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52
151장. 주군을 위해!
“긴장 풀어라. 어깨 뭉친다.”
친구가 긴장한 하관우의 어깨를 만졌다.
“휴우. 이 나이 먹고도 감정 조절이 안 된다.”
넥타이를 다시 만지며 하관우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장 대표 좋은 남자다. 당당하게 너를 말하면 된다.”
“고맙다. 친구…….”
하관우는 친구에게 힘을 얻었다.
삼우 로펌 이사 조윤태와 하관우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전체에서 1, 2등을 바꿔가면서 누렸다.
조윤태가 한국대 법대에, 하관우는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재학 중 술을 자주 마셨다.
그리고 졸업 후에 조윤태는 검사로 출발했고 하관우는 기업에 입사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하관우였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순위를 다투던 대웅 그룹 핵심 자회사인 (주)대웅의 부사장까지 지냈던 인재였다.
1980년 중반에 대웅에 입사해 수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인도네시아 플랜트 합작 투자 건, 미얀마 철도 차량 준공, 북경 및 러시아 지사 설립 등등 세계를 돌며 수많은 합작 및 수출을 일궜다.
젊은 시절 세계가 좁다고 느끼며 뛰어다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대웅 그룹이 IMF 여파로 산산조각 분해됐다.
2000년 대웅인터내셔널로 회사가 바뀌었다.
워크아웃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피를 나눈 것 이상으로 정이 쌓인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하관우는 피눈물을 흘리며 버텼다.
남아 있는 후배들과 청춘을 다 바친 회사가 망하는 걸 볼 수 없었다.
인맥과 힘을 다해 절치부심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그도 정리해고됐다.
2003년 워크아웃이 종료되었지만 주인이 바뀌었다.
2006년 미얀마 가스전 탐사 성공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왔다.
회사는 살아남았지만 영광뿐인 흔적이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영업 분야가 축소됐다.
(주)대웅의 자랑이었던 국제무역, 철강, 기계인프라, 원료물자, 석유가스, 화학본부가 대폭 감축되었다.
과거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했다.
공중분해 된 그룹 여파였다.
대웅의 독특한 선단식 무차별 영업방식은 그룹 자회사들의 유기적 협동에 성패가 달렸다.
그러나 조각조각 분리된 회사는 그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제의 무적 동료들이 패배자처럼 변했다.
그때마다 하관우는 씁쓸함을 삼켰다.
그리고 퇴직.
회사를 나왔지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그만큼 인재들도 차고 넘쳤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퇴직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동기들 중에 일찍 경비원이 된 이들도 있었다.
퇴직 당시 본사에서 하청업체 감사 자리를 내줬지만 사양했다.
하관우는 대웅맨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그럼에도 꿈을 접기에는 아직 나이가 젊었다.
빠른 승진으로 부사장까지 올랐던 만큼 퇴직 후 삶에 괴로움이 동반됐다.
마음은 청춘이었다.
좀 더 국가와 조직에 열정을 쏟고 가정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괴로움에 술만 늘었다.
자녀들도 아직 대학생이었다.
아버지로서 늙은 사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즈음 동창인 조윤태에게 연락이 왔다.
아는 대표가 회사 경영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미친 듯 뛰었다.
면접 날짜가 빨리 잡혔다.
이력서를 보내자마자 연락이 왔다.
어제는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어떤 회사인지 모르지만 마지막 남은 꿈과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20층에서 멈췄다.
“설마 이 건물 통으로 사용하는 건 아니지?”
“맞아.”
“…….”
회사 규모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입구에는 정장을 착용한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봤다.
강남에서 이 정도 건물 규모를 소화하려면 수천억이 넘었다.
창밖으로 봉은사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서울역이 보였던 대웅 건물 본사보다 더 멋졌다.
“어서 오십시오. 조 이사님.”
“유 팀장. 장 대표 안에 있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넓은 사무실에 직원이 달랑 한 명뿐이야?’
하관우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도깨비 소굴도 아니고 20층을 통으로 사용하는 눈치다.
미스코리아 같은 여직원이 웃으며 맞이했다.
회사라면 응당 보여야 할 파티션도 없었다.
여직원이 사용하는 넓은 책상과 중앙에는 화원처럼 화분과 꽃들이 즐비했다.
회사가 아닌 정신 클리닉 같은 장소로 보였다.
“잘해라.”
평소 친구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윤태가 다시 한 번 힘을 줬다.
하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르르륵.
대표실 앞에 서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장 대표, 나 왔어~.”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뭐, 뭐야? 저런 어린 친구가!!!’
자신을 고용할 구세주는 어려도 아주 어렸다.
하관우는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이십 대 초반이었다.
“관우야, 인사해라. 앞으로 네 인생 책임져 줄 장태산 대표님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관우라고 합니다.”
퍼뜩 정신을 차린 하관우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조직에서 오래 버텼기에 윗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녔다.
해외 영업에서도 로열패밀리들 중에 어린 청년들이 많았다.
결코 나이가 기준이 되지 않았다.
중동 국가 왕자들은 기본으로 몇 조 원을 움직이는 사업가들이었다.
“앉으십시오.”
장태산이라는 젊은 대표가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주식이나 환율 투자가?’
회사 이름은 LOR 투자 법인이었다.
정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사모펀드 계열인 것만 짐작할 뿐이다.
