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37
교랑의경 637화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전해졌다.
“왔어요. 왔어요!”
어린아이들이 외치면서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회랑 아래에 서 있던 반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왔네. 뭐 이렇게 느릿느릿 와.”
반근은 친영 행렬이 영영 안 오는 줄 알고, 오늘 혼례를 올리는 것이 꿈이었나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아씨, 어서 붉은 천을 쓰세요.”
반근이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붉은색 천을 얼굴 위로 덮자, 정교랑의 시야 안에는 온통 붉은색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교랑은 눈을 감고 저도 모르게 두 손을 주먹 쥐었다.
“아씨, 긴장하지 마세요.”
시녀가 정교랑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다른 한쪽에서 반근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아씨께서도 긴장하실 거라고 했잖아. 누가 아씨는 긴장하지 않으신대?”
“그래도 아씨께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으셨다니까? 완전 남 일인 것처럼 홀가분해 보이시길래.”
“아직 때가 안 돼서 그러신 거겠지.”
정교랑이 주먹을 쥐었던 손에서 다시 힘을 뺐다. 정교랑은 긴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에 가득 들어오는 붉은색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덮쳐오는 선명한 붉은색이라니. 우리 정씨 가문이 멸족당했을 때, 그리고 꿈에서 무수히 많이 보았던, 온 하늘을 뒤덮었던 그 붉은색.
“왜 이렇게 늦게 온 것이오?”
친영 행렬이 마당 안으로 들어오자, 주복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일찍 와서 뭐 합니까?”
“집안 어른들이 없으니, 차를 올릴 필요도 없잖습니까.”
“도착하자마자 바로 출발하면 되고, 오가는 시간도 짧으니까요.”
여기저기서 왁자지껄하게 대답하면서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범강림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
“됐다, 어서 서두르거라. 길한 시간 놓칠라.”
내시가 성가시다는 듯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경사를 위해 고른 시간인데, 괜히 지체하다 놓쳤다가는 헛수고만 한 꼴이 아니냐.”
체면은 조금도 챙겨 주지 않겠다 이거로군.
정씨 저택의 마당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몇몇은 일부러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주복이 마당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정교랑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육공자께서 아씨를 배웅해 주십니다.”
진행을 맡은 이가 목청 높여 외치자, 주복이 정교랑을 등에 업었다. 이는 주복과 정교랑이 가장 가까이에서 한, 가장 친밀한 접촉이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고.
주복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문턱을 넘어선 주복이 조심스럽게 층계를 내려갔다.
“만약······.”
주복이 저도 모르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때, 요란스러운 폭죽 소리와 북소리며 징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색했던 마당이 드디어 혼례를 올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오라버니, 뭐라고요?”
소란스러운 와중에, 주복은 자신의 귓가에 정교랑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정교랑의 목소리는 주위의 소음보다 훨씬 작았지만, 주복의 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니다.”
주복이 대꾸했다.
등에 업힌 정교랑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복은 고개를 들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서 아득히 멀어지고, 눈앞에 보이는 길도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
만약 이대로 계속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씨 저택의 대문 앞은 벌써 인파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오성병마사 위병들이 질서를 유지하지 않았더라면, 마차가 지나갈 공간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나왔네! 나왔어!”
키 크고 우람한 사내의 등에 업혀 나오는 신부를 보자, 대문 앞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구경꾼들은 신부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서 보려고 고개를 내밀었다.
다른 혼례를 구경할 때와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구경꾼들의 손에 술동이가 몇 개씩 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술 있소? 술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외쳐댔다.
하지만 신부는 그대로 가마에 올랐고, 친영 행렬도 마차와 말에 올라탔다. 그 옆으로 여종과 몸종들이 나란히 줄지어 섰다. 오성병마사의 위병들이 길을 트자, 건장한 사내들이 신부가 탄 가마를 번쩍 들어 올렸다. 모든 것이 여느 여인들이 시집가는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다른 건 없어?”
대문 앞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어떻게 된 일이람. 의형제 몇 명 죽었을 때는 그리도 거창하게 노제를 지내더니만.”
“그러게 말일세. 과거에 급제한 진사들을 축하할 때도 술을 빚었잖소.”
“정작 자기 일에는 하나도 신경을 안 쓰네. 얼마 전에 정사낭이 죽었을 때도 그렇고, 오늘처럼 본인이 혼례를 치르는 날에도 아무것도 없다니.”
누군가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고개를 퍼뜩 들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면, 거리에 볼거리가 있는 거 아닐까?”
“맞아, 그럴 수도 있네. 신선거 쪽으로 가 보세!”
경성에서 가장 북적북적한 번화가인 저잣거리로 몰려가려던 사람들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어라? 이상하다?”
사람들이 놀란 모습으로 소리치며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친영 행렬을 손으로 가리켰다.
“왜 저 좁은 골목으로 가는 거야?”
말 위에 타 있던 주복이 앞쪽에서 행렬을 이끄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정말로, 체면이라고는 아주 조금도 챙겨주지 않을 작정이군.
친영 행렬 뒤에서 신행을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행렬을 따라 걷던 몸종과 아낙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렸다.
“이상하다. 길을 잘못 든 거 아니야?”
혹시나 혼례 당일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까 봐, 진소 부인은 직접 전복인을 자처해서 정교랑의 신행에 함께했다. 마차 밖을 내다보던 진소 부인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서둘러 마차 휘장을 들어 올리며 내시에게 물었다.
