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36
교랑의경 636화
주복이 떠난 뒤, 실내를 향해 시선을 돌리던 진소 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참, 혼례복을 지금 입으면 어떡해요. 단랑, 혼례는 놀이가 아니야. 어서 혼례복에서 손 떼. 손자국 남으면 내일 어떡하려고 그래.”
저녁이 되자, 북적이던 사람들이 떠난 정씨 저택 마당은 다시 평소와 같은 조용함을 되찾았다.
그러나 반근과 시녀는 여전히 방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근과 시녀는 이미 싸 둔 상자와 보따리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물건을 제대로 챙겼는지 재차 확인했다.
“빠트릴 게 뭐 있겠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정교랑이 잔뜩 긴장한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집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은 정교랑이었다. 정교랑은 목욕을 마친 뒤, 창가에 앉아서 어린 시녀들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맡기고 손으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사람만 있다면, 뭐든 다 갖출 수 있어.”
정교랑이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안 가져가도 상관없어. 새로 한 권 사면 그만이니까.”
정교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녀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정교랑의 손에서 책을 가져갔다.
“말씀 안 하셨으면 까먹을 뻔했어요.”
시녀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책 몇 권도 모두 정리해 반근에게 건넸다. 정교랑은 웃으면서 반근이 책들을 상자 안에 넣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거 읽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만 읽으세요. 매일 읽으시니까 딱 오늘 하루만 건너뛰어요, 네? 내일 밤에 마저 보시면 되잖아요.”
시녀가 헤헤 웃으면서 말하자, 정교랑의 머리카락을 빗던 어린 시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일은 신혼 초야잖아. 아, 그런데 신랑이 친영도 못 오고 맞절하는 의식도 못 치른다던데, 그럼 동방화촉은······.
아씨께서 시간이 많긴 하시겠네.
그래도 너무 가엾으시네. 무려 신혼 초야인데.
어린 시녀가 고개를 숙이고 정교랑의 긴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었다.
내일이면 이 머리카락 위로 봉관이 씌워지고, 아씨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시겠지.
어두운 밤하늘 아래, 여름 곤충들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경.”
휘장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바닥에 앉아 졸고 있던 내시가 깜짝 놀랐다. 내시는 눈도 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침상 쪽으로 기어갔다.
“전하,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혹시 어디가 불편하신지요? 물 드릴까요?”
내시가 휘장을 살짝 걷으며 연달아 물었다.
어둑한 등불 때문에 휘장 안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침상 위에 있던 진안 군왕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내시는 서둘러 그를 제지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태의가 되도록 몸을 일으키지 않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전하, 어디 불편하십니까?”
“난 괜찮다.”
진안 군왕이 대답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내일이냐.”
내시가 웃었다.
“예, 내일입니다.”
내시가 침상 옆에 꿇어앉아 태사국에서 계산한 친영을 출발하기에 좋은 시간과 신부가 가마에서 내리는 시간, 신랑 신부가 맞절하고 천지신명과 부모님께 절을 올리는 시간 등을 하나하나 손으로 꼽으며 소상히 설명했다.
“영헌(永軒) 국공야(國公爺)께서 전하를 대신하여 여기서 신부를 맞이하실 것이고, 대공주 부마와 이 한림께서 친영 행렬로 가실 겁니다.”
내시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자, 진안 군왕의 호흡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의 표정 또한 몹시 평온해 보였다.
진안 군왕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내시의 말을 끊었다.
“그럼 혼례복은······.”
진안 군왕의 말에 내시가 멈칫했다.
“그럼 국공야가 내 혼례복을 입는 건가?”
진안 군왕이 묻자, 내시가 웃으면서 휘장을 걷었다.
“전하, 전하의 혼례복은 여기 있습니다. 국공야께서는 혼례복을 입지 않습니다. 혼례복은 오직 신랑 신부만 입는 것이지요.”
