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13
교랑의경 713화
귓가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아닌가? 이건 너무 듣기 싫은 소리잖아. 울먹이는 건지 흐느끼는 건지도 모를 그런 울음소리.
울게 뭐 있다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누가 우는 거야.
고작 화살 한 방 맞은 거 가지고 호들갑은. 죽으면 죽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주복은 힘껏 눈을 떴다가, 눈이 부셔 곧바로 다시 눈을 감았다.
어떻게 된 거지? 해가 뜬 건가?
벌써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났나?
주복이 다시 눈을 뜨고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이상하다. 저건 고 선생과 경 공공이잖아. 그럼 우린 아직 성문 밖에 있는 건가?
주복이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지원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겁니까?”
주복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 선생과 경 공공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 공자!”
경 공공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어떻게 일어난 겁니까?”
고 선생도 외쳤다.
뭐야. 일어나지 않으면, 계속 누워 있으라고?
주복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안 군왕의 사람들과 친하지 않은 주복은 두 사람이 마냥 이상해 보이기만 했다.
주복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과 온몸에 피가 흥건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처가 그렇게 깊었었나?
주복이 서둘러 자신의 가슴팍을 매만졌다. 옷이 풀어 헤쳐진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자상이 몇 개 있었고, 손이 그 위를 스칠 때마다 따갑고 아팠다.
이 정도 상처가 무슨 대수라고. 서북에 있을 땐 이런 상처를 달고 살았어.
주복이 자신의 상처를 살펴보고 고개를 들려던 찰나, 누군가가 주복을 눕힐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다 나으신 겁니까? 다 나았다고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이 태의가 소리치면서 두 손으로 주복의 온몸을 만져댔다. 주복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이 태의를 발로 걷어찼다.
“뭐 하시는 겁니까!”
주복이 소리쳤다.
주복이 다시 자리에 제대로 앉자, 옆에서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경 공공과 고 선생의 표정은 더욱 가관으로 변해 갔다.
“정, 정말로 다 나은 겁니까? 사람을 발로 차낼 정도의 힘도 있고?”
경 공공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경 공공은 주복의 상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주복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을 때 그를 성문 밖으로 끌어냈던 사람이 바로 경 공공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경 공공은 늘 그래 왔듯 일단 생사부터 확인하고자 주복의 가슴과 등을 만져 보았다.
경 공공은 그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내일 아침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경 공공이 고개를 홱 돌리고는 피바다에 누워있는 기이한 여인을 쳐다보았다. 경 공공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주복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편전 안에 사내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주 공자, 주 공자.”
고 선생과 경 공공이 재빨리 주복의 양옆을 붙들고 그를 막아섰다.
“저리로 가시면 안 됩니다.”
저리로 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니지만, 정교랑의 옆에는 진안 군왕이 있는지라, 혹여나 흥분한 주복이 진안 군왕을 해칠까 봐 겁이 난 것이었다.
“왜 저렇게 됐습니까? 왜 저렇게 된 거냐고요!”
주복이 발버둥 치면서 소리쳤다.
“그건 저희가 주 공자께 여쭤봐야 할 말입니다. 왕비께선 공자의 몸을 대체 어떻게 치료하신 겁니까? 대체 무슨 치료를 했기에 공자는 멀쩡하게 살아나고, 왕비께서 돌아가신 거냐고요!”
고 선생이 목청을 높이자, 주복이 멈칫했다.
죽었다고?
주복이 두 팔을 힘껏 뿌리치자, 고 선생과 경 공공이 양옆으로 밀려났다. 주복은 엎어지듯 정교랑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정교랑을 덥석 끌어안았다.
“허튼소리 하지 마! 정교랑은 절대로 죽을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죽을 사람이 아니라고!”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정교랑이 죽었다고 말해? 감히 정교랑이 죽었다고 말하다니!
정교랑은 죽지 않아. 정교랑은 절대로 안 죽어.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주복이 손으로 정교랑의 얼굴을 이리저리 마구 만지더니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안 죽었잖아! 그러게 내가 뭐랬어? 이 여인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니까. 아직 살아 있다고.”
주복이 정교랑의 어깨를 흔들었다.
“교랑, 교랑.”
정교랑의 몸은 주복이 흔드는 대로 힘없이 흔들렸다. 몸 위에 놓여 있던 손이 아래로 떨어지려 하자, 진안 군왕은 머릿속이 쾅 하고 터지는 듯했다.
