 치도록 그 애가 부추긴 게 아니라면, 무장 출신인 주씨 가문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나대겠어! 내가 바본 줄 알아? 그 애가 이런 식으로 매정하게 나온 이상, 나도 의리 같은 거 지킬 생각 없어!”
“숙모님.”
갑자기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 이부인이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문밖으로 걸어 나오는 정사낭이었다.
“사낭, 어디 나가려고?”
정 이부인이 미소를 쥐어 짜내며 묻자 정사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동문수학한 동창끼리 한 번 모이기로 해서요.”
대답을 마친 정사낭은 정 이부인에게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로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 한번 모여서 축하도 하며 즐겨야지. 우리 신선거에 가서 즐기는 건 어떠니? 거기 가면 돈도 안 들 텐데.”
정 이부인이 웃으면서 말하자, 정사낭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숙모님, 누이는 사실 좋은 사람이에요. 누이에게 잘 대해 주신다면, 누이도 두 분께 더욱 잘할 겁니다.”
망설이던 정사낭이 눈을 딱 감고 하려던 말을 뱉었다. 정 이부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사낭, 그 말인즉 우리가 교랑에게 잘 못 한다는 뜻이니? 이런 식으로 매도하면 우리가 억울하지”
“잘 대해 주고 말고는, 두 분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정사낭이 이 한마디를 툭 내뱉고는 곧장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한 뒤, 정 이부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저 녀석 저거, 진사가 되더니 하늘 높은 줄을 모르네. 집안 어른을 대하는 예의가 없어, 예의가!”
정 이부인은 정사낭에게 들릴 만큼 목청을 높여 욕을 해댔지만, 정사낭은 입을 꾹 다물고 저택의 문을 나섰다.
거리로 나온 정사낭이 잠시 자리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네, 숙모님. 진사까지 됐으니 이제 저도 어깨 펴고 살아야죠. 누이가 또 두 분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가는,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도련님, 반근 누나가 신선거에 별실을 예약해 두었대요.”
사환이 해맑게 말했다.
자신이 모시는 공자가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그 시중을 살뜰히 들은 사환에게도 큰 공이 있는 셈이었다. 시녀가 상으로 사환에게 돈을 두둑이 챙겨주자, 사환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뻐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정사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누군가가 모퉁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정사낭과 사환이 깜짝 놀라서 소리치려는데, 그 사람이 돌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공자님! 제발 저희 아씨 좀 도와주세요!”
소녀가 울부짖으며 땅에 이마를 쿵쿵 찧었다.
정사낭은 무릎을 꿇은 채 애원하는 소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환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춘령? 무슨 일이야?”
사환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춘령?
어둠 속에서 땅에 납작 엎드린 소녀는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정사낭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소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든 소녀의 얼굴은 벌써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춘령이구나.
“춘령, 무슨 일이냐? 어서 일어나서 얘기해 보거라.”
정사낭이 허공에 엉거주춤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러나 춘령은 몸을 일으키지 않고,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정사낭을 향해 몇 걸음 기어갈 뿐이었다.
“사공자님, 저, 저는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사공자님,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화려한 장식등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경성의 화려한 봄밤에 서서히 막이 올랐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덕승루의 불빛,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치맛자락과 허리끈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여인들의 꾀꼬리 같은 노랫소리와 교태 섞인 웃음소리가 이따금 덕승루 밖으로 새어 나왔다.
주 낭자의 규방은 덕승루에서 가장 좋은 방이었다. 주 낭자가 창문을 닫자, 바깥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차단됐다.
구리거울 앞에 놓아둔 향에서 은은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방 안은 한층 더 조용하고 분위기 있어 보였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단장하고 있던 주 낭자는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바깥의 소란스러움과 진한 분향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형(阿衡)!”
여인의 목소리가 주 낭자의 귓가에 전해지는 동시에, 누군가가 그녀의 옆에 앉으면서 고개를 내밀고 헉 소리를 냈다.
“아직도 화장을 못다 한 게야?”
주 낭자가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 앉은 여인을 쳐다보았다. 주 낭자는 눈앞에 앉은, 서른이 넘은 미모의 여인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며 어머니라고 불렀다.
“서둘러야지. 지금이 벌써 몇 시인데 눈썹도 안 그렸어? 이리 오렴, 어미가 직접 그려 주마.”
여인이 다급하게 눈썹 붓을 들어 올리고, 주 낭자의 얼굴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 낭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여인의 손길을 피했다.
“어머니, 오늘은 손님을 접대하고 싶지 않아요.”