사무실이 대기업 회장실만큼의 규모다.
인테리어는 깔끔했고 연결한 책상들 위에는 대형 모니터 몇 개가 보였다.
기품이 넘쳤다.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관우는 앉기 전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했다.
퇴직 후 수없이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면접 기회는 겨우 3번 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나이에 비해 원숙하다. 직장 생활을 해봤을 것 같지 않은데?’
장태산 대표는 전혀 그 또래로 보이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경험한 자의 여유까지 엿보였다.
재벌 3세들의 몸에 밴 갑질도 보이지 않았다.
잘생긴 귀공자 스타일이다.
몸에서 은은하게 배어나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차장검사 출신인 친구 조윤태도 말투와 달리 몸조심하는 게 보였다.
“대표님, 커피 드세요.”
“고마워요.”
여직원이 빠르게 커피를 내왔다.
외모에 센스까지 있는 프로 직원 같았다.
“이력서는 봤지?”
“확인했습니다.”
“내 친구 어때?”
친구가 바람을 잡았다.
“대한민국 산업 역군의 표본 같았습니다.”
“그렇지? 내 친구가 대웅의 살아 있는 역사 같은 인물이야.”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이력서는 정직하게 보냈다.
있는 사실 그대로 작성했다.
하관우는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일과 결과로만 말했다.
“장 대표가 보기에 어때?”
“믿음이 가는 분 같습니다.”
“내가 책임질게. 하관우 이 친구 진짜 인물이야.”
“채용하겠습니다.”
“네?”
몇 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는데 채용하겠다는 말에 하관우는 깜짝 놀랐다.
보통 임원 면접은 상당히 까다롭게 진행된다.
회사의 중역들을 잘못 채용하면 기업이 입는 피해가 엄청나다.
그런데 이력서 보내고 얼굴 한 번 보고 채용이란다.
“조 이사님을 형제보다 더 신뢰합니다. 그런 분의 추천이라면 더 이상 볼 게 없습니다.”
“하하하. 관우야. 장 대표 잘 모셔라. 만약 잘못되면 나도 짤려~.”
조윤태가 활짝 웃었다.
“최선을 다해 대표님을 보필하겠습니다!”
채용이 확정됐다.
하관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태산 대표에 예를 표했다.
조직은 위아래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법이다.
소규모 회사라도 상관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맡을지 몰라도 지난 세월 다져온 인맥으로 뭐든 다 할 자신이 있었다.
대웅맨들은 그렇게 전천후 전사로 육성되었다.
“10층에 인수팀을 꾸려주십시오.”
‘인수팀?’
“직책으로 총괄팀장 겸 이사에 선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번갯불에 이것저것 다 볶아 먹을 정도로 빠른 결정이었다.
그래도 하관우는 불만 없었다.
이사라는 직위는 경영자에 속했다.
“대웅에서 오래 근무하셨죠?”
“네. 26년 근무했습니다.”
“상당히 승진이 빠르셨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아니라 하관우가 이뤄 놓은 업적이 많았다.
철혈의 경영자라던 전 회장도 하관우를 신뢰했다.
“전 개인적으로 대웅맨들을 좋아합니다. 맨손으로 유를 창조하는 테크닉은 발군이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자신의 과거의 흔적 같은 대웅에 대해 인정하는 장태산 대표에 하관우는 마음이 활짝 열렸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적으로 대웅만큼 빠르게 사업군을 확장한 기업은 드물었다.
“물론 과다대출과 분식회계를 비롯해 많은 문제점도 있었지만 공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대웅의 문제는 하관우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치계와 결탁하고 은행 자금을 뽑아 문어발식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익이 나는 동안 다른 계열사 자금으로 수혈을 받았다.
자본보다 부채가 많았다.
수출을 위해서도 몸집이 필요했다.
급속도로 덩치가 커졌다.
대웅의 신화는 세계 경영계를 놀랍게 만들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 로비와 대마불사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 3대 그룹에 들었다.
하지만 IMF라는 어뢰 한 방에 대웅은 침몰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형 사고였다.
정부는 핫머니를 가장한 타국 세력들에 대웅을 재물로 바쳤다.
“대웅맨들을 모아 주십시오.”
“네???”
“아직 꿈꾸고 있는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무엇을 인수하려고?’
하관우는 혼란 속에서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생각보다 파이가 더 큰 것 같았다.
“대표님, 인수하는 회사에 대해 알 수 있습니까? 인수팀을 꾸릴 정도라면 작은 사업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조 이사님이 말씀드리지 않았나 봅니다.”
장태산 대표가 빙긋 웃었다.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크크.”
조윤태가 악당 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사업체를 인수하실…….”
하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아 그룹입니다.”
“헉!!!”
하관우는 그대로 몸이 경직됐다.
과거 대웅보다는 그룹 덩치가 작지만 안아는 대한민국 사업 규모 10위였다.
2008년 그룹 1년 매출만 수십 조였다.
그런 거대 그룹의 대표를 맡아달라는 눈앞의 청년을 다시 쳐다봤다.
믿기지 않아 친구 조윤태를 번갈아 봤다.
“우리 로펌도 장 대표 거다.”
“…….”
인수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로펌까지 소유하고 있을 줄 몰랐다.
“너 약속대로 술 자주 사라.”
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안아 그룹을 경영할 수만 있다면…….
쿵!
하관우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 152
회귀의 전설