짙은 밤하늘 때문인지, 침상 옆에 세워 둔 옷걸이에 걸려 있는 혼례복은 무슨 색인지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전하,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어찌 됐든 혼례식은 일종의 의식일 뿐이고, 앞으로 두 분이 함께 보내실 나날이 더욱 중요합니다.”
내시가 웃으며 말하자, 진안 군왕이 음, 하고 대꾸하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깨어나면, 내일이 되겠지. 드디어 이날이 왔네.
하늘빛이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시녀가 정교랑을 깨웠다.
“친영은 오후라고 하지 않았어?”
정교랑이 평상시 입던 치마저고리를 걸치며 벽에 걸려 있던 활을 집어 들었다.
“아이고, 우리 아씨.”
시녀가 깜짝 놀라서 소리치고는 정교랑의 손에서 활을 빼앗았다.
“아씨, 활쏘기하시라고 일찍 깨운 게 아니에요.”
반근은 방 한쪽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머리 손질해 주는 사람이 온 다음에 세수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세수한 다음에 기다리는 게 나을까?”
반근이 어린 시녀에게 정교랑이 오늘 할 장신구들을 꺼내 놨는지 확인했다.
“안 꺼내 놔도 돼. 방이 이렇게나 작은걸. 두어 걸음이면 다 닿잖아.”
정교랑이 천천히 구리거울 앞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반근,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밤새 한숨도 못 잤잖아. 일단 네 화장부터 하고 와.”
시녀가 말하자, 반근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 정신 좀 봐. 아씨를 창피하게 해서는 안 되지!”
반근이 소리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허둥대며 문턱을 지나가던 반근은 하마터면 발이 삐끗해 넘어질 뻔했다. 문가에 서 있던 어린 시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반근을 부축했다.
대청 안으로 들어오던 황씨가 반근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근이 왜 저렇게 긴장해?”
황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워낙 중차대한 일이잖아요. 큰아씨께서는 큰 도련님께 시집온 날, 어떠셨어요?”
시녀가 미소 띤 얼굴로 황씨에게 물었다.
“어, 그때는······.”
황씨가 곰곰이 회상하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무 긴장해서 머리가 새하얘졌다는 거 말고는 잘 기억이 안 나. 아, 맞아. 그날 아침에 어머니께서 과일 한 개를 손에 쥐여주셨던 게 생각나네. 그런데 나는 그걸 먹을 생각도 못 하고, 결국 손에 그대로 쥔 채로 신방까지 들고 갔어.”
시녀와 몸종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정교랑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때 나는······.
황실에서 시중들러 온 사람들이 집 안팎을 가득 채웠고, 정씨 저택도 신부를 배웅하는 정도 이상으로 성대하게 꾸며져 있었다.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의 저택만큼 화려한 모습이었다.
정교랑은 쿵쾅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모가 준 인삼 절편을 손으로 으깨고 있었다.
친영 행렬은 성을 반 바퀴 더 돌고 나서야 궁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먹은 게 하나도 없었던 정교랑은 하마터면 실신할 뻔했다. 옆에 앉아 있던 양산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삼 절편을 조용히 정교랑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 네가 허둥대는 걸 보니까, 분명히 뭔가 빠트린 게 있을 줄 알았어.”
양산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으면서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너는 칼도 잘 쓰고, 활도 잘 쏘고, 기마도 잘하면서, 배고픈 건 왜 잠시도 이렇게 못 견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난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긴장했던 거야.
귓가에 시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정교랑이 정신을 차렸다.
“아씨께서도 긴장하신 거죠?”
시녀가 웃으면서 물었다. 시녀가 정교랑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정교랑에게 새 신발을 신겨 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내가 나중이 되어서야 후회한 게 있는데, 혼례를 올리는 날이 내가 살면서 제일 한가했던 날이더라고요. 모두가 다 나를 위해 고생하고 바삐 움직이는데, 나는 마음 편히 손 놓고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으니까요. 그런 날은 아마 살면서 딱 한 번밖에 없을 텐데, 그때 실컷 즐길 걸 그랬어요.”
