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22
교랑의경 622화
“정사낭, 네가······.”
소리치던 주복은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복의 뒤에 있던 정교랑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하자, 주복이 갑자기 몸을 홱 돌리고 정교랑을 품에 끌어안았다.
옆에 있던 시종들과 주복을 따라온 시종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별실 안의 광경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혈기왕성한 주 공자님이 못 견디고 저러시는 건가?
아무리 못 견디겠다고 하더라도, 여인에게 저렇게 결례를 보이면 안 되지! 게다가 정혼자가 있는 여인에게 저런 결례를 범하면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시종들이 경악한 사이, 정교랑이 주복을 밀쳤다.
“보지 마.”
주복이 더욱 세게 정교랑을 끌어안고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내 말 들어. 교랑, 들어가지 마. 들어가지 말고, 보지도 마.”
주복의 말을 들은 정교랑은 몸이 굳어 버렸다.
– 아방, 보지 마! 가지 마! 아방! 가면 안 돼! 보지 마!
아니, 아니야. 나는, 그런 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여길 온 건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 온 게 아니라고!
“비켜!”
정교랑이 소리치면서 두 팔로 주복을 밀쳤다. 주복은 그대로 뒷걸음질 치면서 방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문 앞에 서 있던 시종들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시종들의 안색도 일순간 사색이 되었다.
“사공자님!”
시종들이 외치면서 별실 안으로 쳐들어갔다.
방 안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낯뜨거운 장면 대신, 선홍빛으로 붉게 물든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별실의 바닥이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주 낭자는 탁자 위에 엎드려 있었고, 정사낭의 사환은 벽에 기댄 채 한쪽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정사낭은······.
푸슉 소리와 함께, 두 손이 피로 젖어 있는 춘령이 정사낭의 가슴팍에서 비수를 뽑아냈다.
“이거 봐요. 일부러 몇 번 더 찔렀으니까, 확실하게 죽었을 거예요. 아주 확실하게 말이에요. 절대로 당신이 살려낼 수 없을 정도로요.”
춘령이 해맑게 웃으면서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당신한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서 내가 특별히 신경을 좀 썼죠.”
주복과 시종이 춘령을 향해 달려들기 전에, 정교랑이 한발 먼저 춘령 앞으로 다가갔다. 춘령이 돌연 비수를 들고 정교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교랑이 비수 날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교랑!”
주복이 소리를 지르며 춘령을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네가 한 짓이니?”
정교랑이 주복을 제지하고 춘령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면서 물었다. 춘령은 정교랑의 손에서 비수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정교랑이 칼날을 어찌나 세게 쥐고 있는지, 손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데도 비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응, 내가 했어.”
춘령이 흥분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한 줄 알아?”
정교랑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네가 한 짓인지 아닌지일 뿐이야. 네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어떻게 상관이 없어?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춘령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목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이 들더니, 서걱 소리와 함께 시선이 반대편으로 돌려졌다.
어? 왜 그 여인이 보이지 않지? 왜 창문이 보이는 거야? 내가 언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춘령의 뇌리에 이런 생각들이 스칠 때쯤,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난 아직 죽으면 안 돼! 아직 말하지 못했다고!
저 여인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어,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네가 나와 내 동생을 내쫓아서, 네가 너무도 악독하고 잔인한 여인이라 나와 내 동생에게 살길조차 남겨 주지 않아서, 네가 내 동생을 버려진 사찰에서 쓸쓸히 죽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드디어 오늘, 아끼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는 기분이 어떤 건지 너도 알게 해 준 거라고!
다 너 때문이야!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라고!
아직 말하지 못했어, 아직 말하지 못했다고! 저 여인은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정사낭을 곤경에 빠트린 사람도, 정사낭을 죽인 사람도 나야. 너희는 모르겠지만, 다들 내 손에 놀아난 거라고!
마침내 복수했을 때, 원수가 자책하며 땅을 치고 울부짖는 모습을 내 눈으로 봐야 하는데,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알려 줘야 하는데, 다 네년이 저질렀던 짓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걸 알려 줘야 하는데!
너 때문이라는 걸 알려 주지 못한다면, 모든 게 다 헛수고가 되잖아! 그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난 아직 죽으면 안 돼. 아직 말해 주지 못했어!
저 여인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나, 는······.”
꺽꺽 소리를 내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하려 했던 춘령은, 결국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졌다.
진호가 말에서 내려와 덕승루 안으로 뛰어 들어왔을 무렵, 덕승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진호의 눈에 비친 덕승루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살인이야! 살인이야!”
인파에 휩쓸린 진호는 덕승루 밖으로 밀려날 뻔했지만, 시종들이 길을 터준 덕에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 올라갈 수 있었다.
기생 어미 막씨가 머리를 감싸고 바닥을 기어 다니며 소리를 질러댔다.
“살인이야! 아이고, 살인이야!”
소리를 하도 지른 탓에 목이 쉬었는데도, 막씨는 쉴 새 없이 외쳤다.
주복은 전장에 나가 칼을 휘두르는 장수이니 두려울 게 없을 테고, 정 낭자도 규방에서 고이 자란 소녀가 아니니까 무서워하지는 않을 거야.
더군다나 저 사람들이 납치한 자는 바로 정사낭이니까.
