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50
1170장. 담판(2)
“실수하셨습니다……. 녀석의 도발에 넘어가셨습니다.”
“으음…….”
주석궁 주인의 입에서 낮게 깔린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미 얼굴은 딱딱하게 굳을 대로 굳었다.
갑자기 자금성에서 모습을 감췄던 장립 때문에 방창걸이 들어왔다.
중난하이에서는 이런 일이 수시로 벌어지니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슈건핑의 신임을 받고 있는 방창걸도 중난하이에 머물 수 있는 저택이 존재했다.
슈건핑의 새파란 칼날에 버티지 못하고 쫒겨난 자들이 몇몇 있기도 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심리전에 능합니다. 웬만한 계략으로는 장립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2인자의 자리와 중난하이 저택이 그렇게도 가치가 없나?”
슈건핑이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각하나 저와 같은 정치가에게나 제격인 미끼입니다.”
“권력 뒤에 돈과 명예가 따라온다는 걸 그 녀석도 알 텐데…….”
“세상에는 또 다른 가치에 목적을 두고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슈건핑보다 세상을 좀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방창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어. 지금껏 내 주변에 머물며 그런 유혹을 뿌리친 자는 하나도 없었어.”
“장립이 특이한 녀석입니다.”
“꿈이 인류평화라고 하더군.”
“……진실이 아니더라도 대단한 배짱입니다. 각하의 제안을 뿌리치기 위해 그렇게 황망한 답변을 내놓을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
“네.”
“허참.”
최측근의 대답에 슈건핑은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짢은 마음은 감출 수가 없지만 사실이었다.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자신의 제안과 그 제안을 거부한 장립이 개인적으로는 몹시 미웠다.
어쩌면 분노했다는 게 맞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장립을 비밀 감옥에 처넣었을 것이다.
황제가 된 뒤 자신의 뜻대로 못할 게 거의 없었다.
그것을 거역한 자는 장립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이번에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슈건핑도 나름 반성하고 있었다.
우르르르릉! 콰아앙!
촤아아아아아앗.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장마가 요란하기도 했다.
이때쯤 내리는 비를 두고 가을을 데려오는 전령사라도 부르기도 했다.
여느 때 같지 않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도리어 불쾌한 슈건핑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기운이 더 강했다.
“장립은 대단한 무공수련자입니다.”
“확실한가?”
“경호원들 중에 무공을 수련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장립을 보면 숨이 막힌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과거에 태어났다면 능히 일대종사라 불렸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음…….”
슈건핑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흘러나왔다.
과거만 못했지만 아직 중국에는 비밀스러운 수련자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특수 경호원으로 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중난하이를 비롯해 주석과 중요 인사들의 경호원으로 활동 중이다.
“증거도 있습니다.”
“증거?”
“태화전의 돌바닥에 찍힌 자국은 장립의 것입니다.”
“그게 가능한가?”
“고수라면 가능하답니다.”
“……으으음.”
슈건핑의 입에서 또다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환단도 내공을 사용하는 자만 가능한 제조법으로 파악됐습니다.”
방창걸의 침착한 설명은 계속됐다.
슈건핑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한순간 실수로 장립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깨트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할 상황이다.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홀연히 방 주석 저택에 나타난 것도 무공 때문입니다.”
“날아갔단 말인가?”
“고도의 은닉술일 수 있습니다.”
“놀랍군…….”
“아직 감춰진 능력이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나이에 그게 모두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의문입니다. 본토인도 아니고 프랑스 화교 출신이 어찌 그런 무공을 수련할 수 있었는지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미국에서 배웠을까?”
“아닙니다. 학교 재학 중에 인종차별을 당할 때도 멍청하게 당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럼 갱에 있을 때?”
장립에 대한 보고서를 몇 번이나 정독했던 슈건핑이었다.
“그것도 아닙니다. 당시에도 연약한 공부벌레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 배웠단 말인가?”
“……사실 오늘 수소문해서 무공이 대단한 경호원의 스승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
슈건핑이 궁금해하며 급하게 물었다.
“강신(降神)을 통해 무공을 전수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하였습니다.”
“강신!!!”
슈건핑이 대단히 놀라며 소리쳤다.
장립의 일거수일투족이 수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신을 통해 무공을 수련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과거 전진파나 무당파에서도 그런 비술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게 진짜 가능하나?”
중국을 지배하는 황제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공산당의 주요 지배 사상인 유물론적 사상을 바탕으로 살아온 슈건핑은 도저히 듣고 있는 말들이 납득되지 않았다.
넓은 중국 대륙이다 보니 기인이사들이 가끔 출몰하긴 했지만 어느 지점에 가서는 한계를 보였다.
아무리 대단한 자라 해도 총구를 피할 수 없는 처지와 같았다.
그런 슈건핑에게 강신술은 덮어놓고 믿을 수 없는 무공 세계 이야기였다.
“짐작만 그렇다고 합니다.”
“직접 대면하면 알 수 있을까?”
“……멀찍이서 보고 고개를 젓더니 자신은 상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단하군!”
장립에 대해 다시 한 번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슈건핑.
“최대한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장립은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포섭 1순위입니다.”
방창걸이 친히 공항에 마중까지 나간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장립은 보면 불수록 신비하고 그만큼 위험한 자였다.
성의를 보여 적이 되는 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방 주석은 알고 있었겠지?”
“뒤에 있는 선인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천하의 방 주석이 장립에게 보이는 호의는 나도 낯설 정도였으니까.”
나름 방태민의 최측근 사냥개라 불리던 슈건핑이었다.
하늘 아래 고귀한 존재는 스스로 하나밖에 없다 여기는 이가 방태민이다.