“꺼져!”
진안 군왕이 주복을 밀쳐내자, 고 선생과 경 공공이 동시에 주복을 덮치고는 그를 양옆에서 붙잡아 바닥으로 짓눌렀다.
“아직 안 죽었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고요.”
바닥에 머리가 눌려 있던 주복이 힘겹게 소리쳤다. 조심스럽게 정교랑을 품에 안은 진안 군왕이 흠칫 놀랐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고?
진안 군왕이 떨리는 손으로 정교랑의 숨을 확인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진안 군왕보다 한발 빨리 손을 뻗었다.
아주 얕고 희미한 숨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정말로 숨이 있습니다!”
이 태의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도리어 진안 군왕은 숨이 멎을 듯했다.
“그런데 왜 죽었다고 한 겁니까!”
경 공공이 소리쳤다.
우리 군왕 전하께서 놀라 돌아가시게 하려는 작정이야 뭐야?
“하오나······.”
이 태의가 재빨리 정교랑의 왼쪽 가슴을 향해 손을 뻗고, 다른 한 손으로 정교랑의 맥을 짚었다.
잠시 뒤, 이 태의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오나 군왕비께서는 심장이 뛰지도 않고, 맥이 잡히지도 않습니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근정전에서 열리는 조회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어젯밤 고씨와 진씨 두 사람이 태자를 시해한 사건과 그들의 죄를 장순이 직접 낭독하자, 대신들은 무릎을 꿇고 태자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대부분 아침이 되어서야 궁에 들어왔지만, 어젯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궁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쯤은 이미 눈치챘던 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입궐할 때, 돌포탄에 부서진 궁문과 한바탕 청소를 했음에도 여전히 바닥에 남아 있는 혈흔을 보았기에 장순의 말을 들으면서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모반을 꾀한 자는 율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하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태자의 상을 치르는 것이오.”
휘장 너머에 있던 황후가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대신들이 일제히 알겠다며 예를 올렸다.
고능준과 진소의 죄를 정했고, 태자의 상을 치르자는 이야기도 했으니, 이제 가장 중요하면서도 대신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주제만이 남아 있었다.
태자 책봉.
조당 안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휘장 너머에 있는 황후가 돌연 침묵을 지키자, 대신들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내시 하나가 휘장 뒤에서 황후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황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들은 내시가 말하는 내용을 듣지 못했으면서도, 황후의 반응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룻밤 사이에 놀랄 일이 그렇게나 많이 일어났는데, 또 뭐 때문에 저리 놀라신 거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태자는 평생 기구한 삶을 살다 떠났으니, 하루빨리 태자의 영을 기리고 안식을 얻도록 해 주시오.”
황후가 말했다.
오늘은 양자 입적을 논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 그리 중요한 일을, 왜 한번에 깔끔하게 결정하지 않고?
대신들은 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황후의 모습을 보고는 하는 수 없이 알겠다며 허리 숙여 예를 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신들은 황후가 무엇 때문에 급하게 조회를 끝냈는지 알 수 있었다. 진안 군왕이 출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 시기에, 진안 군왕이 출궁했다고? 참으로 놀라운 일이군. 한번에 태자 책봉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나?
밤이 길수록 꾸는 꿈도 많아지는 법인데.
“진안 군왕비는 어떠하더냐?”
근정전을 채 나서기도 전에, 황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시에게 물었다.
“군왕비께서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군왕비를 데리고 군왕부로 돌아가셨고요.”
다쳤다고?
하긴, 정 낭자는 궁에 오래 머물러 있었지. 눈치 빠른 고능준이 정 낭자가 내게 쪽지를 건네준 일을 몰랐을 리가 없어. 불꽃놀이 덕분에 몸을 지킬 수 있었던 우리 쪽에 비해, 맨몸으로 입궐한 정 낭자가 처한 상황은 훨씬 위험했겠지.
밤이라 그런지 걸음걸이는 흔들림 없어 보였다만, 다치지 않았다고 확신하긴 힘들어.
“사람을 보내 알아보아라. 태의들은 모두 그리로 갔느냐?”
황후가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 내시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사람을 보내 알아봤더니, 전하께서는 다른 태의들을 부르지 않으셨답니다. 이 태의만 함께 따라갔고요.”
