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22
1242장. 저거 몇 대만 주십시오
‘당황하는군. 후훗.’
21세기 차르라 불리는 사내, 러시아의 황제 푸틴.
다니엘의 놀라는 모습에 내심 흐뭇했다.
아직 한창 젊은 청년에 불과한 한국인이 배짱도 좋았다.
홍콩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다니엘을 러시아가 나서서 구해줬다.
그 과정에서 비용으로 받은 자금의 규모가 꽤 컸다.
처음 시작은 작은 호기심이었다.
중국 공작원들에게 쫓기는 일개 한국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상당한 보상금을 제공하겠다고 딜을 해왔다.
당시 달러가 부족했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과 준동맹 관계에 있었지만 실상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투자는 대단한 성과로 돌아왔다.
위험에서 벗어난 다니엘은 보답이라도 하듯 러시아에 자본 투하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다니엘의 안전을 보장하자고 요청했던 이들은 현재 모두 요직에 올라 있다.
차르 역시 다니엘이 이렇게까지 부자일 줄은 미처 몰랐다.
러시아 정보력에 의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다니엘의 자산 규모.
누구도 그 액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많게는 러시아 1년 예산을 넘는다는 정보도 들어왔다.
차르라 불리는 그도 그런 막대한 돈은 만질 수 없었다.
내친김에 사하 공화국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성과 주변 땅을 다니엘에게 영지로 내줬다.
선심 쓰는 형식이었지만 공짜가 아니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잘 알았다.
예상대로 다니엘은 많은 돈을 뿌렸다.
사실 친동생보다 관계도 더 나았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를 두려워했다.
여러 번 경제적 박해를 받았음에도 추위와 배고픔에 이골나 있는 러시아 국민들은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냈다.
보드카만 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러시아 민족.
푸틴도 그런 러시아인이었다.
이익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점에서 다니엘은 무조건 합격점이었다.
언제봐도 기분 좋아지는 인물.
관계 유지에 있어 딱히 무얼 바라지도 않았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오만한 미국 놈들과 달랐다.
계산이 많고 겁도 많은 유럽인들과도 차별됐다.
이것저것 더 퍼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상하리만치 원하는 게 없었다.
그 때문에 가끔 자존심도 상했다.
다니엘은 거대한 땅을 다스리는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다.
하물며 아쉬운 소리 한 번 한 적 없었다.
이번 러시아 방문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자존심을 접어두고 자신이 직접 다니엘을 찾아왔다.
당연히 선물도 준비했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다니엘을 핍박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다니엘도 놀랄 만한 준비를 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다니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누구도 아닌 미국의 다음 대통령을 선택하라는 제안이다.
당황스럽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푸틴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잠시 꺾였던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그게 무슨…….”
다니엘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형이 다 알고 있네.”
“네?”
“오바마가 힐러리의 당선을 위해 동생을 괴롭히고 있다 들었어.”
러시아의 첩보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천재 해커들뿐만 아니라 여러 공작을 통해 미국의 중요 인사들을 포섭했다.
냉전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암중에서의 첩보전은 지금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걸 어떻게…….”
다니엘이 놀라며 묻는다.
“동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잖아. 하하하.”
푸틴이 호탕하게 웃는다.
형 노릇하는 기쁨이 꽤 크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다니엘이 감탄하며 기뻐했다.
눈빛에 존경심이 가득했다.
‘흐흐흐.’
푸틴은 속으로 더 크게 만족하며 웃었다.
이제야 러시아를 다스리는 황제의 체면이 서는 것 같다.
“그래 원하는 후보가 있나?”
말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다니엘 같은 거물과의 관계는 완벽한 신뢰가 기반돼야 한다.
동시에 원하는 테스트도 겸해 진행했다.
다니엘의 속내 크기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미국 대통령은 푸틴에게도 중요한 인사다.
사실 진작부터 사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사안이다.
사사건건 방해하고 무시하던 오바마와는 어차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미국 최우선주의자가 바로 오바마다.
그들 입장에서는 진짜 애국자인 셈이다.
뇌물이 먹힌다거나 여성을 문제 삼을 만한 틈이 없었다.
국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주고받는 것도 예의지만 도무지 정치 상도의를 인정할 줄 몰랐다.
열받을 때마다 푸틴은 오바마를 자극하기 위해 일본을 공격했다.
반환하기로 했던 북방 섬들은 좋은 예가 되는 꽃놀이패였다.
그럴 때마다 일본은 엄살을 떨고 오바마에게 청원하기 바빴다.
그걸 즐겨온 푸틴.
이번에는 다니엘에게 그 공격 버튼을 넘겨주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형님 전…….”
결심한 듯 입을 여는 다니엘.
푸틴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다니엘을 바라봤다.
***
이 행님 봐라?
약을 파는 러시아 차르.
미끼가 꽤 훌륭하다.
그러나 이런 장사는 내가 전문이다.
중국 성인들에게 팔려간 장립 귀신을 흉내냈다.
아부성 발언과 눈빛도 적절하게 장착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흐뭇함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인간 세상 사는 법,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가 원하는 달콤한 말을 적당히 섞어 대응하면 된다.
단, 가끔 사용해야 먹힌다.
지금껏 차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굳이 아부해서 탐낼 만한 것도 없었다.
러시아 땅이야 넓고 쓸 만하지만 내 나라가 아니다.