“노국 부인(魯國夫人: 진소 부인의 봉호), 폐하께서 쓰러지시고, 군왕 전하께서도 요양 중이셔서 모든 것을 간소화하여 진행하라는 태후마마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내시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태후마마의 뜻이라는 말에 진소 부인도 더는 따지지 못하고 억지웃음을 짜내며 휘장을 내렸다. 진소 부인은 좁디좁은 골목을 향해 가는 친영 행렬을 내다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네. 신부인 정 낭자의 체면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려는 황실의 뜻이 이리도 명백할 줄이야.
가마 옆에서 같이 걸어가던 반근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씨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반근이 중얼거리자, 시녀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말.”
반근이 대답했다.
거리 곳곳을 누비면서 경성 한 바퀴를 돌고, 온 경성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친영 행렬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지름길을 통해 신부를 맞이하려는 거구나. 그래서 아씨께서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하셨던 거야. 금방 식사를 하실 수 있을 테니까. 금방이면, 다시 쉬면서 책을 읽으실 수 있을 테니까.
반근이 앞쪽을 내다보았다. 황궁에서 온 영인들은 악기를 건성으로 연주했다. 흥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음악이었다.
좁은 골목에서 지나다니던 행인들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친영 행렬에 깜짝 놀랐다.
멀쩡한 큰길을 놔두고 이렇게 좁은 골목을 골라서 시집가는 신부도 있어? 시집가는 신부 댁이 얼마나 남 보기 부끄러운 초라한 집안이길래?
하지만 행인들은 친영 행렬 가장 앞쪽에 보이는 오성병마사 위병과 금군 병사들을 보고 더욱 놀라며 재빨리 길을 비켰다.
저 정도면 신랑이 최소한 친왕 정도는 돼 보이는데. 그런데 친왕이 왕비를 맞이하는데, 친영 행렬이 이리 초라하다고?
행인들이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친영 행렬을 구경했다.
“내 말이 맞지?”
친영 행렬을 이끌던 두 사내가 한가롭게 잡담을 나눴다.
“이 길이 큰길보다 좁긴 해도, 행렬이 거뜬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는 널찍하다니까.”
모여드는 구경꾼들을 내쫓을 필요도, 행렬을 에워싸고 함께 행진하는 구경꾼들 때문에 발걸음을 늦출 필요도 없어.
“그러게 내가 술 한 사발 더 마시고 나가도 된다고 했잖아. 우리끼리 한잔하는 게 더 중하지.”
다른 사내가 하품을 하면서 취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사내를 원망했다. 잡담을 나누던 사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골목 앞쪽 모퉁이에서 느닷없이 마차 한 대가 튀어나오더니 행렬 앞에서 느릿느릿 나아갔다.
길을 터는 금군 병사들이 어이, 어이 하면서 마차를 향해 고함쳤지만, 마차를 끌던 늙은이는 귀가 먹었는지 금군 병사들의 호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마차를 몰았다.
정말 꼴이 말이 아니군!
참다못한 금군 병사가 말에 채찍을 휘두르며 늙은이를 향해 달려갔다.
아니지, 꼴이 말이 아니어야 더 좋지. 태후마마의 뜻이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혼례를 엉망진창으로, 꼴이 말이 아닐 정도로 진행해야 더 좋을 테지.
내시가 아차 싶은 마음에 재빨리 금군 병사를 불러 세웠다.
“별로 멀지도 않고 길이 좁기도 하니, 비키라고 하는 게 더 번거롭네. 먼저 가라고 하게나.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가면 되지.”
“그러게 말입니다. 급한 것도 아닌데요.”
누군가가 웃으면서 내시의 말에 맞장구쳤다.
친영 행렬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자, 좁은 골목길에서 작게 울리던 영인들의 악기 소리보다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보다 못한 반근이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반근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 화장이 망가지진 않을까 걱정하며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친영 행렬은 금세 좁은 골목을 벗어났다.
“여기서 꺾어서 거리 하나만 더 지나면 되네.”
“이따 가서 계속 마셔야지.”
친영 행렬에서는 시답잖은 말들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친영 행렬이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앞쪽에서 칠현금 소리가 들려왔다. 경쾌하고 시원시원하게 들려오는 칠현금 연주 소리가 사내들의 잡담 소리를 덮었다.
누가 거리에서 칠현금 연주를 하는 거지?
친영 행렬의 사람들이 잡담을 멈추고 앞을 내다보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내가 바닥을 자리 삼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라? 최 악공이잖아?”
누군가가 소리치자, 더 많은 사람이 칠현금을 연주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황궁 영인인 최 악공은 황실에서 주최하는 중대한 행사나 중요한 제사 때 연주하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영인이었다. 권문세가에서 연회를 열 때도, 최 악공을 초청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정도로 유명한 악공이었다.
그런데 그런 최 악공이 왜 길바닥에서 연주를 하는 거지?
최 악공은 연주에 심취한 듯, 친영 행렬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친영 행렬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최 악공의 칠현금 연주도 점점 더 경쾌해졌다.
친영 행렬의 북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 사내들의 잡담도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의 귓가에는 최 악공의 칠현금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의 귓가에 맴도는 그의 연주는, 눈앞에 백 마리가 넘는 새들이 지저귀며 무리 지어서 날아왔다가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하며 다른 쪽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듯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새들을 따라가거나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최 악공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거리로 몰려들었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칠현금 연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최 악공의 연주에 흠뻑 취했고, 연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신나는 음률이 마냥 즐거웠다.
“저 곡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친영 행렬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 악공이 새로 쓴 곡인가 봐!”
“그런데 최 악공이 왜 여기까지 와서 저러는 거지?”
누군가가 물었다.
친영 행렬은 이미 최 악공을 지나쳤지만, 사내들은 여전히 그의 연주에 홀린 듯 고개를 돌리면서 귓가에 들려오는 연주를 감상했다.
“벌써 잊은 거야? 최 악공이 누구의 연주를 듣고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됐는지?”
정 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