황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린 몸종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진소 부인이 도착했음을 알리자, 황씨가 서둘러 진소 부인을 맞이하러 문가로 다가갔다.
방 안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정교랑은 구리거울 앞에 앉아 다른 사람의 손에 머리카락과 화장을 맡기고, 주위에 있는 부인들과 젊은 새댁들이 들려주는 축복의 말들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날이 훤히 밝고,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정교랑은 계속 방 안에 앉아 진안 군왕의 친영 행렬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언니, 이상해요.”
진단랑이 웃으면서 말하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이상하긴 하네. 그때는 신부 화장이 지금처럼 짙고 화려하지 않았는데.
“너 괜히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신부 화장은 원래 다 이래.”
진십팔랑이 말했다.
“아니, 언니가 저렇게 있을 때는 안 이상했는데, 정 언니가 이러고 있으니까 엄청 이상해.”
진단랑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연회석이 준비됩니다. 이제 다들 나가셔요.”
진소 부인의 여종이 방으로 들어와 고하자, 진십팔랑이 정교랑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같이 있어 줄까요?”
정교랑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긴, 우리가 여기 남아 있는 게 더 어색할지도 모르겠네요. 식사를 마치고 나서 수다 떨러 다시 올게요.”
진십팔랑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진소 부인이 데려온 젊은 새댁들과 부인들도 정교랑에 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여인네들 대하듯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들 고마워요.”
정교랑이 몸을 일으키고 여인들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에이, 괜찮아요.”
진십팔랑이 웃으면서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는 단랑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여인들이 밖으로 나가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씨, 배는 안 고프세요?”
반근이 물었다.
“배고파도 드시면 안 돼. 신혼 첫날인데 속이 안 좋아지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 아씨, 오늘 하루만 좀 참으세요.”
시녀가 말했다.
“그래도 엄청 오래 걸리잖아.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는데, 부모님께 절하는 의식까지 끝내고 나면 아마 밤일걸?”
반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정교랑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진안 군왕의 요양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바깥마당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지금이 몇 시지?”
진안 군왕이 휘장을 걷으며 물었다. 두 시녀가 서둘러 대답하자, 문밖에 서 있던 내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내시가 침상 위에서 몸을 일으킨 진안 군왕을 보며 물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아직도 가지 않는 것이냐?”
진안 군왕의 물음에 내시가 웃으며 대답했다.
“전하, 급하실 거 없습니다. 정씨 저택에서 여기까지는 지름길로 올 터이니, 금방 다녀올 겁니다.
진안 군왕이 흠칫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름길로 온다고?”
혼례를 올리는 이유는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시끌벅적하고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함이었다. 혼례를 올리는 날, 신랑은 신부를 맞이하는 기쁨을 자랑하고, 신부는 혼수를 자랑했다.
특히나 요즘은 날이 갈수록 경성 규수들의 혼수가 더욱 풍성해지는 추세였다. 그래서 꽤 명망이 있는 집안이라면, 신부의 혼수를 자랑하기 위해 족히 경성 한 바퀴를 다 돌면서 가곤 했다.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집안이어도, 혼례 날에는 경성에서 가장 떠들썩한 저잣거리를 가로지르며 징을 치고 북을 두드리면서 많은 사람에게 경사를 알렸다.
그런데 지름길로 오가겠다고? 무슨 도둑질하고 도망을 치는 사람처럼?
이게 혼례를 올리는 거야, 아니면 도둑놈을 몰래 집으로 들여오는 거야?
“태후마마의 분부십니다.”
내시가 조용히 말했다.
진안 군왕이 음, 하고 대꾸하고는 다시 침상 위에 천천히 누웠다. 그의 시선이 침상 옆에 놓인 혼례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