로버트 라이언이 당황했을 정도로 큰 자금을 투입했지만 뽕을 뽑고도 남는 투자다.
차르의 권력은 2020년까지 꿋꿋하게 유지된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죽는 날까지 차르를 대신할 만한 정치적 후계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 국민성이 그만큼 남다르다는 뜻이 된다.
국민들은 상남자 스타일의 지도자를 사랑했다.
상체 탈의하고 말 좀 타 주면 또 권력은 허락될 것이다.
사냥총 들고 멧돼지도 잡고 겨울에 얼음 깨고 강물에 입수하면 다시 믿어주는 국민들.
게다가 차르는 똑똑한 인물이다.
완벽한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술에 취해 정무에 소홀한 추태도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쌓이고 나이를 먹어도 정력을 유지해 애인도 많았다.
어쩌다 얼굴을 내미는 정적 제거에도 철저하고 깔끔했다.
부리고 있는 부하들을 상대로 돈도 잘 뿌렸다.
KGB 출신답게 심리전에도 능수능란했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배고프게 하지 않았다.
국영 기업을 쥐고 따로 재산을 축적했지만 돼지처럼 욕심부리지는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부패를 관리하며 국가를 다스렸다.
측근들도 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눈치껏 기었다.
중국처럼 공산당 관리와 자식들이 사고를 치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차르.
나에게 미끼를 던지고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봤다.
원하는 대로 장단에 맞춰 움직여 줬다.
그리고 이제 선택의 순간이 왔다.
“형님 알아서 하십시오.”
“???”
의외로 가벼운 대꾸에 차르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다른 놈들 같았으면 진짜 본심을 드러내겠지만 난 아니다.
미끼도 차르만의 방식으로 나를 시험하고 있음을 알았다.
분명 내가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힘은 나에게도 있다.
“다니엘 잘 생각해 봐.”
“뭘 말입니까?”
“나야 러시아 총리지만 자네는 투자자잖아. 이 작업으로 손에 쥘 수익이 적지 않을 거야.”
유혹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안 속는다.
이거 잘못 물었다가는 평생 이 남자한테 끌려다닐 수도 있다.
차르 전문 수작이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저 부자입니다. 굳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끼어들어 피곤한 일 겪고 싶지 않습니다.”
한껏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눈썹이 꿈틀거리는 차르.
예상 밖의 상황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이럴 때일수록 역시 아부가 최선의 자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오바마가 찾아와 협박했습니다. 한국에 뿌린 똥을 치워주겠다고 말입니다.”
“똥?”
“사드 말입니다.”
“아! 사드.”
은근히 주제를 돌렸다.
발끈하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의 입장은 태평했다.
수도 모스크바가 대한민국과 꽤 멀었다.
어차피 사드가 깔린다고 해도 러시아가 쫄 일은 없었다.
미국 대통령보다 핵미사일 버튼이 더 클 거다.
“통 큰 형님하고 스타일이 완전 다릅니다. 미국 대통령이 겨우 미사일 따위로 협박이나 하고…….”
차르를 띄워주면서 동시에 경고성 발언을 밑장에 깔았다.
웬만한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고 돌려 말한 것이다.
“박애주의자처럼 말하지만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자입니다. 미국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면 의리도 지키지 않을 나쁜 사람입니다.”
러시아의 오랜 적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을 신랄하게 깠다.
의외로 표정이 어두운 차르.
똑똑한 남자답게 내가 말하는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 말고 다른 조건은 없었나?”
차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아니나 다를까 흥미를 보였다.
역공작이 시작된 셈이다.
“한국 대통령에 내가 원하는 자를 앉혀주겠다고 했습니다.”
“!!!”
차르가 크게 놀란다.
이것까지는 생각 못 한 것 같다.
아차 싶은 표정이다.
“그, 그래서?”
“당연히…….”
순간 떨리는 차르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거절했습니다.”
“거절? 다니엘 자네와 인연 있는 자가 대통령이 되는 걸 원하지 않나?”
차르도 나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수집했다.
김현재 후보와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빛이다.
“지도자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거라 배웠습니다.”
“하늘의 뜻?”
“모든 국가의 수장들은 그 나라 국민들 수준에 맞는 자가 임명된다고 했습니다. 현명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전 믿습니다.”
“…….”
차르가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을 곱씹는 게 역력하게 보였다.
“러시아 국민들이 그런 점에서 얼마나 현명합니까. 형님이 수장이 된 후 정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까.”
한 호흡을 가다듬고 바로 차르를 띄웠다.
러시아의 장점 중 하나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난 인류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러시아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차르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책임 지면 된다.
그래서 투표권 하나가 그렇게 소중한 거다.
냉정한 통찰과 평가 없이 투표권을 행사하다가는 말도 안 되는 인사를 지도자로 뽑게 된다.
그 피해는 결국 각자가 돌려받게 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누가 봐도 사기꾼이거나 거짓말쟁이인데 그런 자를 뽑는다면 스스로가 그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정치인을 뽑을 때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권에 들어가는 순간 누구도 처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고맙네…….”
차르가 마지못해 고맙다는 말을 내뱉었다.
이럴 때는 자존심을 세워 줄 필요가 있다.
“형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부탁이라는 말에 금세 얼굴에 흐뭇한 감정을 드러내는 차르.
스윽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듬직한 그놈들.
진심으로 탐난다.
“저거 몇 대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