웃음기가 서려 있던 여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형, 어미가 네게 말했지? 돼먹지 못한 계집들이 하던 짓을 배워서는 안 돼. 유명세가 조금 생겼다 싶을 때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 말이다. 기녀는 어디까지나 기녀야. 기녀의 교만이 지나치면 억지를 부리는 것밖에 안 돼.”
주 낭자는 시선을 피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여인이 다시 웃음을 쥐어 짜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 낭자를 설득했다.
“아형, 다른 때면 어미도 너를 억지로 접대시키진 않을 거야. 손님을 받든 안 받든, 연회를 가든 안 가든, 다 네 마음대로 해도 돼. 하지만 오늘 온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잖니. 그분은 딱 너 하나 보겠다고 오시는 건데, 넌 벌써 두 번이나 거절했어. 오늘은 정말로 더는 못 미뤄.”
“이미 몇 번을 왔으니까, 어쩌면 오늘은 안 올지도 모르죠.”
주 낭자가 대답했다.
“그래, 그분이 안 오신다면, 넌 오늘 손님을 받지 않아도 돼.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미리 단장해야 하지 않겠니?”
여인이 웃으면서 주 낭자를 재차 다독이자, 주 낭자는 결국 억지웃음을 지으며 눈썹 붓을 손에 쥐었다.
“역시 우리 아형은 사려가 깊다니까.”
여인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보이며 몸을 일으키고 방을 나갔다.
방문이 닫히자, 방 안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여인이 남기고 간 진한 분향 때문에 주 낭자는 짜증이 솟구쳤다. 그녀는 눈썹 붓을 허공에 내던지고, 향을 한 움큼 쥐어 향로 속으로 던져 넣었다.
왜 하필 그런 사람을 마주쳤을까?
요 몇 년 동안 주 낭자에게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 그녀를 두렵게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날이 결국 오고야 만 것이다. 교방사의 기녀가 어떻게 평생 깨끗한 몸으로 지낼 수 있으랴.
하지만 주 낭자는 그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주 낭자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힘이 이제 절반 정도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매정하게도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정말 싫은걸.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왜 하필 그날 방을 잘못 들어갔을까? 딱 한 번 잘못 들어간 방 때문에, 영영 그 방에서 몸을 뺄 수 없게 될 줄이야.
사실 좋게 생각하면, 주 낭자가 그만큼 무한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한 번만 보아도 잊지 못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라는 뜻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얼굴이 죽도록 싫었다.
주 낭자가 구리거울을 쳐다보았다. 버들잎처럼 가느다란 눈썹에 고작 붓을 한 획 얹었을 뿐인데, 벌써 그녀의 매혹적인 눈매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는가 싶더니, 또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언니!”
“재촉하긴 뭘 재촉해.”
주 낭자가 언짢은 기색으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문 앞에 꿇어앉은 춘령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언니, 연회석 초대가 있어요.”
“오늘은 손님을 안 받을 거야.”
주 낭자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정씨 가문 사공자님의 초대예요.”
춘령이 서둘러 말을 덧붙이자 주 낭자가 멈칫했다.
정씨 가문의 사공자는 또 누구람?
“안 받아, 안 받는다고.”
주 낭자가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대꾸했다.
“언니.”
춘령이 무릎을 꿇고 앞으로 기어가며 불안한 기색으로 주 낭자에게 재차 말했다.
“언니, 언니, 초대에 응하시는 게 어때요? 이따가 혹 그 사람이 오기라도 하면······.”
주 낭자가 몸을 살짝 떨고는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넋을 놓았다.
“아형, 아형.”
여인의 간드러진 콧소리가 들려오자, 주 낭자가 화들짝 놀랐다.
“언니, 언니.”
춘령이 더욱 놀란 모습으로 주 낭자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아형, 고 관인께서 오셨어.”
문 앞에 서서 환한 미소로 말하던 여인은 아직 단장을 마치지 못한 주 낭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서둘러!”
주 낭자가 놀란 기색을 애써 숨기면서 눈썹 붓을 들어 올렸다.
“어머니, 공교롭게도 제가 이미 다른 초대에 응해서요.”
여인이 멈칫하고는 곧바로 물었다.
“다른 사람의 초대? 그게 누군데?”
그, 무슨 공자라더라?
주 낭자가 춘령을 바라보자, 주 낭자의 의중을 파악한 춘령이 재빨리 대답했다.
“정씨 가문의 사공자님이요.”
정사낭? 뭐 하는 놈이지?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성 유명한 가문의 자제 중에 내가 모르는 사내는 없을 텐데. 정사낭이라는 이름은 꿈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
이 어미가 화괴 노릇을 했을 때, 너는 젖도 못 뗀 갓난쟁이였는데, 기어코 나랑 이런 장난질을 하겠다 이거지?
여인이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