무려, 정사낭.
고능준은 정 낭자를 협박하기 위해 정 이노야를 강주에서 데려와 대리시로 부임케 했지만, 그런 협박은 낭자에게 있어서 표면적으로나 압박으로 보일 뿐이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명에 따라야 한다지만, 그 여인에게 부모의 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여인에게 부모란, 기껏해야 공경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들, 또는 혼사처를 정해 주는 사람들에 불과할 텐데.
저 여인이 예의를 차리는 대상은 비단 부모만이 아니야.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라 해도, 언제나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단정한 태도로 대하니까.
더구나 혼사를 사소한 일로 여기는 여인이니, 혼사를 결정하는 부모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세상엔 예외가 있는 법. 저 여인이 예외로 여기는 상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정사낭이다.
어리석고 줏대 없으며 비리비리한 서생에 불과한 정사낭이 바로 정 낭자를 협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물론 진호는 그게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돕는 것으로 따지면 정사낭보다는 주육이 정교랑을 훨씬 많이 도왔고, 정사낭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늘 골칫거리만 안겨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교랑은 그런 정사낭을 늘 다정하고 부드럽게 보듬어주었다.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한다?
의외로 단순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군. 상대방이 자신을 대하는 그대로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
낭자에게 경외감을 느끼거나, 낭자를 신뢰하거나, 낭자를 도와주려 하거나, 낭자를 정말로 좋아하거나 하는, 정 낭자를 향한 온갖 감정들 속에서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씨로 저 여인을 생각해 주는 것이리라.
– 우리 누이는요?
– 우리 누이를 괴롭히지 마세요.
– 우리 누이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참으로 독한 수를 두었구나!
진호가 주먹으로 기둥을 세게 쳤다.
죽어 마땅해!
감히 그런 정사낭을 납치한 놈들이라면 죽어도 마땅하지! 아직 괜찮을 거야. 아직은 구할 수 있을 거야!
문가로 다가가 별실 안의 광경을 본 진호는 온몸이 얼음장처럼 굳어 버렸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공자님, 미혼약을 탄 차입니다!”
주 낭자와 사환의 옆에 있던 시종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물을 끼얹어 깨워라.”
주복이 말했다.
방구석에 놓여 있던 얼음 대야 안의 얼음은 전부 녹아 물이 되어 있었다. 시종들이 대야를 들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었다.
“어우, 차가워!”
화들짝 놀라 깨어난 사환은 머리가 어질어질한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쳤다.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은 사환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 났어요?”
시종이 사환의 뺨을 세게 쳤다.
“지금 그걸 우리한테 묻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시종이 사환의 멱살을 쥐고 일으켜 세우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소리쳤다.
시종의 손에 붙들린 사환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사낭에게로 시선이 향한 사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쪽에!
“고, 고, 공, 공자님······.”
사환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환의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동시에, 주 낭자의 비명이 별실 안에 울려 퍼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주 낭자가 붉게 물든 자신의 치맛자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피로 물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정사낭과 춘령, 그리고 정교랑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왜 사방이 전부 피로 물들어 있는 거지? 피가 왜 이렇게 흥건한 거야! 그리고 저 여인의 손에도 피가 묻어 있어!
세상에, 세상에!
“그건 너한테 물어야지.”
주복이 이를 부득 갈고는 눈을 부라리면서 주 낭자를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누구야! 누가 네게 정사낭을 죽이라고 시켰냐고!”
정사낭을 죽이라고 시켰다고?
겁에 질린 주 낭자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정사낭을 죽이려 하는 자는 없었다고요!
“이 돈은 네가 가지고 있거라.”
“아닙니다. 소인은 관인의 돈을 받을 수 없어요.”
주 낭자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 돈을 가지고 있다가 정사낭에게 돌려줘. 그리고 너와 정사낭의 사이는, 이로써 깨끗하게 정리되는 거라고 전하고.”
그렇단 말이지?
주 낭자는 고개를 들고 의아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쳐다보았다.
“네가 고 관인의 체면을 얼마나 깎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우리 관인의 체면을 어떻게든 되찾아야겠으니, 네가 먼저 정 공자와의 사이를 끝내. 그리고 칠월 칠석에 우리 관인께서 너를 연회에 초대할 예정이니, 그때는 정 공자가 아니라 우리 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자식이 우리 관인 대신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정말, 오로지 고 관인의 체면 때문이라고?
주 낭자가 자신의 앞에 놓인 비전 증서 몇 장을 내려다보았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아. 정 공자님은 애초에 이 일에 끼어들지 않아도 됐는데, 나 때문에 괜히 이 일에 휘말린 거니까.
나는 이미 진흙탕에 빠진 몸이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내가 정 공자님을 이 진흙탕에서 구해내야 해.
그래. 고 관인이 나중에 내게 무슨 짓을 할진 모르겠지만, 우선 정 공자님과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어.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대체 왜······.
“정 공자님, 정 공자님.”
주 낭자가 발버둥을 치면서 주복을 밀쳐냈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는지 주 낭자는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정사낭의 위로 엎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던 중 옆에 누워 있던 춘령과 눈이 마주쳤다. 고개가 괴상할 정도로 꺾인 춘령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 낭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세상에,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