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49
1169장. 담판
쏴아아아아아아앗!
요란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때앵.
늦은 밤, 마지막 기도 시간을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높은 관에 새까만 도복을 착용한 남자가 눈을 감고 좌정하고 있다.
하얀 수염이 배꼽까지 늘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신선을 연상하게 했다.
사르르르르.
기다란 향이 타오르는 황금빛 향로에서는 은은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며 위로 퍼졌다.
좌정한 남자 앞의 커다란 신상이 그를 지그시 굽어보고 있다.
보통의 도관에서 모시는 삼청이나 삼관대제와 모습이 달랐다.
커다란 황금용 위에 용포를 착용하고 황관까지 쓰고 있는 신상.
보는 것만으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급급여울 화방신상 천제왕도…….”
도사가 주문을 외웠다.
대대로 내려오는 이곳 도관에서만 읊어지는 주문이다.
다른 도관처럼 일반 신도들을 받지 않는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이들도 극소수이다.
허락된 자만 이곳에 들어와 기도드릴 수 있다.
문화혁명 때도 이곳 도관만은 누구도 건들지 못했다.
여기는 지상의 귀신을 부려 한족의 시조가 된 황제 공손훤원을 모시는 도관이다.
많은 귀신을 부려 사물의 법칙을 만들고 의학과 화폐, 도량과 음율, 문자 규칙을 정했다고 알려진 황제 공손훤원.
신농씨의 통치력이 약해질 때 세상 각지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 때에는 특이한 무기와 귀신을 이용해 승승장구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호족들이 무릎을 꿇었다.
다만 치우만이 황제에게 대적했다.
전쟁의 신 치우는 정령을 이용해 막판까지 황제를 몰아붙였다.
결국 황제는 연전연패에 몰렸다.
하지만 패배하려던 순간 서왕모와 계략을 짰고 계획대로 치우를 물리쳐 한족의 뼈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설의 삼황오제 중 첫 번째 자리를 꿰찼다.
그 이후 모든 중국의 한족들은 그를 시조로 모시게 됐다.
그랬던 황제는 신단을 만들고 용을 타고 등선했다.
때애애애앵.
맑은 종이 다시 한 번 울렸다.
“……후손들을 굽어살피소서.”
정성이 가득한 기도가 끝났다.
도사가 가만히 눈을 떴다.
오늘도 흡족하게 기도를 받아 널리 자손들을 보살피게 될 황제가 짓는 따뜻한 미소…….
“헛!!!”
눈을 뜬 도사가 깜짝 놀랐다.
주르르룩!
기도를 끝내고 나면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로 그를 맞이해주던 신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화, 황제시여…….”
도사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000년 넘는 도관 역사상 이런 괴사는 흔치 않았다.
과거 이민족의 침범으로 한족 왕조가 멸망하기 전 나타났던 신상의 피눈물.
파르르르 파르르르르.
도사의 몸뚱이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 무슨 변괴란 말인가!!!”
도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중국을 보살피는 황제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다.
그뿐만 아니었다.
황제 신상 주변에 있는 팔선 신상들의 눈에서도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에 찬 신상들의 모습은 더 참담했다.
“노, 노여움을 푸소서!!!”
쿵!
도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중국을 보호하는 신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무언가 큰일이 터질 징조가 분명했다.
‘도대체 누가 신들을 분노케 한단 말인가!’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려가고 있었다.
청 제국 멸망 후 어려움을 이겨낸 중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상신의 가호 덕분에 더 이상 배고픈 자가 없을 정도다.
세계 각국을 모아 놓고 큰소리 칠 수 있을 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15억이 넘어가는 중국 인구는 그 자체로 무기가 돼 주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공산당 정권은 안정을 찾았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의 눈치를 봤다.
도광양회의 숨죽이던 시대가 다 지나갔다.
슈건핑 주석의 영도 아래 대국의 위상을 자랑하던 이때 신상이 피눈물을 흘렸다.
원통함과 분함이 신상의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그때 도관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이십대 중반의 무척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내다.
무언가를 느끼고 황급히 도관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
“헛!!!”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신상을 보고 그 역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게 무슨…….”
“스승님! 이걸 어찌한단 말입니까.”
노도사가 미소년에 가까운 청년을 보며 말했다.
뒤바뀐 듯한 그들의 태도는 누가 봐도 이상한 모양새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사제지간이 바뀐 듯하다.
“스승님…….”
노도사가 스승의 답을 기다렸다.
노도사가 어렸을 때부터 스승은 저 모습이었다.
현묘한 능력을 소유한 스승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답을 찾아줄 것이다.
“황제께서…… 분노하신다!”
젊은 도사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100년 세월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음이 확실했다.
“누구냐……. 누가 감히 신들을 분노케 한단 말인가!”
도사의 눈에서 베일 듯한 새파란 한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
– 이 땅의 큰 조상신이 후손신들의 억울함을 듣고 당신을 저주하였습니다.
– 끝나지 않는 전쟁이 소환되었습니다.
– 생존을 위해 카르마 포인트를 적립하십시오!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두 황제가 윗선한테 가서 울고 짜고 한 모양이다.
억울했을 것이다.
레벨이 낮다보니 나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황제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부하들에게 벼락을 내렸다.
자신들이 관할하던 영역에서 벌어진 참사.