그런 그가 장립을 어지간히 소중하게 여겼다.
과거 주석이 되었던 슈건핑을 대할 때보다 더 진한 호감의 표시인 것이다.
“그럼에도 장립에 대해서는 모든 걸 다 파악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 밤에 두 사람이 만났는데 걱정 안 해도 되나?”
“장립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였다면 각하의 제안에도 따랐을 겁니다.”
“그렇다면…….”
“기다려 보십시오. 아마 방태민 주석도 큰코 다칠 게 확실합니다.”
“무섭군. 나이도 어린 자가 심계가 그리 깊다니.”
“두려운 자입니다. 속을 알 수도 없습니다.”
“감춰놓은 꿍꿍이가 대단하겠지.”
“좀 더 파악해 보고 싶은데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기다려 보지.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슈건핑은 장립을 인정하면서도 크게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천하를 상대로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장립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일개 개인일 뿐이다.
그리고 장립은 화교 출신이다.
황제를 조상으로 섬기는 중국인은 결국 한 뿌리일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진리에 매어 있는 신세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아드리겠습니다. 그때 친분을 쌓으십시오.”
“……알겠네. 이번에는 기필코 친해지겠네.”
슈건핑도 마음을 다잡았다.
갈수록 매력이 넘치는 장립이 아닐 수 없다.
‘장립! 널 반드시 무릎 꿇리겠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 자존심을 끝내 세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슈건핑은 중국을 비롯해 세상에 한 명뿐인 진짜 황제를 꿈꾸는 자였다.
***
– 형님은 낚시의 달인이십니다! 흐흐흐.
뜸을 들이자 귀신이 뭘 안다고 음흉하게 웃는다.
인정한다.
항복을 선언하고 백지수표를 제시하는 방태민.
고약하다 말하면서도 눈빛은 여지없이 반짝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지막 판돈을 쓸어올 때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인생을 100년이나 살아온 자를 상대하고 있다.
회귀한 나도 범접할 수 없는 세월의 지혜가 눈빛에 알알이 녹아 있다.
“말해보게. 내 다 들어줄 테니.”
큰소리 빵빵 친다.
“황제도 가능합니까?”
“황제?”
뻥카를 던졌다.
“원한다면 만들어 주지!”
맞받아 콜을 외치는 방태민.
– 와아아! 슈건핑 주석보다 통이 큰데요?
속지 마라. 저거 물면 큰일 난다.
이 방 어딘가에 녹음 장치가 설치돼 있을 수도 있다.
자칫 역모로 몰릴 수 있다.
“농담입니다. 제가 어찌 황제를 꿈꾸겠습니까.”
과장되게 손사래를 쳤다.
이럴 때는 액션이 과해도 무방하다.
“아쉽군. 난 진심인데.”
“주제를 알아야 장수하는 법입니다.”
“그건 나와 생각이 같군. 하하하하하.”
방태민이 시원하게 웃는다.
분위기는 좋다.
오고 가는 말 속에 여러 의미가 섞였다.
“백지수표 기한은 넉넉합니까?”
“……내일까지라고 하지 않았나?”
“계약 기간은 당사자 간 협의로 늘어나는 법입니다.”
“자네…….”
눈을 가늘게 뜨는 방태민.
그렇게 떠도 변하는 건 없다.
어차피 승자가 정해져 있는 도박판이다.
방태민은 지금 접대 도박 중이다.
“본 계약 체결 전에 양해각서를 먼저 작성토록 하죠.”
“양해각서???”
– 형님 그건 또 뭡니까?
공룡 뼈를 한 번에 우려먹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천천히 토막을 내서 몇 번에 걸쳐 진하고 길게 뽑아 먹어야 한다.
“서로 신뢰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방태민이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는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격에 머릿속이 바빠 보였다.
“내 신뢰가 부족한가?”
“아닙니다.”
“난 립 자네를 신뢰하네. 그러니 본 계약을 바로 체결하지.”
되돌아오는 반격이 만만치 않다.
내가 가진 진짜 패를 보고 싶은 것이다.
“급히 먹다 보면 체하는 법입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네.”
“걱정 마십시오. 100세를 채울 겁니다.”
“……말이라도 고맙군.”
농담이 아니다.
방태민은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장수할 수밖에 없다.
이번 생에 쌓은 악업이 넘쳐 다음 생은 아예 기약이 불가능했다.
“양해각서 이행 조건은 간단합니다.”
“???”
“내일 정리해 주십시오.”
“뭘 말인가?”
“쓸모가 다한 사냥개는……. 예의를 다해 주인이 직접 처리해야 죽어서도 덜 억울한 법입니다.”
“……정말 그걸 원하나?”
가자미 눈으로 날 바라보는 방태민.
“그 사냥개는 저와 상성이 맞지 않습니다. 몇 번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홍콩 여자친구가 싫어합니다.”
“이것도 고약하군.”
방태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고약할 것도 없다.
어차피 방태민은 쳐낼 수밖에 없다.
슈건핑 쪽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다.
“빨리 처리해야 뒤탈이 없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만약 그들처럼 적에게 불기라도 한다면…….”
협박도 병행됐다.
몇 년 전 실패한 역모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배신으로 인해 방태민은 회심의 쿠데타에 실패했다.
“알겠네.”
방태민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공짜가 아닌데 감사는 무슨…….”
방태민이 지그시 날 바라봤다.
이제 내가 대가를 지불할 순서다.
“각하의 맹세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맹세?”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 방태민.
조건은 내가 제시했다.
웃는 얼굴로 방태민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后已), 몸 굽혀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죽은 후에나 그만두겠습니다.”
“!!!!”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