태의 한 명만 데리고 갔다고?
“한 명으로 되겠는가?”
황후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소식을 들은 태의들이 모두 급히 입궐하긴 했으나, 진안 군왕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답니다.
“아니면, 왕비께서는 심하게 다치신 게 아니라, 조금 놀라 쓰러지신 게 아닐는지요?”
내시가 추측하면서 말했다.
그 여인이 놀란다고?
황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여인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게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소식이 있으면 즉시 본궁에게 알리거라.”
황후가 탄식을 뱉고는 말을 덧붙였다.
“제일 좋은 건,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이다.”
조회가 아직 파하기 전, 관병들도 아직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관부의 관리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갖가지 변명을 대면서 문밖에 서서 궁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마차 한 대가 황궁 쪽에서 거리를 향해 급하게 달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마차로 향했다.
“저건 누구지?”
“호위를 저렇게 많이 데리고 다니다니.”
“연평 군왕인가?”
사람들이 온갖 추측을 하던 사이, 길가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눈앞을 지나가는 마차를 쳐다보았다.
저, 저 말에 탄 사람은!
병사가 몸을 홱 돌리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조금 전에 집으로 돌아온 진 시강과 진호의 모습 때문인지, 집으로 들이닥친 관병들 때문인지, 진 시강의 저택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진 대인, 역적 잔당을 조사하기 위해서 경성의 경계가 한층 삼엄해졌습니다. 부디 대인께서는 한동안 저택에 머물러 주시고, 잦은 출타는 삼가 주십시오.”
말은 공손했지만, 일개 장수가 진 시강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결례였다. 잦은 출타를 삼가 달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진씨 가문 하인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고씨와 진소 가문은 이미 관병들이 들이닥쳐 사람을 끌고 나가고 재산을 몰수했다던데, 혹시 다음은 우리 차례가 아닐까?
그렇다기엔 좀 이상한걸. 우리 공주부 진씨 가문은 태자 시해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황후마마를 지켜 드리며 공까지 세웠는데?
진 시강이 여유롭게 웃었다.
“감히 우리 공주부 진씨 가문을 친다? 진안 군왕이 태자 전하 같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요. 우리 가문은 역적이 아니오. 역적 집안이라면 가산을 몰수해야 마땅하나, 황실을 도운 집안의 가산을 몰수하기엔 명분이 부족하지. 그래도 우리 집안을 치겠다면 진안 군왕은 통쾌해할지 몰라도, 대신들이 그를 막을 거요. 명분도 없이 공신을 벌하다니, 그건 사람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부추기는 꼴밖에 안 되지.”
진 시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공주부 진씨 가문이 연평 군왕을 태자로 세우려 했다고는 하나, 잊어서는 안 될 게 하나 있소이다. 진안 군왕을 태자로 세우는 걸 반대하던 사람들은, 비단 우리 진씨 가문뿐이 아니었소. 그러니 우리 진씨 가문을 처리한다는 건,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처리하겠다는 뜻이야. 사람을 품는 그릇이 그리 작은 자를 태자로 모신다면, 조정 대신들 또한 그에게 충의를 보이기는 힘들겠지.”
진 부인은 넋이 나간 채, 진 시강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두렵소?”
진 시강이 웃으면서 물었다. 진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두려울 게 뭐 있다고요.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걱정할 것 없소. 그가 공신인 우리 진씨 가문을 내친다면, 우리 또한 그런 군주를 따르지 않으면 될 일이오. 사직을 청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한가롭게 시골에서 농사나 짓는 늙은이로 살다 가는 거지 뭐.”
진 시강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난 십삼이 걱정된다고요.”
십삼의 이야기가 나오자, 진 시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노야, 노야.”
문밖에서 사환이 뛰어 들어왔다.
“노야, 주 공자께서 무사하다고 하십니다.”
무사하다고?
진 시강이 놀란 눈으로 시종을 쳐다보았고, 진 부인은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십삼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진 부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조금 전에 직접 본 사람이 있었는데, 주육 공자께서 말을 타고 황궁에서 나와 마차 한 대를 호위하며 거리를 지나갔다고 합니다.”
사환이 곧바로 대답했다.
죽지 않았구나!
진 시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서, 어서 십삼에게 이 사실을 알리거라.”
진 부인이 소리쳤다.
주 공자가 죽지 않았다면, 내 아들의 목숨도 무사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