그들의 위선 넘치는 조상신들이 날 저주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땡큐다!
끝나지 않는 전쟁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조상신들의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한 셈이다.
상급 신들을 넘어 후손을 보호하기 위한 조상신들이 본격 개입됐다.
이제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2016년을 시발점으로 한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파상 공격.
어차피 한판 붙어야 할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였다.
스스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이 땅의 조상과 후손들은 철면피다.
오직 자신들만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습성이 영혼과 몸에 진득하게 배었다.
전혀 두렵지 않다.
이미 나를 회귀시켰던 할배 조상신이 언급하셨다.
이웃집 욕심 많고 사나운 개새끼에게 몽둥이를 휘둘러 단단히 교육하라고 말이다.
“으음…….”
방태민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뜬금없이 비에 젖은 꼴로 나타나 담판을 짓자는 내 수를 읽어내지 못했다.
곧 100세가 가까운 정치인에게 지금 같은 변수는 괴로움을 가중시킬 뿐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보고를 계속 받고 있었을 방태민.
그의 두상에 열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앞서 내가 접촉한 이들과의 거래 내용이 어떤 건지 상상하느라 무척 바빴다.
– 어르신 놀리는 거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흐흐흐.
죽은 귀신들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아직도 꽤 어리숙한 면이 남아 있지만 과거보다 눈치가 많이 좋아졌다.
이대로 쭉 열과 성의를 다해 배우면 신계에 가서도 눈치로 밥 먹고 살 만한 신은 될 것 같다.
“담판이라…….”
방태민이 입맛을 다셨다.
세수 90을 넘기는 나이임에도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보기에도 깔끔했다.
늦은 밤임에도 머리칼이 단정했다.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냈다.
트레이드 마크인 큼지막한 검정 안경테 너머에서 반짝이는 눈동자.
본래 커다란 귀와 귓불은 장수와 명예를 상징한다.
도톰한 콧볼은 복의 집합체다.
하관도 널찍하니 죽을 때까지 부와 권력을 누릴 최고의 관상을 가졌다.
중국의 다스리는 황제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건 분명하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쾅! 쾅!
요란하게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멈추지 않고 몰아쳤다.
중국신 성질머리가 그만큼 더럽다는 소리일 것이다.
“내일이면 늦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나?”
내일쯤 나와 만나려 했을 방태민.
“오늘 여러 대인들의 제안을 받아 내일 확답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내친김에 밀어붙였다.
본격적으로 패를 까고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방태민은 그만큼 고민스러울 것이다.
내 쪽 바닥에 깔린 카드 패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오고 갔던 제안들은 보이지 않는 패가 돼 주었다.
방태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가늘게 뜬 눈으로 지그시 날 봤다.
– 레이저 나오는데요?
과거였다면 나 같은 건 말 한마디로 당장 처리 가능한 권력자다.
사실 지금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
조용히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수처럼 상대의 대답이 나오기를 압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태민이 선택할 경우의 수는 몹시 적었다.
슈건핑이라는 대적을 눈앞에 두고 나와 적이 될 수는 없다.
“립 자네는……. 고약한 친구야.”
“친절한 후배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만한 낯빛을 보이지도 않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무엇을 원하나.”
판돈이 던져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배팅이 시작됐다.
세상에서 가장 음흉하고 노회한 이무기급 정치인을 상대하고 있다.
어설프게 판돈을 흥정하고 패를 보이면 바로 뒤통수를 맞는다.
“그 녀석이 뭘 준다고 하던가?”
딱히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그 녀석이라는 호칭.
넌지시 내가 가진 패에 대해 물어왔다.
약았다.
충분히 보여주어도 무방한 패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글쎄요……. 하도 많은 백지수표를 받아서…….”
지금은 전투 중이다.
상대의 전력이 파악된 만큼 공세는 내 뜻대로다.
“녀석들이 제시한 수표. 다 부도수표야.”
“네?”
놀라는 척했다.
“낚시꾼 녀석은 복수에 눈이 멀었지만 가진 미끼가 거의 없어. 날 따라 하는 다른 놈은 너무 포부가 작아. 그리고 덩치 큰 곰은……. 욕심이 너무 많아. 가까이했다가는 나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야.”
– 오! 역시!!!
귀신이 지켜보고 있다 엄지척을 내밀었다.
간단하게 내가 만났던 중국 최고 권력자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자신을 비하하며 충고를 가장한 채 접근하는 방법도 꽤 괜찮다.
문제는 그 모든 게 뻔히 보인다는 것.
“낚시꾼의 남아 있는 미끼가 제법 실하던데요? 포부가 작은 대인은 감춰진 큰 판돈을 쥐고 있는 것 같고……. 욕심 많은 큰 곰은 주변에 먹을 게 많습니다. 그러나…….”
굳이 뒷말을 잇지 않았다.
당신이 가진 미끼는 어떤 건지 물었다.
담판이라 이름 붙였지만 이 자리는 협박장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가진 것 다 내놓으라고 칼을 들이밀었다.
“역시 고약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방태민.
씨이익.
그가 웃는다.
그리고.
“말해보게. 내가 내밀 백지수표에 무얼 적고 싶나?”
제법 센 반격이다.
이제 하나의 패를 오픈할 때다.
“제가 원하는 건…….”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